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통령이 필요해〉(원제 VEEP)는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인 ‘설리나 캐서린 마이어’의 (역시)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도전기를 다룬 블랙 코미디이다. 드라마 안에서 (쓴)웃음을 유발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정치인과 그 주변 인물이다. (한 번도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대통령은 유약하고 제대로 해내는 일이 하나도 없다. 아,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 있긴 하다. 부통령을 ‘따돌리는 것’. 백악관 서쪽 별관인 웨스트 윙과 가장 먼 곳에 부통령의 집무실을 마련해 두고 절대로 부통령을 만나지 않는다. 뒤늦게 회의 일정을 알게 된 설리나는 참모들과 함께 웨스트 윙까지 (하이힐을 손에 들고) 뛰어가지만 늘 허탕을 친다. 한바탕 달리기가 끝난 후, 설리나는 자신의 직원들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설리나의 참모진은 자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자주 면전에서 욕을 먹는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정치인들은 욕설과 모욕적인 언사를 숨 쉬듯 하는데, 때때로 그 수위가 너무 심해서 글로 옮길 수 없을 정도이다). 대변인인 마이클 맥클린톡은 연설문에 쓸 적합한 단어 하나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지만, 먹는 데만큼은 진심이다. 드라마 전 시즌을 통틀어 그가 머뭇거림 없이 의견을 밝혔던 건, 설리나가 브런치 모임에서 구워야 하는 팬케이크에 대해 설명할 때였다. 댄 이건은 잘생긴 얼굴로 원나이트를 밥 먹듯이 하는데, 정자 기능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에는 “아싸! 콘돔 안 써도 되네.” 하며 오히려 좋아한다. 머릿속으로는 이해득실을 늘 따지고 본인이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선거 매니저가 된 이후에는 압박감에 못 이겨 설리나 앞에서 기절하는 참사가 일어난다.
개리 월시는 설리나의 온갖 물건(화장품부터 탐폰까지)이 든 엄청 무거운 가방을 들고서 언제나 그녀 주위를 맴돈다. 그는 설리나를 지나치게 ‘추앙’(이것보다 적절한 단어가 없다)해서 죽었다 깨어나도(심지어는 설리나가 자신을 아무리 대놓고 무시하고 매정하게 굴어도) 그녀를 배반할 수 없다. 엄청난 일 중독자 에이미 브룩하이머는 워싱턴을 떠도는 정보를 혹시라도 놓칠까 봐 잔뜩 긴장한 채로 두 손에서 전화기를 놓지 않는다. 항상 긴장한 탓에 목소리는 언제나 파르르 떨리고, 양쪽 어깨는 경직돼서 위로 솟아 있다.
이들을 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하나 있다. 오합지졸. 설리나는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 데리고 부통령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시리즈 몇 편만 보면 그 부분을 완전히 납득할 수 있다. 정치판 전체가 그저 커다란 오합지졸의 모임이다! 오합지졸인 상원 의원들, 오합지졸인 하원 의원들, 오합지졸인 로비스트들, 오합지졸인 장관들, 기타 등등. 물론 이 드라마에서 부각되는 오합지졸의 수장은 바로 설리나 마이어이다.
‘민중을 이끈 자유의 여신’을 패러디한 듯한 〈부통령이 필요해〉 시즌6의 광고 이미지는 오합지졸 군단의 수장인 설리나 마이어를 표현하는 것 같다. 설리나 마이어를 연기한 줄리아 루이스 드레이퍼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설리나는 중년의 몸에 갇힌 어린아이예요. 그게 대단한 거죠. 왜냐하면, 아이들은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잖아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화를 내죠. 그게 설리나가 행동하는 방식이에요. 그리고 그런 방식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죠.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도 항상 다른 사람 탓이라고 해요.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것조차 받아들여요. 그런 게 모두 코미디의 관점에서 무르익어서 표현될 수 있는 거죠.”
이 드라마가 미국에서 처음 방영된 후, 〈할리우드 리포터〉는 설리나를 연기한 줄리아 루이스 드레이퍼스를 이렇게 평했다.
“〈사인필드〉 이후로 그녀가 맡은 배역 중 최고.”
