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은 “소외되거나 경계 밖에 있는 존재들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게 이야기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2025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조예은의 세 번째 소설집 『치즈 이야기』. “이 이야기는 무서운 이야기인가요? 웃기는 이야기인가요?”
글 : 염은영 사진 : 표기식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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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되었나요?” 하는 물음에 소설가들이 어떤 대답을 해줄지 늘 궁금하지만, 너무 뻔한 질문을 하는 건 아닐까 싶어 망설이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용기를 내 소설가 조예은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면, 귀엽고, 당차고, 솔직한 대답에 ‘진작 물어볼걸’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겁니다. 평생 글 한 편 써보지 않았다는 그는 “상금 30만 원을 위해 단편소설을 쓴” 것으로 소설 쓰는 삶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 우연한 첫발이 10년 후 소설가 조예은을, 독자가 선택한 ‘2025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라는 결과로 가닿게 한 것이 “기이하고 새삼스럽”습니다. 하지만 그의 왕성함과 성실함을 생각하면, 소설가는 결국 타고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무엇보다 이야기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다작의 양분이 되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가 멈추지 못하고 쓰는 이야기들은 “정상성을 벗어난 것들”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현실에서 소외되거나 혹은 경계 밖 존재들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이야기”이며, 이는 “이야기가 존재하는 목적”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소설가 조예은이 지어 올리고 있는 ‘조예은 월드’이지요.

 

여러분, 피가 뚝뚝 흐르고, 쿰쿰한 온몸이 절단되었다 엉망으로 다시 붙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조예은 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 이상한 맛에 취해 빠져들다 보면, 다음 10년 후에도 ‘여전히 젊은 작가 조예은’을 꿈꾸는 우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3년 만에 발표한 세 번째 소설집 『치즈 이야기』, 그 환상적인 맛의 세계


‘지금 가장 왕성한 작가’라는 수식어가 꼭 맞는 조예은 작가님, 반갑습니다. 지난 5월 청소년 소설 『토마토로 만들어 줘』 출간 이후 두 달여 만에 새로운 소설집 치즈 이야기로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출간 소감을 여쭙습니다.

세 번째 단편집입니다. 뭔가 얼떨떨한 기분이고요.(웃음)

 

왜 얼떨떨하세요?

왠지 모르겠어요. 얼떨떨하고 이상한 기분인데, 여러 가지가 겹쳐서 그런 것 같아요. 아무래도 소설집 발표가 『트로피컬 나이트』 이후로 3년 만이라 너무 오랜만인 것 같다는 생각, 더불어 지난 3년 동안 작업한 소설들을 하나로 묶은 걸 독자분들이 어떻게 느끼실지 두근두근한 마음이 커서 그런 것 같아요.

 

언급해주신 대로 치즈 이야기 2022년에서 2024년에 발표한 작품들이 모여 있습니다. 어떤 작품을 엮을 것인지 먼저 제안하셨는지요?

네, 제가 먼저 했어요.

 

그러면 작가님께서 하나의 결을 상정하고 제안하신 거네요. 그럼에도……(웃음)

그러게 말이에요.(웃음) 그럼에도 얼떨떨하더라고요. 이번 소설집에는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는데, 제 딴에는 나름의 콘셉트를 잡고 엮은 기획이에요. ’이렇게 읽혔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있죠. 같은 시기에 작업했지만, 한 권으로 묶는 데 있어 너무 동떨어진 분위기의 작품은 다음에 소개하려고 남겨두었고요. 

