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이 전하는 기축년 새해 덕담 “숨쉬고 있는 지금을 위해 살아라.”
1974년 데뷔한 이래, 『각시탈』『오! 한강』『아스팔트 사나이』『비트』『타짜』『사랑해』『식객』 등 그의 만화는 모든 세대의 사랑을 받았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창작력은 시들지 않았다.
200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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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언제나 멋들어진 사람보다 성실한 사람을 우선시한다. 멋은 짧고 성실함은 길다. 성실함은 너무나 과소평가되고 있다. 멋은 관심을 끌기 위해 겉으로만 노력하는 것이지만 성실함은 마음 밑바닥에서 온다.” 여기서 말하는 ‘성실한 사람’에 만화가 허영만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1974년 데뷔한 이래, 『각시탈』『오! 한강』『아스팔트 사나이』『비트』『타짜』『사랑해』『식객』 등 그의 만화는 모든 세대의 사랑을 받았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창작력은 시들지 않았다. 매번, 독자의 기대를 뛰어넘는 작품을 그려낸다. 단지 재능만으로는 이만큼 오랫동안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진 못했을 것이다. 그는 항상 건강에 신경을 쓴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창작자는 건강해야 한다. 긴 연재를 하기 위해서 체력은 필수다.
오후 다섯 시. 보통 11시간 정도는 그림을 그리든 그리지 않든 책상 앞에 붙어있는 허영만 화백이 작업을 마치는 시간이다. 잠깐 낮잠을 자는 시간과 식사하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책상에 앉아 있는다.
6년 3개월이나 이어진 『식객』 연재, 거기에 『꼴』의 연재까지 더해져 체력적으로 무리를 한 까닭에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날 아침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고 말하고 “관상학에서 말하는 안 좋은 눈이다.”라며 웃었다.
화실에서 허영만 화백이 작업하는 장소는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이었다. 양쪽 벽으로 책상이 두 개 놓여져 있다. “이쪽은 『식객』을 그리는 책상이고, 이쪽은 『꼴』을 그리는 책상이에요.” 그날 작업이 끝난 책상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식객』과 『꼴』을 동시에 연재하셨는데 힘들진 않으셨나요?
일간지 연재를 하니까 매일 규칙적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식객』 하나만 하면 여유가 있는데 『꼴』을 하면서 완전히 용량이 오버되었어요. 기계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을 때 해야지 『식객』이 끝나고 시작하면 김이 빠질 것 같아서요. 무리를 해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독자들의 호응이 좋아서 기운이 납니다.
『식객』 연재가 끝났는데, 완전히 끝난 건지, 연재를 재개하실 건지 궁금합니다.
아직 고민 중입니다. 일단 한 달은 쉬면서 좀 더 생각을 해보려고요. 두 작품을 한꺼번에 연재하면서 무리를 많이 했습니다. 만화 그리는 사람에게 체력은 정말 중요해요. 작가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바로 작품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나이가 들면서 체력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쓰게 됩니다. 일간지에 연재하니까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시는 자리라도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일어섭니다.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되죠. 술은 예전부터 과음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지금까지 쓰러질 정도로 술을 마신 것이 일생을 통틀어 스무 번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관상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누구든지 관심을 가지는 소재로 만화를 그리고 싶었어요.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다들 관상에 관심이 많더군요. 예전에는 풍수에도 관심이 있어서 만화로 그리려고 여기저기 배우러 다녔는데,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묘 자리 잘 써서 자손이 잘 풀렸다’ 식의 이야기밖에 없어서요. 독자들이 재미없어 할 것 같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꼴』을 그리시기 위해 몇 년 동안 관상 공부를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매주 세 시간씩 공부를 하면서 그리는데 꽤 힘이 듭니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내 속에 있는 것이 얼굴로 표출이 될까,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관상 공부를 시작했어요. 완전히 배우고 그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아서 공부하면서 그리고 있어요. 어쩌면 이 편이 독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는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너무 전문적이지 않으면서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관상 공부가 어렵진 않으시던가요.
