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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깡통 스프, 알약이 예술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서양미술사 시리즈 세 번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자 진중권의 시선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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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로서의 미, 현상으로서의 미, 미의 체험 등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 백과사전에서 나오는 미학의 정의는 일단 이렇다. 그러나 미학은 비단 예술 분야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현상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고 있다. 남과 다른 시선과 각 분야의 사회현상에 대한 냉철한 비평을 이어가고 있는 진중권의 화법이 현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 그가 본류로 돌아간 것이 바로 ‘서양미술사 시리즈’이다. 미학자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이야기, 그 중에서도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들어봤다.



1917년, 프랑스의 다다이즘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마르셀 뒤샹이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갤러리에서 열린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에 보낸 작품은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샘>이라 이름 붙여진 이 작품은 당시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남성용 소변기였던 것이다. 결국 6달러만 내면 누구나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전시회였음에도 <샘>은 작품으로서 합당치 않다는 이유로 전시가 거부됐다. 하지만 그렇게 기존 미학의 질서를 뒤집으며 탄생한 <샘>은 현대미술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예술의 정의와 미학의 영역까지도 뒤흔들어 놓았다.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뒤샹의 경우와 같이 기존의 질서를 뒤집고 해체시킨, 일종의 저항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진중권 교수는 이러한 모더니즘의 변화를 2차 세계대전 전후로 구분하며 전후 예술계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주요 비평가들의 평론을 중심으로 맥락을 짚어준다. 난해한 현대예술사가 그의 치밀한 분석과 글쓰기를 통해 일종의 교통정리가 된 셈이다. 『서양미술사-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출간을 즈음 해 논객의 입장이 아닌 미학자 진중권 교수와 마주했다.




5년 만에 완간한 서양미술사 시리즈

현재 동양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진중권 교수는 일주일에 3개의 강의를 맡고 있다. 학교까지 2시간 남짓 걸리는 시간을 ‘체력을 보충하는 휴식시간’이라며 편안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일단 5년 간 총 3권으로 서양미술사 시리즈를 완간한 소감이 궁금했다. 헌데, 끝은 끝이되 완간은 아닌 듯하다.

이번 『서양미술사-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2008년부터 시작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시리즈 완결편으로 알고 있는데요. 완간한 소감은 어떠신지요.

처음에는 기획이 간단했어요. 서양미술사 전체를 일괄해서 보여준다기보다 미술사의 코드 중심으로 간단하게 쓸 생각이었고, 그래서 원래 2권 분량으로 기획을 했거든요. 그런데 쓰다 보니 양이 많아져 3권으로 쓰게 된 거죠(웃음). 그런데 그렇게 3권까지 왔음에도 여전히 빈틈이 보이는 거예요. 두 가지 정도가 있어요. 하나는 19세기 말 모더니즘이 탄생할 때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가 중요한데, 그 부분을 통으로 빼버렸어요. 또 하나는 1990년대 이후 지금의 예술이 빠졌죠. 이 부분은 쓰기에 무리가 있거든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비판적 거리를 취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3권을 내 놓고 보니 한 번 다뤄줄 필요는 있겠다 싶더군요. 일단 3권으로 완간을 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넘버링을 안했으니, 보론 비슷하게 중간에 한권, 끝에 한권 씩 좀 얇게나마 보충을 하면 성에 차지 않을까 생각해요.

전후 서양미술인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미니멀리즘, 플럭서스, 팝아트 등으로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짚어주셨는데요. 각각 미술사조에 공통 된 특징은 없을까요.

공통점으로 묶을 수는 없고요. 모더니즘, 그 중에서도 2차 세계대전 전에 클래식한 모더니즘과 구분되는 전후 후기 모더니즘 혹은 2차 모더니즘의 서사를 만들어 낸 것이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에요. 그린버그가 없었으면 사실 미술사의 흐름이 잘 구성이 안 될 정도죠. 2차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굉장히 형식주의적으로 좁게 이야기한 그린버그의 정의에서 벗어나려는 흐름들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모더니즘은 자기 논리가 있었거든요. 평면성을 향해 발전해 나가는 동적인 흐름이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 모더니즘 자체가 그린버그에 의해 너무 형식주의 적으로 규정된 부분이 있었죠. 아방가르드의 측면들이 억압 돼 있었던 거예요. 그것이 1960년대부터 튀어나오기 시작한 거고요. 그러한 움직임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모더니즘이 자기 동력을 가지고 전개되는 측면이기도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 거기에 반발하는 흐름이기도 했어요. 공통점을 찾기보다는 이런 동적인 흐름을 봐야 해요.