 

『트로피컬 나이트』 경우에는 책 제목이 표제작을 따른 것이 아니었어요.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매력적인 이름을 새로 지어서 출간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번에도 그런 시도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처음부터 「치즈 이야기」로 정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소설집에 대해 상상한 그림이 있었거든요. 제가 소설을 쓸 때, 취향이 일관적인 편이 아니에요. 좀 극단적이죠.(웃음) 아까 촬영 중에 가벼이 나누는 대화에서 “이번 소설집 중 제 취향은 「반쪽 머리의 천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소설이 그 취향의 딱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호러적인 분위기가 주인 소설과 그보다는 따뜻한 메시지가 담긴 소설을 오가면서 작업하는 편이에요. 이번 소설집은 전반부 네 편이 현실을 기반으로 한 무서운 이야기라면, 「반쪽 머리의 천사」 다음에 배치된 후반부 소설들은 SF 장르의 성격이 강해요. 한 권의 소설집 안에 분위기 전환을 줌으로써, 마치 1부와 2부가 구성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럼 얼떨떨한 그 마음은 첫 시도에 대한 걱정이나 염려 같은 건가 봐요. 깊은 고민을 하고 책을 냈는데, 책이라는 게 나오고 나면 물러날 길이 없어서 두려운 거잖아요.

진짜 그래요. ‘이제 진짜 돌이킬 수 없구나’ 하는 무서운 마음이 들어요. 이렇게 말로 설명해보니 제가 느낀 얼떨떨한 감정이 무서움에서 비롯한 것이구나 싶네요.

 

작가의 말에서 “과거에 쓴 글을 시간차를 두고 살피는 작업은 언제나 괴롭”다고 말씀하신 까닭을 생각해보면, 3년 전에 발표한 작품을 다시 마주하는 ‘조예은’은 그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맞아요. 딱 그런 느낌이에요. 그때의 나와, 그때의 고민은 지금과는 너무 다르고, 많이 변해 있거든요. 대개 소설집 작업이라는 것이 발표한 작품을 모으는 것일 수밖에 없는데, 새삼스레 과거에 쓴 글을 지금 내보내야 한다고 하니 두려웠어요.

 

그러면서도 “당시 어떤 주제에 빠져 어떻게 사고했나 되새길 수 있다는 건 소설가로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이라고 하셨. 그럼 그때 조예은은 무엇에 집중하고 있었나?

「보증금 돌려받기」,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 「반쪽 머리의 천사」처럼 앤솔러지에 실린 작품들은 명확한 콘셉트가 있어서 거기에 맞춰 쓰였고요. 그 외의 작품을 작업했던 때를 떠올려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땐 그게 ‘기억’이었어요.

 

이번 소설집의 중심을 잡고 있는 작품이 있다그건 역시 표제작일까요?

음… 표제작은 중심이라기보다는 입덕 멤버라고 생각했는데요.(웃음) 앞서 작품 배치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전체적으로 기승전결이 느껴지게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치즈 이야기」, 일단 네가 먼저 나가” 하고 맨 앞에 세웠어요. 이 소설은 맛이 아주 강렬하고, 몰입감도 있고, 또 마지막에는 질문으로 끝나잖아요. “당신이 생각하기에 이 이야기는 무서운 이야기인가요? 웃기는 이야기인가요?” 

 

그 대목에서 “와, 너무 해!” 했어요.

“너무해!”라니 원하던 반응이에요.(웃음) 그 질문을 물음표로 띄우고 그다음 작품들을 읽게 해드리면 재밌을 것 같았어요. 전반부의 작품들로 초반에 독자분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고 중간에는 귀여운 소설로 긴장을 풀어준 다음, 후반부의 무게 있는 작품들을 보여드리려는 게 의도였어요.

 

이번 소설집은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작품들을 모았다는 면에서, 동시에 작업한 작품들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병렬 독서라는 말이 한때 크게 주목받았는데요, 작가님의 경우엔 병렬 쓰기가 해당될 것 같아요.

병렬 쓰기라는 단어는 처음 듣는데, 너무너무 잘 어우러지는 단어 같네요. 네, 맞아요. 병렬 쓰기를 합니다. 장편소설의 경우엔 조금 힘들고,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은 종종 병렬 쓰기를 해요. 주로 하루에 쓸 글자 수를 정해 놓고 작업하는 편인데요. 마감이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그 목표치가 달라지지만, 대개는 하루에 5~6천 자 정도 써요. 한 작품당 쓰는 분량이 아니라 하루치 총량이에요. 이 안에서 장편소설, 단편소설의 분량을 나누고요. 진짜 급할 때는 하루에 만 자씩도 써요.

