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유발하는 사회에서 잘 살아남는 법
벅찬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힘겹더라도, 주변과 나 자신에게 따뜻한 다정함을 베풀어줄 수 있는 잠깐의 되돌아봄이 함께하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글 : 출판사 제공 사진 : 출판사 제공
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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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는 어떻게 범죄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다룰까. 지역 스마일센터의 센터장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포함한 트라우마 치료에서 20년간 경력을 쌓아온 전문가들이 PTSD와 그 증상, 치료법을 자세히 다룬 책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을 출간했다. 저자 중 한 명인 배승민 가천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교수를 서면으로 만나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현대 사회에서 잘 살아남는 법에 관해 전해 들었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범죄 피해자들이 앓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관해 여러 유형을 세밀히 다루고 있습니다. PTSD는 진단이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진단 기준을 간단히 소개해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어떤 점이 진단하는 데 난관인지도 궁금합니다. 

PTSD는 1980년에야 미국 정신의학회가 정식 진단명으로 등재한, 비교적 최근에 진단이 가능해진 질환입니다. 이 병은 여느 정신과적 진단과는 달리 아주 독특한 기준을 통과해야만 진단을 시작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실제적이거나 심각한 생명의 위험 또는 그 정도의 위협으로 받아들일 만큼의 심각한 충격적 사건, 심각한 부상, 또는 성폭력’의 경험을 직접 겪었거나, 바로 목격했거나,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서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진단 시작의 기준입니다. 이후 2013년에 이루어진 개정을 통해 ‘직업적으로 외상성 사건의 충격적인 세부 사항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경우’가 기준으로 추가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아동학대 같은 충격적 사건의 세부 사항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경찰관이나 재난 현장에서 피해를 목격하는 소방관 및 응급구조사들도 진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개정과 함께 일어난 큰 변화는 또 있습니다. 과거에는 PTSD가 사회불안장애나 강박증처럼 ‘불안장애’ 중 하나로 분류되었는데, 2013년부터 ‘트라우마 및 스트레스 관련 질환’이라는 독립적인 질환군이 신설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변화는 트라우마 관련 질환이 많아지고 연구가 쌓이면서, 이 진단군의 질환들이 여타 질환과 분명히 구별되는 독특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결과를 반영합니다. 


첫 번째 기준에 해당되는 사건을 겪은 대상자에게 이후 이어지는 진단 과정은, 흔히 플래시백으로 나타나는 사건의 반복적인 재경험인 ‘침습 증상’, 사건과 관련된 생각, 감정, 사람, 장소나 활동을 피하는 ‘회피 증상’, 생각과 감정의 부정적인 변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면이나 집중력, 예민성 등이 달라지는 ‘각성과 반응성의 변화’의 네 가지 주요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되어 일상생활과 중요한 영역에 두드러지는 문제를 일으킬 때입니다.


그런데 이 진단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변화가, 첫 번째 진단 기준인 충격적 사건으로 인해 일어나는 ‘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개인마다, 문화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아직 뇌 발달이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또 성인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따라서 PTSD는 간단한 설문이나 비전문가의 추정으로 가능한 질병이 아니라, 이러한 변화의 가능성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경험 많은 전문가가 진단할 수 있는 질병이라고 봐야 합니다. 


작은 트라우마가 차곡차곡 눈덩이처럼 쌓일 때 

 

