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남 “인간을 안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인간에 대해서 제가 아는 게 뭐가 있겠어요. 저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게 착각이겠죠.
글ㆍ사진 임나리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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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비슷한 문제가 계속 반복된다고,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는 말한다. 10년 전, 두 권의 책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와  『심리학이 서른살에게 답하다』  로 고민하는 서른들에게 응답했던 저자가 지금도 멈추지 않고 마음의 문제를 말하는 이유다. 이번에는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고 토로하는 이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우울’을 들여다보고 “우울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라고 말한다. 책을 함께 쓴 박종석 정신과 전문의는 많은 직장인들의 심리 상담을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울의 또 다른 모습을 이야기한다.

 

지난 6월 6일, 인터뷰를 위해 김혜남 저자를 찾았다. 마주앉고 나서야 2주 전에 작은 부상이 있었음을 알았다. 그는 20년 가까이 파킨슨병을 잘 다스려 오고 있지만, 그날은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우리는 ‘우울’에 대해 이야기했고 바깥은 비가 내렸다. 하지만 우울하지 않은 분위기가 그곳에 있었다. “우울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니라 생동감”이라는 사실을, 김혜남 저자는 직접 보여줬다. 말 한 마디 전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유머를 잃지 않았고 “다음에는 더 잘 쓸게요”라는 말로 독자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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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참 이해할 수 없는 존재구나

 

정신분석 전문의로 많은 환자들을 만나셨잖아요. 증상과 병명은 다 달라도, 기저에는 항상 우울이 있었을 것 같아요.


모든 문제와 병의 밑바닥에는 항상 우울이 깔려있죠. 그 우울을 어떻게 방어하고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병이 나뉠 수도 있는 거고요. 사실 우울이라는 것은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항상 깔려있으면서도 힘든 감정이거든요. 저는 우울할 수밖에 없을 때 우울하지 못하는 것도 질환이라고 봐요. 누구라도 우울할 수밖에 없을 때 우울을 느끼지 못하는 것, 요즘에는 그게 더 문제죠. ‘나는 울어서는 안 된다, 우울하면 못 쓴다’라는 생각이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더 많은 것 같아요. 우울하면 우울하다고 이야기하고 손을 뻗으면 누구라도 잡아줄 텐데, 혼자서만 끙끙 앓는 거죠. 밖에 나가서는 웃다가 집에서는 이불 속에서 울고... 그런 것들이 더 문제가 될 수 있죠.

 

이번 책에는 우울증뿐만 아니라 상실, 번아웃 증후군, 현실부정, 화병 등 다양한 증상들이 나와요.


우울증의 변형으로 그렇게 표현이 되는 거예요. 옛말에 ‘마음이 울지 못하면 몸이 운다’고 하듯이, 마음이 울지 못하게 억압해 놓으니까 나중에 화병 같은 걸로 발전이 되는 거죠.

 

우울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지 않나요? ‘안 우울한 사람이 어디 있어? 그 정도로 병원을 가?’라고 생각하면서 치료 시기나 기회를 놓치는 거죠.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해요. 그런데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게 무슨 병원에 갈 일이야, 네가 마음만 강하게 먹으면 되지’ 이렇게 말하면서 거절하거든요. 제가 만났던 환자 중에 한 분은,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기를 병원에 좀 데려다 달라고 남편한테 부탁을 했는데 안 데려다줬어요. 그런데 아이 세 명과 같이 자살을 시도했어요. 아이들은 다 죽고 자기는 살아났어요. 그나마 그 남편이 이건 자기 때문에 그런 거고 병 때문에 그런 거라고, 부인을 버리지 않더라고요. ‘사람이라는 게 참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싶더라고요.

 

40년 가까이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사셨는데, 아직도 인간에 대해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세요?


인간에 대해서 제가 아는 게 뭐가 있겠어요. 저 자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게 착각이겠죠.

