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발표한 곡부터 신곡을 차곡히 모아 감각적인 셋리스트로 다듬었을 뿐 아니라 미래와 과거 시제를 고루 거느린 검술을 트랙 사이로 날카롭게 휘두른다.
스크릴렉스의 음악은 늘 흐름의 최전선에 위치했다. 광폭한 워블 베이스로 맥시멀리즘 팝의 부서를 설립한 (2010)는 덥스텝 키워드의 국지적 유행과 함께 초창기 EDM 선풍을 이끌었다. 뭄바톤과 트로피컬 하우스 등 새롭게 등장한 분파를 반영하며 팝스타의 상찬을 마련한 대규모 프로젝트 (2015)는 대중화의 모범안을 제시하며 흥행의 고점을 터트렸다. 말 그대로 걸음 하나하나가 반향으로 직결되던 시절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장르 고착화와 전 세계를 덮친 전염병으로 인해 페스티벌 신은 유례 없는 빙하기를 맞이했고 뒤따르던 추종자도 이 기나긴 공백을 견디지 못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EDM이란 단어 역시 이미 진화의 끝자락에 다다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보였다. 이때 그가 갈고 닦은 칼을 꺼내 들었다. 정돈의 미학을 담은 무중력 초대장 'Rumble'을 시작으로 여러 선공개 싱글이 전단지처럼 거리의 벽면을 가득 메웠고, 뒤이어 두 장의 정규 앨범이 하루 간격으로 등장했다. 그 여느 때보다 부활의 조짐을 선명하게 내비치며.
댄스 음악의 존속을 위해 '불을 찾아' 떠난 무사. 그 험난하고 길었던 탐험의 해답이 바로 에 담겨 있다. 과거 발표한 곡부터 신곡을 차곡히 모아 감각적인 셋리스트로 다듬었을 뿐 아니라 미래와 과거 시제를 고루 거느린 검술을 트랙 사이로 날카롭게 휘두른다. 최근 클럽 신에서 다시금 각광받기 시작한 테크 하우스 스타일로 능숙하게 발도하는 'Leave me like this'와, 미스터 오이조의 'Positif'와 미시 엘리엇의 'Work it'을 매쉬업해 한때 위세를 떨친 일렉트로 하우스 장르를 재현한 'Ratata'부터 조짐이 남다르다.
화려한 브로스텝(brostep)이 빗발치던 과 의 중력권을 완전히 벗어났지만 여전히 치밀한 소스 운용과 장르 이해도가 돋보인다. 질감의 대가로 알려진 디제이 포 텟을 초빙한 'Butterflies'는 영롱한 마림바 사운드를 덧입혀 자연의 청명 분위기를 창출한다. 2021년도 본인의 곡을 긴박한 쥬크(juke) 리듬으로 재해석한 'Too bizarre (juked)'은 훌륭한 변용이다. 타악기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전자 음악 아티스트 사프리 듀오나 하곱 차파리안(Hagop Tchaparian)보다도 더욱 진일보된 토속적인 드럼앤베이스를 가져온 'Xena'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강한 잔상을 남긴다. 정교함이 집약된 박자 감각과 사소한 연출 전부 팽팽함의 극치다.
유행을 고려한 팝 친화적 임무는 하루 뒤 발매된 에 일임했기에, 이번 작품은 오로지 그간 쌓아온 믹싱 능력 하나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도가 강하다. 그만큼 공격적이다.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이는 데 어떠한 배경지식이나 이해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음침한 보컬 조각에 그라임(grime)을 조심히 입힌 'Tears'와 트랩 리듬에 간단한 베이스 이펙트만을 부하한 'Supersonic(my existence)'는 단지 중압감 하나만으로 손쉽게 지휘권을 잡는다. 순도 높은 복잡함에서 청적 쾌감을 자아내던 시절과 다르다. 지금의 그는 어떤 부분이 귀를 사로잡는 지점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프레드 어게인, 조커(Joker), 제이미 엑스엑스, 딜런 브래디, 포터 로빈슨 등 오늘날 신을 운반하는 막강한 디제이 참여진과 함께 빚어낸 는 페스티벌 문화와 전자 음악을 위한 새로운 경영 정책과도 같다. 면밀한 탐구로 성공적인 재림을 펼쳤다는 점에서는 언뜻 2020년대의 댄스 부흥을 선포한 비욘세 의 명제를 잇는 작품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시대가 변해도 파티는 계속된다. 적어도 스크릴렉스가 살아있는 한은 그렇다.
Skrillex - Quest For Fire (Ltd)(Colored LP)
Skril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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