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안의 100년사를 통해 들여다본 어머니들 이야기
『할머니, 나의 할머니』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평범한 여성이 집안의 4대에 걸친 여성사를 훑으며 삶의 뿌리를 짚어보는 에세이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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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나의 할머니』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평범한 여성이 집안의 4대에 걸친 여성사를 훑으며 삶의 뿌리를 짚어보는 에세이다. 어린 시절부터 스토리텔링에 능했던 양가의 할머니들과 어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일제 강점기 때의 증조모, 결혼 넉 달 만에 한국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유복자를 키운 할머니, '아들 잡아먹은 년'으로 살았던 외할머니, '오빠 잡아먹고 태어난 계집애' 큰이모, 남동생이 태어나고서야 사랑받은 어머니의 삶을 들여다본다. 이 여성들의 삶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자신의 할머니, 어머니, 이모와 고모의 인생을 떠올리게 된다. 동시에 자신의 성씨를 물려줄 수 없었음에도 자녀들을 지키고 뒷받침해 온 비범한 어머니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할머니, 나의 할머니』는 어떻게 나오게 된 책인가요?

책을 쓰겠다고 생각한 건 무척 오래되었죠. "내 얘기를 책으로 쓰면 대하 소설이야"라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많이 쓰잖아요. 저는 제 할머니들의 이야기, 할머니 주변의 이야기를 정말로 활자화 해서 남겨 놓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들었거든요. 제가 좀 수다스럽기도 해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으면 막 주위 사람들한테 구연동화처럼 리액션을 막 섞어서 해 주는 걸 좋아하기도 해요. 그런 것처럼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도 남들에게 재미나게 해 주고 싶었지요.

한 번은 국사 시간에 '임신서기석'에 대해 배울 때였어요. 임신서기석이라는 게 신라 사람 두 명이 서로 유학 경전을 공부하자고 약속하자는 내용을 돌에 새겨 놓은 거고, 그게 지금까지 남아 있어서 지금 우리가 '아 신라 시대에 유학이 이미 전래되었구나'를 알 수 있다고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셨거든요. 설마 그 신라 사람들이 '이렇게 우리의 약속을 잘 남겨 놓으면 후대에 사료(史料)로 잘 쓰이겠지'라고 생각을 했겠어요. 그저 옛날 흔적을 찾는 사학자들의 밝은 눈에 띄어서 사회상을 알 수 있게 된 거겠죠. 저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별 거 아닌 지금의 기록이 후세 사람들에게 당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국사 시간에 배우는 건 시간의 간격이 너무 크잖아요. 제 할머니들의 이야기도 잘 기록해 놓으면 사료로서 작든 크든 그 시간의 간격을 메우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었죠.

그렇게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게 마련이거든요. 그렇게 기웃거리다가 최인아 책방에서 진행된 '정여울 작가의 글쓰기 교실', 윤혜자 편성준 부부가 운영하는 '책쓰기 워크숍'을 거쳐 이 책의 초고를 무사히 만들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나의 할머니』에는 한 집안의 4대에 걸친 여성사가 등장하는데요. 자료 조사는 어떤 식으로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70퍼센트 정도는 자료 조사가 아니라 할머니들에 의한 자료 입력에 가깝겠네요. 어르신들 특징이 한 얘기 하고 또 하시는 거잖아요. 이 책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 대부분이 할머니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이야기들입니다. 토씨 하나도 안 틀리고 반복해서 들은 것도 많아요. 나중에는 딱히 할머니랑 할 얘기가 없을 때 등장인물이나 장소 같은 키워드 몇 개만 던져놓으면 노래방 기계에서 번호 누르면 그 노래 나오는 것처럼 할머니 입에서 줄줄 나오곤 했어요.

그런데 이 에피소드들을 엮어서 막상 책을 쓰려니까 사람의 기억이 그렇게까지 정확하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책 내용 중에 할머니가 보고 싶어했던 <전원일기>와 제가 보고 싶어했던 <전설의 고향>이 시간대가 겹쳐서 채널을 두고 다퉜다는 부분이 있어요. 나중에 찾아보니 같은 요일에 했던 건 맞는데 시간이 다르더라고요. 제가 다른 프로그램이랑 착각을 한 상태로 기억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 것처럼 같은 에피소드도 엄마한테 들을 때랑 할머니한테 들을 때랑 조금씩 차이가 나기도 해서 그런 건 가급적 교차 검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지방 자치제 덕분에 지역의 작은 기록들이 잘 모여 있기도 해서 관련 배경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요. 혹시 어디 사회면에라도 나왔을까 싶어서 옛날 종이 신문 스크랩 서비스에서 찾아보기도 하고요. 저희 집 선산이 남양주에서 산본리로 이사 오게 된 사연은 아빠한테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무려 <조선왕조실록>에서 기록을 찾았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 모두 우리말로 번역이 되어 있어서 원문 대조까지 해 가며 편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우 놀랐습니다.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연이 있으시다면요?

친할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 중에서, 할머니 어릴 적에 근로 정신대 소집이 들어왔었는데, 집을 떠나기 사흘 전엔가 해방이 되어서 안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어릴 때 충격적이었어요. 일제 패망이 조금만 늦어졌어도 할머니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제가 못 태어났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말이 정신대이지 일단 징집되고 나면 어디로 끌려가는 건지도 모르고, 집에 온전히 돌아올 수 있는 확률은 남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제 징용보다 더 희박했던 것 같아요. 국사 시간에 배웠던 추상적인 사건들이 우리 집과도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친할머니의 어릴 적 별명이 '보리쌀 서 말'이라고 하셨는데, 여기에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있다고요.