트라우마는 빅 트라우마와 스몰 트라우마로 분류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트라우마’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남용되는 경향이 있는데요, 어떤 것은 스몰 트라우마로 분류될 수 있는 반면, 어떤 것은 트라우마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 것은 학자이자 치료자로서 반가운 현상입니다. 다만 과도기적 현상이겠으나 일상을 지나치게 트라우마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것 역시 정상적인 스트레스 관리를 방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합니다. 반대로 “내가 겪은 일이 생명이 위협당할 수준의 사건을 겪은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상황을 간과할 경우, 스몰 t 트라우마가 누적되어 심각한 후유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빅 T 트라우마는 앞서 설명한 DSM 진단 기준에서 PTSD를 유발하는 수준의 사건을 말합니다. 그에 비해 스몰 t 트라우마는 일상에서 반복되거나 누적된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유발되는 것입니다. 이는 신체적인 외상을 동반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존재 가치, 정서적 안정감, 그리고 안전을 해칠 수 있는 경험들입니다. 예를 들어 일회성이 아니라 꽤 오랜 기간 계속된 집단 내 따돌림, 부모나 중요한 타인으로부터 지속적인 비난이나 질책, 평가 절하와 무시받은 경험들이 쌓이면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스몰 t 트라우마의 발생에서 중요한 것은 상당 기간에 걸쳐 경험이 반복되고 누적되었다는 것과 그것이 정서적, 발달학적으로 중요한 타인에 의해 가해졌을 때 그 심리적 흔적이 더 깊게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즉, 빅 T 트라우마나 스몰 t 트라우마는 단일 사건의 특성 면에서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뇌 구조에 변화를 일으킬 정도의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해 일상생활과 적응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 ‘트라우마’로 볼 수 있습니다. 

 

트라우마가 뇌에 변화를 일으켜 생각과 감정의 기준점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보통 사람이 0에서 시작한다면 PTSD를 앓는 이들은 ‘-100’에서 시작하는 식으로요. 만약 트라우마로 뇌의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면, 이것은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주변 사람들은 피해자가 보이는 고통스러운 변화를 안타까워하며, “-100으로 바뀐 눈금을 다시 0 기준으로 맞춰야 한다”고 설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뇌가 충격으로 바뀌게 된 데에는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기준점이 -100으로 바뀌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조심하게 되는 것은, 이전과 같은 일을 겪지 않거나, 겪더라도 충격을 덜 받기 위한 뇌의 동물적인 생존 반응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조건 빨리 0점으로 되돌아가라는 충고보다는, 기준점이 급격하게 바뀐 충격의 의미를 점검하고, 이러한 변화로 얻는 장점과 동시에 놓치고 있는 것들, 스스로 어려움을 초래하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돕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은 무조건 나를 가해할 가능정이 있으니 어떤 이유에서든 피해야 한다”는 피해자의 트라우마로 왜곡된 생각 속에서, 가까운 친구와 가족과의 긍정적인 경험을 쌓지 못함으로써 이러한 관계가 내 삶에 어떠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을지를 살펴보는 것도 회복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회복에 필요한 시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때, 인간의 뇌는 고유한 자연 치유력을 통해 점차 회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 뇌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통해 변화와 적응을 이뤄가며, 충분한 치료와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트라우마로 뒤틀렸던 기준점을 점진적으로 회복할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범죄 피해자들이 품는 분노가 치료를 방해할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분노를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고요. 하지만 분노를 줄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리란 생각이 듭니다. 단순한 억압이나 회피가 아닌 진정으로 분노를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반응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분노나 공포도 원시사회에서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감정 반응입니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지 않는 것, 두려워해야 할 일에 두려움을, 수치스러워야 할 일에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인간답지 못하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간다운 반응이 원시사회가 아닌 현대사회에서 부적절하게 나타나거나, 그 정도가 과하여 일상생활과 건강에 해를 끼칠 정도라면, 이 감정을 좀더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책에서 저를 포함한 저자들이 트라우마로 발생한 심리적 변화를 화재에 비유하여 설명했듯이, 작은 불이라도 전문가가 아니라면 혼자서 수습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많은 피해자가 느끼는 분노는 인간으로서의 자율성을 침해당하거나 타인의 공격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곤 합니다. 그러므로 이 분노가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해할 수 없는 커다란 충격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감정의 파도는 다소 진정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반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회복 속도에 맞춰 치유 과정을 밟아나갈 토대가 마련됩니다.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뇌는 의도적 망각을 일으킨다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면 뇌는 그 기억을 일시적으로 지움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려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PTSD 환자들 가운데서 흔히 있을 것 같은데요. 만약 환자가 트라우마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그 일을 목격한 사람도 없다면 그의 증상은 어떤 식으로 치료할 수 있나요?

