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뒤 등단 이듬해에 발표한 단편 소설 「한밤의 손님들」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최정나 작가의 첫 장편 소설 『월 wall』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월 wall』은 현실과 환상을 묘하게 섞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환상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인터랙티브 미디어 '월'은 주로 빌딩 외벽에 설치되어 대형 광고판으로 기능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용자의 동작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는 미디어 월이 제공하는 광고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우리의 행동에 따라 미디어 월에 나타나는 화면을 바꿀 수도 있다. 최정나 작가는 이런 이중적인 특징을 가진 미디어 월을 소설 속에 적극적으로 들여와 자유롭게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거대한 미디어 월 앞에 선 인물들은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까? 인물들이 미디어 월을 통해 아무렇지 않게 시간과 공간을 옮겨갈 수 있는 것처럼, 『월 wall』은 우리에게 최정나 작가의 작품 세계로 깊이 빠져들 수 있는 하나의 문이 되어줄 것이다.
『월 wall』은 첫 소설집 『말 좀 끊지 말아줄래?』 이후 삼 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입니다. 첫 장편소설인 만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소설집이 나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라 저도 좀 놀랐어요. 출판사에 책이 입고된 날 편집자님께서 제게 연락을 주셨어요. 책을 발송했으니 다음날이나 그 다음날 받아볼 수 있을 거라고요. 실물을 보기 전이니 당연히 책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한데도 순간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는 거예요. 할 수만 있다면 실물을 보는 날을 끝없이 지연시키고 싶었어요. 기분도 급격히 가라앉았고요.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라서 당황했는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랫동안 저와 함께 지낸 어떤 게 제 품을 완전히 떠나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도 없이, 사실 준비가 필요한 줄도 몰랐지만, 삼 년 동안 저와 동고동락하며 거의 한몸처럼 붙어 지내온,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것이 갑자기 툭 하고 끊어진 기분이 들어서요. 끝없이 가라앉는 느낌을 스케치하듯 적어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친구와 만나고 있었어요. 다음날 숙취에 괴로워하며 택배로 온 책을 받았고요. 받고 나서도 곧바로 택배 상자를 열어보지 못했지요. 오랜 시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장편은 헤어짐의 시간도 단편과는 완전히 달랐던 것 같아요.
작가님이 직접 이 소설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신다면요?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 말씀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소설을 쓸 때도 머릿속이 뒤죽박죽 여러 생각들로 뒤엉켜서 이러다가 머리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지금도 너무 많은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라서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줄거리는 간단해요. '용수'라는 남자가 연수라는 여자와 이별한 후 예기치 않은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그중 인석이라는 남자와 함께 움막 선생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하면 될까요? 하루나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이고요. 어쩌면 한순간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어요.
소설 안에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등장해요. 저도 몇 명이 나오는지 궁금해서 세어보다가 여든 명쯤에서 그만두었기 때문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만 백여 명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얼핏 연관성이 없는 듯한 인물들이 소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지요. 마찬가지로 공간과 시간, 에피소드도 연결되어서 한곳으로 흘러들어요. 부분이 전체가 되기도 하고, 전체가 한 부분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요. 아마도 움막 선생의 정체를 알고 나면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로 꿰어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월 wall』은 2021년 4월부터 9월까지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된 소설이지요? 연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퇴고하면서 가장 신경써서 살펴본 부분은 어떤 것인지도 듣고 싶고요.
당연히도 원고 마감이 가장 힘들었어요. 늘 시간에 쫓겨서 글을 썼어요. 소설 안에서 살다가 어느 날 밖에 나가면 제가 어디에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았어요. 느닷없이 다른 세계로 옮겨진 듯한 느낌이랄까요. 햇살이 낯설게 느껴지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과 보이는 풍경들이 모두 낯설어서 늘 어색했어요.
