과연 우리는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여전히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더 많기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에 대해 고민하고, 힘들어하며, 노력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 비로소 나다운 삶을 살게 된 사람이 있다. 편집자, 콘텐츠 마케터, 에세이스트 등 오랜 시간을 글과 함께 살아온 저자 유수진. 그가 인생에서 글만큼이나 잘 써야 하는 것들을 이야기한 『나답게 쓰는 날들』이 출간됐다.
흔히 ‘쓴다’라는 건, 소모적인 동시에 생산적인 의미를 지니는 행위이다. 쓰다 보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있어 단편적인 사실 그 이상을 볼 수 있는 마음, 독자를 고려하여 조금 더 친절한 글을 쓰는 마음, 내가 행복해지는 일을 알고 그 행복을 좇을 줄 아는 마음, 그리고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난다. 이 마음들이 모여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사람으로 성장하고 그러면서 나를 비롯한 타인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고 이 책은 전한다. 누구보다 ‘나’를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저자의 따스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먼저, 두 번째 책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나답게 쓰는 날들』을 출간한 소감과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난주 책이 출간되고 주변에서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설레고 기쁘다고 해야 정답 같은데 의외로 무덤덤하더라고요.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받고도 이게 내 책인지 아닌지 실감이 나지 않더라고요. 기분을 표현하자면, 회사에 출근해서 정말 한순간도 농땡이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후 퇴근하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늘은 왠지 집에 가서 다이어트 생각하지 않고 치맥 정도 먹어줘도 괜찮을 것 같은 뿌듯함과 동시에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는 약간의 부담감이 느껴지는 기분이에요. 사실 오늘도 독자와 약속한 일정에 맞춰 글을 발행해야 하거든요.
사실 첫 번째 책을 출간할 때는 신입의 패기가 느껴지길 바랐다면 이번 책은 첫 번째 책보다 경력직의 성숙함이 묻어나는 책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오래 살지 않은 제가 산다는 것의 의미를 말하기가 조금 쑥스럽지만, 산다는 건 나를 쓰는 시간으로 채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저를 써온 시간이 모여 만들어진 이 책은, 죽을 때까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제 나름의 사는 법이자 한 번 사는 인생 잘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응원이에요. 주춤거리지 말고 나답게, 당신답게 쓰는 날들에 이 책이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또 무얼 잘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알아보는 일이요. 아마 취미에 관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글쓰기 외에 작가님의 취미 활동이 또 있을까요?
이미 책에서도 소개한 취미인데, 열여덟 살 때부터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혼자 등산을 하고 있어요. 횟수를 가늠해 보니 지금까지 최소 천 번 이상은 산에 올랐더라고요. 드럼 학원도, 보컬 학원도 한 달 만에 그만둔 제가 왜 그렇게 산에 올랐나 생각해 보면 산 속의 고요함이 좋았던 것 같아요. 가족들과 같이 살고, 또 회사에 다니면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기가 힘들잖아요.
그런데 혼자 산에 오르면 말을 거는 사람이 없어 그저 산길을 따라 묵묵히 오르기만 하면 되니까 잡념도 사라지고 비로소 나에게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지금까지 써온 글의 글감들도 대부분 산에서 튀어나왔어요. 그러니까 등산은 저에게 끊을 수 없는 비타민 약과도 같아요. 먹은 날과 안 먹은 날의 차이가 글에 명백히 드러나거든요.
작가님께서는 6개월 만에 퇴사를 반복하며 끈기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웠다고 책에서 이야기하셨지만, 글만큼은 꾸준히 쓰고 계시는데요.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 원동력을 어렸을 적 들었던 칭찬에서 찾았어요. 글쓰기는 제가 어떠한 분야에서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은 최초의 것이었어요.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부터 시 창작이나 백일장 같은 대회에 나가면 담임 선생님께서는 제게 ‘수진이는 글을 참 잘 쓴다’라고 칭찬해 주셨어요. 저희 집이 칭찬에 후한 환경은 아니라 선생님께서 해주신 그 칭찬이 어린 제게는 엄청나게 큰 의미였죠. 그 칭찬을 들은 순간부터 저 자신을 ‘우리 반에서 글을 제일 잘 쓰는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했던 만큼 글쓰기가 좋았고,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무언가를 해보게끔 하는 원동력이 칭찬이라고 믿어요. 제가 아무리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해도 칭찬해 주시던 선생님이 없었더라면 이 재능을 더 키워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당시 선생님의 한마디 덕분에 글쓰기에 재미를 붙이게 됐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저의 재능을 키워올 수 있었어요.
프롤로그를 비롯해 여러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책에 대한 작가님의 애정이 많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의 인생 책을 소개해 주세요.