 


 

독자가 뽑은 ‘2025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조예은

 

예스24가 실시한 ‘2025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로 독자분들께 선택받으셨습니다독자분들 사랑이 느껴지는 투표 결과이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축하드립니다다만말 자체 조금 묵직한 면이 있습니다소식을 듣고 어떠셨어요?

이번에야말로 정말 얼떨떨했던 것 같아요.(웃음) 왜냐하면 저는 정말 저 좋자고 소설을 쓰는 사람이거든요.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요. ‘대단한 걸작을 써서 문학계에 일조하겠다’라든가 무엇보다 ‘걸작을 쓰고 싶다’라든가 하는 게 없고, 순간순간 제가 재밌는 게 중요해요. 이로써 저라는 개인이 좀 더 내면을 평안하게   유지하고, 또 삶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기분이 드는 게 좋고요. 그래서 소설 쓰기를 시작한 것인데… 갑자기 한국 문학의 미래를 짊어진다고 하니까 조금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에요.(웃음) 


하지만 모든 것을 차치하고 그저 감사한 것은, 그동안 스스로를 위해 썼던 작품들이 많은 분께 가닿은 것, 그 덕분에 다음 작품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생긴 것이에요. 이 사실이 소설을 쓰게 하는 또 다른 동력이 되었고, 이 힘으로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소감문에도 적었지만, 정말 감사할 뿐이에요.

 

작가님과 ‘젊은 작가라는 단어는 몹시 어울리는 한 쌍 같습니다비단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젊은 작가는 어떤 존재인가요스스로 젊은 작가라고 생각하신다면언제까지 젊은 작가일 수 있을까요?

‘젊은 작가’는 나이도 나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새롭게 느껴지는 작품들을 쓸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화답할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쓴 작품들이 어떤 인상을 남겼든, 앞으로 더 새로운 것을 쓸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그렇게 따진다면 적어도 40대까지는 젊은 작가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작가님 소설의 세계야말로 항상 새로워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속성이 마구 비틀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요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에서 안온함이 느껴지고요.

여러 창작 분야에서 소설에 끌리는 이유 같아요. 문자와 단어들로 저만의 아무 제약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으니, 그 가능성에 큰 자유로움을 느껴요. 현실에는 우리가 연연하는 무수한 정상성들로 가득한데,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기준과 계급, 정상의 틀을 소설이라는 세계 안에서 제 맘대로 비틀고 바꾸고 벗어나게 할 수 있으니 좋아요. 저는 소설이라는 세계 안에서 정상성을 벗어난 것들을 보다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어요. 현실에서 소외되거나 혹은 어떤 경계 밖에 있는 존재들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게 이야기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금속 공예를 전공하셨지만, 완전히 새로운 길로 나아가신 것이 이해돼요. 한정된 질료로 창작하는 예술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예술로 자리를 옮기신 것이구나 싶어서요.

여전히 금속 공예도 좋아해요. 지금도 꾸준히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찾아보고, 좋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스크랩하고요. 다만 공예라는 것의 속성이, 제가 배우기로는, 마치 폭포 밑에서 수련하듯 자기를 갈고 닦으면서 내면 깊숙이 빠져드는 창작 행위라고 할 수 있거든요. 끝없이 수행하는 예술인 거죠. 물론 글에도 수행의 속성이 있고, 글을 쓰는 태도에도 그런 면이 필요하지만, 공예와 확연히 다른 점은 좀 더 다양한 대중들에게 가닿는 예술이라는 점인 것 같아요. 그 점이 제게 잘 맞다고 생각했고요. 

 

그럼에도 소설 쓰는 삶에 대해서는 꿈꿨던 바가 없으셨던 것이죠

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소설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우연한 계기(공모전 참가)가 그래서 더 극적인 것 같아요.

