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건우 “인간이 선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작가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이야기를 써야 독자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마다 잘할 수 있는 게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공포나 호러, 스릴러 같은 이야기를 잘하는 것 같아요.
글ㆍ사진 이수연
2018.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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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 의 서문을 쓴 김봉석 문화평론가는 ‘카리브해 지역 원시 종교인 부두교의 무당이 만들어낸 시체 같은 사람’이 좀비의 시초였다고 말한다. 흡혈귀나 늑대인간은 고대 이전부터 존재했으나 좀비는 20세기 들어 태어난 캐릭터다. 100년이 채 되지 않은 좀비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할 수 있었던 건 ‘이래야 한다’는 큰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소설, 만화 등 좀비를 소재로 한 콘텐츠 속에서 많은 작가가 자신이 원하는 좀비를 보여주었다.

 

좀비 문학 컬렉션 『그것들』 에도 다양한 좀비와 그로 얽힌 관계가 등장한다. 일곱 명의 작가 중 한 명인 정명섭 작가가 나머지 작가를 모으고, 출판사에서는 단편소설과 좀비라는 소재 이외에는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았다. 전건우, 김이환, 한차현, 정해연, 임태운, 인기영, 정명섭 작가는 그들이 탄생시킨 좀비와 주변 인물이 각자의 세계에서 어떻게 관계하는지 그리고 있다.

 

잘못된 사랑과 희생으로 탄생한 좀비를 그린 「부활」, 바이러스 감염으로 좀비가 되었다가 감염에서 깨어난 인간을 그린 「미로」, 좀비가 지배하는 2057년의 도시를 보여주는 「노스트로모호 증후군」, 인간을 위한 과학 실험 때문에 뱃속에서부터 좀비가 된 아기가 태어나 질문을 던지는 「아이」, 지구를 떠나 우주로 이민을 하는 중 우주선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 「백혈(White Blood)」, 사랑에 빠진 좀비를 그린 「28일 전」, DMZ로 넘어온 좀비를 상대로 싸우는 군대의 모습을 그린 「Z : WAR - 검은 새벽」까지 일곱 작품의 좀비도, 그들이 사는 배경도 가지각색이다. 「부활」을 쓴 전건우 작가는 『그것들』을 순서대로 읽기를 권한다. 좀비의 탄생부터 현재, 미래, 우주를 넘나들면서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에 집중하는 등 원래 순서가 있었던 것처럼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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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로 만든 일곱 개의 세계

 

『그것들』  작가 중 한 분인 정명섭 작가가 제안해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제안을 들었을 때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요?

 

일단 좀비 앤솔로지를 한 권의 책으로 내는 기획 자체가 한국에서는 처음이라 흥미를 느꼈어요. 또 장르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좀비를 소재로 꼭 써보고 싶었거든요. 게다가 함께하는 작가님들 이름을 들었는데 제가 좀 묻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작가님도 출간 이후에 작품집을 읽었겠네요.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일단 겹치는 소재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저는 생각하지 못했던 소재를 건드려주는 작가가 있어서 흥미롭기도 했어요. 다른 작가가 이런 걸 쓰니까 피해야 한다는 제약 같은 건 없었어요. 틀에 갇히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힘들잖아요. 그래도 다 다른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처음 『그것들』 을 읽었을 때 다른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특히 흥미로운 작품이 있었을 것 같아요.


모든 작품이 다 저와 다른 부분이 있는 게 흥미로웠어요. 특히 정명섭 작가님의 「Z:WAR - 검은 새벽」은 흔히 사람들 좀비 소설에서 느끼는 재미있는 요소를 다 버무린 것 같았어요. 좀비라는 소재에 군대를 더하고, 교묘하게 한국의 현실을 비틀고 있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안전가옥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범법이라도 저지를 관계를 고민하다가 단편소설 「부활」을 썼다.”라고 하셨어요.


