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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달라져야 하지 않겠어요? 5년 만에 장편 『괴물』낸 작가 이외수

천재성 또는 철저한 냉소에 투신할 용기가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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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밖에 유배된 자들이" 그 안을 향해 뭔가 담보로 내미는 건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아웃사이더라는 아름다운 어휘는 18세기적 의미일 뿐 자신의 삶으로 주장할 만한 공증된 유형은 아니다.

“제도권 밖에 유배된 자들이 그 안을 향해 뭔가 담보로 내미는 건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아웃사이더라는 아름다운 어휘는 18세기적 의미일 뿐 자신의 삶으로 주장할 만한 공증된 유형은 아니다. 천재성 또는 철저한 냉소에 투신할 용기가 없다면 국외자의 당당한 자리가 힘든 이 세대에 그는 1983년 『칼』 이후의 침묵을 소설 하나로 만회했다. 그건 논쟁을 위해 자주 기억된 그가 자랑스러운 아웃사이더라는 하나의 화인이다.” -이충걸의 『해를 등지고 놀다』에서

당시 <보그> 기자였던 이충걸 씨가 『벽오금학도』 출간 후 이루어진 이외수 씨와의 인터뷰 기사 서두이다. 1999년 이충걸 씨는 그를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아웃사이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얼마 전 『황금비늘』 이후 5년 만에 원고지 2,400매 분량의 장편소설 『괴물』을 탈고한 작가 이외수를 보고 이제 누가 아웃사이더라고 말하겠는가.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 `클리셰'가 되어버리고 문학평론가의 권위마저 의심 받는 지금, 이외수는 스스로 우울한 문단을 소외시키며 승자가 되었다. 기십 만의 독자가 그것을 증명하고 무엇보다 혼신의 힘을 모두 모아 작품에 응집시키려는 작가 정신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춘천 교동에 있는 작가의 집, 그 집 2층의 작가의 방. 갑자기 나비 한 마리가 날아 들어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판타지한 공기가 떠도는 그곳에서 작가는 홑이불 위의 푹신한 쿠션에 온 체중을 싣고 소진되어 있다. 작가는 24시간 내내 깨어 있었다 한다. 컬컬한 목소리로 “『괴물』이 다 빨아먹었지” 하며 말하는 모습에도 짙은 피로가 느껴진다.

“쉬운 일이 아니었죠. 제일 진 빠지게 썼어요. 전적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현실 속의 사람은 입어야 하고, 자야 하고, 먹어야 하죠. 소설 속 인물들은 안 그러나? 직장 만들어 줘야지, 성격 만들어 줘야지, 옷 입혀 줘야지, 사랑도 하게 해야지, 사건 해결책도 모색해야지. 50 명을 이끌고 2400 매를 만들려면 엄청나지.”

“나이 육십이 되기 전 대표작 하나 만들겠다”는 각오로 “다시 데뷔하는” 심정으로 썼다고 당당히 말하는 작가는 『괴물』이 “입체적인 기법”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총 81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장별로 화자와 시점이 다르다. 단락과 단락이 이어져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자신만의 히스토리를 만들어가고, 뜻밖의 국면이 나타나는 전개. 그리하여 입체적으로 조망되는 세계. 이러한 소설을 쓰게 된 동기를 물으니 작가는 “이제 달라져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답한다.

“나는 더 이상 구태의연한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구태의연한 소설 읽기를 권하고 싶지 않아요. 쓰는 사람만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에게도 창조성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설명하면 독자의 창조성을 빼앗아버리는 거예요.”

 

집필할 때에는 하루에 한 끼를 먹었지만 탈고 후에는 체력 보강을 위해 두 끼로 늘렸다며 인터뷰 전 작가는 식사를 했다. 24시간 동안 내내 깨어 있던 터에 식음을 했으니 식곤증이 몰려오는 것이 당연하지만, 『괴물』을 얘기할 때에는 자세를 고쳐 앉아 담배를 입에 문다. 샌드페이퍼 같은 그의 피부도 이때만큼은 탄력이 돈다.

그는 스토리 전개가 주가 되는 소설 창작은 도리어 독자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독자의 몫을 남겨두지 않아 독자의 창의력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 그에게 독자는 그가 창조한 세계와 만나는 또 하나의 세계이다. 그래서 한 명 한 명이 다 소중해, 그는 홈페이지에 올린 독자의 글에 감동 받기도 하고, 더러는 화가 나기도 한다. 『괴물』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어두운데 문체까지 어두우면 읽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어 도리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끝까지 읽어도 힘들지 않고 개운한 느낌이 들도록 최종적으로 교정하는 것은 독자를 위한 작가의 배려이다.

“어떤 놈이 자기 자신을 위해 그렇게 뼈빠지게 고생하며 소설 쓰겠어요. 뭔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니까 심혈을 기울인 거”라 하지만, 작가는 이 소설의 메시지는 간단하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악인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당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이 곧 범죄라는 거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삶, 자신만을 위한 삶은 범죄라는 겁니다.”

그러나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 욕망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천하의 기인이라 일컬어지는 이외수 씨도 사람이다. “나도 배고플 땐 먹고 싶고... 생로병사 중에 골라먹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거든. 그럴 수 있는 놈도 없고. 그래서 중요한 것이 욕망이라는 것에 의미 부여를 잘 하는 겁니다. 욕구를 느낀다 해도 어떤 욕구는 제어하고 어떤 욕구는 절제해야 하느냐, 이런 것이 중요하죠.” 작가는 가급적 욕망을 소망으로 전환시키려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 명상을 통해, 작업 자체를 통해. “욕망은 자기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소망은 남이 잘 되길 바라는 것이고... 이 소설은 이기성에 기인한 욕구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바꾸는 것이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고 스스로도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요즘은 온통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하지만, 다음 작품 이야기를 꺼내니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연애 소설과 동화를 쓰고 싶어요. 평생 기억에 남을 수 있는 동화” 걱정되는 것은 건강이다. `전진철'의 영혼이라도 엄습한 것일까. 작가는 『괴물』을 쓰면서 한 쪽 눈이 거의 실명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눈이 걱정이에요. 마지막 눈까지 이 지경이면 큰일나지. 병원에서는 수정체가 파괴되어서 치료가 안 된대. 안구나 각막에 이상이 있으면 고칠 수 있는데, 수정체는 고치지 못한대요.”

그러나 작가는 우울해하지 않는다. 옛날 “내 신세가 지렁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가난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았지만 여기까지 온 그가 아닌가. 육안으로 보이는 조건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삶. 그는 자기의 소설도 육안이나 뇌안으로 보지 말고 심안이나 영안을 뜨고 보아 달라고 부탁한다.

“내가 만든 뽕짝 들어 볼래요?” 작가는 매킨토시 컴퓨터를 가지고 만든 뽕짝을 들려준다. 이어지는 하모니카 이중창. 컴퓨터에 저장해둔 <오빠생각>과 <나뭇잎배>를 하모니카 연주(작가가 직접 연주한 것을 녹음한 것이다)를 틀어, 다시 작가가 간주를 넣는다. “이러면서 놀아요.” 사람들은 육안으로 그의 이러저러한 면모를 보며 기인이라 말하지만, 모든 만물을 자기화시켜 문리에 통달한 그를 보며 어쩌면 그는 정말 도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한 몇 시간.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충만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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