 

진료실에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의사도 같이 우울해질 것 같아요.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나셨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정말 많아요. 어떤 때는 진료 끝나고 방 안을 뱅뱅 돌아요. ‘세상에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럴 수가’ 하면서요... 그런데 다음 환자가 들어오면 또 일을 해야 되니까... 그냥 삭히는 거죠. 그리고 정신과 의사가 모든 걸 알지는 못해요. 그걸 해결해주려고 달려들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죠. 환자들이 갖고 있는 어떤 것들에 공감해주는 것에서 끝나야지, 그걸 고쳐주려고 하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생각해지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분명히 봐야 돼요.

 

모든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위험한 일이겠네요.


그걸 ‘구원 환상(Rescue Fantasy)’이라고 해요. 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해줄 수 있다는 생각, 그게 위험해요. 제가 슈퍼비전을 할 때 레지던트들이 와서 ‘선생님, 환자 상태가 좋아졌어요’라고 말할 때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좋아져요. 환자가 의사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좋아지거든요. 그러면 제가 ‘올라간 비행기는 떨어지는 법’이라고 말해줘요. 정말 다음에는 환자의 상태가 나빠진 상태로 와요. 그러면 왜 좋아졌고 왜 나빠졌는지 원인을 같이 분석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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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문제는 죽을 때까지 똑같아요


‘물길’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물이 흐르던 길로 계속 흐르려는 속성이 있듯이, 우리 생각도 마찬가지라는 건데요. 우울한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서 계속 부정적으로 평가하잖아요. 이 생각의 물길을 틀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인지치료라는 게 있어요. 자기가 표를 만들어서 ‘어떤 생각을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체크를 하는 거예요. 생각을 바꿔봤을 때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체크해 보고요. 그 연습을 계속 하는 건데요. 예를 들어서 ‘나는 실패자야,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야’라는 식으로 자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을 때 ‘아, 내가 또 이런 생각을 하네’ 알아차리고 표에 적는 거예요. ‘아니야, 이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실수야, 이렇게 했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지는 않아’라고 적는 거죠. 그랬을 때 기분이 어떻게 변했는지, 예를 들면 30점에서 60점으로 바뀌었다든지, 그런 걸 적어보는 거예요. 삽을 들고 물길을 파는 거죠. 처음에는 잘 안 되도 계속 물길을 만들면 생각이 그쪽으로 흐를 테니까요.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심리학이 서른살에게 답하다』  가 출간된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당시의 독자들이 이제 40대가 되었을 텐데, 전하고 싶은 이야기 없으세요?


사실 그 책을 쓰고 유혹을 많이 받았거든요. 나이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 써달라고요. 그런데 저는 다시는 나이에 대해서는 안 쓴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사람의 문제는 나이하고 상관없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똑같거든요. 단지 어떤 발달 단계에 어떤 문제가 두드러지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지, 사람의 문제는 결국 비슷한 게 계속 반복돼요. 지금의 40대에게도 30대와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해주겠죠?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라는 제목의 의미처럼, 어른이 돼도 계속 문제에 부딪히며 사는 건 똑같은 것 같아요.


50대가 되면 뭐가 달라지나요? 제가 60대가 되었는데, 우리 남편이 부부 싸움할 때면 ‘당신이 쓴 책을 읽어 봐, 책에는 그렇게 좋은 말들을 많이 쓰고 현실에서는 왜 못 그래?’라고 해요. 그러면 제가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내가 현실에서 그럴 수 있으면 책을 왜 써?’라고 해요(웃음). 현실에서 그러지 못하니까,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책도 쓰고 읽고 공부도 하고 그러는 거죠.

 

이 책의 제목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분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건 ‘모든 건 과정이고, 견디면 모든 건 지나가게 돼 있고, 그것이 나에게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는 나중에 알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조건 견디고 이겨내라’라는 말을 하는데요. 제일 중요한 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처음 발병 사실을 아셨을 때는, 앞으로의 삶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펼쳐질 거라는 걸 모르셨을 거잖아요.