일단 용어들이 다 한자라서 어려워요. 일반인들이 관상 공부를 할 때 부딪치는 첫 번째 난관이자 가장 큰 걸림돌이 한자 문제죠. 그래서 『꼴』에서는 가급적 한자를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글로 씌어진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좀 어렵네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이게 맞습니까’ 물어보고, 어떨 때는 여러 개를 그려서 ‘어느 것이 맞습니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감수도 받고요. 제대로 그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관상 공부를 하고 나면 자기 관상도 궁금해질 것 같은데요.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궁금했죠. 누구도 자기 미래에 대해선 궁금하잖아요. 제게 비추어보면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그래요. 관상을 배우고 나서 느낀 건데, 사람을 많이 보면 어떤 느낌 같은 게 오잖아요. ‘저 사람은 성격이 어떻겠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겠구나…….’ 그런데 관상을 배우다 보니 그 느낌이 나름대로 맞다는 걸 알았어요. 관상을 봐서 미래를 안다고 해도, 그 미래를 피하기 위해 애를 써도 결국 못 피할 때가 많아요. 책에도 썼지만, 어떤 사람이 아들 상을 봤는데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했어요. 꺼림칙해서 조심을 했는데도 결국 아이를 잃어버렸단 말이에요. 결국, 운명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꼴』을 읽고 관상 봐달라고 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많아요. 직접 사진을 보낸 독자들도 많고…… 주변 사람들도 자꾸 관상을 봐달라고 해요. 그러면 ‘좋으시네요.’ 그러고 말아요. 주변에 얼치기 관상가들이 워낙 많잖아요. 무책임하게 한마디씩 내뱉는데, 그게 듣는 사람에겐 큰 영향을 미친단 말입니다. 그러니 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조심스럽습니다. 남의 상을 봐 주려면 공부도 체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하고, 경험도 쌓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술 먹은 사람 관상은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데서 관상 보지 말고, 내일 죽을 상이 보여도 죽는다는 말을 하지 말고, 돈을 받고 관상을 봐 줘라.’라고 하세요. 옆에서 선생님이 관상 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 모진 말씀을 직접 하지 않으세요.
그런데 개중에는 『꼴』을 읽고 심각하게 관상에 빠지는 분도 계실텐데요.
관상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저 재미로 보는 거지요. 인생이라는 건 몰라서 재미있잖아요? 관상 공부를 하다 보면 인생 공부가 많이 됩니다. 관상이라는 게 과거와 미래를 보고, 그 사람 안에 담긴 것을 보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관상은 굉장히 실용적인 학문이지요. 결국, 관상을 공부하다 보면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알?, 겸손해지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매사에 신중해지고요.
관상을 공부하다 보면 시대에 맞지 않거나 뒤떨어진 부분이 꽤 있어요. 예를 들어, 옛날 사람들은 경쟁하는 걸 천하게 여겼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경쟁하지 않으면 살 수 있나요? 여성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그래서 그런 부분을 보완하고 현대적인 시각에서 관상을 이해할 수 있는, 요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꼴』을 보고, ‘나는 코가 별로라서 인생이 잘 안 풀려, 눈이 안 좋아서 별로야.’ 이렇게 스스로 자가진단을 내리는 분이 많은데요.
그런데 코가 별로면 눈이나 이마가 보완해주고, 눈이 안 좋으면 턱이나 귀가 보완해주고 그래요. 100% 좋은 사람도, 100% 나쁜 사람도 없어요. 상은 어디 하나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뜯어보는 거거든요. 오만 군데를 합쳐서 총점을 내는 거니까 그렇게 나쁜 상은 없어요. 어디가 안 좋아도 비켜갈 수 있는 구석이 또 있거든요. 관상은 확률이에요. 나쁠 확률이 높다는 거지, 100% 그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시대에 따라 좋은 상이 나쁜 상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상이 좋은 상이 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경쟁에서 남을 이겨서 그 위치에 있는 건데, 옛날 관점에서 보면 안 좋은 상이에요. 쉽게 단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깊이 빠지지 말고 재미로 보시고, ‘아, 이런 것도 있구나.’ 정도로 여겨줬으면 좋겠습니다.
『꼴』은 몇 권까지 나올 예정인가요?
지금 세 권까지 나왔는데, 올해 말까지 연재하면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다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0년 동안 만화를 그려오시면서 나름의 원칙 같은 게 있으실 듯한데요.
내가 재미있게 그려야 독자도 재미있게 읽는 것 같습니다. 독자는 정직해요. 작가가 얼마만큼 작품에 공을 들이는지 느낄 수 있어요. 안 보는 듯하면서도 다 보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충 그리면 되지 뭐 그렇게 지독하게 취재하고 조사하느냐고 하는데, 세상의 누군가는 알고 있으니 절대로 게을리할수 없지요. 창작하는 사람의 자존심이기도 하고. 난 책을 낼 때 ‘과연 독자들이 내 만화를 읽어줄까, 재미있다고 해줄까.’ 불안한 심정이 듭니다. 그런 불안이 만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도 나름의 원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할 때는 사람이 송곳처럼 날카로워져서요. 안 그러려고 해도 그렇게 돼요. 그래서 집에 일거리를 가져가면 아내와 아이들이 긴장해요. 그래서 작품에 필요한 자료나 책도 집에서 읽지 않습니다.
