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여기 구멍이 있었다.
녕의 말에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든다. 녕의 손에는 칠십대 남성에게서 적출해낸 심장이 들려 있다.
태아 시절 혈액은 오른심방에서 허파로 가는 게 아니라 이 구멍을 통해서 바로 왼심방으로 들어간다. 태아는 아직 숨을 쉬지 않는데도 산소를 풍부히 공급받는다. 왜지?
학생 하나가 어머니 혈액에서 산소를 끌어오기 때문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대답한다.
맞다. 그런데 태아가 세상 빛을 보고 첫 숨을 들이켜면 자기 허파를 사용하게 되므로 이 구멍은 필요 없게 되겠지. 그럼 어떻게 될까?
그럼, 막힙니까?
한 학생이 질문에 질문으로 응답한다.
첫 숨과 동시에 혈액은 곧바로 허파로 들어가고 몇 시간 안에 구멍은 닫히기 시작한다. 찰나의 순간 몸의 순환 계통에 혁명이 일어나지. 구멍이 막히면서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른 흔적을 남긴다. 자, 각자 카데바의 심장에서 그 흔적을 찾아본다.
학생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몇달 동안 카데바 하나를 둘러싸고 씨름을 하듯 해부에 몰입하다가 가끔 이런 순간을 맞이하면 학생들은 제 생명의 기원이라도 찾으려는 듯 낭만적인 감상에 빠지곤 한다. 선생으로선 나쁘지 않은 순간이다. 녕이 사사한 해부학 노교수는 자신을 고고학자에 빗대기도 했다. 삽 대신 메스를 들고 인체 속에서 인류의 기원을 발굴하는 고고학자. 녕은 그런 교수의 대책 없는 낭만주의에 코웃음을 쳤더랬다. 지금도 그 마음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가끔 노교수에게 주워들은 풍월을 읊어주면 서늘한 해부실에 잠시 안온한 공기가 일렁이기도 했다. 재빠른 학생 하나가 오른심방과 왼심방 사이 구멍의 흔적을 찾아 녕에게 보여준다. 타원오목. 채 굳지 않은 붉은 점토 위에 누군가 무심하게 엄지를 살짝 눌렀다가 뗀 것 같은 까끌까끌한 지문. 몸이 간직한 먼 과거의 기억. 폐기의 흉터.
이주혜 작가님의 단편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읽었습니다. '녕'이라는 인물에게 사람마다 다르게 생긴 흉터인 타원오목을 가르쳐준 노교수는 사람의 몸이 왜 이렇게 생겼느냐고 자꾸 묻는 학생에게 이런 대답을 합니다.
"해부학은 '왜'를 묻는 학문이 아니고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이해하는 학문이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해부학과 문학을 자주 연결해 생각했습니다. 문학 역시 많은 경우에 '어떻게' 생겼는가를 살피고 들여다보는 일을 하니까 말이죠. 하지만 사람은 '왜'를 묻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이주혜 작가님이 쓴 단편에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좀처럼 '왜'를 묻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왜'를 묻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저는 했습니다.
두 번의 책을 낸 소설가이기도 하고 번역가이기도 하죠. 이주혜 작가님을 만나보겠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이주혜 소설가 편>
"내게 닿은 최초의 이야기들은 늙은 여자들에게서 왔다"라고 말하는 소설가를 오늘 모셨습니다. 소설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를 출간한 이주혜 작가님입니다.
황정은 : 작가님이 스스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안 괜찮으신가요?(웃음)
이주혜 : (웃음) 소개할 말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요즘 '읽고 쓰고 옮기는 사람'이라는 자기소개 문장을 제가 가장 즐겨 쓰는 것 같아요. 읽는 행위가 제 일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읽는 행위 자체가 번역이 되기도 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작업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항상 읽고 쓰고 옮기고, 이렇게 살았으면 정말 더할 나위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황정은 : 첫 단편집을 내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세요?
이주혜 : 일단 기쁘죠. 기쁘고 감사하고. 하지만 너무 이 기쁨에 너무 매몰되지 말자라고 저를 약간 다독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황정은 : 왜요?
이주혜 : '아, 6년 만에 소설집 한 권을 드디어 무사히 묶었구나, 굉장히 늦게 출발했는데 이때까지 나 힘들었다' 이런 자기 연민에 빠지기 쉬워질까봐요. 자기 연민에 빠져 있으면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지잖아요. 그런데 사실 6년 만에 9편의 소설을 쓰고, 발표하고, 책으로 묶기까지의 과정들이 정말 저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잖아요.