네, 저희 친할머니가 1928년생 용띠세요. 그런데 주민 등록은 1929년생으로 되어 있거든요. 물론 자기 나이에 제대로 출생신고가 된 사람이 드물던 때이긴 했지만, 할머니께 왜 날짜가 다르냐고 여쭤봤더니 얘기해 주신 거예요. 제 친할머니의 친정 아버지가 저희 할머니 태어나고서는 "왜놈 호적에 못 올린다"고 출생 신고를 안 하신 거예요. 그러다 할머니가 대여섯 살 즈음엔가 그게 걸려서 벌금으로 보리쌀 서 말을 내고 출생 신고를 마지못해 하셨대요. 당시로서는 보리쌀 서 말이면 벌금으로 꽤 큰 거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동네에서 저희 할머니가 지나가면 "저기 보리쌀 서 말 간다"하고 농담 섞어 얘기했다나 봐요. 

그런데 친할머니께는 오빠들도 있었고 그분들 출생 신고는 많이 늦지 않게 했거든요. 그래서 왜놈 호적이 무슨 말인가 하고 책을 쓰면서 찾아봤죠.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의 후속 조치 격으로 1906년에 '민적법'이라는 게 생겨서 사람들이 지금의 출생 신고에 해당하는 민적 신고를 했는데, 일제 치하에 들어서면서 1923년에 '조선 호적령'이라는 게 생겨요. 제 증조부는 그걸 '왜놈 호적'이라고 불렀던 거죠. 아마 대한제국에서 만든 민적법이 계속 시행되고 있었으면 늦지 않게 출생 신고를 하셨을 거예요.



작가님에게는 '공들여 잘 만든 재미있는 드라마'가 할머니에게는 '쳐다보기 힘든 다큐멘터리였다'라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나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싫어하셨다고요.

네, 전 이걸 다 크도록 이해하지 못한 손녀였어요. 그냥 그 시절을 다룬 소재가 궁상맞고 처량해서 보기 싫은 건가 생각했지만 할머니는 버럭 화를 내면서까지 딴 거 보라고 하셨거든요. 요새 웹툰이나 웹소설에는 회차마다 독자들이 직접 댓글을 많이들 달잖아요. 특히, 학교 폭력이나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사람들이 같은 소재를 다룬 콘텐츠를 보면서, 그 작품이 본인의 정신적인 트라우마에 대한 '트리거'가 되어 힘들었다고 댓글을 남긴 걸 보면서, 그제서야 제가 할머니를 이해하게 된 거예요. 

할머니는 놋그릇까지 강제로 공출을 해 가던 일제 강점기와 총알이 날아다니고 동네가 폭격으로 쑥대밭이 되고 이웃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실제로 겪으신 거잖아요. 할머니께는 그 시절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다큐멘터리였던 거예요. 그러면서 손이 벌벌 떨리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치유하지 못한 끔찍한 경험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트리거가 되었던 거죠. 그러니 어떻게 마음 편하게 그냥 한 편의 드라마로 감상하실 수 있으셨겠어요. 어쩌면 <국제시장>이나 <여명의 눈동자> 같은 영상물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이라 가능한 것 같아요.

『할머니, 나의 할머니』에는 한 평범한 집안의 100년사가 담겨 있는데요. 이 책을 쓰고 난 뒤 작가님의 개인적인 감상이 궁금합니다.

먼저 뭔가 밀려 있던 숙제를 하나 해 치운 후련한 기분이 드네요. 제 영혼이 태어나면서 부여받은 과제가 혹시 있다면 이 책을 쓰는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제 친할머니는 옛날 어른들이 대개 그렇듯 칭찬을 잘 못 하셨어요. 좋은 게 있어도 "아이고 개코같아라" 그러셨거든요. 책이 나오고 할머니 산소에 가서 책을 올려 놓고 "할머니 이야기로 제가 책을 썼어요"하고 인사를 드렸는데, 귀에서 "아이고 개코같아라"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속으로는 좋으시면서 말입니다.

몇 년 전에 디즈니에서 나온 <코코>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봤어요. 영화에 보면 이승에서 어떤 사람이 죽은 사람을 기억해준다면 그 영혼은 저승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하더라고요. 책으로 만들어서 오래오래 기억되도록 만들어놨으니, 책에 나오는 분들의 영혼이 조금 더 오래도록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 나의 할머니』를 만나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람 사는 게 집집마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더라고요. 이 책에서 다른 점을 더 많이 찾으시게 될지 비슷한 점을 더 많이 찾으시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표현 방법은 다 달랐어도 할머니로부터 사랑과 돌봄을 받고 자란 손주라면 그리움에는 꼭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시문

경기도 안양에서 나고 자랐다. 삭령 최씨 할머니, 선산 김씨 외할머니, 연안 이씨 엄마에게서 태어나 전주 이가로 살고 있다. 할머니들과 어머니 모두 입담이 좋아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이에 더해 소설, 수필, 만화, 영화 등 온갖 서사를 탐독하며 아동, 청소년기를 지나왔다. 구두로 전해 들은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탐독하던 서사의 영향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평범한 한 집안의 100년사가 자신의 성씨를 물려줄 수 없었음에도, 온 생을 바쳐 자녀들을 지키고 뒷받침해온 비범한 어머니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라며 썼다.




할머니, 나의 할머니
할머니, 나의 할머니
이시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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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