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 끝에 돌아온 김준 작가의 신작 『초보인간』이 출간되었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초보인간이라고.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당신에게 『초보인간』이 건네는 메시지는, 당신을 달래고 위로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중한 하루가 되어 줄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신작은 2년 가까이 기다려온 독자들에 특별한 마음의 선물이 될 것이다. 수많은 산문집 사이에서도 유독 많은 독자들이 김준 작가의 글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감성만을 자극하는 글이 아닌 특별하고 유니크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김준 작가만의 세련된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에세이보다 세련된 에세이 『초보인간』은, 김준 작가만의 특별하고 개성 넘치는 문장들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마주한 적 없는 바깥에서 숱하게 포기하고 또 낙담한 모든 초보인간을 위해"
1년 6개월 만의 인터뷰입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작년 봄이었으니까 그 정도 시간이 흘렀네요. 그간 어떻게 하면 최대한 딴짓을 해볼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미술계에서 단연 이슈였던 <프리즈 서울>을 거치면서 국내외 갤러리들에 기웃거리기도 하고, 국립무용단 창단 60주년으로 올린 무용극과 서울예술단의 공연을 평해보기도 했어요. 금전과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마음에서 원하는 걸 무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주체적으로 살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단행본 집필은 그 사이 시간을 메우는 일이었고, 해가 넘어가기 전에 끝맺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아무쪼록 미처 보지 못하고 생각지 못했던 지점까지 육박해 들어갔던 시간이어서 고달팠지만 그래도 명랑했어요.
『초보인간』이라는 제목은 낯선 동시에 강렬합니다. 제목으로 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이번 책에서 인간의 미숙함에 대해 주목한다면 세간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미숙함은 인간의 기본값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자주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완벽을 추구하고 서툰 모습은 최대한 감추죠. 그 편이 매력적이니까요.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것을 넘어 상대의 결점에 대해서도 관대하지 않아요. 실수를 감싸주기보단 꾸짖고 야단치는 일이 흔하죠. 실패에 대해서는 더하고요.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긴커녕, 어째서 넘어졌냐고 호통치는 꼴이에요. 그토록 큰소리치는 사람 또한 삶이 처음인 미숙한 인간이잖아요. 누군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러모로 시급한 이 문제에 대해서요.
이번 국립극장 공연예술 평론가상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시기상 『초보인간』 출간 준비와 완전히 겹쳤을 텐데요. 결이 다른 두 작업 모두 소화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2016년에 첫 단행본을 시작으로 여섯 권 째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달려왔잖아요. 무언가 다른 시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해서 같은 종류의 에세이를 쓰며 자기 복제하는 작업에 지쳐있었고, 서점가에 난무하는 보급형 에세이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회의감도 느꼈고요. 또, 주변에서 저를 대중 작가로만 여기는 것에 대해서 불만은 있었지만 할 말은 없는 상태였어요. 에세이가 아닌 글도 쓸 수 있는데 그 말을 증명할 방법이 전무했으니까요. 국립극장에서 주최하는 평론가상이 이런 시기에 좋은 장작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어요. 원동력이라면 팔리는 글과 팔리지 않아도 가치 있는 글을 아우르며 쓰고 싶다는 불같은 욕심이었겠죠. 이번 당선을 계기로 상업적인 글과 평론을 넘나들며 캠프파이어를 해볼 요량이에요.
책을 쓰기 위해 또 많이 읽기도 하셨을 텐데, 최근에 편애하게 된 책을 세 권만 꼽자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몽테뉴의 『에세』를 먼저 꼽고 싶어요. 에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반문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어서 좋았어요. 사건보다도 생각을 기술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고요. 윤혜정 작가의 『인생, 예술』은 그림 작품으로만 알고 있던 작가들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같아서 한껏 빠져들 수 있었어요. 이론과 감상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작가의 심심한 고백도 배어있어서 최근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 책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는 김영태 시인의 폭넓은 작업들, 이를테면 시, 그림, 무용 평론 등을 아카이빙한 『풍경을 춤출 수 있을까』를 꼽아야할 것 같아요. 저 또한 그렇게 분야를 넘나드는 형태의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 인터뷰가 그 신호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표지와 내지의 크로키 그림이 눈에 띕니다. 작가님이 직접 고르셨다고 들었는데 계기가 궁금합니다.
최근에 서점에 가보니 박서보 선생님의 그림을 표지로 한 책이 나왔더라고요. 디자인의 영역을 넘어 미술과의 융화를 시도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또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러한 시도에 동참하고 싶었고,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 이제 막 물꼬를 트는 신인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임수민 씨는 일상 속 작은 움직임들을 모아 변화를 도모하는 작업을 해요. 작품들을 봤을 때 『초보인간』을 거칠면서도 섬세한 크로키로 풀어내줄 수 있겠다 싶었고, 연락하게 되었죠. 출간 후에 그림과 글이 곧잘 어울린다는 피드백이 많아서 좋았어요. 이런 협업을 시작으로 미술과 더욱 많은 접점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이번 책에서 작가님이 가장 아끼는 문장을 꼽는다면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책의 뒤표지에 배치한 문장이에요.
'아무쪼록 방에서 헤어 나오시길 바랍니다. 마주한 적 없는 바깥에서 숱하게 포기하고 또 낙담하시길'
이 글을 쓸 당시 제 자신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아요.
『초보인간』을 출간하면서 2022년을 닫고, 평론가상을 수상하시면서 2023년을 열었는데, 작가님이 그리는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가 궁금합니다.
출간 전에 북토크를 진행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여러모로 계속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가까운 미래에는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맡아 분야를 확장할 계획이에요. 공연과 전시에 관한 글도 평자의 관점에서 계속 써나가고 싶고, 조금 더 욕심부려서 새로운 산문집까지 출간하고 싶어요.
먼 미래를 생각하면 IMF라는 풍랑을 거치면서 난파선의 조타수처럼 일생을 버텨온 아버지가 생각나요. 망가진 선체를 수리하기 위해 쇠망치질을 하고 배를 안전지대로 옮겨 놓는데 총력을 기울이셨어요. 저는 그 배를 넘겨받아 쇄빙선으로 개조해야해요. 그 어떤 결빙 해역도 뚫어내며 기필코 항로를 만들어내는 배로 많은 사람들을 역경으로부터 지켜내고 싶어요. 그것이 제가 그리는 멀지만 유일한 미래에요.
*김준 짧지 않은 시간을 러시아에서 보내고 2016년 귀국한 후로 여섯 권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주어진 일상 곳곳에서 가능성을 포착하고, 글과 강연을 통해 그 가능성에 대해 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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