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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 예방 주사 같은 우리의 중2 시절

『검은 하트』 김선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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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니?’ 이 문장을 써 놓고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제 자신에게도 던지는 질문이었던 거죠. 우리 모두는 그 답을 얻기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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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강』, 『열여덟 소울』 등의 작품을 통해 우리 시대 청소년들의 자화상을 대담하고 솔직하게 그려 온 김선희 작가가 3년 만에 새 청소년 소설로 돌아왔다. 『검은 하트』는 중학생 진익이가 북한군보다 강하고 호환마마보다도 무섭다는 사춘기의 정점, 중2 시기를 정면으로 돌파해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열다섯, 보통과 평범을 싫어하고 어른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을 미심쩍어하는 다소 ‘모난’ 나이이자, 숨만 쉬어도 흑역사가 생성되나 그만큼 영혼이 자유로운 나이. 이러한 우리 시대 중2 아이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뜨겁게 아파하며 자라는 현실을 작가와 함께 좀 더 들여다보고자 한다.

 

지난 2013년에 출간된 『더 빨강』 이후 신작 청소년 소설의 출간은 3년만입니다. 그동안의 근황과 신작 출간 소감이 궁금합니다.

 

가장 큰 변화는 시골로 이사를 한 것입니다. 평생을 도시에서, 그것도 반평생을 아파트에서만 살았는데 시골로 이사를 하고 보니 삶의 패러다임이 바뀐 기분이에요. 이사한 지 일 년밖에 안 됐는데도 마치 평생을 시골에서 산 것처럼 이곳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 땅을 밟고 자라는 풀과 나무들을 보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공기 속에서 몸도 마음도 매우 건강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도시에서 썼던 『검은 하트』를 이사 오고 난 뒤 시골에서 마무리했어요. 꽤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는데, 출간이 되고 나니 한 해 풍년 농사를 짓고 나서 곳간이 가득 찬 것처럼 뿌듯합니다.

 

『검은 하트』 는 열다섯 살 진익이와 요정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 ‘중2 아이들’의 현실과 내면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중2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집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이 작품을 쓰기 전과 후, ‘중2병’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있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평소에도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에 관심이 많아요. 열다섯 살은 평생에 걸쳐 가장 뜨거운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 내면에서는 용암처럼 뭔가 들끓고 있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지요. 내가 지금 삶의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는 나이, 더 이상 어린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잖아요. 평생을 통틀어 그 나이만큼 혼란스럽고 또 그만큼 매력적인 나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청소년 소설을 쓰게 된다면 꼭 열다섯 살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어요. 세상에서는 ‘중2병’이라고 희화화시키지만, 중2가 그렇게 단순하고 만만한 학년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혼란과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는 아이를 그려 보고 싶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저도 중2병에 걸린 것처럼 혼란스러웠는데, 주인공 진익이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제 스스로도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듯했어요. 이 책을 쓰면서 ‘중2’ 시절은 누구나 한 번은 맞아야 하는 독감 예방 주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에는 여러 유형의 중2 아이들이 나옵니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용감하고 추진력이 있는 주인공 진익이, 부메랑처럼 돌아온 과거사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는 요정이, 원대한 꿈을 품고 밴드를 만들어 리더로 활약하는 동기…… 그 외에도 밴드 멤버나 학교 친구들 캐릭터 또한 선명하고 친숙하면서도 개성 만점입니다. 인물 구상은 어떻게 하셨는지, 또 이들 중 선생님의 중2 시절이 녹아든 캐릭터 혹은 감정을 많이 이입한 캐릭터가 있다면 알려 주세요.

 

처음부터 캐릭터를 구상해 놓은 것은 아니었어요. 버스에서, 분식집에서,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아이들을 만들어 놓기만 했어요. 전체적인 줄거리만 생각해 놓고 막막해하고 있었는데, 글을 쓰면서 점점 캐릭터들이 생기를 띄기 시작했어요. 언제나 드는 생각이지만 캐릭터들은 작가가 글을 쓰면 자기들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한 일은 별로 없네요.)

 

주요 캐릭터는 진익이와 요정이, 동기인데 진익이는 저하고 비슷한 성격이라 캐릭터를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저도 중2 때는 진익이와 비슷했어요. 잘하는 것도 없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답답했죠. 다른 게 있다면 진익이는 남자이고 저보다는 더 용기가 있는 정도? 요정이는 제가 가장 애착을 갖는 캐릭터인데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가볍고 문제도 많은 친구지만, 누구보다 강한 내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내공을 닮고 싶어요. 동기는 특정 인물이라기보다는 그 또래를 대표하는 캐릭터입니다. 결국 진익이와 요정이와 또래 평범한 친구들의 대결 구도(?)라고 할까요?

