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베트남 육군대위이자 CIA 비밀요원이다. 사이공이 함락당하기 전 미국으로 탈출하지만, 사실 '나'는 북베트남의 고정 간첩이었다. ‘나’는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자이자 이중간첩으로 살아가며 베트남인들을 감시하고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동조자』는 이중간첩인 주인공의 눈을 통해 베트남전 직후의 베트남과 미국 사회의 이면을 전달하는 소설이다. 박찬욱 감독과 돈 맥켈러 감독의 연출로 HBO 드라마로 영상화되어 2024년 공개될 예정이다.
지난 11월, 비엣 타인 응우옌이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은 한국어나 영어로 출판된 도서 중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장편소설을 심사대상으로 매년 수상작을 선정한다. '동조자'는 단순히 베트남 이민자들의 상황을 넘어,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디아스포라의 본질'을 꿰뚫는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역사가 소설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
시카고 트리뷴지는 『동조자』를 두고 “이것이 첫 소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극찬을 했습니다. 교수로 일하면서 쓴 첫 장편 소설이라고요.
사실 늘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저희 가족 중에는 대학 교육을 그 당시에 받았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교수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어요. 하다 보니 교수가 되기는 했지만, 낮에 하는 정규 직업일 뿐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데이잡(day job)'인 거죠. ‘동조자’가 첫 장편 소설이지만 교수로 일하면서 '난민들'이라는 단편을 쓴 적은 있어요.
'난민들'도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가요?
베트남 전쟁 이후 발생한 난민들이 미국 사회에 정착하는 이야기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아요. 난민들이 미국 사회에 들어오면서 살았던 삶과, 또 미국에 살다가 베트남으로 돌아가기도 하는 귀향 과정과 모습을 담기도 했고요.
주로 베트남과 베트남 전쟁에 연관된 작품을 많이 쓰는 편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요. 물론 제가 쓴 이야기에서 대부분 베트남과 베트남 전쟁이 나옵니다. 베트남 전쟁이 저라는 자아를 형성하는 데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 형성적 요소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에도 베트남 전쟁이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기도 했고요. 베트남 전쟁은 발발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미국 건국 과정에서의 식민 지배와 인종 학살이 있었고, 베트남 전쟁 이후에도 아프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 이스라엘 분쟁에서 이스라엘 편에 서는 것까지 다 베트남 전쟁과 아주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 전쟁을 이야기하면 미국 사회 전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거죠.
한국에는 『동조자』와 『헌신자』 두 권이 소개되었습니다. 두 작품에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동조자』는 스파이 소설이에요. 스파이 소설은 재미있게 읽히는 동시에 역사나 정치에 대해서 언급할 수 있는 좋은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동조자』는 베트남 전쟁을 다루면서 전쟁이 한 개인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내는데요. 이 주인공 이야기를 『동조자』에서 끝내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프랑스-베트남 혼혈인 주인공이 자기 뿌리를 찾아 프랑스로 가는 여정을 그린 것이 『헌신자』가 되었죠. 혁명가였던 주인공이 식민 지배를 했던 프랑스, 혁명의 대상이었던 프랑스를 대면하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헌신자』는 범죄 소설인데, 이 역시 재미와 함께 진짜 범죄가 무엇이고 진짜 범인은 누구인지 질문하는 좋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이 마약 밀매를 하거나, 폭행을 저지르면서 범죄자가 되지만, 근원적인 범죄는 왜 일어나는지 질문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식민 지배하면서 마약 조직 범죄를 퍼뜨린 곳은 프랑스잖아요. 그래서 프랑스가 진정한 범죄자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을 썼습니다.
『동조자』와 『헌신자』 모두 역사적 사실이 어느 정도 소설에 녹아 있어요. 사실을 이야기에 넣으면서 염두에 두거나 조심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 역사가 소설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어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서 벗어나 소설을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다른 갈래로 나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동조자』의 주인공은 사상 교육 수용소에 들어가는데, 수용소 자체는 실재했던 공간이에요. 취재도 많이 했고요. 하지만 소설에 나온 수용소는 제 상상입니다. 사람들은 역사적인 사건을 각자 다르게 경험합니다. 동일한 공간이더라도, 주인공이 들어간 공간은 그에게만 있었던 상징적인 공간이 된다고 생각해요.
두 얼굴의 사람
모든 소설가들은 어느 정도 주인공한테 자신을 투영할 텐데요. 미국에서 소수 인종으로서 차별받은 경험도 주인공에게 영향을 끼쳤을까요?
