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은희경, 냉소와 위악 대신 맨몸을 드러내다
소설가 은희경이 5년 만에 작품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냈다. 장편소설 『비밀과 거짓말』을 낸 지 2년 만의 신간이다.
200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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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희경이 5년 만에 작품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냈다. 장편소설 『비밀과 거짓말』을 낸 지 2년 만의 신간이다.
홍대 근처 카페에서 만난 은희경은 글에서 느끼는 인상과 많이 달라 보였다.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는 활달한 사람이라고 근거 없이 생각했지만, 깊은 호수 같은 사람이었다. 어쩐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그것이 은희경의 첫인상이었다.
“인터뷰 전날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어제 등산하러 갔다가 술을 많이 마셨어요. 그래서 아직 술이 안 깨서 정신이 없네요.”
“술 세다는 소문이던데요. 주량은 어느 정도인가요?”
“주량은 잘 몰라요.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셔서(웃음).”
2005년에서 2007년 사이에 쓴 단편을 모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독자가 기대하는 ‘은희경표 단편’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위악과 냉소를 걷어내고, 완벽한 갑옷을 덮어 두었던 내면을 바라본다. 쓸쓸하고 초라한 내면이다.
“『상속』 이후 5년 만에 작품집이 나왔습니다.”
“이번 작품은 좀 묵혀 두었다가 낼 생각이었는데 계획대로 되었어요.”
“독자는 책이 나와야 작가가 일을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은희경 작품 참 오래간만이다, 라고 느끼시는 분이 있더군요.”
“그러는 분들이 많죠. 책을 안 내면 작가가 노는 줄 알아요. 작가는 매달 마감이에요. 계간지 마감에 월간지 마감에 틈틈이 기고도 해야 하고… 작가들끼리 약속하면 다들 마감이 겹치잖아요. 그래서 마감 있을 때는 약속을 안 잡아요. 책 안 나와도 작품 준비도 해야 하고 일상에서 처리할 일도 많은데 말이죠.”
“단편 하나 쓰시는 데 어느 정도 걸리나요?”
“보통 3개월에 하나 정도 써요. 한 달은 완전히 집필에 몰두하고요.”
“집필실은 따로 있나요?”
“집에서 써요. 애들이 다 유학 중이라서 집에 남편밖에 없거든요.”
“올해 장편 계획은요?”
“가을부터 장편 연재 들어가요. 1년에서 1년 반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장편 쓸 때는 아예 단편은 안 쓰시는 분도 있는데 은희경 선생님은 어떠세요?”
“요즘은 장편 쓰면서 단편도 집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이 유연해져서요.”
단편집에는 작가가 몇 년 동안 변한 것을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다. 5년 전에 나온 『상속』과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의 간격은 뚜렷하다. 별로 예민하지 못한 독자라도 은희경이라는 작가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나무의 홈과 홈을 꽉 짜 맞추어 집을 지은 듯한 이전의 단편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어딘지 헐겁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하다.
“작품 읽어봤는데 많이 변하신 것 같아요. 예전 단편 분위기와 많이 다르던데요.”
“예전에는 나 혼자 다 잘하려고 애쓰고 너무 깔끔 떨었어요. 근데 지금은 내 어수룩함, 내 모자람을 보여줄 만큼 나이를 먹은 것 같아요. 소설 끝내고 기분이 참 좋았어요.”
“어수룩한 면을 보인다고 해서 소설을 허술하게 쓴다는 뜻은 아닐 텐데요.”
“옛날에는 제가 환상 같은 것은 절대 못 썼어요. 앞뒤가 딱 맞아떨어져야 하고 누구나 그럼직하다고 느낄 만한 리얼리티에 집착했는데. 점점 그런 리얼리티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고독의 발견」 같은 것이 그래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잖아요.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로 쓰지 못했을 거예요.”
“그 작품은 옛날의 <환상특급>이라는 외화 시리즈 느낌이 나더군요.”
“그랬나요?”
“나이를 먹으면서 유연성이나 여유가 생긴 걸까요?”
“편해져요. 예전에는 건축 같은 소설을 써야 직성이 풀렸는데 이제는 그런 견고한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리얼리티의 겉면에 집착하기보다는 내적인 긴밀함이 소설에서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대가는 기승전결에 연연하지 않잖아요.”