 

청소년 소설과 동화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집필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대상 독자가 다르기 때문에 글을 쓸 때 접근하는 방식도 다를 거라고 짐작되는데요. 작업하실 때 차이점이 있는지, 혹은 감정적으로 더욱 이입이 되는 분야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동화를 쓸 때는 아주 즐겁고 경쾌한 기분이지만, 청소년 소설을 쓸 때는 우울하고 불안한 기분입니다. 어린이 독자를 생각하며 동화를 쓸 때는 나도 같이 모험을 하는 기분이에요. 되도록 재미있고 즐거운 일만 일어났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동화를 쓰거든요. 하지만 청소년 소설을 쓸 때는 왠지 화가 나고 분통이 터져요. 그 시기의 저를 생각하면서 쓰니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청소년 소설을 쓸 때가 훨씬 힘들어요. 물론 분량 차이가 나는 이유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대상에게 갖는 기분이 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감정적으로는 청소년 소설 쪽이 더 끌립니다. 하지만 3년 내내 청소년 소설만 썼더니 이제 좀 지쳤어요. 경쾌한 동화를 써서 다시 기분을 업 시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작품 속 모든 장면과 구절들이 마음에 남아 있으시겠지만,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나 구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진익이가 외삼촌과 대화하는 장면은 특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외삼촌은 진익이에게는 일종의 멘토 같은 존재거든요. 현재의 외삼촌은 별 볼 일 없는 백수지만 외삼촌이 꿈꾸는 세계는 멋진 신세계 같은 곳이죠. 외삼촌은 그 신세계로 가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지만, 그런 외삼촌을 보며 진익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이 현실에 더 단단히 발을 딛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런 점에서 진익이가 외삼촌보다는 훨씬 현명한 거죠. 외삼촌이 진익이에게 “넌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니?” 하고 묻는 장면이 있어요. 이 문장을 써 놓고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제 자신에게도 던지는 질문이었던 거죠. 우리 모두는 그 답을 얻기 위해 살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외삼촌도 진익이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도 그 답을 찾기 위해 지금도 어디선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나씩 찾아 지워가면서 마침내 ‘되고 싶은 것’을 찾겠다는 진익이의 결심이 인상적입니다. 진익이를 비롯해 많은 청소년들에게 ‘꿈 찾기’가 중요한 목표이겠지요. 선생님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처음부터 ‘작가’를 꿈꾸셨던 건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찾으라고 강요합니다. 진익이처럼 태어나기도 전에 장래 희망이 부모에 의해 결정돼 버리는 아이도 있을 거예요. 엄밀하게 말해서 장래 희망과 꿈은 다른데도 한사코 장래 희망만을 갖기를 바라죠. 장래 희망은 장차 원하는 직업을 찾는 거고, 꿈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는 장차 어떤 직업을 갖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이고, 지금 현재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성찰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어릴 때 장래 희망도 없었고 꿈도 없었어요. 그냥 좋아하는 책을 읽고 상상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저에게 이런저런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죠. 책을 읽고 사색을 하며 제가 좋아하는 유일한 것이 글쓰기라는 걸 발견했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이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진익이를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사회나 부모 혹은 학교에서 만들어 준 억지 장래 희망을 따라가기보다는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다져서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길인지 스스로 발견해 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세상의 모든 중2 아이들과 부모님,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검은 하트』 외에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나 노래, 영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중학교 때 읽었던 책 중에서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데미안』 입니다. 사춘기 내내 헤르만 헤세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헤르만 헤세의 다른 작품들도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저의 사춘기 시절에 많은 영향을 줬어요. 적어도 사춘기 때는 꼭 『데미안』 을 비롯한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청소년 때 보고 깊은 감동을 받은 영화는 <시벨의 일요일>이라는 작품입니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보게 됐는데 지금까지 제가 본 모든 영화 중에서 단연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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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하트김선희 저 | 라임
이 작품은 열다섯 살 진익이의 삶 전반을 통해 우리 시대 중2 아이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과 내면의 풍경을 생생하게 들여다본다.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고, 꿈 같은 건 고민할 엄두도 못 내겠는데 주위에선 자꾸만 장래 희망을 정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혼돈의 시기를 통통 튀는 캐릭터와 유머러스한 에피소드 속에 절묘하게 녹여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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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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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브르기뇽 감독; 니콜 코셀 출연; 다니엘 이베넬 출연; 미셸 드 레 출연; 하디 크루거 출연;14,000원(15%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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