돌이켜 보면 처음에 청탁 전화를 받았을 때 그 수화기 너머로 들렸던 편집자의 목소리라든가, 그때 기뻐 날뛰었던 저의 마음이라든가, 처음 만난 편집자와 교정지를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나눌 때의 저의 마음, 이런 것들이 고스란히 떠올랐어요. 그리고 또 제 친구들, 같이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면서 저를 위로해 주기도 하고 저를 또 비판하기도 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 친구들도 떠올랐고. 그래서 흔히 공동의 작업이라고 말할 때 이런 거구나, 구체적인 모습은 이런 거였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요즘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황정은 : 장편을 먼저 내셨잖아요. 『자두』요. 그 책도 제가 예전에 <책읽아웃-오은의 옹기종기>에 나와서 추천 책으로 언급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너무 부족하게 이야기를 해서 좀 아쉽기도 했거든요.(웃음) 제가 좋아하는 책입니다.
이주혜 : 제가 그 편 듣다가 정말 엄청 놀랐어요.(웃음) 애청자로서 듣고 있는데 갑자기 제 이름이 나와서 '이게 뭐지?' 이러면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황정은 : 오늘 저희가 대화를 나눌 책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에는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 단편인 「오늘의 할 일」은 아버지의 사십구재를 맞은 세 자매 각자의 회고를 담은 소설인데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회고하기보다는 그가 저지른 일의 결과로 죄책감을 떠안게 된 딸들의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어떻게 시작이 되었나요?
이주혜 : 2016년의 데뷔작이에요. 제가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은, 어떻게 보면 저한테는 첫 단편인데요. 그 소설을 쓰기 몇 달 전에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봄에 사십구재라는 걸 처음 참석을 해봤는데, 그때 스님이 독경을 하고 바라를 치고 그런 모습들이 굉장히 압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애도하는 사람으로서 그 자리에 있었는데, 굉장히 슬퍼서 많이 우니까 스님이 막 혼을 내더라고요. 울면 안 된다고, 울면 망자가 마음 편히 못 간다고.
그런데 저는 그때 좀 화도 좀 났던 것 같고 '왜 나의 애도를 방해하지? 난 이 마지막 이별이 너무 슬픈데' 그런 생각을 하고, 너무 많이 울어서 거의 탈진 상태로 집에 돌아와서 '나만의 애도의 방식은 뭘까?' 그런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던 끝에 내가 최고로 할 수 있는 애도의 말은 어떻게 보면 다시는 태어나지 말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 말을 떠올리면서 소설을 구성하기 시작했죠. 물론, 여기에 있는 딸은 제가 아니고 아버지도 저희 아버지는 아니지만, 어떤 배덕 같은 애도의 말이잖아요. 다시는 태어나지 말라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괘씸한 말이기도 한데 그게 저를 낳고 키운 가부장에 대한 복잡한 저의 마음인 것 같아요. 딱 그 정도가. 저희 아빠를 생각해도 그렇고, 너무 사랑하지만 그리고 나는 사랑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어떤 가부장으로서 원천적인 죄가 있잖아요. 그 죄를 목격한 딸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소설을 쓰게 된 것 같아요.
황정은 : 작가님의 단편에서는 불화의 전면에 자주 모녀 관계가 등장을 합니다. 「봄의 왈츠」에서처럼, 모녀 관계를 이렇게 정의하는 말이 나오는데 '끊임없이 서로를 원망하면서 착취해야만 굴러'가는 관계라고 묘사가 되거든요. 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의 근원에,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가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 않고, 직접 대면하면서 딸을 원망하고 딸에게 분을 풀고, 모진 말을 하는 존재로 작가님은 '어머니'를 자주 쓰셨어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주혜 : 모녀 관계는 너무 붙어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작년부터 가장 많이 고민하는 주제이기도 한데요. 모녀 관계 혹은 모녀 서사. 어느 한 가지 틀로 말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모녀의 모습이 있지만, 어쨌든 공통점이라면 이 둘이 한 몸이었던 시절이 분명히 존재하고. 아버지와 딸 또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한 몸이었던 시절이 분명히 존재하죠. 그리고 어머니의 몸 바깥으로 나왔을 때부터 완전한 분리도 사실은 불가능하죠.
굳이 프로이트나 정신 분석학 이론을 끌어오지 않아도, 우리가 딸로서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면 느껴지는 공통된 감정들이 있는 것 같아요. 되게 복잡해서 오히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굉장한 복잡함이요. 너무 가까워서 붙어 있어서 이런 감정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마냥 미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사랑하는 사이인 것 같지도 않고, 이런 복잡하고 징글징글한 모습들에 대해서 제가 또 엄마가 되어 보니까 딸의 입장에서만 생각했을 때하고 또 다른 생각들이 들더라고요. 이 관계는 저도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너무 복잡하고 너무 뿌옇고 정말 진흙탕 같은 그런 느낌을 줘요. 그래서 모녀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쓸 이야기가 더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주혜 번역가이자 소설가.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치우침 없이 공정한 번역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영어로 된 문학 작품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기는 데 관심이 많아 아동 작가로 활동하면서,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아동서 및 자녀 교육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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