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청소년 정신 건강 의학과 의사들은 진료실에서 아이와 엄마들을 동시에 만난다. 엄마는 아이가 겪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질병을 가까이서 가장 먼저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부모가 가장 많이 털어놓는 고민 중 하나는 아이의 '공부'다. 이런 고민을 수없이 접한 여덟 명의 저자는 아이들의 학습을 돕고자 『공부하는 뇌, 성장하는 마음』을 기획하고 쓰게 됐다. 학습과 관련된 고민에는 정답이 없다. 그렇더라도 저자들은 아이들의 뇌 성장과 발달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치료한 데다 정서를 보살피며 북돋운 경험이 있다. 이런 저자들의 이야기는 연구와 임상, 상담 사례가 어우러져 있어 귀 기울여볼 가치가 있다.
단순히 학교 성적을 관리하고 입시에 집중하게 되는 현실 속에서 가능한 좋은 성적을 받도록 도와주면서 동시에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할 능력을 키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효원 :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과 스스로 학습할 능력을 키우게 하려면 우선 아이의 성향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들의 학습이나 공부에는 많은 요소가 관여합니다. 나이나 발달 수준, 지능, 주의력, 실행 기능, 기억력, 문해력, 공간감, 수 감각과 같은 뇌 기능, 학습에 대한 동기, 자기 조절과 관리 능력, 감정 조절 능력 같은 요소들이 모두 아이의 학습에 영향을 줍니다. 아이마다 이런 요소의 발달은 각기 다릅니다. 또 아이들의 재능이나 관심사, 성격도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도록 혹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도와주고 싶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아이에게 맞는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더불어 공부하는 방법 하나하나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 공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믿어주고, 성취 자체보다 노력을 격려해주며, 아이들이 좌절하는 순간을 함께 견뎌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입니다.
학습 난이도가 조금만 올라가도 짜증을 내는 아이, 학업에서 주의력이 낮은 아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까요?
손승현 : 체력이 약한 아이에게 운동을 시킬 때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아이가 처음부터 자신의 체력 이상의 운동을 하도록 요구받으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오히려 운동을 싫어하게 되겠지요. 아이가 힘을 내서 운동을 하게 하려면 체력을 고려해 운동의 난이도와 시간을 정하고, 운동할 때 노래를 틀어주거나, 친구들과 함께하게 하거나, 한 단계씩 성장할 때마다 칭찬을 해주는 등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의 현재 주의력을 파악하고 이에 맞추어 학습 난이도와 학습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아이가 어려운 공부를 조금 더 힘내서 할 수 있도록 도와줄 방법을 찾아보고, 노력하는 부분과 성장해가는 모습을 격려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해력이 요구되는 시대, 어떻게 키워야 언어와 읽기 능력을 높일 수 있을까요?
양찬모 : 언어와 읽기 능력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발달 시기에 맞는 방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유아라면 언어와 읽기 능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는 책이나 놀잇감을 통해 양육자와 상호 작용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령기의 아이라면 관심사에 대해 스스로 정리하여 말로 표현하고 글쓰기를 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AI와 챗GPT 시대를 맞아 윤리 및 가치에 대해 토론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 등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온라인 매체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인터넷의 과도한 사용은 언어와 읽기 능력의 발달을 방해할 수 있으며, 인터넷상의 정보를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 대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수포자'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수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수학 공부를 꾸준히 하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태엽 : 수학에 어려움이 있는 이유는 아이마다 다릅니다. 우선 개념 공부를 스스로 해나갈 수 있는 언어 및 독해 능력을 길러야 하고 배운 것을 자신의 말로 정리하고 이해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념과 관련된 부분은 반복과 암기가 필요하지만, 문제를 풀 때는 그보다는 개념을 적용하여 기본부터 심화 문제까지 고민하며 푸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합니다. 문제를 대충 푸는 것과 같은 잘못된 습관은 없는지 되돌아보고, 평소 아이가 공부를 하는 동기와 수학을 하며 느끼는 감정을 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엄마표 영어 교육법이나 단기 어학연수 등 영어 몰입 교육은 도움이 될까요?
