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 가운데 코첼라 페스티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정식 명칭은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매해 4월이 되면 미국 캘리포니아 인디오에 위치한 사막 한 가운데 나타나는 신비한 음악의 땅이다. 1999년 시작된 페스티벌은 2022년 현재 음악을 사랑하는 전 세계 마니아를 오프라인으로만 20만 명 이상 소환할 수 있는 말 그대로 거대한 축제가 되었다. 20세기에 시작된 대부분의 음악 축제가 그렇듯 초기에는 밴드를 중심으로 한 라인업을 내세웠고, 한때 패셔니스타 및 인플루언서들이 찾는 것으로 유명세 아닌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개최 20년을 넘긴 지금은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 공연 헤드라이너는 그동안 변화한 음악 시장 분위기를 반영하듯 다양한 장르로 폭을 넓혔고, 페스티벌을 찾는 이들도 비교적 보편적인 음악 팬으로 확대되었다.
그런 변화의 흐름 위에서 CL이 2022년 코첼라 무대에 서게 된 건 상당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2018년, 코첼라는 The Weekend, 비욘세, 에미넴을 사흘간의 헤드라이너로 내세우며 기존의 ‘어쨌든 헤드라이너는 록 밴드’라는 공식을 완전히 무너뜨렸고, 2011년 그룹 EE를 시작으로 2016년 힙합 그룹 에픽하이, 2019년 여성 그룹 블랙핑크와 밴드 혁오, 잠비나이를 무대에 세우며 한국 음악가 출연 비중을 점점 높여갔다. 그 가운데 CL의 무대는 다소 의외의 지점에서 성사되었다. 2019년 데뷔 후 줄곧 함께해 온 YG엔터테인먼트와의 결별 이후 베리 체리(Very Cherry)라는 이름의 독자적인 레이블을 꾸려 활동하고 있는 그를 코첼라에 초대한 건, 다름 아닌 88 라이징(88 Rising)이었다. 아시아 기반 음악가를 중심으로 라인업을 꾸린 미국의 음반사이자 기획사인 이곳은, 올해 자신들이 주도한 80분짜리 기획 무대 ‘Head in the Clouds Forever’의 마지막 순서에 CL을 초대했다.
88 라이징의 계산에 처음부터 2NE1 재결성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CL이 직접 밝힌 공연 소감처럼, 처음 계획된 건 CL의 솔로 무대였다. 준비한 세트리스트를 봐도 그렇다. 지난해 발표한 CL의 첫 정규 앨범
코첼라 무대를 통해 보여준 2NE1의 무대는 ‘내가 제일 잘 나가’ 한 곡뿐이다. 신곡을 발표한 것도 아니고, 냉정히 말해 이 무대로 본격적인 완전체 활동을 재개할 거라는 기대를 쉽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러나 이 모든 느슨한 추측에 앞서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날 그 시간 무대 위에 선 CL, 박봄, 산다라 박, 공민지 네 사람의 모습에서 마치 바로 엊그제 세계 투어를 마치고 전성기 그 자체를 맞이한 그룹 같은 펄떡이는 에너지와 생기가 가득했다는 사실이다. 데뷔 이래 가장 높게 머리를 치켜올린 산다라 박,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여전한 유연함과 함께 라이브를 거뜬히 소화한 공민지, 무대에 앉은 박봄의 귀에 파이팅을 외치는 CL의 상기된 얼굴, 순서대로 ‘내가 제일 잘 나가’를 외치며 시그니쳐 포즈를 짓는 멤버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그랬다.
이날의 코첼라 무대는, 단언컨대 수백 번도 넘게 공연했을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 가운데 이들이 ‘제일 잘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더없이 시원하게 증명한 무대였다. 넓고 넓은 케이팝 세상에서 왜 아직도 포스트 2NE1을 발굴하지 못했는지, 왜 아직도 이렇게 수많은 이들이 2NE1을 그리워하는지도 이로써 명쾌해졌다. 공연이 끝난 뒤 오피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CL의 코첼라 비하인드 영상에서 CL은 이렇게 말한다. ‘그 누구를 위한 일도 아니고, 어떤 것에 맞서려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우리만을 위한 거죠. 지금 여기 우리가 있고, 아직 여기 있고, 그리고 기억되기 위해서’. 단순하지만 그만큼 굳건한 목적에 완벽히 부합하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미래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순간들이 있다. 2NE1 네 사람이 하나가 되어 다시 무대 위에 선 코첼라의 밤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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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