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5년 만에 여권을 꺼내 유효 기한을 확인하고, 송영이 아닌 출국의 자격으로 인천 공항에 갔다. 가족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떠났으므로 의무는 없이 오로지 나의 즐거움만 챙기면 되었다. 오랜 로망이던 북쪽 눈나라의 설경을 여한 없이 즐겼다. 바지를 여미기 힘겨울 만큼 많이 먹고, 많이 웃고, 에너지를 충전해서 돌아오던 길, 난기류를 만났다.
승무원이던 사촌 언니는 몸이 붕 떠서 천장에 머리를 들이박고 산소 마스크가 떨어지고 비명과 통성 기도가 기내를 채우는 정도는 되어야 진짜 난기류라고 했다. 내가 겪은 것은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얌전했다. 그냥 비행기가 좀 뚝 떨어지는 것 같았고, 소리로 표현하자면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우리나라 팀이 골을 먹었을 때와 비슷한 짓눌린 탄식 같은 것이 두세 번 기내를 휩쓸었다. 나는 남들처럼 두 손으로 앞 좌석 등받이를 붙잡고 그 시간을 견뎠다. 5년 만의 여행, 이전에 겪어본 적 없는 난기류였지만 그 느낌은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실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을 떠올리게 했다. 불과 몇 분 재회하는 동안 그는 느물느물하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다시 만났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를 오래전부터 알아왔지만 얼굴을 이제야 제대로 본 것 같았다.
"너였군, 공포."
난폭한 그 친구의 이름은, 공포였다.
5년 가까이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내 상태는 정말이지 말이 아니었다. 읽어지지도 써지지도 않는데, 소멸을 앞두고 남은 것은 악다구니뿐이었다. 억울하고 절박했다. 노트북 앞에 앉으면 눈이 빠질 것 같고 두통으로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았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시커먼 타이어를 움직여 글을 써야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뇌가 있어야 글을 쓰지. 그때는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탄식했다. 뇌가 없는데 글을 쓰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또 있을까?
단 하나, 내가 무엇을 써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울고 있는 꼬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유치원 입학식 날 춤추기를 거절하고, 어느 날 더 이상 한 글자도 쓰지 않고 이대로 그냥 확 죽어버리겠다고 결심한 그 꼬마 말이다. 이 모든 난리가 그 꼬마에게서 발원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제 속마음을 털어놓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마포대교로 달려갔다. 그것이 내가 맞이한 난독과 글 막힘의 실체였다. 마포대교 난간에 매달려 있는 그 꼬마에게 왜 이러냐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나 속상했던 것이냐고, 일단 돌아와 이야기를 좀 하자고 달래야 했다. 그 아이가 한강물에 뛰어들 생각을 거두고 난간 안쪽으로 돌아오게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모두 알고 있듯이,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다. 그 아이는 거친 바람 속에 난간의 바깥쪽 레일을 위태위태하게 디디고 서서 모두 비키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이대로 뛰어내려 버릴 거라고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댈 뿐이었다.
머릿속의 타이어, 난간에 매달린 어린아이 그리고 불 꺼진 비행기. 그 시기의 내 마음을 상징하는 세 가지 이미지였다.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은 나는 비행기를 몰고 있는 조종사다. 지상 1만 7000피트,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네팔 공항에, 혹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 취리히 공항에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깜깜한 밤, 비행기는 날고 있지만 계기판은 모두 꺼져 있다. 설상가상 공항도 정전이다. 지상과 교신도 끊어졌고 주위는 완전한 정적 그리고 암흑이다. 나는 이 비행기를 몰고 착륙해야 한다.
