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현의 영화적인 순간] 죽거나 죽기 직전 누굴 죽여야 하거나
물론 이렇게 내몰린 사람들도 선택을 하기는 한다. 다만 그것은 삶에 닿아 있지 않다. 생존에 닿아있다, 죽지 않기 위해 죽이는 생존.
글ㆍ사진 한정현(소설가)
202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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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윤금이. 윤금이는 1992년 10월 28일 동두천 술집에서 주한 미군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당시 이 사건은 주한 미군 철수 시위로 이어질 정도로 한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반향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인간 윤금이의 죽음이 아니었다.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양공주 하나 죽은 것이 무슨 큰일이냐?'며 그녀를 모욕했고, 이에 맞선 진보 진영에서는 그들의 발언을 비난했지만, 사실상 그들 또한 이 사건을 온전히 한 인간의 죽음으로 본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시위 등에 뿌려진 전단을 보면 윤금이의 육체는 미군에 짓밟힌 조국의 산천으로 묘사되어 있고, 그의 죽음은 시위를 독려하는 하나의 매개로 작동하고 있다. 결국, 진보든 보수든 그들에게 윤금이는 그저 국가 간 권력 사이의 무엇일 뿐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러니까 대체 왜. 어떻게 한 인간의 죽음의 초점이 오로지 국익에 대한 논의로 맞춰질 수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런 그곳에서 피해자는 대체 어디에 있을 수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을 하면 누군가가 또 말한다. 어차피 그녀는 돈을 목적으로 자신의 육체를 판매한 게 아니냐고, 그러니 그건 그녀의 선택이 불러온 결과라고 말이다. 하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의 인생에서 했던 선택들을 돌이켜 보면, 그건 단순히 객관식 시험 1번이나 2번을 고르는 그런 유(類)의 것이 아니었다. 삶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기까지는 각자를 둘러싼 환경, 주변과의 관계, 자신의 내면 등 무수한 고려 사항이 있었다. 그러니 윤금이의 선택(그것을 굳이 선택이라 한다면)을 두고 보려고 해도, 우리는 반드시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와 혐오와 편견을 모두 둘러봐야 한다. 그랬을 때 다시 물어보자. 과연 윤금이는 그 시기 동두천의 한 술집에서 일하는 것 외에 충분한 선택지를, 답지를 가질 수 있던 사람일까. 그리고 그런 사람이 결정했던 무언가를 과연 정말 선택이라 부를 수 있는 건가. 물론 이렇게 내몰린 사람들도 선택을 하기는 한다. 다만 그것은 삶에 닿아 있지 않다. 생존에 닿아있다, 죽지 않기 위해 죽이는 생존.



이 영화, <몬스터>의 주인공 '리(에일린)' 또한 선택지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이다. 여덟 명의 남성을 살해하고 법정에 서게 된 리. 어린 시절 리는 텔레비전을 보며 연예인을 동경하던 평범한 소녀였다. 그러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13살 때부터 그녀는 거리의 성 판매 여성이 되었다. 가족들은 그녀의 돈으로 생활하면서도 그녀를 비난했고, 리는 결국 집을 나와야 했다. 물론, 특별한 기술 하나 없는 리는 여전히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다. 끝없이 반복되는 이런 삶에 지쳐버린 리는 결국 삶의 의미를 잃고 자살을 결심한다. 그렇게 죽음을 목전에 두고 마지막으로 술을 마시기 위해 들어선 어느 바. 리는 그곳에서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의 한 사람을 발견한다. 아니, 어쩌면 고향을 떠나기 전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한 맑은 거울 같은 모습의 그녀, 셀비. 셀비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가족들로부터 극도의 외로움을 갖게 된 사람이다. 마냥 맑아 보이는 그녀의 내면엔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줄 사람에 대한 갈증이 깔려있다. 그러나 이 '무조건적'의 기준은 상호적인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도함조차 리에겐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이 세상에 자신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 리는 아직 자신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까지 받는다. 그것은 리가 가장 바라던 작은 소망 같은 거였다. 돈으로 거래할 수 없는 마음을 나눌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아마도 사랑이라고 부르는 듯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랑도 결국 생활을 이기기는 어려운 것일까. 셀비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리는 다시 돈이 필요해진다. 돈만 있으면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고 믿었던 남성들로부터 도망쳤던 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젠 셀비가 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돈이다. 그렇게 다시 리가 거리에서 만난 남성은 리에게 가학적인 섹스를 강요하며 폭행한다. 리의 첫 번째 살인이 그러한 과정에서 발생한다. 리는 오로지 살기 위해 그를 살해하고 셀비와 도망친다.

