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의 엄마가 된다
[이길보라 칼럼] 아기를 반기고 환대하는 사회
아기와 함께 다니며 알게 된 사회의 낯설고 생경한 모습을 전합니다. 동시에 아기를 환대하는 장면을 나눕니다.
글: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2025.11.11
작게
크게

바퀴가 달린 유아차를 밀고 다니며 세상을 낯설고 다르게 보게 되었다. © Tanaka Ken

아기와의 외출은 쉽지 않다. “아기 추울 텐데 양말 신겨라” “더운데 옷 좀 벗겨라”라는 말로 표현되는, 관심이지만 때로는 간섭이 되는 사회적 시선도 그렇지만 아이에게 젖을 물릴 수 있고 기저귀를 갈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타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무언가를 손쉽게 사서 먹고 마실 수 있으며 비좁은 화장실도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비장애인이자 성인으로 살아온 나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몸의 변화, 그리고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생활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나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초기 임신 상태를 거쳐, 배가 불러 일반 탈의실이나 화장실은 이용할 수 없는 후기 임산부를 경유하여 이제는 취약하고 언제 어디서나 돌봄이 필요한 아기와 함께 다니면서 비장애인 성인을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를 낯설고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아기에게는 필요한 것이 많다. 기저귀와 온갖 물품이 담긴 가방을 챙기다 보면 나의 것은 지갑과 열쇠 정도만 챙기게 된다. 수유할 때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한 물병과 여분으로 챙긴 아이 옷과 나의 옷을 유아차에 구겨 넣으면 비로소 준비가 끝난다. 외출할 장소가 집 앞이 아니라면 차가 필요하다. 이 모든 걸 이고 지고 경사로가 없거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대중교통을 타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 되기 때문이다. 

 

차를 탄다고 가정하면 아이를 태우고 내릴 수 있는 공간의 여유가 있는 주차장이 필요하다. 주차장과 입구까지의 거리가 가까운 노약자 및 임산부용 주차 자리도 있어야 한다. 적어도 세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어야 하는 아기를 위한 수유실도 필수다. 기저귀를 교체해야 하기에 기저귀갈이대도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나 역시 용변을 봐야 하니 아이를 눕혀두고 볼일을 볼 수 있는 다목적 화장실이 있다면 가장 좋다. 더불어 필요한 것은 공공장소에서 수유하거나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다. 아기가 배고프다고 울고 난리가 났는데 수유실이 없거나 너무 멀리 있는 상황은 너무나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기저귀가 새서 아기가 흠뻑 젖었다면 체온 유지를 위해 빠르게 갈아입힐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호자도 쉽게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을 너그럽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필요하다. 

 

그래서 외출할 때면 수유실과 유아휴게실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된다. 출산하기 전에는 짐작도 하지 못했던 것인데 너무나도 당연하게 수유실마다 크기와 온도, 습도, 조도, 청결함 등이 다르다. 종종 쾌적하고 깨끗한 수유실에 들어서면 나와 아이의 존재가 환대받는 것 같아 기쁜 마음이 든다. 반대로 곰팡이가 핀 축축한 수유실이라거나 화장실 입구 구석에 대충 커튼을 치고 의자 하나 놓아둔 수유 공간을 만나면 속상해지고 괜히 아기에게 미안해진다.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오줌 냄새를 맡으며 모기를 쫓고 있으면 천대받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위와 같은 경험을 몇 차례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유아휴게실과 수유실이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는 곳만 가게 된다. 대개는 쇼핑몰과 백화점이다. 한정된 시간에 주차할 수 있고 필요한 것도 살 수 있고 아이도 목을 축일 수 있으며 나도 화장실을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위와 같은 시설 뿐이기 때문이다. 트렌디하고 힙하고 맛있는, 그러나 유아차가 들어설 자리 하나 없는 카페나 식당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당연히 가고 싶었다, 출산 전에 종종 들르던 내가 좋아하는 가게들.  