그때를 다시 생각하면 뭔가 좀 신기한 힘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기이하고 새삼스러워서요. 처음 단편소설을 쓰게 된 게 상금 30만 원을 받고 싶어서였거든요. 대학생 때 그 돈이 얼마나 커요? 제가 주말에 파스타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주말 이틀 일하면 한 달에 딱 30만 원을 벌었어요. 그 30만 원을 너무 받고 싶어서 쓴 단편소설이었는데… 아무것도 모른 채로 시작했고, 그 사소한 욕망이 지금의 저를 이끌었다고 생각하면 새삼스러우면서도 두렵기도 합니다.

 

왜 두려운 마음이 드세요?

저는 신을 믿지 않는데요. 그때 연이어 한 사소한 선택들이 제 인생을 완전히 전환시켜버렸거든요. 그래서 제 의지만이 아닌 다른 힘이 작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우주의 힘이랄지, 신의 인도랄지. 그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또 유사한 힘이 작용해 제 인생에 여러 굴곡이 생길지 모르겠다 싶어요. 그래서 두려워지는 거예요.

 

그렇지만 기대도 동시에 되실 것 같아요. 그만큼 좋은 방향으로 나아왔으니 작가님께서 원하던 삶의 형태와 가깝게 살고 계신 것 아닐까요.

그건 정말 독자분들 덕분이에요.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더불어 열심히 했기 때문일 테고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잖아요. 뭐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30만 원이 벌고 싶어!”로 시작했으니까요. 귀엽고, 간절하고, 솔직하고, 젊은 이유로요.

30만 원 때문에 시작했지만, 너무 재밌었어요. 소설을 쓰는 것이요.

 

그러니 지금 여기까지 이끌어오신 것은 작가님의 힘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저는 성장캐!(웃음)

 


버려진 아이, 부서진 가족, 그럼에도 붙잡는 기억의 파편들

 

아마도 많은 독자분이 작가님을 처음 만난 작품으로 『칵테일, 러브, 좀비』를 꼽으실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릿터 20호에 발표하셨던 「할로우 키즈」였는데요. 플래시 픽션이라는 형태, ‘노키즈’라는 주제라는 특정 외피를 입은 소설이었고 무척 강렬했어요. 표제작 치즈 이야기를 읽는데 오랜만에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방치된, 버려진 아이의 이야기를 여전히 쓰고 계시는구나' 했고요. 작가님께서 이런 아이들에 대해 꾸준히 시선을 두시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야기의 의무가 여기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소외된 이들을 조명하는 것이 이야기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하니까요. 소외된 이들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끌어오는 것은, 저로서는 당연한 일 같아요. 

 

소위 ‘도파민을 폭발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요.

거기에 도파민까지 더해지면 좋겠지만… (웃음) 만일 제 이야기로 도파민이 터질 수 있다면, 쉽게 휘발되는 도파민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소설을 읽으며 생각지 못했던 인물의 삶에 내던져지면서 얻게 되는 여운, 그런 도파민이기를 바랍니다. 

방치되거나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제법 주기적으로 쓰게 되는 것 같은데요. 아마도 자주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소외된 많은 존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아이들은 미성숙한 존재,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존재잖아요. 그런 이들이 경계 밖으로 밀려났다면, 100% 어른과 사회의 책임일 테고요. 하지만 상황을 바꾸기란 쉽지 않고, 누군가는 꾸준히 이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으셨어요?

거창한 경험은 아닌데요. 취업 때문에 걱정이 많던 시절에 복수 전공도 하고, 교직 이수도 하고 그랬거든요. 교직 이수를 하려면 봉사 시간을 채워야 했는데, 이런저런 봉사활동을 알아보다가 한 청소년 복지 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자리가 있어 지원했어요. 학교 밖 아이들에게 검정고시 수업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고, 좀 오래 했어요. 그때 학교 밖 아이들을 많이 만나면서 이야기를 듣게 됐고요. 자의로 혹은 타의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을 보며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됐을까’ 자연히 관심이 생겼어요. 그렇게 현실의 학교 밖 아이들을 만나면서 책도 찾아보고, 센터의 선생님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했던 게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더불어 어릴 때부터 사회 고발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놓치지 않고 봐왔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방치되거나 버려진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면 그 배경에 대한 의문을 품곤 했죠. 하지만 TV로 보는 데는 얕게 사유하게 된다는 한계가 있었어요.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서사의 공통된 면은 ‘부서진 가족’이라는 데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많은 소설이 가족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데요. ‘정상 가족’ 프레임이 크게 적용되는 우리 사회를 생각해보면, 이를 무척 꼬집는 면모가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판에 박힌 것처럼 아름다운 정상 가족을 보면 좀 재수 없지 않나요?(웃음)