만화를 그리실 때는 송곳처럼 날카로워진다고 하셨는데 평소 성격은 어떠신가요?
칼날 같은 성격입니다. 그래서 남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죠. 내 묘비에 ‘나로 인해 상처받은 자들에게 용서를 빈다.’라고 쓰려고 합니다. 그걸로 그들이 받은 상처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남들이 볼 때는 강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성격이 급하고 예민하고 소심한 편이에요. 사소한 일도 며칠씩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잘못한 일들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괴로워합니다. 상처도 쉽게 많이 받아서 마음에 흠집이 많이 났습니다. 비난이나 비평에도 쉽게 상처받아요. 그래서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나 댓글 같은 것은 잘 안 봅니다. 어떤 작품을 보고 자기 생각을 밝히는 것은 독자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작품 밑바탕에 깔려 있는 작가의 성의와 노고에 대해 한번쯤 생각한 후 비판을 하고, 서로 예의를 지킨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성격이 많이 누그러진다고 하던데요.
글쎄요. 그런 것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참 아름다운 쿀이라는 걸 느낍니다. ‘오늘은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라는 말, 참 좋아하는 말입니다. 매일 매일이 새날이고, 첫날이니 얼마나 좋은가요. 그런 걸 젊었을 때는 잘 몰랐어요. 40대 이전의 나를 돌아보면 불확실한 미래에 전전긍긍했고, 아내와 자식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또, 작품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내릴지, 만화를 계속 그릴 수 있는지 너무 불안했어요. 40대가 지나고 나서야 좀 편해졌지요.
선생님이 볼 때 어떤 사람이 강한 사람인 것 같으세요?
삶에 대한 애착은 나이가 들수록 더해지는 것 같아요. 만화가 선배님이 암으로 곧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옆에 있는 친구에게 ‘나 좀 살려 줘.’라고 하시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와도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죠.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 아닐까요.
기축년 새해를 맞이해서 덕담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IMF가 왔을 때 아내와 함께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고생도 해 봤고, 또 누려도 봤으니까 힘든 시절이 와도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 세대는 가난을 경험해 봤으니까 그것이 그렇게 두렵지 않은데, 그때의 신세대들은 한 번도 생의 파도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 막연하게 가난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도 잘 넘기지 않았습니까? 요즘도 그때만큼 힘든 시절이지요. 다들 언제 목이 떨어질지 모르는 단두대에 올라가 있는 심정으로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인생의 고비는 누구에게나 옵니다. 모든 세대가 다 겪어온 어려움을 자신도 겪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어떤 고난도 결국은 끝난다는 희망을 버텨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과거를 되씹지 말고,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말고 숨 쉬고 있는 지금을 위해서 사십시오. 이 지금이 모여 인생이 되는 거니까요.
오후 다섯 시. 보통 11시간 정도는 그림을 그리든 그리지 않든 책상 앞에 붙어있는 허영만 화백이 작업을 마치는 시간이다. 잠깐 낮잠을 자는 시간과 식사하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책상에 앉아 있는다.
6년 3개월이나 이어진 『식객』 연재, 거기에 『꼴』의 연재까지 더해져 체력적으로 무리를 한 까닭에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날 아침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고 말하고 “관상학에서 말하는 안 좋은 눈이다.”라며 웃었다.
화실에서 허영만 화백이 작업하는 장소는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이었다. 양쪽 벽으로 책상이 두 개 놓여져 있다. “이쪽은 『식객』을 그리는 책상이고, 이쪽은 『꼴』을 그리는 책상이에요.” 그날 작업이 끝난 책상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식객』과 『꼴』을 동시에 연재하셨는데 힘들진 않으셨나요?
일간지 연재를 하니까 매일 규칙적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식객』 하나만 하면 여유가 있는데 『꼴』을 하면서 완전히 용량이 오버되었어요. 기계적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을 때 해야지 『식객』이 끝나고 시작하면 김이 빠질 것 같아서요. 무리를 해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독자들의 호응이 좋아서 기운이 납니다.
『식객』 연재가 끝났는데, 완전히 끝난 건지, 연재를 재개하실 건지 궁금합니다.