미국 외에도 많은 지역에서 혼혈인이 겪는 인종차별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혼혈인을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물론 주인공이 겪는 여러 가지 차별은 다 제 상상에서 나왔죠. 제가 겪은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많은 혼혈인 당사자 독자들로부터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정확하게 묘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잘못 쓰진 않았다고 보람을 느낍니다.
주인공은 '두 얼굴의 사람'으로 사는 것 같다는 표현을 많이 쓰죠. 이 감각은 혼혈인이든 이민자든, 어떤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일 것 같습니다.
저도 혼혈은 아니지만 베트남계 이주민으로서 미국에서 두 얼굴의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100% 베트남 사람, 순수 베트남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하면서 저를 키우셨거든요. 하지만 저는 미국 사회에서 미국인으로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집에 가면 미국인 스파이가 되어서 베트남 부모님을 염탐하고, 집 밖에서, 미국 사회에서 사는 동안에는 베트남 스파이가 되어서 미국 사회를 염탐하는 양가적인 느낌으로 살았어요. 그 부분이 제 소설의 자전적인 요소인 것 같아요. 난민으로서, 그리고 이민자로서 가질 수 있는 감정을 소설에서 스파이에게 투영했던 거죠.
소설에서 주인공이 ‘무(nothing)’라는 단어를 많이 말합니다. ‘무’, ‘아무것도 없음’이란 어떤 의미였을까요? 혁명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것 같아요.
‘nothing(무)’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부재를 가장 먼저 떠올리죠. 본능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 비어 있는 것을 떠올려요. 그런데 ‘무’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무언가가 될 수 있어요. ‘nothing(무)’ 자체가 하나의 ‘something(어떤 것)’이 되는 거죠. 일종의 역설이에요. 혁명은 늘 혁명의 긍정적인 면, 영웅적인 서사에만 집중하고 그것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데, 사실 혁명은 태생적으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고 끔찍한 면도 있을 수밖에 없어요. 베트남 전쟁과 베트남에서 있었던 혁명이야말로 그런 양면성과 역설을 잘 보여주죠. ‘독립과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호치민의 말이 혁명의 양면성과 역설을 아주 잘 나타내는 인용문이었다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없음’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일종의 공포감이 있어요. 하지만 완전히 무가 되어야 그 안에서 또 다른 새로운 유가 탄생할 수 있잖아요. 그것이 바로 혁명의 과정이고요. 주인공도 무에서 이제는 새로운 유로 가야 하는데, 그 유가 무엇인지는 모르는 거예요. 앞으로의 소설에서는 그것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나올 거예요.
『동조자』 말미에 붙은 칼럼에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상실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660쪽)라는 표현이 있었어요. 작가님이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어떻게 보면 상실의 경험, 죽음의 경험 때문일 거라고도 생각되는데, 상실과 죽음의 경험을 치유하거나 혹은 다르게 바라보는 데 있어서 창작이 도움이 되었나요?
제가 작가로 살고자 하는 근본적 이유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인데요. 그게 작가로서 늘 경험하는 모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창작 과정은 상실과 죽음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기쁜, 환희에 찬 경험이 되기도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 역설을 극복하는 것이 작가로서의 숙명이자 도전이 아닐까요? 상실과 죽음을 통해 아름다운 작품을 써내야 하는 역설도 있고요. 창작이 저에게는 상실과 죽음을 극복하는 투쟁의 무기이자 애도하는 방식이지만, 창작을 치유의 과정이라고 보지는 않는데요. 제 작품 중에는 전쟁과 난민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문제가 일어난 근본적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사라지지 않았어요. 죽음과 상실은 치유 불가능합니다. 치유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픽션인 거죠. 우리 사회가 여전히 상실과 죽음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런 행동과 정책이 나오고 있다면 치유는 요원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도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 혹은 이야기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전쟁과 죽음을 끝내는 방법을 문학이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려고 글을 쓰는 작가들도 있죠. 저 역시 수필이나 논픽션 글쓰기로 그런 일을 시도하기도 하고요. 다만 시나 소설의 역할은 이런 전쟁과 분쟁이 일으키는 고통과 상실, 여러 감정들, 사랑과 기쁨 등이 인류 보편적인 것이고 상대방도 느낄 수 있다는 걸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인간성을 가진 만큼 다른 쪽도 인간성이 있고 인류 보편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상대방의 비인간성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도 비인간성이 있다는 걸 망각하지 않게 해주는 게 문학의 역할이에요.
주인공이 항상 선하지만은 않게 그려지는 것도 방금 말씀하신 이유 때문일까요?
