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첫 산문집, 독자와 대화하는 기분”
생각이나 시선이 유연한 사람이 좋아요. 이 유연함은 성정이라기보다 훈련 같고요.
글ㆍ사진 엄지혜
2019.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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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17년만이다. 소설가 김애란이 첫 산문집을 내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라고 묻기 전에 “다행스럽다”는 인사부터 하고 싶었다. 천천히 내주어서 독자로서 참 고맙다고, 작은 일도 눙치지 않고 살피어 보듬어줘서 퍽 반갑다고.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300쪽)기에 쓴  『잊기 좋은 이름』 . 이 산문집은 김애란이 독자에게 건네는 “작은 목례”(135쪽)다.

 

인터뷰를 즐겨 하지 않는 김애란. 여전히 약간의 수줍음이 고여 있지만 그의 말들은 하나같이 특별한 계산없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녹취를 풀다 느꼈다. 김애란의 말에는 뚜렷한 구조가 있다는 사실을. 성량이 크지 않아서 더 집중하고 싶었던, 더 귀 기울이고 싶었던 김애란과 사람, 시간에 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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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없어요

 

2002년 등단 후 첫 산문집이에요. 긴 기간 동안 쓴 글들이 묶였어요.

 

기획 산문집이 아니라서 원고를 꾸릴 때부터 고민이 많았어요. 모은다는 의미보다는 좋은 모양, 새 형식으로 꾸렸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고민을 너무 많이 해서 이제야 냈는데, 많이 반가워해 주셔서 기뻐요. 소설은 아무래도 인물 뒤에 숨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산문집은 독자분들과 직접적으로 대화하는 느낌이에요. “제가 만든 세계를 보세요”하고 보여드리는 게 아니라 마주하고 대화하는 기분이에요. 지난 시절을 묶는 의미도 있지만 독자분들께 선물하는 마음으로 낸 책이에요.

 

홀수 제목을 좋아하시는데 이번엔 짝수 제목이네요.

 

선호는 있지만 정답은 없어요. 제목이든 숫자든 작품 성향이든. 제목은 텍스트 안에서 뽑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바깥의 문장들’이라는 후보도 있었는데, 전작이  『바깥은 여름』 이었으니까 너무 ‘바깥’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새로운 느낌을 드리고 싶어서 『잊기 좋은 이름』 으로 결정했는데요. 선명한 제목은 아닌 것 같아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름’과 ‘여름’의 어감이 비슷해서 두 작품이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평소 책으로 묶을 때, 모든 텍스트를 리타이핑 하시잖아요. 이번에도 하셨나요?

 

전부 다 했어요.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썼던 원고 중에 30%는 버린 것 같은데요. 너무 과하게 멋을 부린 문장이나 시의성이 떨어지는 글, 너무 낡은 느낌의 글, 분량 때문에 너무 금방 결론에 착지해버린 듯한 느낌의 글은 뺐어요. 공부가 부족한 상태에서 썼던 리뷰, 편집의 품이 많이 들 것 같은 리뷰도 뺐고요.

 

각각의 글을 쓴 시기(연도)도 표기하셨어요.

 

굳이 연도를 넣은 건, 어떤 시기에 썼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서예요. 자취방 이야기도 있는데 지금 저는 방에 살지 않잖아요. 저를 아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고 모르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요. 연도가 생략되면, 어떤 면에서 제가 약자의 자리에 앉아버린 게 아닌가? 그 자리에서 나올 수 있는 목소리의 일부를 차지해버리는 게 되지 않을까? 걱정됐어요. 그래서 ‘이 시기에 쓴 글’이라는 표식을 넣었어요.

 

어떤 글은 너무나 또렷하게 장면이 그려져서 반가웠어요.

 

산문이지만 플롯이 있고요. 거짓말은 없어요. (웃음)

 

얼마 전 ‘소설의 자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셨더라고요. 독자들을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신 걸로 알아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결정하곤 하는데요. 가본적이 없는 곳에서 요청하시면 되도록 참여하려고 해요. 요즘 도서관 사서 분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애정이 많으시더라고요. 작가를 보고 싶어하는 독자 분들의 욕구도 큰 것 같고요. 평소 뵙기 어려우니까요. 저도 인사하는 마음으로 찾아 뵀어요.

 

리뷰는 가끔 찾아보세요?