 

하지만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저는 흉내 내며 사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동의해요. 모두들 아름다워 보이는 정상 가족이 되고 싶어 하죠. 그 욕망은 여러 매체를 통해 그렇게 비치는 가족들이 있어 더 강화되는 것 같고, 그런 모습을 한 발 떨어져 볼 때마다 ‘재수 없는데’ 하는 마음이 들어요. 겉으로는 빛나지만 실제로 안온하게만 존재하는 가족이 드물다는 건,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요? 그럼에도 균열에 관한 이야기는 일부러 피하고요.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야기하지 않으면 없는 게 되니까 다들 묵과한다고 생각해요. 그저 겉모습만 따라 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한편으론 제게도 그런 모습이 있어요. 아마도 이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가장 큰 욕망이 바로 이 정상성에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소설이라는 세계를 통해, 부서지고 또 부서지고 망가진 가족의 이야기들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뭐든 완벽해 보이는 것들을 내 이야기 안에서만큼은 부숴버리고 싶다!’ 항상 이런 마음으로 쓰고 있어요.(웃음)

 

무 좋습니다좋다고 말한 것은 현실의 문제점에 장르 한 스푼을 더해 새로운 감각으로 환기해주기 때문이에요. 특히나 가족 서사에 공포 한 스푼이 가미되니 그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는 없더라고요. 「치즈 이야기」의 ‘그 장면’에서는 쾌감을 느끼며 읽었는데, 정상 가족 신화에 중독돼 자란 K-장녀로서는 마음 한편 죄책감이 비죽 올라오기도 했거든요.

그런 쾌감을 글로 주는 게 즐거워요. 제가 쓰면서도 쾌감을 느끼며 쓴 장면들이 몇몇 있는데, 독자분들도 함께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다만 스포일러가 될까 봐 어떤 장면인지는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려운데요. 「치즈 이야기」, 「보증금 돌려받기」, 「두번째 해연」의 마지막 장면을 쓰며 쾌감이 있었어요. 제가 쾌감으로 쓰면, 분명 독자분들께도 닿는다는 확신이 이제는 드는 것 같아요.

 

작가님을 가장 공포스럽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불확실성이요. 먼 미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편인데, 그게 공포스럽기 때문이거든요. 앞으로 5년 후의 일까지는 머릿속에 그려두지만, 10년, 20년 후의 일은 약간 나 몰라라 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마도 두렵기 때문에 회피하는 것 같아요. 이와 관련한 일상적인 공포는 전화예요. 아예 모르는 사람의 전화, 의도나 용건을 알 수 없는 친구나 지인의 전화에 무서움을 느껴요. 전화벨이 울릴 때야말로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는 순간이라 큰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 같아요.

 

N이시죠?

네.(웃음)

 

더불어 이번 소설집에서는 ‘기억을 무척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앞서 작가님께서 이 소설집의 작품들을 쓸 당시 기억에 골몰하셨다고 한 것이 느껴집니다「소라는 영원히」「두번째 해연」에서는 기억이 곧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받는 듯했어요특히 비인간이 품는 기억에 대해 골똘해졌는데그 가치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더라고요하지만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았습니다작가님께서 소라와 해연을 통해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이 두 작품은 2022년도에 썼어요. 그때는 AI 기술 같은 게 좀 먼 얘기 같았어요. 이렇게 빨리 비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이 올 줄 몰랐고요. 「소라는 영원히」는 한 번에 쓴 작품이 아닌데, 소제목으로 확인하실 수 있듯 3부로 구성돼 있는 소설이에요. 당시 코리아나 미술관이 주최한 프로젝트 작업의 일환이었고, 6개월 동안 2개월에 1부씩 발표했어요. 그 사이에 「두번째 해연」을 썼고요. 이 작품들을 쓸 때를 떠올려 보면, 계속 의문을 품는 과정에 있었던 것 같아요. ‘도대체 기억이란 무엇이고, 사람이 사람으로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서요. 사람의 육체를 복제할 수 있는 기술에 기억이 더해진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는 진짜 나인 걸까, 아니라면 그 기준은 뭘까를 상상하며 썼어요. 아직까지도 이 생각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적인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나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오히려 몸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것 아닌가 싶어요. 책이 물성을 지닌 채 존재해야 책인 것처럼요.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생각이라 풀어내기 어렵지만요.

