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탄생 100주년, 오해를 풀고 싶었다 - 이충렬
『간송 전형필』, 『혜곡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로 명실상부 전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충렬 작가가 김환기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펴냈다. 이 책은 현재 고 김향안 여사의 저작권, 초상사용권 등에 관한 문제로 환기재단과 논란을 빚고 있다.
201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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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환기 화백의 삶과 예술을 총체적으로 다룬 전기다. 그동안 김환기 작품의 발전과정과 평가를 다룬 평전은 여러 권 있었지만 그의 삶을 다룬 전기는 김향안이 생전에 쓴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가 유일하다. 이충렬 작가는 김향안이 미완성으로 남긴 전기를 읽은 뒤, 정본 김환기 전기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을 느꼈고, 자료를 조사하기 위해 안좌도 김환기 생가를 방문했고 그의 친구들도 만났다. 이충렬 작가는 일본 유학 시절 친구이자 부산 피난 시절과 뉴욕 시절 상당 부분을 함께한 김병기 화백을 인터뷰했고, 부산 피난 시절 김환기와 같은 집에서 지낸 전 예술원 원장 이준 화백도 만났다.
“김환기는 추상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구상과 반추상도 즐겨 그린 화가입니다. 그의 구상과 반추상에는 한국미의 아름다움이 잘 표현되어 있어 편안함과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특히 김환기는 민족적 정서가 곧 세계적 정서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화가였는데, 그래서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늘 안고 사는 해외동포 입장에서 더 관심이 많이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추상은 한없이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관람자가 곧 화가의 상상력을 공유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이충렬 작가는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집필하면서 유족 및 환기재단 측과 약간의 갈등을 빚었다. 초고를 검토한 환기미술관으로부터 본문 중 네 부분을 삭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이충렬 작가와 출판사 측은 “삭제 요청은 김환기의 삶 일부에 대한 은폐일 뿐만 아니라 작가에게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요청을 거절했다. 현재 환기재단 측은 고 김향안(변동림) 여사의 저작권, 초상사용권 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상태다. 이에 대해 이충렬 작가는 “이번 김환기 전기에서 유족 및 환기재단 측과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독자들이 김환기의 삶을 시대적 상황과 결부해서 이해해주시면, 그의 예술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고 김향안을 김환기의 부인으로만이 아니라 한 인격체로 살려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예술가적 기질이 농후한 소설가였음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김환기에 대한 사랑과 열정적이고도 헌신적인 내조는 김환기 예술을 꽃피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전기 작가는 작가의 삶을 쓰는 사람일 뿐, 작가에 대해 정의하는 미술사학자가 아닙니다. 김환기의 전기를 쓰면서 그에 대해 들었던 생각은 정말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고, 쉬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찾은 대단한 열정가였다는 사실입니다. 안정된 대학교수직을 내던지고 마흔 셋의 나이에 유럽화단에 도전장을 내민 것, 쉰 살의 나이에 뉴욕에 진출한 것 등은 그의 열정과 함께 끝없는 도전정신을 말해줍니다. 이번 책 작업 중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김환기가 집안의 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왜 과부인 김향안과 결혼했을까, 라는 부분이었는데, 이 과정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김향안의 자전적 소설 『정혼』을 찾아내서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이 중요한 이유는 김환기가 이 작품에서 김향안 여사의 ‘모성애’를 발견하면서 자신의 세 딸을 잘 키워주고, 그녀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부분이 있어, 자신의 작가생활을 잘 이해하고 내조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994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충렬 작가는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 『간송 전형필』,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등을 집필하며 여러 신문과 잡지에 소설, 르포, 칼럼 등을 발표하고 있다. 이충렬 작가는 “그동안 문화재수집가, 문화재를 발굴하고 지킨 박물관인, 이번에 화가를 했으니 다음에는 소설가를 쓰고 싶다”며, “이번 김환기 전기를 읽은 독자들이 김환기 화백이 고난과 역경, 우여곡절을 딛고 만들어낸 그림을 보러 환기미술관에 가주신다면 작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환기
화가 김환기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의 화가인가요? 김환기 전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며, 김향안이 미완성으로 남긴 전기와 비교한다면『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어떻게 다른가요?