그렇게 소설 속 공간과 현실 속 공간을 오가며 어지럼증을 느끼며 지내다가 나중에는 꿈에서도 이게 소설인지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어요. 엄청난 걸 생각한 줄 알고 벌떡 일어나 책상 앞으로 가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았지요.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는 입에 넣는 모든 게 달게 느껴지더라고요. 소금도 달고 설탕도 달고 물도 달고요. 그렇게 서너 달을 보내다가 어느 날부터는 입에 넣는 모든 게 짜게만 느껴지는 거예요. 소금도 짜고 설탕도 짜고 물도 짜고요. 미각에 이상이 생긴 거죠. 그렇게 한 육 개월을 지냈는데 연재를 마치고는 말끔히 나았어요.
퇴고하면서 가장 신경쓴 건 역시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이 소설이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늘 생각했어요.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요. 인물, 공간, 시간, 에피소드 등 이리저리 퍼뜨려놓은 것들을 하나의 줄기로 불러들이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월 wall』을 소개할 때 매력적인 인물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쓸모없다고 평가되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이 인물들의 사연들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아요. 작가님이 가장 애정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저는 평소 잉여의 인물들에 애정을 갖는 것 같은데 저와 닮았다고 여겨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 소설을 쓰면서 거의 매일 밤 소설 속 인물들을 떠올리며 술을 마시고는 했는데, 저는 그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처지가 슬퍼서 울고, 그런 그들에 대해 쓰고 있는 제 모습이 슬퍼서 울었어요. 저는 소설 속 인물 모두를 사랑합니다. 정말 모두를 아낍니다. 하지만 소설을 끝마치고는 연수가 자주 생각났어요. 연수는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를 마주하고 서 있는데, 그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는 저도 알고 싶어요. 저는 연수가 새로운 세상, 그러니까 미지의 세계가 주는 거대한 공포를 뛰어넘어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기를 바랍니다만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해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소설에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월'이 인상적으로 등장합니다. 거대한 미디어 월 앞에 선 인물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 규모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소설에 미디어 월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미디어 월을 통해 현대를 대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디어 월이 현대와 현대인을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상징물처럼 여겨졌거든요. 미디어 월은 인간의 욕망을 재현하고, 보통은 욕망이 실현된 후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미디어 월 속의 인물들이 현대인보다 더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환상의 공간이지요. 그 세계에서는 누구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당연히 동시에 여러 곳에 있을 수도 있고요.
소설적으로는 시점이나 인물의 위치를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고, 공간과 시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요. 저는 소설 속 인물들이 미디어라는 미로에 떨어졌다고 생각했어요. 안으로 들어갈 뿐 밖으로는 나갈 수 없는 미로요. 그 안에서는 한 명 한 명 모두가 주인공인 듯 보이지만 한 명 한 명 모두가 주변인인 것 같아요.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공간이나 시스템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이면서 우리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월 wall』의 또다른 매력은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인 것 같아요. 진지한 장면에서도 유머러스하고 위트 있는 대화들 덕분에 너무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었어요. 쓰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화가 있을까요?
공항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 국가의 시스템이 집약된 곳이니까 공항이라는 공간을 묘사하면서 공을 들였거든요. 때로 저는 이 소설이 공항 소설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만큼 중요한 장면이라 그런 것 같아요.
『월 wall』을 쓰면서 어떤 독자에게 이 이야기가 닿길 바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대로 나사가 빠진 건 아니고 약간 풀려 있는, 그러니까 아주 약간 고장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연재할 당시 소개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 대다수는 경계선에서 약간 비껴 있는 인물들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범법 행위를 했다거나 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사회 질서 안에서 조금씩 벗어난 인물들이고요. 그러니까 등장인물 중 자신과 닮은 사람을 따라 읽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에피소드를 따라 읽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형식이 주는 즐거움을 따라 읽으면 미디어의 속성과 만날 수 있을 거고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다양한 예술 작품과 그 이미지들이 숨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답은 없으니 좋아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최정나 1974년생. 201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전에도 봐놓고 그래」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 소설 「한밤의 손님들」로 2018년 제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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