 

그럼요. 책이 나오면 당연히 찾아 봐요. 인터넷서점에 달린 리뷰는 꼭 챙겨 보려고 하고요.

 

작가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준 듯한 리뷰를 보면, 독자 입장에서도 무척 반가워요.

 

책이라는 형태로 글이 묶이면 완성도와 상관없이 불안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거리감이 안 생기는데요.

독자들의 리뷰를 보면 용기도 나도 감사하기도 하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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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함은 성정이라기보다 훈련

 

1부 제목이 ‘나를 부른 이름’이에요. 어린 시절, 부모님 이야기가 많은데 특히 어머니에 관한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실제로 어머니가 제 글에 많은 영향을 주셨어요. 제가 이제 곧 마흔인데요. 독립 전의 삶과 독립 후의 삶이 햇수로 딱 반으로 나눠져요. 성인이 된 후 독립했고, 독립 후에는 바깥 세계로부터 받은 자극들로 저를 만들어왔을 텐데요. 그것이 저의 몸 상태이든 정서이든,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주신 분은 어머니라고 생각해요. 삶의 방식으로 보여주셨다고 할까요? 굳이 말로 교육하지 않았더라도 무의식적으로 보고 배운 게 큰 것 같아요. 제 초기작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는 유머, 건강함 같은 것은 어머니로부터 왔죠.

 

“어머니는 가방끈이 짧았지만 상대에게 의무와 예의를 다하다 누군가 자기 삶을 함부로 오려 가려 할 때 단호히 거절할 줄 알았고, 내가 가진 여성성에 대한 긍정적 상이랄까 태도를 유산으로 남겨주셨다.”(14쪽) 이 문장이 각별하게 눈에 들어왔어요.

 

어머니는 일단 책임감이 굉장히 강하셨어요. 동시에 계획적인 성격이셨는데 그것이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방식은 아니었죠. 어쩌면 자신의 교육 가이드 라인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일지도 모르는데요. 자신의 몫은 최선을 다하면서 자식들에게는 강요하지 않았어요. 자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 주시면서 선택하면 존중해주셨던 것 같아요.

 

자신의 부모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조금은 어른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럴지도요. 이 인터뷰를 보시면 서운해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제가 예전에는 지금보다 부모님을 훨씬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 덕분에 내가 글을 쓸 수 있었다는 부채감? 고마움이 만들어내는 서정성? 약간의 환상이 있었고요. 그 마음이 제 소설 안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어떤 대상을 직접 만나기 전에 우리는 때때로 오해할 수밖에 없잖아요. 어딘가 착지하기 전 충격을 완화하는 방법이었구나, 당연한 순서였구나 싶어요. 특히 상경하고 부모님의 도움으로 공부하면서 느낀 미안함 때문에 더 애틋하게 썼던 것 같고요. 30대 후반이 된 지금은 부모님을 한 개인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더 좋아하진 않아도 더 이해하게 됐다고 할까요. 사람에 대한 마음이 한 바퀴를 돌면 이해에서 다른 애정으로 가는 것 같아요.

 

소설가 편혜영, 윤성희, 김연수 등 선배 작가들과 얽힌 에피소드도 재밌었어요.

 

편혜영, 윤성희 선배는 나이 차이는 있지만 활동 시기가 겹쳐서 입사 동기 같은 느낌이 있어요. 책에 성희 선배가 황순원문학상을 탔을 때 썼던 축사를 넣었는데요. 시상식 현장의 웃음 소리, 공기로 그 날을 기억하고 있어요. 혜영 선배 이야기는 책에 실리지 않은 글도 있는데요. 좋아하는 대상에 관해 쓸 때는 너무 정색하지 않으려고 해요. 애정을 너무 드러내면 그 마음이 대상에게도 독자에게도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요. 쑥스럽기도 해서 조금 딴청을 피웠어요. 온도 조절도 했고요.

 

작가들의 사진도 몇 장 넣었는데, 모두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에요. 특별히 뒷모습을 담은 이유가 있을까요?

 

사진을 잘 못 찍기도 하고요. 선배 작가들의 뒷모습을 넣은 건, 저보다 먼저 겪어봤거나 고민했거나 한발 더 나간 사람들이 시간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서요. ‘우리 사진 찍자’하고 찍은 사진이 아니라 도촬이기 때문에 (웃음) 모두 뒷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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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톨스토이 생가 정원에서 담소를 나누는 윤부한 선생과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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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황금소로의 편혜영, 윤성희. 근처에 카프카 집필실이 있다


 

김애란이 끌리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나요?