김환기는 구상, 반추상, 추상의 세계를 모두 그린 대화가입니다. 구상과 반추상에서는 백자와 고가구 그리고 달과 구름, 고향 섬을 통해 한국미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서정적으로 표현했고, 추상에서는 인간의 그리움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광활하고 아득한 우주를 통해 인간의 존재에 대한 철학정 성찰도 보여줬습니다. 한 작가가 이런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준 예는 흔치 않았기에,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서 그의 삶을 조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향안 여사가 쓴 미완성 전기는, 일종의 회상기였습니다. 그래서 철저한 자료조사나 고증없이 자신이 기억하는 이야기와 김환기 화백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공간> 잡지에 단편적으로 연재했습니다. 그래서 그 글은 전기가 가져야할 이야기 구조(스토리텔링)를 갖추지 못했고, 과거나 개인사와 관련한 민감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누락시킨 것이 많습니다. 가족이 쓸 때 나타나는 한계라고 할 수 있고, 그래서 김향안 여사 스스로 ‘미완성 전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전기는 광범위한 자료조사와 검증을 통해 밝혀진 객관적 사실에 기초했고, 발굴한 자료는 포장하거나 감추지 않고 모두 썼습니다. 전기는 그렇게 솔직해야 그 인물을 정확히 조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탄생 100주년
올해는 ‘김환기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로 의미가 깊습니다. 화가 김환기를 자세히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김환기 작가는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어떤 존재인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신다면?
김환기는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화가’로 손꼽히는 화가입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를 화폭에 옮겨 세계 화단에 당당하게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선 백자에서 ‘평범한 위대함’을 발견했고, 그 민족적 아름다움이 곧 세계적 아름다움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그가 프랑스에 간 것은 선진미술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라 유럽의 화가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러 간 것입니다. 그가 세계 미술의 새 메카 뉴욕에 간 것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 ‘조선의 특색’으로 세계 화단과 한 판 승부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김환기 화백은 하나의 작품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추구했던 화가입니다. 만약 그가 환갑 갓 지난 나이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우뚝 섰을 것입니다.
오해
사람들이 김환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은 이들은 김환기가 부유한 환경 속에서 작품활동을 했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속받은 재산을 한국전쟁 전에 모두 썼고, 그 이후 경제적으로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집을 팔아 프랑스에 갔고, 정부의 지원으로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하는 길에 미국에 갔습니다. 그 후 아내 김향안과 자식들을 미국으로 데려올 때도 빚을 냈습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곤궁하게 지냈습니다.
김향안 여사
단순한 동반자가 아니라 김환기 그림의 조언자이자 조력자였던 고 김향안 여사는 작가님께 어떤 인물로 다가왔나요?
고 김향안 작가는 김환기의 영역을 존중하고 침범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나의 자료조사 결과입니다. 그녀는 김환기가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내조했습니다. 한국에 살 때는 친구들에게 그림을 팔았고 생활비가 부족할 때는 쌀을 꾸러 다녔습니다. 프랑스에 살 때는 김환기 담뱃값을 꾸러 다녔고, 미국에서는 김환기가 그림 사기를 당하면서 재료살 돈조차 떨어지자 백화점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한마디 불평 없이 김환기 전처 소생 세 딸을 키웠습니다. 김향안은 김환기의 예술을 위해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포기하고 헌신적으로 내조한 ‘내조의 여왕’입니다. 김향안의 헌신이 김환기 예술을 완성시켰다고 생각합니다.
환기미술관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집필하면서 ‘환기미술관’을 수차례 방문하셨는데 ‘환기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환기미술관은 고 김향안 여사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세계적 규모의 미술관입니다. 김향안 여사는 김환기 사후 20년 동안, 이미 다른 소장가의 손에 들어간 대표작들을 다른 작품과 바꿔서 환기미술관 소장품이 되게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작가의 이름이 들어간 미술관이 많지만, 환기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의 수준은 독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술 애호가들이 더 많이 환기미술관을 방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주, 항아리와 매화, 론도
작가님께서 최고로 꼽는 김환기의 작품은 무엇입니까?