정당방위로 시작된 첫 번째 살인.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셀비는 계속 '남들과 비슷한' 삶을 원한다며 리를 자극한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은 리도 마찬가지였다. 리는 거리로 나서지 않기 위해 '번듯한' 일자리를 얻고자 남장을 하며 면접을 본다. 그러니까 당시의 여성들에게 그런 안전한 사무직 일자리는 요원하기만 했고, 리는 그걸 얻으려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 되어야만 하는 거였다. 물론, 남자 행세를 하는 여성에게 돌아올 일자리는 없었다. 돈은 떨어져 가고 자신을 압박하는 셀비에게 초조함을 느낀 리는 다시 거리로 나간다. 여성의 몸이라면 환장을 하는 남자들을 유인하는 건 쉬웠다. 리는 남자들을 죽이고 푼돈을 챙겼고, 셀비와의 사랑은 그렇게 이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나는 리가 영화 초반의 리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돈만 가져가면 다정해지는 셀비를 위해 저지르는 살인은 리에게 이제 하나의 규칙이 된 듯 보였으니까. 그리고 리의 이 죄는 최후엔 자신을 유일하게 인간으로 대해주었던 사람까지 살해하게 되는 끔찍한 악순환을 낳는다. 정당방위가 아닌 살인은 그 어떤 옹호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그렇기에 이 영화의 끝에서 리는 그저 완벽한 몬스터였다.

그러나 왜였을까. 그럼에도 나는 리의 모습에서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남자 옷을 입고 취직 문을 두드리던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 한 번, 살인죄로 재판정에 서기 전 사랑은 모든 것을 넘는다고 중얼거리는 리가 하던 혼잣말에서 또 한 번, 그러니까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던 한 인간의 몸짓에서 한 번,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한 상황에서 상실된 인간성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껴안아야 했던 그녀의 상황에 나는 한 번 더 울었던 거다. 과연 리가 그런 괴물이 될 때까지 모두는 무엇을 한 걸까. 그녀가 13살 나이에 거리로 나가 성 판매 여성이 될 수밖에 없었을 때, 그 돈을 모두 가족을 부양하는데 써야만 했을 때, 그리고 결국 그 가족에게도 버려졌을 때,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가 사랑이라는 착각으로 수렁에 빠져야만 했을 때... 과연 모두는 무엇을 했던 걸까. 당시에 그녀가 과연 어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답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는 그 답을 생각할 때면 리가 재판에 들어가기 전 어릴 적 보았던 놀이 기구에 대해 말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붉은 노을에 비친 그 놀이 기구가 너무나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의 리. 그러나 사람들은 그걸 '괴물'이라고 했다. 몬스터라고. 이렇듯 어떤 아름다움이 다른 누군가에겐 '괴물'로 비치는 것, 혹 이것이 여성의 육체이며 그 여성의 육체를 가진 사람들이 사랑을 할 때 내려지는 최종적 결론인 것일까. 

얼마 전 기지촌 여성에 대한 국가의 배상이 필요하다는 판결이 있었다. 기지촌 관리에 국가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 인정된 것이다. 이는 늦게나마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우리 사회의 시선이 그 판결만큼 어떤 공평에 가까워졌나, 라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2003년 실제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가 나왔을 때조차 사람들은 영화 내용보다는 샤를리즈 테론이 '뚱뚱하고 못생긴 몸과 얼굴을 가진' 여성으로 변신한 것을 더 화두로 삼았으니까. 그런 사회 안에서 역시나 다시 묻고 싶어진다. 누군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왜나햐면 그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누군가의 모습이 여전히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저 '죽어도 마땅한', '몸을 함부로 굴린' 괴물 같은 모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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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소설가)

한정현 소설가. 장편소설 『줄리아나 도쿄』,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