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물리를 탐구하는 과학자이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 살아온 정창욱 교수는 과학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며, 우리가 사는 삶, 물질, 그리고 우주에 질문을 던진다. 『만일 물리학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과학 법칙이나 이론을 정확히 몰라도 이해할 수 있게끔 쉽고 가볍게 소개되고 있어, 마치 과학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 것과도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만일 물리학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기본적인 쉬운 물리도 제대로 적용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근래 들어 초미세 양자 세상이나 초거대 우주에만 집중해 물리가 어렵다는 인식, 분위기가 더 생겨난 듯해서 일상적이고 쉬운 물리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시작이 반이듯이, 물리의 절반은 질문과 의심이기 때문에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물리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20년간 국내외 출장을 다니며 식당과 카페, 공원 등에서 만난 분들과 물리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의외로 많은 분이 굉장히 흥미로워했고 적극적으로 질문하기도 했어요. 대화 나눈 내용을 토대로 정리해서 더 많은 분께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심오한 물리가 아니라, 일단 듣고 보면 누구나 재미를 느끼는, 일상과 연결된 쉬운 '물리'라는 새로운 시각을 함께 즐겨준 분들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책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교수님께서 수학이 아닌 과학, 과학 중에도 화학이나 생물학이 아닌 '물리학'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계속해서 탐구하고 책까지 쓰게 한 물리학의 매력을 소개해주세요.
고교 과정에서 화학, 생물학은 외울 게 많았는데 물리는 보다 논리를 기반으로 하기에 좋았습니다. 수학이 더 논리적이긴 하지만 실생활과 더 관련 있는 것은 물리이기에 선택했어요. 사적으로는 얼마 전 타계하신 은사님(포항제철고의 물리 선생님)이 제게 물리를 추천해 주셨어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 가면 풀장 딸린 집에서 살 수 있다고 하셨어요. 어린 시절, 포항에는 수영장이 단 2개뿐이었습니다.
물리학의 가장 큰 매력은 세상을 근본적으로 발전시키는 힘을 지닌 데에 있다고 봅니다.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노벨상을 받은 존 바딘 박사, 입자물리 데이터를 공유하기 위해서 만든 월드와이드웹(www)은 오늘날 인터넷 기반 세상의 출발점이었어요. 고체 물리와 양자 역학 없이는 오늘날의 무선 통신과 스마트폰도 불가능했지요.
흔히들 물리학은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특히 복잡한 과학 분야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리학을 아는 것이 과학자가 아닌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물리학은 소위 말하는 천재들에 의해서 급격히 발전했습니다. 천재들은 난제에 도전하기 좋아하고, 또 난제 제시하기를 즐깁니다. 대중은 이들의 천재성에 경외심을 가지는 동시에 경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물리학자는 세상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의심하는 자세를 전파해야 한다고 봅니다. 질문과 의심하는 것만으로도 진리의 돌파구가 자주 열립니다. 450년 전에 있었다는 한석봉과 어머니의 시합은 질문하고 의심했더라면 제가 아닌 그 누구라도 시합의 불공정성, 과학적 진리를 깨달았을 거예요.(책 속 「물리학자의 시선 1」참고) 질문하는 힘을 키우면, 과학자가 아닌 사람도 세상(물질, 인간관계)의 숨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이 최초의 발견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공명이란 특정 고유 진동수를 지닌 물체가 그와 같은 진동수를 가진 힘을 주기적으로 받을 경우, 진폭과 에너지가 크게 증가하는 현상을 말하며 공감하고 감동하는 것 또한 '공명'의 순간이다(65~71쪽)" 등 일상 곳곳에서 물리적 순간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체감했습니다. 책에 쓰인 주제나 소재 중 우리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신다면요?
서울 경기권에 살거나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분들이 버스를 한 시간 동안 타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버스 운전석 뒤 승객의 좌석은 대략 10, 11개의 줄이 있습니다. 다소 민감한 사람은 운전석 바로 뒤인 첫째 줄 좌석에 앉았을 때와 가운데 좌석 또는 가장 뒷줄 좌석에 앉았을 때 과속 방지턱을 지날 때의 충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지요.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인 대략 넷째 줄 좌석에 앉으면 가장 충격을 적게 받습니다. 또, 등산복이나 가방 지퍼 손잡이에는 끈으로 만든 고리가 달려 있다는 것 눈치채셨나요? 고리를 통해 지퍼의 수명을 늘리고 장갑 낀 손으로도 지퍼를 쉽게 여닫을 수 있도록 하는 물리 원리가 적용된 사례죠. 이렇듯 물리를 알면 내게 이득인 생활 밀착형 지혜도 활용할 수 있답니다.
인공지능과 챗GPT, 딥 페이크 등 과학의 발전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른데요. 『만일 물리학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에도 쓰셨듯, 기술은 양면성을 지니고 과학이 발전할수록 윤리적 문제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즈음 과학자의 태도, 새로운 윤리 정립에 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술 자체에는 눈(판단력)이 없습니다. 신기술은 개발비를 얻기 위해 가장 큰 이익을 추구하는데, 대체로 범죄적 이익이 가장 큰 이익이 됩니다. 재화의 총량은 정해져 있으므로 특정 소수가 큰 이익을 얻으면 대다수는 손해를 보게 되지요. 신기술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도록' 감시하는 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새로운 과학일수록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을 떠올려야 해요.
저는 '새로운 기술에는 반드시 새로운 윤리가 따른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인공지능과 챗GPT, 딥 페이크에 관해서 과학자로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많은 영역에서 진실과 거짓이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뒤섞이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에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힘과 시간이 부족해지기에 믿고 싶은 대로 믿는 현상이 만연해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만일 물리학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을 통해 독자들은 물리학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체험하게 될 것 같아요. 책에서는 사례를 통해 간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셨는데, 인터뷰 자리를 빌려 직접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해주세요.
서양 선진국에서는 정치를 정치가에게만 맡기고 가만히 있지 말라는 말이 당연하게 통용됩니다. 과학을 과학자들에게만 맡기고 가만히 있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연필 뒤에 지우개를 부착하는 것 같은 일은 질문을 던지고, 의심하며, 소망하는 사람 누구나 해낼 수 있는 혁신입니다. 허벅지나 겨드랑이 부분에 통풍용 지퍼를 부착한 기능성 등산복은 불평하고 소망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지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꼭 읽어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많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천재 의사, 천재 판검사, 무림고수 등으로 빙의해 활약을 펼칩니다. 이 책을 통해 물리학자에게 잠시 빙의해 물리학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경험해 보기를 바랍니다. 양자 역학·시공간·블랙홀 같은 어려운 물리를 몰라도 세상이 새롭게 보일 거예요. 아울러 책 읽기가 끝난 이후에도 물리적 제3의 눈이 뜨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나도 활용할 수 있는 기초 물리, 삶의 지혜가 되는 교양 과학을 원하는 모든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슈퍼 리치 중 8,000미터 고산 등정에 도전하는 이들이 있어요. 높은 곳에 올라 세상을 새롭게 보면 새로운 눈이 뜨이고, 새로운 기회를 더 잘 포착하기 쉽기에 도전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쉬운 물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경험이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줄지도 몰라요.
*정창욱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교수이자 기술이전센터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세계 최초로 토포택틱 비휘발성 메모리 특성을 발견해,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특허를 취득했다. 한국물리학회 대중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물리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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