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지나다니던 평범한 골목길 어딘가쯤. 익숙한 골목 사이로 처음 보는 가게가 하나 보인다. 어제도, 엊그제도 분명 못 보던 곳인데 말이다. 가게 이름은 『달 드링크 서점』. 작게 '당신의 인생이 책 한 권과 같다면'이라는 문구도 보인다. 지친 하루의 마지막 즈음,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불빛이 왠지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 간판만 봐서는 서점인지, 바(Bar)인지, 카페인지 잘 모르겠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진열장을 가득 채운 술병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술집이었나 보다. 토끼 귀를 한 종업원이 왜인지 당황하며 서툴게 메뉴판을 건네준다. 그런데 메뉴가 꽤나 특이하다. '첫사랑의 키스', '많이 보는 소년', '우주 요정'... 고민하던 당신에게, 눈에 확 띄는 메뉴 하나가 보인다. 곧 푸른 머리칼을 가진 바텐더가 당신에게 칵테일 한 잔을 가져다준다.
"손님, 주문하신 이야기 나왔습니다."
『달 드링크 서점』이 작가님의 데뷔작으로 알고 있는데요. '달'과 '술', '서점'을 연관 지어 집필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세 가지 모두 고민이 많을 때 찾게 되는 것들이에요. 특히, 대학생 때 그랬던 것 같아요. 전공 지식이나 대인 관계를 잘 쌓고 싶어서 관련 책들을 종종 읽곤 했어요. 대학교에는 돈 없는 학생도 쉽게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이 있었죠. 주말 도서관은 무척 고요하고 아늑했는데, 어렸을 때 집 근처에 있던 서점을 떠올리게 해서 좋아했어요. 책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이 생길 때면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어요. 밤이 되면 고민이 더 많아지잖아요? 그래서 파란 하늘보다는 밤하늘을 더 자주 봤죠. 아무도 없을 때 너무 속상한 마음에 달을 보고 혼자 한풀이했던 적이 있었는데, 울적한 마음이 조금 나아지더라고요. 그 뒤로 달을 보면 사색에 빠지곤 했던 것 같아요.
달을 봐도 도저히 속이 풀리지 않을 때 찾았던 게 술 같아요. 술잔을 기울이며 친구에게 속을 털어놓거나, 반대로 속이 상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 술이 함께 있었죠. 정말 힘든 날에는 술을 마시며 밤하늘을 올려다봤어요. 무엇이 옳은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대학생 시절 때처럼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생 때 위로받았던 세 소재를 엮게 되었습니다.
정식 출간 전에, 텀블벅 펀딩으로 675%를 달성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큰 호응을 얻으리라고 예상하시고 출간 전 펀딩을 먼저 진행하신 걸까요?
아니요. 사실 100%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어요. 구성품 중 책과 함께 진행하던 열쇠고리도 처음엔 5개만 주문했었죠. 5개도 다 안 팔리고 남을 줄 알았어요. 확신이 없으면서도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던 이유는 글을 쓰는 것부터 제본 의뢰 작업까지 온전히 제 힘으로 해보고 싶어서였어요. 20대의 마지막을 기념할 만한 특별한 일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게 책 만들기였어요. 정확히는 동화를 만드는 거였는데, 작업하다 보니 어린아이보다는 어른에게 와닿는 동화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스스로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려움도 많고 걱정도 많았는데,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에 정말 놀랐어요. 진심으로 감사한 분들이죠. 응원해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재밌다는 평까지 들었을 때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었어요.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직업군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소설가부터 축구 선수를 꿈꾸던 음악가, 화가, 직장인까지. 이렇게 다채로운 직업군으로 등장인물을 구성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상심에 빠지면 자책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할까, 남들은 잘만 사는데 나만 왜 이럴까.' 혼자 괴로워하는데 친구가 자기도 똑같다고 그러더라고요. 나만 그런 게 아니란 게 위로가 됐어요. 사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고민이 있잖아요.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물음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것 같아요. 몇백 년 전 사람들도 똑같은 질문을 하고 고민했으니까요. 여러 직업군의 사람들을 등장인물로 구성한 이유는 그런 마음이 반영되어 있어요. 누구나 고민을 하고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 점에서 드링크 서점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생각해요.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작가님과 가장 닿아있거나, 혹은 제일 애착이 가는 에피소드를 하나만 꼽는다면 어떤 장면일지 궁금합니다.
어느 하나 애착이 가지 않은 에피소드는 없지만, 굳이 꼽자면 두 장면이 떠올라요. 하나는 「사거리 교차로에서」 중 "꿈. 그래 꿈"이라는 대사예요. 드링크 서점에 다녀가기 이전 주인공에게 성공은 '돈이 많은 것'을 뜻해요. 하지만 사거리 교차로에서 주인공은 '성공'이란 돈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죠. 저 역시 돈 때문에 흔들릴 때가 많아요.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장면이라 좋아합니다. 저에겐 일종에 다짐과도 같은 장면이에요.
다른 하나는 「노인이 된 청년」 에피소드 중 "자네가 돈을 좇으면 돈이 있을 거고, 권력을 가까이하면 권력이 들어차겠지. 자네가 뭘 가까이하고 채울지는 온전히 자네의 선택이야."라는 대사예요. 마찬가지로 제 삶의 방향성을 상기시키는 말이라서 좋아합니다.
손님들의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달을 지키던 달토끼와 하늘 도서관을 지키던 문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요. 둘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제부터 제대로 시작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혹시 후속편도 계획하고 계신 걸까요?
사실 2편에 대한 구상은 어느 정도 해놓은 상태입니다. 2편은 문이 만든 물건 하나가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 예정이에요. 1편이 현실 세계에서 맛본 판타지 세계였다면, 2편은 판타지 세계에서 맛본 현실 세계가 콘셉트입니다. 현재로선 다른 작품을 쓰고 있고, 구상만 한 상태라 2편이 세상 밖으로 언제 나올지는 확신하기 어렵네요. 독자님들 손에 달린 셈이죠.
'연말 분위기와 같은 따뜻한 글을 꿈꾼다.'고 본인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달 드링크 서점』 외에도 앞으로의 집필 계획이 궁금합니다.
비중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능하면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어요. 판타지 소설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상냥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책을 쓰는 게 목표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책이 있지만 저마다 성향이 다르잖아요. 세상의 이면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책도 있고, 어려운 개념을 명료하게 정리해 놓은 책도 있죠. 제 책은 그중에서 '위로'가 되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많이 부족하지만, 착실하게 정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달 드링크 서점』의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독자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마침내 『달 드링크 서점』을 정식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안에서 즐겁기도 힘들기도 했어요. 여러분께는 감사하다는 말을 꼭 남기고 싶어요. 여러분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얼굴을 모르고 이름을 몰라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위로가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어서 오세요! 여기는 우연이 운명이 되는 곳, '달 드링크 서점'입니다.
*서동원 1993년 서울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랐다. 기계공학과를 전공하고 IT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첫 작품 『달에서 떨어진 드링크 서점』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발표했다. 연말 분위기와 같은 따뜻한 글을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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