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 오늘 주제는 '문득 삶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에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어제 출연하신 김소영 작가님의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에 등장하는 한 챕터의 제목이기도 해요.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애나 마친 저 / 제효영 역 | 어크로스
주제에 딱 맞는 책이죠.(웃음) '사랑'이 직접적으로 들어있는 책입니다. YES24에서 '사랑'이라고 검색을 해봤어요. 4만 8천여 개의 상품이 나오더라고요. 굿즈도, DVD도, 책도 있었는데요. 결과에서 다시 신상품 기준으로 정렬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두 번째 탭에 딱 이 책이 있었어요. 부제가 '진화인류학자, 사랑의 스펙트럼을 탐구하다'인데 제가 이런 주제를 좋아하거든요. 작년에 <어떤,책임>에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소개했을 때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시기도 했고요. 저는 이렇게 과학자들이 사랑과 관계에 대해 연구한 다음 "이건 정말 팩트야"라고 얘기해 주는 책을 굉장히 재밌게 읽는 편이에요. 그래서 읽게 됐습니다.
사랑은 사실 되게 주관적인 거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나 보통 이상의 책임감을 갖고 사는 건 타고난 기질이나 사회적 경험에 따른 결과라고도 생각하는데요. 이런 영역에 어떤 생물학적인 근거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데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목차를 보면 여러분도 흥미가 생기실 거예요. '생존', '중독', '애착', '우정', '개인', '사회', '독점' 등. 이런 주제로 사랑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고요. 오늘 이 시간에는 '우정'이라는 챕터를 소개하고 싶어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친구들인 것 같아요. 그건 제가 선택한 사랑이죠. 전 연애 경험이 많은데 친구들에게 느끼는 것처럼 '와'하는 느낌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친구들과 함께하는 환경 속에서 사랑을 경험하며 살아온 것 같아요. 그리고 전 친구가 아주 많아요.
저는 우정 챕터가 특별히 좋았는데요. 저자는 친구와의 우정을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어요. 친구는 우리의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건강이나 행복 삶의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친구는 정신적인 사랑을 경험할 수 있고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가족이라서 짊어지어야 하는 의무나 문화적 압박에서도 자유롭다, 라고요. 흥미로운 것은 친구들의 뇌를 스캔해보면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이에요. 서로 비슷한 성향의 친구끼리는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똑같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친구로 선택하면 자신의 관점과 생각이 더 공고해져서 자신의 정체성에도 자신감이 더 생긴다고 합니다.
이 책을 보면 인간이 사랑이나 우정 등의 정서적인 감정을 느끼는 게, 물론 노력해서 되는 부분도 있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영역 같은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돼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우리 삶이 조금 사랑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캘리가 추천하는 책
고수리 저 | 미디어창비
오랜 '광부'라고 밝혀주시기도 한 고수리 작가님의 책입니다. 작가님은 방송 작가를 거쳐 지금은 에세이를 쓰고, 쌍둥이 형제를 키우는 엄마 작가이기도 하고요. 읽고 쓰고 가르치는 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는 분입니다. 이 책은 작가님이 왜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기를 바라는지, 글을 씀으로써 발견되는 일상의 사랑스러움이 무엇인지, 그리고 일상의 사랑스러움이 쌓이면 어떻게 나의 삶까지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는지를 차곡차곡 적은 책입니다.
인상적이었던 내용이 작가님이 코로나를 지나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하게 된 이야기였어요. 워낙 다양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시던 분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강연도 많이 했었는데 코로나로 만남도 일도 다 끊겼어요. 그 와중에 쌍둥이 형제의 육아를 하면서 우울감과 고립감을 겪었던 거죠. 살림, 돌봄, 육아를 하면서 글을 쓰기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작가님은 꾸준히 일기를 쓰기로 했다고 합니다. 육아가 아니어도 매일 일기 쓰기가 쉽지 않잖아요. 밀리게 마련이고요. 작가님도 일기를 곧잘 밀렸다고 말씀을 하세요. 재밌는 것은 그래서 '밀린 일기 쓰기'라는 취미가 생겼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한 5일 정도 일기가 밀리면 어제, 그제, 엊그제 일기를 거슬러서 다시 적어보는 거예요. 이렇게 하니까 새롭게 발견되는 게 있었대요. 정말 최악이었다고 생각했던 하루도 며칠 지나서 쓰려고 보면 그래도 그날 있었던 괜찮았던 일, 소소한 행복 또한 적을 수 있게 됐다고요.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또 다가오고 있다는 아주 선명한 오늘의 감각이 매일매일 일기를 쓰다 보니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시시하고 사소할지라도 애써 지키고 살아낸 내 하루의 마음들을 일기를 쓰면서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요. 그 부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문득 삶이 사랑스러워질 때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쓴다는 행위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어요. 쓰는 것은 나의 삶을 훨씬 성실하게 꾸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쓰지 않고 매일매일 살아도 별 문제는 없겠지만, 만약 글을 쓴다면 매일이 더 충실해지고, 글을 씀으로써 내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또 한 번 느끼게 됐어요.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최지연 저 | 창비교육
삶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을 떠올려 봤어요. 그 순간에 내가 완벽하게 침투해 있다, 내가 여기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낄 때 같아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내 삶을 내가 이끌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고요. 그 삶이 사랑스럽다고 여겨지는 것 같기도 해요. 내가 지금 여기에 현존하고 있다, 생생하게 머무르고 있다고 감각하게 해주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 순간들이야말로 사랑스럽고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삶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책은 제1회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입니다. 처음에 책의 제목을 보고 눈을 의심했어요. 성장소설상 수상작인데 '스무 살'이니까요. 성장이라고 하면 아동, 청소년기를 떠올리게 되잖아요. 저 역시 그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스무 살이 청소년은 아니지 않나, 성인이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까 대학생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성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성장이 끝난 것은 아니고 계속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는 죽는 날까지 뭔가를 하려고 하고,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고, 전에 없던 생각을 떠올리게 되죠. 그럴 때마다 어느 정도는 성장하게 되니까 어쩌면 성장 소설이라는 것은 평생 쓸 수 있는 어떤 것, 평생 읽어야 되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스무 살이 된 '은호'라는 주인공이 등장해요. 지역에 살다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오게 되고요. 혼자 서울에 왔으니까 어느 정도 자유로움도 생기고, 이전과의 삶과도 분리가 됐어요. 그러면서 여러 가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게 되는데요. 문제는 은호가 이 학교에 그리고 하필 행정학과에 진학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자꾸 학교가 재미없어졌죠. 그러다가 학교 내에 있는 상담소를 찾게 되고, 상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가 잊고 있었다고 믿었지만 실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마주하게 되는 거예요.
이 책에는 여러 사건, 사고도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우리가 누군가, 혹은 어떤 집단과 분리가 없이는 나 자신을 오롯하게 들여다 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에요. 사랑이든 우정이든 나 자신이 중심이 없으면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나 자신이 단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은호가 '은호'라는 이름의 개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나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그 단계에 오르는 이야기라서 굉장히 멋있는 소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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