좀비가 나오는 세상에서는 인간이 좀비보다 무서운 경우가 훨씬 많잖아요. <워킹 데드> 같은 작품을 보면 좀비보다는 세상에 던져진 인간의 욕심이나 이기심이 더 무섭게 느껴져요. 소재를 생각할 때 그런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었어요. 좀비라는 소재와 희생이라는 낱말을 묶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떠올렸고, 자식을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하는 캐릭터를 그리게 된 거예요.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소설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언급하세요. 2014년에 채널예스 인터뷰에서도 ‘육아가 가장 큰 관심사’라고 하셨어요.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이 있는데 이야기를 만들 때 아들과 연관된 이야기를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전업 작가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다른 아빠에 비해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거든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소설의 소재로도 많이 쓰게 되고, 아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좀비 이야기를 구상할 때에도 자녀를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는 부모라는 소재를 생각했을 때 아들 생각이 났어요. 그런데 좋은 아빠가 되는 게 좋은 소설가 되기보다 훨씬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웃음) 좋은 소설가는 노력하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좋은 아빠가 되는 건 변수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에 잡지사에 다니며 글을 쓰셨다고요. 첫 번째 장편 이후 전업으로 작가 활동만 하다가 다시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는 글을 보았어요.


맞아요. 왔다 갔다 했는데 지금은 다시 소설만 쓰고 있어요. 글만 써서 먹고 사는 게 힘든 건 쓰고 싶은 것만 쓸 수 없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쓰고 싶은 소설만 쓰면서도 잘 살 수 있을까, 늘 고민해요. 힘든데 그걸 견디면서 쓰게 되는 게 장르 소설의 매력인 것 같아요. 소설 쓰는 일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는 것 같아요.

 

재미라는 건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을 뜻하나요?


그렇죠. 그 즐거움이 감동이든 무서움이든 쾌감이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즐거움을 우선으로 하는 게 장르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순 문학과 장르문학이 나뉘잖아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순문학 이외의 소설이나 문학이 다 장르문학인 것 같아요. 그 안에는 세부적으로 가면 공포, 추리, 로맨스, SF, 스릴러 등이 다양하게 들어가 있고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재미를 우선으로 하는 문학이 장르 문학이 아닐까, 좀 더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해요.

 

소설 쓰는 일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는 건, 어떤 점 때문인가요?


일단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워요.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독자가 울고, 웃고, 놀라고, 짜릿한 쾌감을 얻는다는 게 신기해요.

 

일단 쓰고 있는 이야기에 본인이 먼저 매료되어야겠네요.


그렇죠. 기계적으로 쓰는 것과 내가 이야기에 몰입해서 쓰는 건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초기에는 저도 굉장히 기계적으로 쓴 작품도 있었어요. 청탁이 들어와서 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썼던 작품들인데, 작가로 이력이 쌓인 후부터는 그런 소설이 없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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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이야기를 찾기까지

 

장르 소설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떻게 데뷔하고,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나요?


장르소설은 등단이라는 절차가 따로 없어요. 문학상을 타야 작가가 되는 시스템 같은 게 없고, 예를 들면  『그것들』  같은 지면에 소설을 발표하는 게 먼저인데요. 저의 경우는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왔던 한국공포문학단편선에 글을 발표하면서 등단했어요. 그때 한 공포 문학 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작품집에 소설을 쓸 작가를 모집하던 작가님이 카페에서 글을 읽고, 제안을 주셔서 등단을 하게 된 거예요.

 

2012년에 첫 장편소설  『밤의 이야기꾼들』 이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직장에 다니면서 소설을 쓰신 거군요.


네, 맞습니다. 퇴근하고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쓰고, 출퇴근하는 길에 지하철에서 노트북 펴놓고 쓰기도 하고, 그랬죠. 장편을 연재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어요. 정명섭 작가님은 작가로 데뷔한 초창기부터 잘 알던 분이었어요. 장편 소설을 연재할 만한 작가를 찾고 있다고 하는데 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연락을 해주셨죠. 준비할 시간이 한 달이 채 안 된다는 말을 듣고도 욕심이 났어요. 해보겠다고 하고, 예전부터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죠. 그때쯤 회사 일과 병행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고 한동안 소설만 쓰는 시기가 있었어요. 다행히 연재를 잘 마치고, 장편소설까지 나오게 된 거예요. 운이 참 좋았어요.

 

블로그에서 ‘그런 소설을 왜 쓰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고, 쓰신 걸 봤어요.