아직 고민 중입니다. 일단 한 달은 쉬면서 좀 더 생각을 해보려고요. 두 작품을 한꺼번에 연재하면서 무리를 많이 했습니다. 만화 그리는 사람에게 체력은 정말 중요해요. 작가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바로 작품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나이가 들면서 체력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쓰게 됩니다. 일간지에 연재하니까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시는 자리라도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일어섭니다.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되죠. 술은 예전부터 과음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지금까지 쓰러질 정도로 술을 마신 것이 일생을 통틀어 스무 번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관상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누구든지 관심을 가지는 소재로 만화를 그리고 싶었어요.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다들 관상에 관심이 많더군요. 예전에는 풍수에도 관심이 있어서 만화로 그리려고 여기저기 배우러 다녔는데,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묘 자리 잘 써서 자손이 잘 풀렸다’ 식의 이야기밖에 없어서요. 독자들이 재미없어 할 것 같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꼴』을 그리시기 위해 몇 년 동안 관상 공부를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매주 세 시간씩 공부를 하면서 그리는데 꽤 힘이 듭니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내 속에 있는 것이 얼굴로 표출이 될까,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관상 공부를 시작했어요. 완전히 배우고 그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아서 공부하면서 그리고 있어요. 어쩌면 이 편이 독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는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너무 전문적이지 않으면서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단 용어들이 다 한자라서 어려워요. 일반인들이 관상 공부를 할 때 부딪치는 첫 번째 난관이자 가장 큰 걸림돌이 한자 문제죠. 그래서 『꼴』에서는 가급적 한자를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글로 씌어진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좀 어렵네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이게 맞습니까’ 물어보고, 어떨 때는 여러 개를 그려서 ‘어느 것이 맞습니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감수도 받고요. 제대로 그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관상 공부를 하고 나면 자기 관상도 궁금해질 것 같은데요.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궁금했죠. 누구도 자기 미래에 대해선 궁금하잖아요. 제게 비추어보면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그래요. 관상을 배우고 나서 느낀 건데, 사람을 많이 보면 어떤 느낌 같은 게 오잖아요. ‘저 사람은 성격이 어떻겠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겠구나…….’ 그런데 관상을 배우다 보니 그 느낌이 나름대로 맞다는 걸 알았어요. 관상을 봐서 미래를 안다고 해도, 그 미래를 피하기 위해 애를 써도 결국 못 피할 때가 많아요. 책에도 썼지만, 어떤 사람이 아들 상을 봤는데 ‘부모 없는 자식’이라고 했어요. 꺼림칙해서 조심을 했는데도 결국 아이를 잃어버렸단 말이에요. 결국, 운명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꼴』을 읽고 관상 봐달라고 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많아요. 직접 사진을 보낸 독자들도 많고…… 주변 사람들도 자꾸 관상을 봐달라고 해요. 그러면 ‘좋으시네요.’ 그러고 말아요. 주변에 얼치기 관상가들이 워낙 많잖아요. 무책임하게 한마디씩 내뱉는데, 그게 듣는 사람에겐 큰 영향을 미친단 말입니다. 그러니 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조심스럽습니다. 남의 상을 봐 주려면 공부도 체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 하고, 경험도 쌓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술 먹은 사람 관상은 보지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데서 관상 보지 말고, 내일 죽을 상이 보여도 죽는다는 말을 하지 말고, 돈을 받고 관상을 봐 줘라.’라고 하세요. 옆에서 선생님이 관상 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 모진 말씀을 직접 하지 않으세요.
그런데 개중에는 『꼴』을 읽고 심각하게 관상에 빠지는 분도 계실텐데요.
관상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저 재미로 보는 거지요. 인생이라는 건 몰라서 재미있잖아요? 관상 공부를 하다 보면 인생 공부가 많이 됩니다. 관상이라는 게 과거와 미래를 보고, 그 사람 안에 담긴 것을 보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관상은 굉장히 실용적인 학문이지요. 결국, 관상을 공부하다 보면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알?, 겸손해지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매사에 신중해지고요.
관상을 공부하다 보면 시대에 맞지 않거나 뒤떨어진 부분이 꽤 있어요. 예를 들어, 옛날 사람들은 경쟁하는 걸 천하게 여겼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경쟁하지 않으면 살 수 있나요? 여성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그래서 그런 부분을 보완하고 현대적인 시각에서 관상을 이해할 수 있는, 요즘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그런데 코가 별로면 눈이나 이마가 보완해주고, 눈이 안 좋으면 턱이나 귀가 보완해주고 그래요. 100% 좋은 사람도, 100% 나쁜 사람도 없어요. 상은 어디 하나만 보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뜯어보는 거거든요. 오만 군데를 합쳐서 총점을 내는 거니까 그렇게 나쁜 상은 없어요. 어디가 안 좋아도 비켜갈 수 있는 구석이 또 있거든요. 관상은 확률이에요. 나쁠 확률이 높다는 거지, 100% 그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시대에 따라 좋은 상이 나쁜 상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상이 좋은 상이 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경쟁에서 남을 이겨서 그 위치에 있는 건데, 옛날 관점에서 보면 안 좋은 상이에요. 쉽게 단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깊이 빠지지 말고 재미로 보시고, ‘아, 이런 것도 있구나.’ 정도로 여겨줬으면 좋겠습니다.