은희경의 소설에는 습작 느낌이 나는 작품이 없다. 단편도 그렇지만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만 해도 신인의 풋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그런 완벽함을 추구하던 은희경이 이제는 점점 그 완벽함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소설 세계를 구축했던 그가 나이를 먹은 후 거기서 벗어나려는 점이 신기했다. 대부분 소설가는 그와 반대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도 그렇고 이전 소설도 그렇고 선생님 소설의 화자는 남자가 유난히 많잖아요. 남성 화자가 더 편하신가요?”
“객관적이 되는 것 같아요. 여성 화자가 될 때는 내 시각이 그대로 날것으로 드러날 것 같아요. 그런데 남성일 때는 아무래도 거리 유지가 쉽죠.”
“그런데 글을 쓰는 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요.”
“남을 설득하려면 최대한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관적인 것, 이야기하려는 알맹이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에 거부감이 있어요.”
“그런 필터 없이 마구 써보고 싶다, 그런 충동 같은 걸 느끼신 적 없나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싫었던 것 같은데요. 나는 글에 나 자신이 드러나는 게 싫어요. 그래서 12년 동안 소설 외에 수필집 같은 책을 낸 적이 없어요.”
“정말 그렇네요. 웬만한 작가는 어느 정도 작품을 쓰고 나면 수필집이나 잡문을 엮어서 책을 내곤 하는데요, 굳이 안 내신 이유가 있나요?”
“모범생 기질 때문일 거예요. 항상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을 쓰고… 나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서툴러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먼저 다가서지 못하고 누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지 않으면 절대 친해지지 못해요.”
“앞으로도 수필집은 내지 않으실 생각인가요?”
“아니요. 앞으로는 내고 싶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나이를 먹으니까 자기 자신의 어수룩한 것도 남에게 드러낼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쉽진 않아요. 여전히 모범생 기질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더라고요.”
“이번 소설을 원주의 토지문학관에서 집필하셨는데 그곳은 어떠셨어요?”
“아, 무척 좋았어요. 저는 집필은 주로 집에서 하는데 작품을 처음 구상할 때는 꼭 어디로 떠나야 해요. 작품을 쓴다는 건 완전히 혼자가 되는 건데, 또 외로움이 있잖아요. 그런데 토지문학관에서는 일할 때 완전히 혼자가 돼서 글을 쓰다가 밥을 먹을 때 관심사를 공유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작가에게 이상적인 환경이었어요.”
“문학관에 계실 때 어떤 분들과 함께 있으셨어요?”
“소설가 권지예 씨가 며칠 있다 가셨고, 김선우 씨도 있었어요.”
은희경은 소재를 경험에서 찾는다. 대부분의 소설은 자신이 겪었던 것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의 수록 작품도 그렇다. 아주 조금이라도 자기 경험이 들어가지 않은 작품이 없다.
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황제 다이어트를 하는 와중에 생각났다. 「지도 중독」에 나오는 로키 산맥도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직접 다녀온 곳이다. 곰을 직접 보기도 했단다. 사람들에게 그때 본 곰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무척 좋아해서 작품을 쓰게 되었다. 「날씨와 생활」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나왔다. 「고독의 발견」은 아주 짧은 순간 지나친 광경에서 나왔다.
“몇 년 전에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는데 두 사람이 마주앉을 수 없는 테이블이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무척 키가 작은 여자가 앉아 있는 걸 봤는데 그게 잊히지 않더라고요. 거기서 「고독의 발견」이 시작되었지요.”
“소설을 쓰면서 자료 조사를 열심히 하는 편이세요?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소재가 다이어트인데, 굉장히 자료 조사를 열심히 한 것 같았습니다.”
“소설을 쓸 때는 그 소설과 관계있는 일이라면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 서요. 작품에 푹 빠져서 지내는 편이에요. 그러다가 작품 끝나면 쳐다보기도 싫죠. 한 번 쓴 건 다시 쓰고 싶지 않아요. 이번 소설은 이상하게 자료 조사를 많이 해야 했어요. 「의심을 찬양함」을 쓸 때는 논리학 공부도 했고…”
“선생님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날 때가 많았는데 이번 소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이전 은희경 소설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전면에 등장한 느낌이었어요.”
“안 웃기면서 가볍게 쓰려고 의도했거든요. 그런데 처음엔 아무리 해도 어깨에 힘이 안 빠져서 예전 느낌으로 「날씨와 생활」을 썼어요. 쉽게 써서 그런지 문장이 속도감이 있어요. 그런데 「지도 중독」은 좀 웃기지 않았나요?”