최근 제가 접했던 두 가지 사례가 떠오릅니다. 첫 번째는 몇 년 전, 한 여성의 집에 강도가 들어 성폭력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피해 여성은 사건 직후 산부인과 진료를 받은 뒤 시간이 흘러 정기검진을 위해 같은 병원에 다시 방문했는데, 그녀는 과거에 성폭력 사건 때문에 해당 병원에 왔다는 사실뿐 아니라 가족에 의하면 사건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잊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가족들은 환자가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평소처럼 지내는데 굳이 기억을 되살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다며 의사에게 이런 사실을 모르는 척해달라고 부탁했고 의사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또 다른 사건은 몇 년 전 자녀가 성폭력을 겪은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다행히 초기에 사건이 파악되어 치료가 시작됐지만 이후로 어머니와 자녀 사이가 이상하게 나빠졌습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헌신적이었지만, 분명히 아이가 느끼기엔, 그리고 제 관점에서도 어머니의 반응에는 치료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와의 개별 면담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어머니 역시 어린 시절 친족 성폭력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머니가 수십 년간 그 사건 자체를 완전히 잊어버렸는데, 그만 아이의 사건으로 봉인되었던 기억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피하거나 이상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두 사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뇌가 아주 충격적인 사건을 처리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기전으로 사건의 일부 혹은 전체를 무의식에 숨겨 “의식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 뇌 안에 입력된 이상, 그 기억 자체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의식 아래에서 숨죽이고 있을 뿐입니다. 대신 여러 증상으로 그 그림자만이 드러납니다. 기억을 못 한다는 의미는 대개 그 기억을 소화할 만큼 뇌가 회복된 상태가 아님을 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기억을 억지로 떠올리게 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그 기억이 초래한 증상들을 관리하면서, 뇌가 충분히 회복력을 갖춰 기억을 다룰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사법적으로 명백히 기억 회복이 필요한 상황이거나, 전문가의 판단에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치료 경과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된다면 약물 보조 면담(안정제 등을 활용해 기억 회복을 돕는 요법)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이는 특수한 경우에만 전문가에 의해 시행되는 것으로, 일반적인 치료법은 아닙니다. 즉 중요한 것은,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 개인의 필요와 회복 속도에 맞춰 기억이 다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동 청소년 전임의로서, 그리고 해바라기아동센터 소속 전문가로서 다양한 사정을 가진 아이들을 만나보셨을 텐데요. 어린 환자를 대하는 일은 성인 환자를 대하는 일과 어떻게 다르고, 어떤 추가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는지요? 어린아이들은 같은 질환에서도 다른 증상을 호소하는 일이 흔한데, PTSD에서는 어떠한지도 궁금합니다.

아이들의 증상은 각자의 발달 단계나 기질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뇌 발달이 어느 정도 완성된 성인에 비해 그 인식과 표현이 미숙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트라우마 사건을 겪으면, 놀란 보호자분들은 보통 걱정과 불안으로 인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라’ ‘다 들어줄 테니 말해봐라’라고 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것, 특히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대다수 어린아이에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따라서 우선 충분히 시간을 두고 아이가 저와 진료 환경에 익숙해지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면, 마치 말린 꽃차가 따뜻한 물속에서 꽃잎을 피워내듯 증상과 어려움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길, 또는 아이들만의 언어나 몸짓으로 전달되기를 기다립니다. 저도 성격이 급한 편이라 이 과정이 피해 아이의 부모만큼은 아니더라도 참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속도에 맞춰 증상을 표현할 자유와 공간을 준다면 이 회복 과정이 아이에게도 긍정적인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안타깝게도 아동이 겪은 경험의 심각성으로 인해 자해나 자살 등 극단적인 행동이 일어나거나 그럴 위험이 잠재해 있는 사례도 종종 발생합니다. 이때는 응급으로 안전 확보와 개입이 최우선이며, 이후에 천천히 상황을 정리하고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이처럼 긴급 상황에서는 치료의 우선순위가 조정되기도 합니다. 저를 포함해 치료자들도 이 사회 속 한 명의 어른이자 부모로서, 어린아이가 입원 등 응급처치가 필요할 정도로 극심한 증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의 트라우마 치료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치료는 대개 아이 단독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가족과 환경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치료 과정에서는 아이를 둘러싼 환경에도 전반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제는 식상하게까지 들리는 문구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습니다.