 


웰컴 투 조예은 월드

 

장편소설 『적산가옥의 유령』이 영화화된다고 들었습니다. 소설을 집필하실 때이러한 발전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시는지.

제 소설이 영상화되기에 좋다는 말씀을 많이들 해주세요. 소설 속 설정이나 스토리라인이 다른 매체로 넘어가기에 용이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쓸 때는 그런 점을 염두에 두진 않아요. 제가 시나리오, 희곡 같은 글을 쓸 수도 있었지만, 소설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문학의 장르 중 가장 자유로웠기 때문이거든요. 그 자유로운 필드 안에서 다른 매체를 미리 상정해 스스로 갇히는 것은 오히려 아깝다는 생각이에요. 

 

특정 장면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신다고 들었습니다.(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17최근에 작가님이 수집하신혹은 상상하신 장면이 있다면요?

장면을 수집하는 방법은 다양한데요. 갑자기 제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장면을 수집하는 경우도 있고, 주변에서 다양한 경로로 수집해 모은 경우도 많아요. 최근에 제게 장편소설 집필을 시작하게 한 장면이 하나 있었는데요. 제가 작가가 되고 나서 좋은 게 있다면, 친구들이 저한테 소설이 될 만한 소재나 이야기들을 마구 던져준다는 점이거든요. 그중 하나가 바로 그 물꼬를 틔운 장면이 되었어요.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고향이 섬인 친구가 그 섬에서 일어났던 사고를 들려줬어요. 바다 위 배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고였고, 머릿속으로 다시 그리니 그 이미지가 무척 강렬하게 남았어요. 사고 자체에 대해 쓰지는 않고, 이로써 상상하게 된 이미지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작가님의 다음을 궁금해하시는 독자분들이 많으실 겁니다현재 오컬트 장르의 장편을 집필하고 계시다고요어떤 내용인지요?

일정상 초고를 빨리 당겨썼어요. 그래서 사실 엄청 오래 고쳐야 할 것 같아 발표 시점에 대해 말씀드리기는 어려워요. 이 소설은 오컬트지만 신부님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인데요. 악마에 관한 이야기예요. 1980년대에 원양어선 노동자로 일하던 주인공이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미지의 존재와 마주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더 말씀드리고 싶지만 여기까지!(웃음)

 

작가님의 장편소설에 대한 궁금증은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트로피컬 나이트』 수록작 「고기와 석류」의 장편화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있어요.(『문장의 소리』 733이 또한 이어지고 있는 작업인지 궁금합니다.

아직은 ‘써야지’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쓰게 된다면, 석류의 존재 자체보다는 고독사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어요. 언젠가는 반드시 쓸 테니 기다려주세요.

 

조예은 팬덤’ ‘조예은 월드라는 말들이 작가님을 수식하거나 따릅니다기쁘면서도 무거운 말들일 것 같습니다앞으로 작가님께서 지어 올리고 싶으신 세계가 있다면이야기를 들려주셔요.

지금보다 더 엉망진창인 세계를 만들고 싶어요. 각기 엉망진창인 존재들이 제 이름 아래 모여 나름대로 조화로워 보이는 그런 기묘한 세계를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늘 그러셨듯 따뜻함을 잃지 않고요?

네, 그런 따뜻함을 놓치지 않고요.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써본 적 없는 아주 비정하고 비정한 세계도 그려보고 싶은 마음 역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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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식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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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은영

쓰고 엮고 매만집니다. 더불어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