『꼴』은 몇 권까지 나올 예정인가요?
지금 세 권까지 나왔는데, 올해 말까지 연재하면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다 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0년 동안 만화를 그려오시면서 나름의 원칙 같은 게 있으실 듯한데요.
내가 재미있게 그려야 독자도 재미있게 읽는 것 같습니다. 독자는 정직해요. 작가가 얼마만큼 작품에 공을 들이는지 느낄 수 있어요. 안 보는 듯하면서도 다 보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충 그리면 되지 뭐 그렇게 지독하게 취재하고 조사하느냐고 하는데, 세상의 누군가는 알고 있으니 절대로 게을리할수 없지요. 창작하는 사람의 자존심이기도 하고. 난 책을 낼 때 ‘과연 독자들이 내 만화를 읽어줄까, 재미있다고 해줄까.’ 불안한 심정이 듭니다. 그런 불안이 만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도 나름의 원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일할 때는 사람이 송곳처럼 날카로워져서요. 안 그러려고 해도 그렇게 돼요. 그래서 집에 일거리를 가져가면 아내와 아이들이 긴장해요. 그래서 작품에 필요한 자료나 책도 집에서 읽지 않습니다.
만화를 그리실 때는 송곳처럼 날카로워진다고 하셨는데 평소 성격은 어떠신가요?
칼날 같은 성격입니다. 그래서 남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죠. 내 묘비에 ‘나로 인해 상처받은 자들에게 용서를 빈다.’라고 쓰려고 합니다. 그걸로 그들이 받은 상처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남들이 볼 때는 강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성격이 급하고 예민하고 소심한 편이에요. 사소한 일도 며칠씩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잘못한 일들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괴로워합니다. 상처도 쉽게 많이 받아서 마음에 흠집이 많이 났습니다. 비난이나 비평에도 쉽게 상처받아요. 그래서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나 댓글 같은 것은 잘 안 봅니다. 어떤 작품을 보고 자기 생각을 밝히는 것은 독자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작품 밑바탕에 깔려 있는 작가의 성의와 노고에 대해 한번쯤 생각한 후 비판을 하고, 서로 예의를 지킨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성격이 많이 누그러진다고 하던데요.
글쎄요. 그런 것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참 아름다운 쿀이라는 걸 느낍니다. ‘오늘은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라는 말, 참 좋아하는 말입니다. 매일 매일이 새날이고, 첫날이니 얼마나 좋은가요. 그런 걸 젊었을 때는 잘 몰랐어요. 40대 이전의 나를 돌아보면 불확실한 미래에 전전긍긍했고, 아내와 자식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또, 작품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내릴지, 만화를 계속 그릴 수 있는지 너무 불안했어요. 40대가 지나고 나서야 좀 편해졌지요.
선생님이 볼 때 어떤 사람이 강한 사람인 것 같으세요?
삶에 대한 애착은 나이가 들수록 더해지는 것 같아요. 만화가 선배님이 암으로 곧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 옆에 있는 친구에게 ‘나 좀 살려 줘.’라고 하시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와도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죠.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 담담하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 아닐까요.
기축년 새해를 맞이해서 덕담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IMF가 왔을 때 아내와 함께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는 고생도 해 봤고, 또 누려도 봤으니까 힘든 시절이 와도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 세대는 가난을 경험해 봤으니까 그것이 그렇게 두렵지 않은데, 그때의 신세대들은 한 번도 생의 파도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 막연하게 가난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도 잘 넘기지 않았습니까? 요즘도 그때만큼 힘든 시절이지요. 다들 언제 목이 떨어질지 모르는 단두대에 올라가 있는 심정으로 직장에 다니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인생의 고비는 누구에게나 옵니다. 모든 세대가 다 겪어온 어려움을 자신도 겪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어떤 고난도 결국은 끝난다는 희망을 버텨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과거를 되씹지 말고,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말고 숨 쉬고 있는 지금을 위해서 사십시오. 이 지금이 모여 인생이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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