드레이퍼스는 이 드라마로 에미상을 무려 여섯 번이나 받는다(그전에 이미 두 번 받았다).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초기에 나는 종종 〈더 오피스〉의 스티븐 카렐을 떠올렸다. 비록 스티븐 카렐이 연기한 마이클 스콧은 작은 영업소의 지점장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둘 다 한 단체의 수장이자,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연발하고, 부하 직원들을 곤란하게 만들며,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자꾸 만든다. 설리나 마이어 부통령과 마이클 스콧 점장, 그 둘은 모두 이기적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미워할 수는 없는 캐릭터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마이클보다는 설리나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마이클의 모든 행동에는 직원들을 사랑하는 감정이 깔려 있지만, 설리나에게는 그런 마음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이다. 모든 것은 그저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한 큰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설리나를 마냥 미워할 수가 없다. 정치적 이득을 위해 조지아의 투표에 영향을 미치고, 티베트의 독립을 두고 중국과 뒤에서 몰래 협상하고, 수단의 독재자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평소에는 관심도 없는 손자(레즈비언 딸 부부가 정자를 기증받아 낳은 흑인 아기)를 거리낌 없이 정치적으로 노출시키고, 자신에게 아부하는 변호사의 충고만 따르다가 만회하지 못할 실수를 저지르고, 트레이너의 유혹에 빠져 말도 안 되는 정치적 조언을 듣다가 위기에 처한다 해도, 나는 설리나를 마냥 미워할 수가 없다.
설리나가 자신의 정치 인생에서 그토록 실현하고 싶어했던 정책은 가족 복지법이었다. 대통령이 된 후 설리나는 가족 복지법을 위한 예산을 마련하지만, 결국, 그 예산으로 잠수함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집무실에서 설리나는 그 돈이면 도시의 아이들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었으리라고 소리 지른다. 시즌6의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연임에 실패하고 재단 활동을 하던 설리나가 대통령 선거에 재출마할 결심을 한 후, 사귀던 연인(카타르의 고위급 자제)과 헤어지는 장면이 있다. 이별을 통보한 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그녀는, 누군가 “어머나, 대통령님!” 하고 아는 척을 하자 웃으며 응대를 하고 눈물을 쓱 닦는다. 그 단 하나의 장면을 통해, 우리는 설리나가 사실은 그동안 정치인으로 살기 위해서 수많은 것을 포기했으리라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에피소드는 시즌3의 두 번째 에피소드이다. 낙태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대통령 때문에 자신 역시 낙태에 대한 의견을 밝혀야 하는 처지에 놓인 설리나는 여성의 입장을 강조하라는 참모진의 충고에 이렇게 대답한다.
“여성성을 강조하면 안 돼. 사람들이 그걸 인식하면 안 돼. 남자들이 싫어해. 여성을 싫어하는 여성들이 싫어해.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래.”
그리고 이렇게도 말한다.
“남자가 임신할 수 있었으면 ATM 기계로도 낙태가 가능해졌을걸.”
“당신이 할 줄 아는 건 두 가지뿐이에요. 나쁜 결정을 하거나 결정을 못 하거나. (…) 그러면서 대통령 선거에 나가려고 하다니! 이 나라 최악의 역사로 남을 거예요. 음식물 문제나 노예 제도보다 더요. (…) 당신은 아무것도 해낸 게 없어요. 한 가지만 빼고요. 당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이 나라에 두 번 다시 여자 대통령은 없을 거예요. 한번 시켜봤더니 아주 말아먹었단 말이죠!”
에이미 브룩하이머가 분노하며 설리나를 비난할 때, 우리는 새삼 설리나가 가고자 했던 여정의 목적을 돌이켜보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오합지졸들이 다 한 자리씩 차지한 마당에 여성은 여전히 대통령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남성은 실패를 하더라도 다음 남성에게 기회가 가지만 여성이 실패를 하면 다음 여성에게는 기회가 박탈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말이다.
설리나 마이어는 무능한 정치가였다. 그녀는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였다. 하지만 그녀는 정치가로서의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 그녀에게 정치는 다른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저 목적이었다. 그녀는 그저 대통령이 되어서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몹시 슬프지만, 그것만으로도 현실에서는 훌륭하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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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소설가)
드라마와 빵을 좋아하는 소설가. 『디어 랄프 로렌』,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맨해튼의 반딧불이』 등을 썼다.
들에핀꽃
2022.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