그럼에도 크게 봐서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적어도 1960년대 전 후기 탈 회화적 구성까지 모더니즘의 서사는 이어진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미니멀리즘부터 갈라지기 시작하죠. 이때부터 형식주의라기보다 아방가르드의 느낌들, 반 미학적인 느낌들이 강해지거든요. 모든 것이 공통 돼 있다는 논리보단 그런 서사적 흐름을 보는 것이 맞아요. 어렵게 느껴진다면 클레멘트 그린버그를 줄기로 삼고 보면 될 거예요. 또 그 이후는 그린버그의 탕아, 즉 말을 안 듣는 자식들(웃음)의 운동이라고 보면 후기 모더니즘의 맥락이 잡힐 거예요.


사실 ‘서양미술사 시리즈’는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는 난이도가 조금 있는 듯한데, 독자들이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마 그럴 거예요. 사실 이 책은 초보자를 위해서 쓴 책은 아니니까요. 우리나라에 미술사에 관련된 책이 거의 없기도 하고요. 관심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아직까지 곰브리치가 쓴 『서양미술사』를 읽고 있더라고요. 아주 오래된 책이거든요. 현대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기도 하고요. 두 번째로는 미술사를 서술하는 관점 자체가 시대마다 달라지거든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피카소를 높이 쳤지만 요즘에는 뒤샹이잖아요. 서술의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죠. 그나마 괜찮은 것이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요. 굉장히 훌륭한 책인데 다만 연대기로 돼 있어서 맥락을 잡기가 좀 어렵긴 하죠. 제 책은 좀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할 때 보면 될 거예요. 그냥 미술사를 들어가게 되면 너무 방대해서 정신이 없어요.




미학에 대하여

사실 미학은 일반인들에게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진중권 교수 역시 미학적 관점에서 미술사를 짚었지만 그 외 다른 분야에서도 적용되는 미학의 정의는 다양하다. 이에 진 교수는 큰 틀에서 철학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미학을 설명했다. 철학의 ‘진선미’가 있다면 ‘진’은 인식론과 존재론을 다루는 것이고 ‘선’은 윤리학, 마지막으로 ‘미’가 바로 미학이라는 것이다. 광활한 범주의 미학을 모두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 진다.

미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막연한 편인데 예술사에서 미학적 관점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미학은 개별 예술학과는 달라요. 비주얼(visual)이 아니라 콘셉츄얼리(conceptually)거든요. 이전에는 감각적인 쾌감을 줬다면 현대미술부터는 지성적인 쇼크를 준 단 말이죠. 지성의 문제이기에 철학적 미학의 도움이 없이는 미술을 이해하기 힘들어요. 미술사를 한 분들은 철학적 훈련을 거친 분들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다보니 가시적 양식의 변화는 기술할 수 있어도 그 밑에 깔린 철학적 관념들의 변화와 논리전개는 약하죠. 저는 미술사학을 하는 분들에게 꼭 철학공부를 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미학이 사회 각 분야에 적용하는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미학은 이미 영역이 넓어졌어요. 미와 예술에 관한 학문이었다가 최근 20세기 후반부터는 지각론으로 가거든요. 거기다 감각론 일부를 다룰 정도로 넓어졌고요. 사실 미학은 원래 17세기에 감각론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한동안 미와 예술로 좁혀졌다가 다시 옛 지혜를 획득한 거죠. 미학은 모든 사회현상을 설명할 수 있어요. 문화평론도 그 예이고 하다못해 아이폰의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 할 수도 있고요. 아이폰을 통해 영상을 보는 문화, 조그만 스크린으로 보는 문화와 큰 스크린으로 보는 문화 등 여러 가지를 이야기 할 수 있겠죠.

교수님께서는 사회의 각 현상 혹은 대상을 바라보실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시는지 궁금하네요.

글쎄요. 그냥 그 현상을 남과 다르게,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남들이 보지 못한 것, 알아채지 못한 것을 볼 때 철학과 미학의 도움을 많이 받죠. 사실 제가 트위터나 논객으로 활동하는 것과는 큰 연관이 없고요. 다만 에세이를 쓸 때 정도는 관련이 있을 수 있겠죠.

복잡한 사회 현상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미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 좋을 듯 한데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책을 많이 사야해요(웃음). 일단 책을 많이 봐야죠. 그 다음에 읽은 것을 적용을 시켜 설명을 하려 노력해야하고 또 써봐야 해요. 하다못해 블로그 글이라도 쓰고 설명하려 하고 노력하는 게 좋아요. 적용하지 않는 이론은 배우나 마나하죠. 고작 자기 과시 정도 될까요? 실제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거잖아요. 어떤 이론을 배웠다고 하면 ‘넌 그 이론으로 어떤 것을 설명해 냈느냐’ 그렇게 물어야 하거든요. 내가 어떤 책을 한권 읽었다고 하면 그 특정한 현상에 대해 남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글보다 다른 글을 쓰는 노력들이 평소에 연습이 되어야하겠죠. 그런데 요즘 블로그 글들은 너무 천편일률적이에요. 그건 낭비거든요. 뭘 한다고 하더라도 콘텐츠가 다르거나 같은 콘텐츠라도 말하는 방식이 달라야 해요. 이 두 가지를 항상 다르게 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하고 책이나 여러 가지를 참고할 수 있겠죠. 명심할 것은 ‘이론은 도구다. 쓰지 않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것이에요.