좋은 작품이 너무 많아 딱 한 점만 꼽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 점을 꼽는다면, <우주> <항아리와 매화> <론도>입니다. <우주>에서는 근원적 슬픔이라는 존재론적 명제를 느낄 수 있고, <항아리와 매화>에서는 한국미의 아름다움이 넉넉하게 느껴지고, <론도>에서는 음악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정혼
김환기 화백에 대한 많은 책을 참고하셨는데, 가장 인상깊게 본 책은 무엇입니까?
김향안의 자전적 소설 『정혼』과, 두 사람을 중매한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츠오의 일본 자료였습니다. 노라다케 가츠오 자료는 그동안 두 사람을 중매한 사람이 노천명 시인이었다는 설을 잠재울 ‘결정적 자료’였습니다. 김환기의 생질(큰 누나의 아들, 아이돌 그룹 빅뱅의 탑 외조부)인 서근배 작가가 김환기 사망 후 여성잡지에 발표한 ‘생질이 본 김환기 부부’였습니다. 이 글을 통해 김환기의 부친이 왜 안좌도에 정착했는지, 집안에서 김향안과의 결혼을 얼마나 심하게 반대했는지 그리고 ‘씨받이’ 여인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들을 소상하게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향안의 수필 ‘결연’을 통해서는 양자 입양과정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족
결국 유족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책이 출간되게 되었는데요. 아쉬운 마음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책 출간에 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유족과 환기재단은 작가의 민낯보다는 포장된 모습을 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포장된 모습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그분들은 그분들의 선택을 했고, 나는 일부 내용 삭제요청을 수용하지 않고 작가의 양심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기에 선악은 없습니다. 서로의 선택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유족과 환기재단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저와 출판사가 편집을 몇 번씩 다시 하는 등 고생은 많았지만, 변호사의 조언으로 유족 및 환기재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책은 완성됐습니다. 저는 작가로서 써야 할 것을 썼고, 유족과 환기재단 측은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았습니다.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잔치가 열리는 올해, 제가 쓴 전기나 환기재단 측의 여러 행사들이 김환기를 알리고 빛내는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면 만족합니다.
그림
작가님께서 이국생활의 고단함 속에 조국을 그리워하며 한국 그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셨는데, 왜 하필 그림이었습니까? 그림애호가로서의 누리는 행복감은 어떤 것인가요?
벽에 한 점 두 점 걸리는 한국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조국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볼 때마다 고향산천을 만났습니다. 희양산 봉암사 가는 오솔길을 만났고, 할머니의 다듬이 소리를 만났고, 동해 바다의 출렁임을 만났습니다. 바보같이 소나기를 맞는 호랑이 보며 아이들은 즐거워했습니다. 이것이 그림이 주는 즐거움이고 행복입니다. 이번에 나와서도 작은 소품을 구입했는데 어린 공룡이 구름 위에 엎드려 책을 읽고 있는 나무 조각입니다. 둘째 딸이 아마존 서점에 근무하기 때문에 선물하려고 샀습니다.
전기
이미 여러 차례 다양한 글을 발표하셨지만, 전기는 정말 어려운 작업인데요. 전기의 매력은 무엇이며 전기 작가로서 뿌듯한 점은 무엇입니까.
전기는 한 시대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삶을 사실에 입각해서 써야하기 때문에 자료조사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작업이 ‘보물찾기’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뭐든지 시작을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작업을 해서 책으로 나왔을 때 독자들은 그 인물의 삶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때 그동안 힘들었던 것이 눈 녹듯 녹아내리며 보람을 느낍니다. 이것이 전기의 매력이고, 지난한 자료조사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인 것 같습니다.
-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충렬 저 | 유리창
한국 화단의 3대 블루칩 수화 김환기. 2013년은 김환기 탄생 100주년이다. 한국 추상, 반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수많은 명화를 탄생시킨 김환기의 삶과 예술을 충실하게 복원한 ‘정본’ 김환기 전기가 나왔다. 부분적으로만 알려졌던 김환기의 삶은 물론이고, 그의 예술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꼼꼼한 자료조사와 그를 알고 지낸 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상하게 밝혔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김환기 예술은 물론이고, 어렵게 느끼던 추상미술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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