그때의 느낌을 공포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안전한 내 방에서 커피 한 잔을 들고 노트북 앞에 앉은 내가 왜 불 꺼진 비행기를 몰고 착륙하려는 눈먼 조종사의 공포를 느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굳이 누구의 이해를 구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그때 나는 그러했다고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그 감정의 정체를 스스로 깨달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발밑으로 퍼런 강물이 일렁이는 대교 난간에 매달린 어린아이, 불 꺼진 비행기를 몰고 정전된 공항에 착륙하려는 조종사. 그들이 느끼는 감정. 그때 노트북 앞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순도 99%에 가까운 공포였다. 불규칙하게 뚝뚝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 앞 좌석 등받이를 부여잡고, 나는 이 느낌이 조금도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나는 소설 『설이』를 쓰고 있었다. 이럴 수는 없다는 악만 남아서, 날마다 추락의 공포를 견디며, 노트북 화면에서 춤추는 글자들과 싸우며 뭔가를 써나가고 있었다. 어렴풋이 어린 시절의 아픔을 소설로 형상화하는 것만이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는 방편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걱우걱 뭔가 쓰기는 했는데, 그 뭔가가 무엇인지 도저히 스스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었다. 주인공 설이는 초등학교 6학년 고아 소녀였는데, 나는 멍한 기분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고아? 난데없이 웬?'
소설의 클라이맥스에서 아이가 시험을 망치자 그 부모는 아이가 사랑하는 개를 내다버렸는데, 나는 그 의미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개를? 왜?'
나는 이 인물들이 왜 등장하고 무엇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며 이 소설적 장치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결론에 다다를 것인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그냥 시시각각 조여오는 공포와 싸우며, 이 이야기가 뭐길래 이런 공포 속에서 써야 할 의미가 있을까 회의하면서 꾸역꾸역 썼다.
공포가 심해지면 화면의 떨림이 격렬해졌다. 도저히 화면을 볼 수가 없어서 아예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키보드를 타이핑하는 손의 감각에 의존해서 생각나는 문장들을 아무렇게나 썼다. 눈을 떠보면 차마 내가 썼다고 믿을 수 없는 오타 가득한 문장이 몇 개 널브러져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오타를 보면 화면의 떨림이 멈추었다. 틀린 글자를 고치면, 그렇다, 나는 그날 몇 줄을 쓴 것이다! 이게 무슨 꼴인가 싶기는 해도, 어쨌거나 못 쓴 것보다는 쓴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언가를 속여넘기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비루하게, 구걸하듯 문장들을 모았다.
최악의 시기에는 하루 5줄이었다가 곧 하루 5매로 늘어났다. 지렁이 같은 속도로라도 어쨌거나 초고가 완성되었고 수정할 때는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계기판의 불은 꺼져 있었다.
비행기를 탈출해!
나는 날마다 생과 사를 가르는 것처럼 절박한 선택에 놓였다.
비행기는 폭발할 거야! 네 목숨이라도 챙겨! 비행기를 탈출해!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비행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이상한 집착이 나를 붙들었다. 나는 조종사니까. 조종사라면 이륙하고, 날고, 착륙해야 하는 거니까. 기체와 승객들을 포기하고 혼자 목숨을 구해 달아난다면 나는 더 이상 조종사라 부를 수 없을 테니까. 비행기가 결국 추락한다면 그와 함께 생을 마치는 것이 나의 몫일 테니까.
계기판이 꺼진 비행기를 몰고 어두운 공항에 착륙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계기판이 꺼져 있지만 자동 항법 장치가 아마 켜져 있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비행기가 알아서 착륙할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내 글쓰기를 주관하던 꼬마가 죽어버리겠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마포대교에 매달려 있었지만, 그 아이의 어린 시절을 닮은 소녀 설이의 이야기에 완전히 무관심하지는 못할 거라고 나는 믿었다. 다가오지 말라고 쇳소리를 질러대면서도 흘긋 이쪽을 바라보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어느 날 꼬마가 난간에서 내려오더니 『설이』의 8챕터를 하루 만에 다 써버렸다. 원고지로 70매쯤 되는 분량이었다. 그러더니 도로 난간으로 쌩하니 돌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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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소설가. 장편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영원한 유산』, 『설이』 등과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