직설화법의 대가? 오해와 진실

많은 사회 현상에 대해 혹은 사건에 대해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의견을 이야기하는 진중권 교수이기에 때로는 학자로서가 아닌 비평가, 평론가로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그 덕분에(?) 손해를 많이 보고 있다”며 웃음 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멈출 생각은 없어 보인다. 미디어를 통해 비춰지는 그의 이미지는 어쨌든 극과 극을 호불호가 갈린다. 본인의 생각은 과연 어떨까.

다양한 사회 현안들에 대해 직설화법으로 의견을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로 인해 공격을 받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말을 아끼시지는 않는데요. 개인적인 소신이 궁금합니다.

모든 사람은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이 있어요. 사인이면서도 공인이기도 한 거죠. 예를 들어 경제적인 영역에서는 사인이지만 참정권을 갖고 있고 투표권을 갖고 있으면 국가공동체에 이해에 대해서 발언하고 참여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말을 안 할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라는 것은 참여하지 않으면 위험해지잖아요. 보수든 진보든 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좋다고 봐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참여해야한다’고 했잖아요. 그런 생각으로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고, 인간의 기본조건을 정치성으로 꼽았고요. 저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동의해요. 물론 정치에 참여 안 한다고 해서 인간 이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제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그것을 경제적인 손실로 따지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모습이 대게는 강성이셔서 오해도 적잖이 받으실 것 같은데요?

제 책보고 사람들이 쓴 서평 중에 ‘이런 사람인줄 몰랐다. 맨날 이상한 소리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책을 쓰다니 다시 봤다’는 서평이 많아요. 그런 걸 보면 ‘내가 손해를 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죠(웃음). 또 하나는 언론 보도가 후져요. 나는 풍자하고 패러디를 하는데 정색을 하고 보도를 해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누구처럼 탄핵하거나 성토하거나 심판하는 것은 싫어하거든요. 내가 하는 것은 약간 조롱하고 비웃고 비꼬는 풍자코드, 도덕적 코드라기보다 미학적 코드인데, 기자들은 이 코드 자체를 이해 못하는 것 같아요. 그게 좀 부담스럽죠. 예를 들어 ‘북한에 퍼준 지원이 핵무기가 되어 돌아왔다’는 것을 두고 제가 그걸 비꼬아서 ‘북한에 보내는 삐라에 달러를 넣은 것도 핵무기가 되어 돌아온 거 아니냐’고 하면 그건 농담이잖아요. 그런데 정색을 한다니까요. 웃어야 하는 대목에서 웃지 않는 거죠.

교수님이 소신껏 이야기하신 의견에 대한 평가는 많은데, 정작 교수님 스스로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전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저를 뭐라고 생각하든 신경 안 쓰거든요. 제 정체성에 대해 악평부터 혹평까지 다양한 컬러가 있는데 그 총체가 모두 제가 아닌가 싶어요.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비춰졌다면 나한테 그렇게 비칠만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저를 정말 부당하게 욕한다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미화한다거나 해도 어쨌든 제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인정해줘요. 나만 아는 나의 실체라는 게 과연 사회 속에서 중요한가 싶어요. 어쩌면 대중들이 알고 있는 나의 이미지가 사회적 실체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그것은 그대로 내버려두자는 편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을 알고 싶습니다. 특별한 프로젝트가 또 있을 듯 한데요.

원래는 이 책을 작업하면서 고대부터 짚어내는 미술 비평사를 쓸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사실 본격적인 비평이라는 게 18세기 프랑스에서 발생 했어요. 물론 그 전에는 단편적인 비평들이 있긴 했죠. 저는 그 역사를 쭉 훑어가지고 20세기까지의 미술 비평사를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또 하나는 미학사 정리를 좀 해야 될 것 같아요. 어차피 우리나라에 미학사를 다루고 있는 게 블라디슬로프 타타르키비츠의 책과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정도니까요(웃음). 그래서 미학사를 제대로 다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했어요. 고대부터 중세, 근대, 현대까지 정리하려면 장기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한 10년은 걸릴 것 같아요. 잘 될지 모르겠지만, 그리스어나 라틴어도 배워야 할 거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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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편 진중권 저 | 휴머니스트
이 책에서 우리는 어떻게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문화의, 새로운 사회의 생산자가 될 수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시대 예술과 대중문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현재적 질문에 따라, 과거가 아닌 지금 여기의 예술이 만들어지고 있는 치열한 현장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중문화와 사회 전반에 대해 늘 소신 있는 독설을 서슴지 않는 미학자 진중권의 사회적 책임감과 신념, 그 미학의 총체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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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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