“맞아요. 친구 B가 블로그에 올린 글이요. 재미있었어요. 이번 작품집에서 저는 마지막 작품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이 참 좋았어요.”
“나도 그 작품 좋아해요. 그 작품과 「고독의 발견」 이 두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선생님 소설에는 아픈 사람들, 사회의 주류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항상 많이 나오는데요, 그런 인물에게 특별히 끌리는 이유가 있나요?”
“문학은 소수자의 불행한 사람들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우리 안에도 소수자의 아픔과 비극이 있어요. 나만 보아도 겉으로 보기에는 이만 하면 잘 산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인생을 미분해보면 두려움과 절망을 순간순간 느껴요. 누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의 말에 나온 K는 누구인가요?”
“남편이에요.”
은희경을 독자들에게 알린 출세작은 『새의 선물』이었다. 그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낀 상쾌한 충격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즐겁게 읽었던 소설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새의 선물』은 은희경의 대표작이며 제일 많이 팔린 작품이다. 독자들은 은희경이 계속 『새의 선물』의 세계에 머물러주길 바랐지만 소설을 발표할 때마다 은희경은 성큼성큼 『새의 선물』에서 멀어져 갔다.
“『새의 선물』은 왜 그렇게 인기가 있을까요? 독자 중에서는 선생님 작품 중에 『새의 선물』이 제일 좋다는 분이 많던데요.”
“『새의 선물』은 세상을 보는 태도를 제공했기 때문이에요. 그 이후의 작품은 그 태도로 본 세상이고요.”
“독자 중에서는 『새의 선물』이 제일 ‘은희경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많은데요.”
“내 독자는 대부분 『새의 선물』에서 시작해서 지금에 왔을 거예요. 중간에 멀어진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고요. 소설가로서 나는 계속 넓어지고 있어요. 그러면서 새롭게 은희경을 발견하는 독자도 있겠죠.”
“『비밀과 거짓말』은 굉장히 다른 느낌의 소설이었죠.”
“그 소설을 읽고 작가 이름을 모르고 책을 봤다면 은희경 소설인 줄도 몰랐을 거다, 그런 분도 계셨어요. 지금 『새의 선물』을 읽어 보면 그때의 내가 이것밖에 못 봤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소설가로서 나는 내 소설이 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회에 대해 예언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독자가 따라올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나에게 『새의 선물』은 이미 전 단계의 소설이에요. 나는 내 독자를 다음 단계로 끌고 가고 싶어요. 내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은 재미있게 쓰고 싶어요.”
“그렇지만 항상 독자가 작가의 성장이나 변화에 호의적인 건 아니잖아요.”
“독자가 원하는 걸 작가가 맞출 수 없어요. 어떤 작가도 그렇게 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나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늘 관심이 있어요. 내가 쓴 소설에 대한 반응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런 함수관계를 살펴보는 걸 좋아해요.”
홍대 근처 카페에서 만난 은희경은 글에서 느끼는 인상과 많이 달라 보였다.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는 활달한 사람이라고 근거 없이 생각했지만, 깊은 호수 같은 사람이었다. 어쩐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그것이 은희경의 첫인상이었다.
“인터뷰 전날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어제 등산하러 갔다가 술을 많이 마셨어요. 그래서 아직 술이 안 깨서 정신이 없네요.”
“술 세다는 소문이던데요. 주량은 어느 정도인가요?”
“주량은 잘 몰라요.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셔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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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이후 5년 만에 작품집이 나왔습니다.”
“이번 작품은 좀 묵혀 두었다가 낼 생각이었는데 계획대로 되었어요.”
“독자는 책이 나와야 작가가 일을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은희경 작품 참 오래간만이다, 라고 느끼시는 분이 있더군요.”
“그러는 분들이 많죠. 책을 안 내면 작가가 노는 줄 알아요. 작가는 매달 마감이에요. 계간지 마감에 월간지 마감에 틈틈이 기고도 해야 하고… 작가들끼리 약속하면 다들 마감이 겹치잖아요. 그래서 마감 있을 때는 약속을 안 잡아요. 책 안 나와도 작품 준비도 해야 하고 일상에서 처리할 일도 많은데 말이죠.”