정재석 : 80퍼센트 정도의 아이에게는 파닉스 방식의 공부법이든 잠수네 방식의 전 언어적 접근법이든 상관이 없겠으나, 언어 발달이 늦거나 주의력 발달이 늦은 아이들에게 엄마표 영어 공부법은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연스럽게 문장에서 단어, 단어에서 자음, 모음을 인식할 수 있는 아이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고, 이러한 아이의 경우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모국어의 기초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영어 몰입 교육은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잘했는데 중고등학교 때 성적이 떨어지는 사례가 많잖아요. 가장 큰 원인은 뭘까요?
김은주 : 인지 능력도 공부를 잘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기는 하지만,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학업의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과제에 들여야 하는 시간도 늘어나므로 웬만한 노력과 시간 투자로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버틸 수 있는 끈기가 많이 필요해집니다. 또한, 입시 스트레스가 본격적으로 심해지는 시기이므로 시험이라는 실전에서 불안을 조절해가며 자기 실력을 실수 없이 발휘할 수 있는 멘털 관리 능력도 필요합니다.
또,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가기 위해 공부에 대한 좌절을 겪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감정 조절 능력과, 성적이 뜻대로 안 나올지라도 공부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게 해주는 학습 동기가 매우 중요해집니다. 초등학교 때까지 엄마의 관리하에 공부를 곧잘 하다가도 중고등학교에 가서 학업에 담쌓고 지내는 아이들을 잘 살펴보면, 사춘기 시기를 거치며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지거나 학업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해 학업 동기가 떨어져 학업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공부하느라 힘든 아이, 마음만은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부모님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아이의 학업 스트레스, 어떻게 관리해주면 좋을까요?
박지인 : 공부하는 아이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경청하고, 아이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인지, 조정이 필요한지 고민하시면서 아이와 조율해나가면 좋겠습니다. 부모가 통제하려고 하거나 목표 지향적으로 접근하면 부모 자녀 사이에 갈등이 많아지곤 합니다. 학습량을 줄이지 않고도 정서적인 어려움을 부모에게 나누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되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지나치게 과도한 학습량으로 인해 무기력하고 쉽게 소진되는 번아웃된 아이일 경우에는 적절한 조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학업 외에 본인의 자존감을 채우고 긍정적인 정서를 경험할 수 있는 지속적인 활동과 또래 속에서 자신의 소속감을 찾고 삶의 방향을 함께할 수 있는 주변 환경도 아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자녀의 학습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님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송지혜 : 자녀의 학습 문제에서 자유로운 부모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학습뿐만 아니라 아이의 모든 것에 대하여 걱정하고 고민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아이들에게 너무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 정도에서 우리가 멈출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도 여러분에게도 바랍니다.
*김효원 소아 청소년 정신 건강 의학과 의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수련을 받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었으며, 서울대학교병원 어린이병원에서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 과정을 밟았다. *손승현 정신 건강 의학과 의사. 울산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정신 건강 의학과 전공의, 소아 청소년 정신 건강 의학과 전임의 과정을 밟았다. *양찬모 원광대학교병원 교수. 원광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원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 과정을 밟았다. *이태엽 서울아산병원 교수. 한양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되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소아 청소년 정신 건강 의학과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소아정신과 전문의, 의학박사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및 대학원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정신과 임상 강사로 일한 경력이 있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을 받아 정신 건강 의학과 전문의가 되었으며,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에서 소아 청소년 정신 건강 의학과 전임의 과정을 밟았다. *박지인 정신 건강 의학과 의사.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을 받아 정신 건강 의학과 전문의가 되었으며,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전임의 과정을 밟았다. *송지혜 정신 건강 의학과 의사. 연세대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후 중앙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성균관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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