몰랐죠. 준비가 된 사람은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는데, 준비가 안 된 사람은 기회가 오는 것조차 모르거든요. 그래서 항상 자신을 여러 가지 면에서 준비시켜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취미나 관심이 될 수도 있는데, 저는 인생에 대한 관심과 사람에 대한 관심은 항상 놓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면 뭔가가 보여요. 책에다 썰을 풀어놓을 수도 있고요(웃음).

 

힘든 상황에서도 계속 글을 쓰시는 이유는 뭔가요?


우선은, 재밌어요. 책을 쓰면 1년 정도는 준비를 해요. 공부도 하고 논문도 찾으면서요. 제가 평상시에는 기운 없이 다니다가, 책을 쓸 시기만 되면 눈이 반짝거리고 사람이 달라진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제가 한 작업을 한두 사람만 읽더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처음에 병 때문에 정신분석을 포기할 때는 제가 책을 쓰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한 사람에 대한 정신분석을 포기하고 대중한테 말을 걸기 시작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책을 쓰게 됐죠.

 

정말 열정적인 분이신 것 같아요.


제가 한 열정 하죠(웃음). 지금 이 병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다시 춤을 추기 위해서예요. ‘내가 다시 춤을 추고 만다’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김혜남, 박종석 공저 | 포르체
이제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다양한 감정들, 상대방 때문에 때로는 자기 자신 때문에 마주하게 되는 일상 속 모든 고통과 아픔에 대해 내놓는 처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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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남 작가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인간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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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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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남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 정신병원(현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12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했다. 경희대 의대, 성균관대 의대, 인제대 의대 외래교수이자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김혜남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으로 환자들을 돌보았다. 80만 부 베스트셀러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를 비롯해,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당신과 나 사이》,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 등 10여 권의 책을 펴내 130만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또한 2006년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을 받은 바 있다. 정신분석 전문의로, 두 아이의 엄마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며느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그녀는 마흔 살까지만 해도 ‘내가 잘했으니까 지금의 내가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집이고 병원이고 환자들이고 자신이 없으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한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원망한 적이 더 많았다. 그런데 2001년 마흔세 살에 몸이 점점 굳어 가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나서 병마와 싸우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다 잘해 내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를 닦달하며 인생을 숙제처럼 살아오다 보니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들을 너무 많이 놓쳐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것은 자신이 없는데도 세상이 너무나 멀쩡하게 잘 돌아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들이닥친 불행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무 억울하고, 사람들이 밉고, 세상이 원망스러워 아무것도 못 한 채 한 달 동안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문득 깨달았다. 아직 자신은 죽은 게 아니며 누워 있는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행히 병이 초기 단계라 아직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았다. 그래서 일어났고, 하루를 살았고, 또 다음 날을 살았다. 대신에 해야만 하는 일보다 하고 싶지만 계속 미뤄 둔 일들을 먼저 하기 시작했다. 책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그렇게 22년 동안 병마와 싸우며 진료와 강의를 하고, 두 아이를 키우고, 열 권의 책을 썼다. 사람들은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어떻게 그 일들을 다 할 수 있었느냐고 신기해하지만 그녀는 담담히 말한다. 더 이상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겠다고, 어차피 사는 거 재미있게 살겠다고 마음먹으니까 세상에 새롭고, 신기하고, 감탄할 만한 일들이 참 많았다고. 그래서 몸이 굳어 옆으로 돌아눕는 것조차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고통스러운 때도 있지만 고통과 고통 사이에는 덜 아픈 시간이 있고,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살아온 것뿐이라고. 2014년 1월 병이 악화되어 병원 문을 닫고 나서는 더 이상 환자들을 진료할 수 없게 되었고, 그 사이 크고 작은 수술을 다섯 차례 받으며 죽을 고비도 넘겼지만 그녀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고 말한다. 삶이 힘들고 어렵고 좀체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보여도 어느 때나 즐길 거리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즐길 거리가 다양한 사람일수록 불가피한 불운과 불행 또한 잘 버틸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앞으로 병이 더 악화되어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더라도 그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벌써 마흔이 넘어 버린, 하루하루 잘 버텨 내고 있지만 가끔은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도 딱 하나뿐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