“단편 하나 쓰시는 데 어느 정도 걸리나요?”
“보통 3개월에 하나 정도 써요. 한 달은 완전히 집필에 몰두하고요.”
“집필실은 따로 있나요?”
“집에서 써요. 애들이 다 유학 중이라서 집에 남편밖에 없거든요.”
“올해 장편 계획은요?”
“가을부터 장편 연재 들어가요. 1년에서 1년 반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장편 쓸 때는 아예 단편은 안 쓰시는 분도 있는데 은희경 선생님은 어떠세요?”
“요즘은 장편 쓰면서 단편도 집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이 유연해져서요.”
“작품 읽어봤는데 많이 변하신 것 같아요. 예전 단편 분위기와 많이 다르던데요.”
“예전에는 나 혼자 다 잘하려고 애쓰고 너무 깔끔 떨었어요. 근데 지금은 내 어수룩함, 내 모자람을 보여줄 만큼 나이를 먹은 것 같아요. 소설 끝내고 기분이 참 좋았어요.”
“어수룩한 면을 보인다고 해서 소설을 허술하게 쓴다는 뜻은 아닐 텐데요.”
“옛날에는 제가 환상 같은 것은 절대 못 썼어요. 앞뒤가 딱 맞아떨어져야 하고 누구나 그럼직하다고 느낄 만한 리얼리티에 집착했는데. 점점 그런 리얼리티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고독의 발견」 같은 것이 그래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잖아요.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로 쓰지 못했을 거예요.”
“그 작품은 옛날의 <환상특급>이라는 외화 시리즈 느낌이 나더군요.”
“그랬나요?”
“나이를 먹으면서 유연성이나 여유가 생긴 걸까요?”
“편해져요. 예전에는 건축 같은 소설을 써야 직성이 풀렸는데 이제는 그런 견고한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리얼리티의 겉면에 집착하기보다는 내적인 긴밀함이 소설에서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대가는 기승전결에 연연하지 않잖아요.”
은희경의 소설에는 습작 느낌이 나는 작품이 없다. 단편도 그렇지만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만 해도 신인의 풋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그런 완벽함을 추구하던 은희경이 이제는 점점 그 완벽함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소설 세계를 구축했던 그가 나이를 먹은 후 거기서 벗어나려는 점이 신기했다. 대부분 소설가는 그와 반대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도 그렇고 이전 소설도 그렇고 선생님 소설의 화자는 남자가 유난히 많잖아요. 남성 화자가 더 편하신가요?”
“객관적이 되는 것 같아요. 여성 화자가 될 때는 내 시각이 그대로 날것으로 드러날 것 같아요. 그런데 남성일 때는 아무래도 거리 유지가 쉽죠.”
“그런데 글을 쓰는 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요.”
“남을 설득하려면 최대한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관적인 것, 이야기하려는 알맹이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에 거부감이 있어요.”
“그런 필터 없이 마구 써보고 싶다, 그런 충동 같은 걸 느끼신 적 없나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싫었던 것 같은데요. 나는 글에 나 자신이 드러나는 게 싫어요. 그래서 12년 동안 소설 외에 수필집 같은 책을 낸 적이 없어요.”
“정말 그렇네요. 웬만한 작가는 어느 정도 작품을 쓰고 나면 수필집이나 잡문을 엮어서 책을 내곤 하는데요, 굳이 안 내신 이유가 있나요?”
“모범생 기질 때문일 거예요. 항상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을 쓰고… 나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서툴러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먼저 다가서지 못하고 누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지 않으면 절대 친해지지 못해요.”
“앞으로도 수필집은 내지 않으실 생각인가요?”
“아니요. 앞으로는 내고 싶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나이를 먹으니까 자기 자신의 어수룩한 것도 남에게 드러낼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쉽진 않아요. 여전히 모범생 기질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더라고요.”
“이번 소설을 원주의 토지문학관에서 집필하셨는데 그곳은 어떠셨어요?”
“아, 무척 좋았어요. 저는 집필은 주로 집에서 하는데 작품을 처음 구상할 때는 꼭 어디로 떠나야 해요. 작품을 쓴다는 건 완전히 혼자가 되는 건데, 또 외로움이 있잖아요. 그런데 토지문학관에서는 일할 때 완전히 혼자가 돼서 글을 쓰다가 밥을 먹을 때 관심사를 공유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작가에게 이상적인 환경이었어요.”