아직도 많이 들어요. (웃음) 친척들도 그런 거 말고 좀 더 평범한 이야기, 순한 이야기를 쓰면 주위에 소개해 주기도 좋을 텐데 왜 그런 걸 쓰냐고 이야기해요. 저는 작가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이야기를 써야 독자도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작가마다 잘할 수 있는 게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공포, 스릴러 같은 이야기를 잘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뭔지 아는 것도 대단한 것 같은데요.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저도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단밖에 몰랐어요. 관련 학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어서 혼자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써도 재미가 없는 거예요. 글 쓰는 건 좋은데 소설을 쓰려고 하면 너무 힘들고, 재미가 없었어요. 그러다 공포문학 카페를 발견하고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거예요. 쓰면서 정말 신났어요. 그래. 어릴 때 내가 친구들에게 들려주기 좋아했던 게 미스터리, 추리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였고,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게 이거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소설을 통해서 내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게 즐거움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얼마나 시행착오를 겪었나요?


한 5~6년 걸린 것 같아요. 고민과 공부와 학습 끝에 결국 알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그 시간이 절대 허송세월은 아니었어요. 결국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걸 알게 된 시간이고, 공부를 많이 했던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안전가옥에서 호러 단편 소설 강좌도 하셨어요. 수강하는 분들께 어떤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해주시는지 궁금해요.


수강생분 대부분 작가님이셨어요. 그분들께 글을 어떻게 쓰라는 강의를 하는 건 어불성설인 것 같아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독자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어디인지, 어떻게 기술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것들이요. 영업비밀 같은 거죠. (웃음)

 

하나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생각하기에 독자는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보다 벌어지기 전을 더 좋아해요. 그래서 사건 당시를 장황하게 쓰는 것보다 그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밀하게 묘사하는 게 훨씬 흥미롭더라고요. 예를 들어 공포영화도 괴물이 튀어나왔을 때보다 나오기 전에 모퉁이를 바라보는 게 더 무섭고 짜릿하잖아요.

 


무서운 이야기 속에서 빛을 발하는 선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

 

작가님이 소설을 쓸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독자는 센 이야기에서 오는 자극을 모두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쓰는 사람이 강약조절을 잘해야 독자가 내가 만드는 이야기 세계에 마음 편하게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단편이나 장편이나 이야기가 강만 계속 되면 지치기 마련이니까 강약조절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최근에는 웹 소설도 완결하셨죠. 처음 웹 소설을 쓸 때 지면에 나오는 소설과 문법 자체가 달라서 힘드셨다고요.


둘은 완전히 다른 매체인 것 같아요. 같은 소설이라는 말이 붙지만, 시나리오와 소설의 차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일반 소설은 이야기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잖아요. 이야기와 적절한 묘사, 작가의 생각이 어우러져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데, 웹 소설은 이야기로만 진행이 돼요. 일일 연속극 보는 것과 똑같아요. 막장드라마 안에도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잖아요. 더 자극적이고, 더 많은 이야기가 매일 계속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존 작법으로 쓰면 힘에 부치더라고요.

 

웹 소설도 계속 도전할 생각이세요?


그렇게 하고는 싶은데 아직 효과적인 해법을 찾았다고 보기 힘들어요. 일단 도전하는 마음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지면으로 읽히는 소설을 쓰는 게 저에게 더 맞는 것 같아요.

 

『그것들』 과 비슷한 시기에 세 번째 장편소설이 나왔어요.


고시원에 살던 시절에 썼던 단편 소설을 장편으로 쓰고 싶었어요.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쓰기 시작하니까 신나게 써지더라고요. (웃음) 처음 장편 소설 발표하고 두 번째 소설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이번엔 다행히 1년 만에 나올 수 있었어요. 전업 작가로 살면서 가장 좋은 건 1년에 두 권 정도 장편 소설을 출간하는 것 같아요. 네 번째 장편 소설도 내년 정도에 나올 것 같아요.

 

‘인간애가 느껴지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기본적으로 인간이 선하다고 생각해요. 선함을 위해서라면 다른 것들을 희생할 거라고 믿고 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을 우선적인 가치로 두고, 인류애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것들이 작품에 반영되는 것 같고, 그런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어요.

 


 

 

그것들김이환, 정명섭, 한차현, 전건우, 정해연 저 외 2명 | 에오스
SF, 판타지, 추리 등의 분야에서 참신한 소재와 탄탄한 필력으로 활동해온 작가 7인은 각자 개성 있는 좀비의 모습을 보여주며 색다른 공포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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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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