그냥 영웅이나 피해/가해 구도에서 피해자의 서사만 단편적으로 그린다면 재미있는 인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프로파간다, 전쟁 선동에서는 유효한 인물상이 되겠지만, 문학에서는 반대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인간으로서 복잡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지 깊이 파고드는 게 좋은 문학이죠. 제 소설에 등장하는 스파이도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았지만, 동시에 고통을 주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죠. 부조리를 그냥 보고 방관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영역에서는 그렇게 선과 악이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있겠지만, 전쟁에서는 책임을 묻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명령을 내린 주체, 전쟁을 시작한 나라에게 책임을 묻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요?
작가로서 늘 그런 도전에 직면합니다. 분쟁에서는 분명히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어요. 권력을 더 많이 가진 힘센 국가가 있고, 그 국가가 분명 해를 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 정치에서의 이야기죠. 이야기에서는 등장 인물이 내가 가진 관점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는 작가로서 인물에게 공감해야지만 그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어요. 그게 딜레마인데, '동조자'를 쓰면서 어느 정도는 그 딜레마를 극복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책이 나오고 다양한 정치적인 성향을 가진 집단에서 이 소설을 굉장히 불편해 했거든요. 미국 옹호주의자들은 저에게 반미 성향이 있다고 비판했고, 반공주의자들은 저보고 공산주의자라고 했습니다. (웃음) 베트남 정부에서는 저를 반공주의자라고 낙인 찍었고요. 개인으로서 베트남 혁명의 이념은 동조합니다. 베트남이 독립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미국의 개입이나 내정 간섭, 프랑스 식민 지배의 잔재들은 다 제거되어야 한다는 게 제 정치적 입장이에요. 하지만 픽션에서는 등장 인물들이 ― 인간이면 다 그렇듯이 ― 자신이 도덕적으로 올바르다는 신념으로 살아가지 않습니까?
한국과 베트남은 맞닿아 있다
『동조자』는 HBO 드라마화가 결정되었죠. 의도한 바와 다르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으실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그런 불안감은 당연히 있죠. 『동조자』가 영상화된다는 게 굉장한 아이러니라는 것은 절감하고 있고요. 소설에도 비슷한 아이러니가 나오는데, 현실 속에서도 나타난다는 게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주인공이 할리우드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저도 이 소설의 영상화가 필요하다고 인정해요. 소설은 아무리 좋은 작품이어도 수만 명이 읽으면 성공했다고 하는데, TV 시리즈는 수백만 명이 볼 수 있잖아요. 그리고 TV 시리즈가 되었을 때는 제 작품이 아니라 우리의 작품이 됩니다. 박찬욱 감독님을 비롯해 다재다능한 사람이 협업하면서 탄생하게 되겠죠. 물론 그 과정에서 뭔가 어긋나거나 제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저는 협업의 힘을 믿습니다. 소설가가 작품을 쓴다는 것은 굉장히 고독한 작업인데, 제작 과정에 참여하면서 협업의 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써나가실 텐데, 지금 작가님의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들은 어떤 이야기들이 있나요?
의외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요. 내년 4월에 어린이책이 나올 예정입니다. 그 외에는 『동조자』 , 『헌신자』 다음으로 3부작 마지막이 나올 텐데, 미스터리 장르가 될 겁니다. 그 스토리를 구상하느라 머릿속이 꽉 차 있어서 다른 생각은 아직 못 하고 있습니다.
한국 독자들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동조자』와 『헌신자』가 한국 독자들에게 닿았는데, 이 두 소설이 한국 독자들에게도 의미 있게 말을 거는 작품이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한국과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요. 베트남 전쟁에서는 교차점이 되기도 했고요. 역사적으로 좋든 싫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더욱 한국 독자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면 좋겠어요.
*비엣 타인 응우옌 1971년에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사이공이 함락된 1975년에 해상 난민이 되어 미국으로 이주했다. 부모들이 난민 캠프에서 지내는 동안 응우옌은 위탁 가정에 맡겨지기도 했다 고 한다. 그는 전쟁에서 패배한 남베트남 진영에 속한 부모 아래 미국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면서 자랐다. 따라서 전쟁에 승리한 사회주의국가 베트남인의 관점도 아니고, 순수한 서구인의 관점도 아닌 독특한 위치의 시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관점을 장편소설로 구현한 『동조자』로 2016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 외에도 앤드루 카네기메달 문학 부문, 팬 포크너상, 데이턴 문학 평화상, 에드거 어워드 신인 소설상, 아시아/태평양 미국 문학상, 캘리포니아 신인 소설상, 메 디치 북클럽상, 국제 더블린 문학상을 휩쓸었다. 현재는 교수이자 소설가로,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에서 영문학과 미국의 소수민족학을 가르치고 있다. |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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