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 그 이면에는 맘 놓고 아이를 기르기 어려운 '불편한 양육 환경'이 있다. 맞벌이 부부의 현실은 더 힘들다. 다행히 해마다 아빠 육아 휴직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이고, 작년 한 해 동안 전체 육아 휴직자 중 약 26%가 아빠들이었다. 『아무래도 잘한 것 같아』는 120일간의 육아 휴직과 이후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와 밀착육아를 병행하면서 체험한 육아의 기쁨과 슬픔, 가족 성장기를 현실 직장인 아빠의 시각에서 촘촘히 담아낸 단짠단짠 육아 공감 에세이이자 아빠 육아 휴직 권장 에세이다.
'현실 아빠가 들려주는 육아 휴직 권장 에세이'라는 부제가 인상적입니다. 작가님과 이 책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서울 을지로에 있는 IT 회사에 다니고 있는 보통의 아빠입니다. 이 책의 일러스트를 그려준 아내와 함께 결혼 이후 쭉 맞벌이 부부로 살고 있습니다. 출퇴근 때문에 양육은 처가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으며 해왔는데요. 그러다 보니 결정적인 순간에 아이와 함께하지 못하고 늘 재방송이 없는 명작을 놓치는 기분이 들었어요. 새벽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외갓집으로 옮겨졌다가 엄마 아빠 스케줄에 맞춰 밤이 되어서야 집에 오는 생활을 10년 가까이 해온 딸아이의 불편과 결핍감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육아 휴직을 감행했습니다. 『아무래도 잘한 것 같아』는 120일간의 육아 휴직 기간 동안 초등학교 저학년 딸아이를 밀착육아 하면서 경험했던 평범하고도 특별했던 날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육아 휴직을 결단하기까지 누구나 고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와 아이가 있는 집에서 벌어질 만한 가족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았습니다.
저자는 글을 쓰고, 아내 분이 그림을 그리셨네요. 아이의 그림도 실려 있던데요. 가족 모두가 함께 책을 준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특별한 경험 같습니다. 가족 공동 프로젝트로 기획하셨나요?
저는 육아 전문가도 아니고 오답투성이 보통 아빠입니다. 하지만 글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썼어요. 훗날 어른이 된 아이가 아빠와 함께 보낸 이 시간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일기를 쓰자고 맘을 먹고 시작했어요. 제 개인적인 경험이 독자들의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삽화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육아 휴직 중에 제가 디지털 드로잉 수업도 들어봤는데 저는 일찌감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력이었어요. 그래서 아내에게 주요 에피소드의 삽화를 그려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죠. 가끔씩 아내가 제 모습을 엽서에 그려주곤 했는데 그 그림들이 저는 좋았거든요. 당시에는 너무 미안했는데 지금은 아내도 자신이 그림을 그리길 잘했다고 말합니다. 주변에서도 제 글보다는 오히려 아내의 그림이 좋다는 평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육아 휴직이 작가님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지금도 후회하는데 제가 너무 짧게 다녀왔어요. 하지만 그렇게 짧았던 육아 휴직이었을지라도 우리 가족의 인생에 강렬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답니다. 같이 살았어도 아이에 대해 잘 몰랐던 점을 새삼 발견하게 되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된 점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아이와 교감하는 과정에서 갈등과 화해의 순간이 많았는데, 그 덕분에 아이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고 아이와 소통하는 방법도 조금씩 깨우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제 나름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아이에게서 제가 배운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부모가 되고 나서 육아서도 많이 읽고, 오은영 박사님 같은 전문가들의 책과 방송도 자주 보는 편이었어요.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개개인의 상황은 다르고, 부모마다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결국에는 우리만의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이나 가족의 사랑과 소중함에 대해서 더 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 아이의 성장 과정에 나의 부모님과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 등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도 다시금 알게 되었고요. 더불어 아이를 대하는 저의 모습을 통해, 나의 부모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빠가 육아 휴직을 가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세상을 상상해봤다고 하셨던데요.
책을 준비하면서 자료 조사도 하고 육아 정책에 대해서도 공부를 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2021년 한 해만 11만 명 정도가 육아 휴직을 갔고, 그중 약 3만 명 정도가 아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들이 다수였더군요. 물론, 못간 분들이 현실에서는 훨씬 많겠지요. 하지만 갈수록 아빠 육아 휴직의 추세는 늘어날 걸로 봅니다. 아이를 키우기 수월한 환경이 조성된다면 출산율도 높아지지 않을까요. 아이도 부모도 힘든 지금의 양육 환경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육아 휴직을 철저히 보장하는 사회와 직장 문화가 좀 더 자리잡으면 좋겠습니다. 비단 육아 휴직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부부가 공동 육아를 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으면 해요. 제 딸이 성장했을 때쯤엔 정말 그런 세상이 되길 희망합니다.
여전히 아빠들이 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쓰기 어려운 분위기입니다. 육아 때문에 고민이 많은 아빠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을까요?
나름 개방적인 분위기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음에도 저 역시 육아 휴직을 하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했어요.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앞으로의 회사 생활에 지장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육아 휴직을 통해 얻는 확실한 행복이 제가 걱정했던 불투명한 불안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지나고 보면 다 기우입니다. 이것저것 눈치 보지 마시고 일단 가세요.
좋은 부모의 태도에 대해 자주 생각하셨다고 쓰셨던데요. 평소 육아를 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가 다짐하고 일상에서 실천하려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하루에 잠깐이라도 아이를 꼭 안아주고 따뜻하게 손 잡아줄 것. 아이에게 위압적인 태도나 상처 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기로 않을 것. 혹여라도 그런 일이 있다면 항상 아이보다 먼저,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할 것. 명령이나 지시가 아닌, 권유나 정중한 요청을 하는 아빠가 될 것 등이요. 거창한 능력이 없어도 최선을 다하는 아빠는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아이에게 한 걸음씩 다가려고 해요. 그리고 아이에게 언제나 네 편이라 되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아빠 육아 책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있으신가요?
지인들은 제가 책을 냈다는 아빠 육아 휴직, 나아가서 맞벌이 육아 일상에 관한 책을 냈다는 것에 더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보통 남자들끼리는 육아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일이 별로 없는 탓인지, 아빠인 지인들이 많이 공감해주고 응원을 해줬습니다. 속내를 들어보니 아빠들도 육아에 고민과 관심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나도 육아 휴직을 꼭 가야겠다고 말하는 남자 후배들이 몇몇 있어서 내심 뿌듯했습니다. 요즘에는 아이의 사춘기라는 2차 충격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저의 일상을 조금씩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는 현실 아빠들의 다양한 고민과 노하우를 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육아'라는 화두로 당분간 꾸준하게 글을 써보겠습니다.
*신지훈 제이의 아빠. 을지로의 한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N년차 워킹대디. 육아 휴직 경력 있음. 가위바위보를 잘 못한다. 참을성이 부족하여 초등학생 딸과 자주 다투고 금세 반성한다. 대쪽 같은 금쪽이 딸 제이, 프로 워킹맘이자 무엇을 하든 남편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아내, 딸의 반려 인형들과 함께 서울에서 살고 있다. 코로나 이후 수시로 재택 근무와 밀착 육아를 병행하며 일과 가정 사이에서 슬기로운 임무 수행을 위해 좌충우돌, 고군분투 중이다. 퇴근 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주경야독 생활을 꿈꾼다. 장래 희망은 소설가이지만 무엇이든 쓰면서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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