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성만큼이나 이야깃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원작과의 차이점, 미스터리의 진실, 배우들의 연기, 편집과 미장센까지. 하지만 <작은 아씨들>을 보면서 계속 눈에 밟히는 건 '가난'이었다. 애써 흘려 보내고 다른 것들에 집중하려 해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발목을 잡았다. 그때마다 맥없이 붙들렸다. 가난의 풍경에. 가난의 말들에. 이유를 찾자면, 속된 말로 뭐 눈에는 뭐만 보이기 때문이고, 진화영(추자현)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은 자기랑 비슷한 처지의 사람한테만 공감을 느끼"는 까닭이다.
가난하지 않았다면, 세 자매는 다른 사람이 됐을까? 그랬을 것이다. 가장 얻고 싶은 것도 그 대가로 포기해야 하는 것도 달라졌을 테니까. 그에 따라 선택과 결과도 달라졌을 테고. 달라졌을 게 분명하다면, 가난이 지금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음도 확실하다. 그러니까 "가난하지 않았다면 자매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라는 질문은 "가난은 자매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라는 질문과 닿아 있다. 질문을 붙들고 그들을 지켜봤다.
먼저, 세 자매의 첫째인 오인주(김고은)부터.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난 그는 두 동생은 물론 무책임한 부모까지도 돈 걱정 없이 살게 해주는 게 꿈이다. 딱히 잘하는 것은 없고 항상 남자들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기에, 이점을 살려 돈 많은 남자와 결혼했지만, 이혼 후 가난한 집으로 되돌아왔다. 회사에서 유일하게 의지하며 지내던 화영 언니의 죽음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에 얽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의 비자금을 손에 넣게 된다.
부자의 삶을 동경하고, 그 열망을 숨길 생각도 없으며, 결혼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려 했던 인주. 그는 허영심 많은 인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냉철하게 현실을 판단한다. 동생 오인경(남지현)이 비자금을 가로채는 것은 도둑질이라고 비난하자 "도둑질이 뭔데? 주인 없는 검은 돈 가지는 것도 도둑질이야?"라고 반문한다. "사람은 가난하면 죽으니까" 그게 현실이니까,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할 뿐이다. 그는 안다. 이런 현실에서는 "사랑은 돈으로 하는 거"라는 걸. 그러려면 굴욕감을 삼킬 줄도 알아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무책임한 자신의 부모와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도. 그렇기에 말할 수 있다.
"가난뱅이로 태어나 평생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 두려운 건 아무것도 없어요."
둘째 인경은 확고한 도덕관과 넘치는 정의감을 가진 기자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변호사 박재상(엄기준)이 연관된 석연치 않은 사건을 취재하다, 언니 인주가 가진 비자금과 장부의 출처가 박재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의 비자금으로 인주는 동생들과 꿈꾸던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인경은 비자금 장부를 통해 박재상 일가의 비리를 폭로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사사건건 인주와 충돌하면서 인경은 말한다.
"난 가난한 건 괜찮아."
"그런데 가난해서 도둑이 되는 건 싫어. 그건 지는 거잖아."
그는 믿는다.
"어떤 가난은 사람을 쓰러트리고 어떤 가난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그의 순진함이 답답하다고 말한다면, 너무 위악을 떠는 걸까. 인경을 보며 생각했다. 인경이 네가 그래 봤자 다른 사람들은, 특히 가진 자들은 "그렇게라도 정신 승리 해야지 어쩌겠어"라고 할 거야. 인경이 뭐라 답할지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그래도 상관없어, 라고 하겠지.
그런 인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하지만 원상아(엄지원)의 눈빛이 선명해질수록 인경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게 됐다. 상아가 세 자매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친절함과 우아함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상대를 주무를 수 있다는 오만이 배어있다. 그런 눈빛이 인경과 같은 사람을 만든다. 나는 가진 것은 없지만 당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는 않을 거라고, 마음먹게 한다.
막내 오인혜(박지후)의 현실 감각은 인주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천재적인 그림 실력을 가진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사랑도 성공도 얻고자 한다. 그 뒤에 돈이 따라붙더라도 어디까지나 등가 교환인 만큼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친구 박효린(전채은)의 포트폴리오를 대신 그려주는 대가로 유학 기회를 얻는 것도, 효린의 부모인 박재상과 원상아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미디어에 이용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인주에게 일갈한다.
"부자는 다 가해자고 가난한 사람은 피해자야? 그거 가난한 사람들 자기중심적인 망상이야."
인혜의 모습 위로 박재상이 겹쳐 보인다. 어쩌면 오래 전의 박재상도 그와 같지 않았을까. 결국, 박재상은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고 돈도 명성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아내인 상아에게는 여전히 머슴일 뿐이다. 인혜의 결말은 다를까. 인경과 같은 사람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이 건너편 세계로 가기 위해 몸부림쳐도 끝내 가닿을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것을.
<작은 아씨들>의 세 자매는 가난이라는 똑같은 운명 아래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그 결과 누가 무엇을 얻고 누가 무엇을 잃게 될까. 가늠해 보지만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분명한 건 하나뿐이다. 가난은 누군가를 인주 같은 사람으로도, 인경 같은 사람으로도, 인혜 같은 사람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것.
시청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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