한 권을 꼽기는 어렵지만 권석천 작가님의 『사람에 대한 예의』를 꼽고 싶어요. 제목만 들어도 오늘 하루를 반성하게 해주거든요. 제 책에 「내가 그 분식에 안 가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한 분식집에 김밥을 사러 갔다가 주인이 콜센터 직원과 통화 중에 심한 욕을 하시는 걸 듣고 발길을 끊게 된 사연을 담고 있어요.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그 분식집에 안 가면, 굳이 10분 거리에 있는 분식집까지 걸어가야 하지만 저의 힘과 시간을 더 써서라도 그 분식집에는 다시는 가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사람에 대한 예의』에 보면 ‘우리는 숨을 쉬듯 누군가를 손가락질하지만 당신과 나 역시 한 발만 잘못 디뎠어도 다른 삶을 살게 됐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분식집 주인의 전화 너머 사람이 내가 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혹은 우리 가족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과연 그렇게까지 욕을 할 수 있었을까. 책 제목 그대로 ‘사람에 대한 예의’는 끊임없는 역지사지의 태도와 남들과 내가 다르지 않다고 믿는 데서 시작된다는 걸 가르쳐 준 책이에요.
회사에서 어느 정도의 직급이 있는 분이라면, 본문 「열 살 차이 나는 인턴과 함께 일한다는 것」을 읽고 많이 공감하실 것 같아요. 사실 나이 차에 따른 문제는 곧 세대 차이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이와 같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지 작가님만의 태도가 궁금합니다.
IT 스타트업 계열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저보다 8살이 많은 상사와 같이 일을 했어요. 하루는 그분과 같이 한 중학교에 찾아갈 일이 있었는데, 학생들에게 나눠줄 과자 박스를 들고 가야 했어요. 날씨가 굉장히 더운 여름이었고, 더위에 지친 저는 박스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큰 박스를 혼자 들고 계시더라고요. 한참 어린 저에게 시켰어도 되었을 텐데 말이죠.
저는 그때 나이 차이 나는 사람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위로든 아래로든 나이 차이를 생각하기 전에 나의 동료,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꼰대’라느니 ‘젊은 것들’이라는 말이 나올 겨를도 없어져요. ‘친구’라는 게 살면서 힘들 때 의지할 수 있고, 가장 아픈 치부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면, 8살 차이가 나는 그분과는 지금도 굉장히 가까운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본문에 수록된 「변기를 뚫는데 왜 행복할까」에서 마음이 복잡할수록 작은 목표와 실천에 의미를 두고 살아야 한다는 작가님의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살면서 지치고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작가님만의 마인드셋 방법이 또 있을까요?
막힌 변기를 뚫는 행동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었듯이, 정신적으로 지치고 힘들 땐 최대한 몸을 쓰려고 노력해요. 사실 몸이 힘들면 하루 이틀 누워서 에너지를 충전하면 되는데, 정신이 힘든 건 언제 회복이 될지 알 수 없어서 더 괴롭잖아요. 그럴 땐 산에 간다든지, 도서관까지 걷고 온다든지, 화분에 물을 준다든지 명확한 목적으로 몸을 쓸 만한 일을 찾아요.
그러면 힘든 일을 잠시라도 잊게 돼요. 또 다른 한 가지는,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볼 수 있는 일을 다 해보는 거예요. 고민되는 게 있으면 그 고민이 해결될 때까지, 나를 힘들 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게 사라질 때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는 거예요. 너무 과하면 오히려 더 힘들어질 수 있어서 추천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저는 이 방법을 쓰고도 무엇이든 해결되지 않으면 그제서야 그 문제를 후회 없이 내려놓고 자유로워지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나답게 쓰는 날들』을 읽고 열심히 자신만의 인생을 써나갈 독자들을 위해 응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를 스무 살 때부터 알아온 친구가 말하기를, 서른을 기준으로 제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20대 때는 늘 집순이었는데 서른이 되더니 세상에 적극적인 사람으로 바뀐 것 같다고요. 저는 그 차이가 글쓰기라고 믿어요.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고, 나에 대해 알아가고 싶은 만큼 세상 밖으로 더 나아가게 됐어요. 책 제목에 ‘나답게’라는 말을 넣으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나다운 것을 찾는 추세이지만, ‘나답다’는 말은 정답도 없고 너무 어렵잖아요.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건, 글을 쓰면 쓸수록 나다운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추천해요. 글을 쓴다는 건 곧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알고, 꾸준히 노력하는 태도로 이어져요. 여기서 글뿐만 아니라 인생 또한 잘 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렇기에 저는 작가로서, 에세이스트로서 살아온 제 이야기들을 통해 ‘나다움’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고요. 한 번뿐인 인생을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답게 쓰는 날들』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애정, 글, 시간, 힘을 비롯하여 우리 삶에서 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여러분답게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써나가기를 응원합니다.
*유수진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편집자를 거쳐 홍보 담당자 및 디지털마케팅 교육 프로그램 기획 운영자로 활동했다. 카카오 브런치에서 꾸준히 글을 쓰며 많은 구독자들의 공감을 받아왔다. 회사에서는 마케터로 일하고, 회사 밖에서는 작가로서 글을 쓰고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글로 쓰고 읽는 일을 좋아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위태로운 생각을 마음속에만 가두는 일이며, 그 생각을 꺼내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글쓰기라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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