 

생존과 기억의 폭력 사이에서

 

국내외로 다양한 트라우마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입니다. PTSD 증상이 뉴스에서도 거론될 만큼 이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반대로 냉소나 공감의 부족으로 인해 개인의 상처가 폄하되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진단하시기에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떻고, 앞으로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트라우마라는 주제가 점점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지금, 우리 사회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희망의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해집니다. 트라우마는 겉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인간의 뇌와 영혼에 지우기 어려운 흔적을 남깁니다. 그리고 이 흔적은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주변에도 스며들듯이 파급됩니다. 그러한 트라우마 사건이 전쟁, 대규모 학살, 혹은 광범위한 재난 등 국가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정도라면 그 범위와 여파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피해와 후유증에 대해 과거에는 잘 이해하지 못해서, 또는 당장의 생존 문제가 우선시되는 환경에서 간과되는 바람에 그 고통과 후유증이 시간을 두고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폭력적으로 축적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 사회가 과거의 역사적 아픔에서 벗어나 경제적 성장에 몰두할 수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어른 세대가 감내했던 고통의 대가를 죄 없는 어린 세대가 고스란히 치르고 있습니다. 


역사와 폭력 속에 남겨진 상처는 노력 없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서로 화가 나고, 의심하며, 미워하는 상황이 흔히 반복되고 있고, 이러한 모습이 아무런 여과 없이 아이들의 눈과 피부로 전달되고 있습니다. 

한편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냉소와 공감의 부족은, 트라우마 후유증 가운데 ‘회피 반응’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고통에 지나치게 분노하거나 반대로 냉소하고 공감하지 않으며 노력하지 않는 태도 역시 트라우마의 후유 증상입니다. 우리 사회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진정한 공감과 이해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오늘날 흔히 듣는 “자신을 위하라”는 조언에 대해 자신과 타인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그저 나‘만’ 위하는 태도로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습니다. 즉 진정한 공감과 이해보다는 “내 것을 하나라도 빼앗기면 큰일난다”는 식의 불안감이 퍼지면서 남의 것마저 빼앗아 생존하려는 절박감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듯합니다. 


범죄 피해자들은 결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인생의 어느 순간 다치거나 병에 걸릴 수 있듯이 누구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트라우마 사건들의 양상이 과거에 비해 다른 방식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점이 전문가로서 우려스럽긴 하지만, 사실 이런 고통은 인간의 역사에서 언제나 존재해왔습니다. 피해자들을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타자화한다고 해서 우리가 안전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트라우마가 지나친 후유증을 남기지 않도록 돕는 것은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도 소화하기 어려운 심각한 문제로 남지 않도록 하는 일이며, 더 나아가 그 고통이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 주변 사회를 잠식시키지 않도록 돕는 일입니다. 이는 열린 자세로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언제든 내밀어줄 수 있는 손, 따뜻한 눈길, 그리고 작은 인사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벅찬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힘겹더라도, 주변과 나 자신에게 따뜻한 다정함을 베풀어줄 수 있는 잠깐의 되돌아봄이 함께하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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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

<배승민>,<백명재>,<유성은>

출판사 |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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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