 

아이를 낳고 첫 번째 생일을 맞았다. 생후 80일 정도 되던 때였다. 생일에는 좋아하는 곳에 가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집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주인아주머니가 출산했느냐며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언제든지 수유해도 된다고 했다. 안 그래도 그게 걱정이라 외출하기 꺼렸던 것인데. 아주머니는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물려야 하지 않냐며 마음껏 수유하고 기저귀도 갈아도 된다고 했다. 가리개로 가슴을 가린 채 젖을 물리고 나도 목을 축였다. 생일이라서 큰맘 먹고 나왔다고 하니 아주머니는 ‘축하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아이스크림을 내어주었다. 후쿠오카가 육아하기에는 정말 좋다면서 언제든지 아기와 함께 오라고 내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아기가 있어 한 시간 만에 식사를 마치고 나왔기에 주말에는 조금 더 여유롭게 식사하고 싶었다.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의 점심 코스 메뉴를 예약했다. 임신했을 때 한국에서 온 엄마와 함께 온 적이 있었는데 서빙을 하는 직원이 수어를 배운 적이 있고 한국어도 좋아한다며 엄마를 반겼던 곳이었다. 식사를 마칠 즈음에는 한국어로 정성스럽게 쓴 카드까지 주어서 무척이나 환대받는 기분이었는데 아기와 함께 가도 괜찮을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직원이 내 얼굴과 아이를 번갈아 보고는 뱃속의 아기가 태어난 것이냐며 기뻐했다. 내심 안도했다. 유아차를 세우고는 식사하려는데 아기가 배고프다고 울기 시작했다. 수유해도 되는지를 물어볼까 하다 수유실도 따로 없고 아기에게 젖을 주어도 되는지를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다 싶어 그냥 가리개로 가리고 수유를 했다. 이전에 우리를 담당했던 여성 직원은 다른 테이블을 맡았고 오늘은 남성 직원이 서빙을 했다. 공공장소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이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는 것처럼 아직 젖밖에 먹을 수 없는 아기는 젖을 먹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밖에서 수유를 하면 수유쿠션이 없어 자세가 잘 잡히지 않고 가리개로 가린 채라 아기 입에 정확하게 젖꼭지를 물리기가 어렵다. 입에서 젖꼭지가 빠지기라도 하면 아기는 자지러지고 나는 다시 가리개 사이로 젖꼭지와 아기 입의 위치를 확인하며 남들이 내가 수유하는 것을 절대 몰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애를 먹는다. 조용하고 신속하게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내 앞에 놓인 음식을 알맞은 속도로 먹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출산 후에도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며 식사할 수 있다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음은 메인 메뉴였다. 스테이크가 나오면 파트너에게 썰어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파트너의 것은 썰리지 않은 채로, 나의 것은 썰린 채로 나왔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직원을 쳐다보자 그는 수유 중이라 먹기 불편할 것 같아 썰어왔다며 천천히 드시라고 했다. 남성 점원이라 젖 물리는 행위를 불편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어떻게 하면 내가 식사를 즐길 수 있을지 고민해 준 것이었다. 물론 레모네이드가 나오자마자 목이 말라 단번에 들이키는 모습을 보며 다소 당황해했긴 하지만 말이다. (수유부는 언제나 목이 마르다) 아기를 돌보느라 계절을 즐기지 못하고 집 안에서만 답답해했던 마음이 한풀 풀어졌다. 

 

나의 몸과 시간을 내가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시기에 갈 수 있는 곳과 끝도 없는 돌봄을 요구하는 취약한 몸과 갈 수 있는 곳은 정반대처럼 느껴졌다.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자주 웃었다. “죄송합니다” “데리고 나갈게요” “아기와 유아차 들어가도 될까요” 말하며 감정 노동을 했다. 아기가 운다고 눈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예쁘다며 화장실에 간이 기저귀갈이대를 설치해 주고, 밥 편히 먹으라며 잠시 아이를 봐주고, 우는 아이를 달래는 나를 보고 아이는 원래 우는 거라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아기가 기저귀를 가는 도중에 오줌을 싸서 기저귀갈이대를 흥건히 적시고 말았을 때 남자애는 원래 그렇다며 웃어주는 이들 속에서 환대를 느꼈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맘충’이 될까 봐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 말하며 고개를 숙이며 억지웃음을 짓는 나를 발견했다. 

 

아기라는 존재와 함께 내가 속한 사회를 바라본다.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감각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코다로서 자란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볼 때 느꼈던 경험과도 비슷하고, 네덜란드에서 유학하며 한국을 오갈 때 가졌던 낯선 시선과도 닮았다. 아기 혹은 엄마 됨이라는 렌즈를 경유하여 세상을 본다. 벅차고 즐겁고 놀라우며 때로는 속상하고 애달픈, 울퉁불퉁하고 지난한 여정이 될 테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Writer Avatar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랐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서로 다른 세계들을 연결하면서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등이 있고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등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