“문학관에 계실 때 어떤 분들과 함께 있으셨어요?”
“소설가 권지예 씨가 며칠 있다 가셨고, 김선우 씨도 있었어요.”
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황제 다이어트를 하는 와중에 생각났다. 「지도 중독」에 나오는 로키 산맥도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직접 다녀온 곳이다. 곰을 직접 보기도 했단다. 사람들에게 그때 본 곰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무척 좋아해서 작품을 쓰게 되었다. 「날씨와 생활」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나왔다. 「고독의 발견」은 아주 짧은 순간 지나친 광경에서 나왔다.
“몇 년 전에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는데 두 사람이 마주앉을 수 없는 테이블이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무척 키가 작은 여자가 앉아 있는 걸 봤는데 그게 잊히지 않더라고요. 거기서 「고독의 발견」이 시작되었지요.”
“소설을 쓰면서 자료 조사를 열심히 하는 편이세요?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소재가 다이어트인데, 굉장히 자료 조사를 열심히 한 것 같았습니다.”
“소설을 쓸 때는 그 소설과 관계있는 일이라면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 서요. 작품에 푹 빠져서 지내는 편이에요. 그러다가 작품 끝나면 쳐다보기도 싫죠. 한 번 쓴 건 다시 쓰고 싶지 않아요. 이번 소설은 이상하게 자료 조사를 많이 해야 했어요. 「의심을 찬양함」을 쓸 때는 논리학 공부도 했고…”
“선생님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날 때가 많았는데 이번 소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이전 은희경 소설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이 전면에 등장한 느낌이었어요.”
“안 웃기면서 가볍게 쓰려고 의도했거든요. 그런데 처음엔 아무리 해도 어깨에 힘이 안 빠져서 예전 느낌으로 「날씨와 생활」을 썼어요. 쉽게 써서 그런지 문장이 속도감이 있어요. 그런데 「지도 중독」은 좀 웃기지 않았나요?”
“맞아요. 친구 B가 블로그에 올린 글이요. 재미있었어요. 이번 작품집에서 저는 마지막 작품 「유리 가가린의 푸른 별」이 참 좋았어요.”
“나도 그 작품 좋아해요. 그 작품과 「고독의 발견」 이 두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선생님 소설에는 아픈 사람들, 사회의 주류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항상 많이 나오는데요, 그런 인물에게 특별히 끌리는 이유가 있나요?”
“문학은 소수자의 불행한 사람들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우리 안에도 소수자의 아픔과 비극이 있어요. 나만 보아도 겉으로 보기에는 이만 하면 잘 산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인생을 미분해보면 두려움과 절망을 순간순간 느껴요. 누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의 말에 나온 K는 누구인가요?”
“남편이에요.”
“『새의 선물』은 왜 그렇게 인기가 있을까요? 독자 중에서는 선생님 작품 중에 『새의 선물』이 제일 좋다는 분이 많던데요.”
“『새의 선물』은 세상을 보는 태도를 제공했기 때문이에요. 그 이후의 작품은 그 태도로 본 세상이고요.”
“독자 중에서는 『새의 선물』이 제일 ‘은희경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많은데요.”
“내 독자는 대부분 『새의 선물』에서 시작해서 지금에 왔을 거예요. 중간에 멀어진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고요. 소설가로서 나는 계속 넓어지고 있어요. 그러면서 새롭게 은희경을 발견하는 독자도 있겠죠.”
“그 소설을 읽고 작가 이름을 모르고 책을 봤다면 은희경 소설인 줄도 몰랐을 거다, 그런 분도 계셨어요. 지금 『새의 선물』을 읽어 보면 그때의 내가 이것밖에 못 봤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소설가로서 나는 내 소설이 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사회에 대해 예언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독자가 따라올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나에게 『새의 선물』은 이미 전 단계의 소설이에요. 나는 내 독자를 다음 단계로 끌고 가고 싶어요. 내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은 재미있게 쓰고 싶어요.”
“그렇지만 항상 독자가 작가의 성장이나 변화에 호의적인 건 아니잖아요.”
“독자가 원하는 걸 작가가 맞출 수 없어요. 어떤 작가도 그렇게 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나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늘 관심이 있어요. 내가 쓴 소설에 대한 반응을 통해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런 함수관계를 살펴보는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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