 

일단 직업적으로는 소설을 쓸 때는 다채로운 군상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판관의 입장보다는 관찰자로서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이 우리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글쎄요. 어떤 사람이 좋다는 걸 정리해본적은 없지만, 생각이나 시선이 유연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 유연함은 성정이라기보다 훈련 같고요. 유머러스한 사람도 좋아하는데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유머에도 양면성이 있으니까요. 아, 성실한 사람도 좋고요.

 

수다스러운 사람은 어떤가요?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데 수다스럽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대화는 양이 아니라 질이라서 접속할 때의 서로의 주파수에 따라 달라져요. 저도 친밀한 사람과 대화할 때는 기꺼이 밤새 이야기할 수 있어요. (웃음) 그리고 조금 큰 자리에 있을 때는 수다스러운 사람이 참 고마운 것 같아요.

 

혹시 부러운 사람이 있나요?

 

저런 모습은 정말 닮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어요. 작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일본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고다이라 나오’가 우리나라 이상화 선수가 출발하는 순간, 일본 응원단에게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했잖아요. 공정한 경기를 위한 행동이었는데, 작은 액션인 동시에 큰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를 하자고 주장하는 손짓은 아니었지만 이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알려주는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운동선수의 품위이기도 하고 한 개인의 품위일 수도 있는데요. 저에게도 비슷한 순간이 온다면, 저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나는 어려울 거야, 안 될 거야’라는 생각도 했고요.

 

쉽지 않은 일이죠. 자신의 이익이 걸린 순간이니까요.

 

한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좋은 환경에 있을 때 드러나는 성격보다 반대인 상황에서 보여주는 성격이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해요. 

 

산문집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자꾸 사람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저는 이번 책에서 약간의 낙관이 읽히기도 했어요. 소설가 김애란은 비관주의자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비관주의자는 아닌데, 비관적인 성격의 소설을 쓴 적은 있어요.  『비행운』 을 썼을 당시 사회나 상황이 힘들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잘 모르고 썼던 부분도 있지 않나 싶어요. 창작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비관을 세련되게 본 시각도 있었고요. 하지만 그 뒤에 진짜 절망 앞에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을 봤어요. 당연하기보다 신기하고 놀라웠던 것 같아요. 더 이상 무엇을 못할 것 같은 상황, 사건 앞에서 한 번 더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끝끝내 뺏어갈 수 없는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뭘까, 싶었어요. 그래서 비관이나 낙관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어요.

 

김애란의 소설을 따라 읽는 독자들은 아마 눈치를 채지 않았을까요?

 

저의 초기작에 담긴 성정이나 세계관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 시절이라서 가능했던 글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시간을 보내면서 ‘사람을 좋아하더라도 환상 없이 좋아하자’는 마음이 생겼어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상대에게 조금 너그러워지는 것 같아요.

 

그렇죠. 사람이 뭐라고 이상화를 시키나 싶은 생각도 들고, 때때로 ‘사람인데 경이롭다’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해요.

 

읽으면서 아팠던 문장이 하나 있어요. 266쪽에 나오는 “저를 가장 절망하게 만든 건,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2012년 겨울, 북콘서트에서 만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씨의 아내 이자영 씨가 한 말이죠.

 

진행자의 질문이 ‘지금 당신을 가장 절망케 하는 건 무엇입니까’였어요. 저는 당황해서 부끄럽고 두루뭉술한 얘기를 했는데, 이자영 씨께서 누구도 건너본 적 없는 시절로 혼자 돌아가듯 담담하게 말씀하셨어요.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이 담긴 타인의 몸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3부 ‘우릴 부른 이름들’에서는 세월호 이야기가 나와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1,2부의 재간스러운 글 뒤에 나란히 실어도 되나? 싶었는데, 이번 기회로 독자분들이 한번 더 생각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잊기 좋은 이름』  은 2011년에 쓴 단편 「물속 골리앗」 작가 노트의 제목이에요.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는 문장으로 끝나는 이 글 뒤에 ‘작가의 말’로 산문집이 끝맺어요. 저는 이번 ‘작가의 말’이 한 편의 시로 읽혔어요. 혹시 지금도 시를 쓰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니요. 시는 지금도 좋아하고 즐겨 읽지만 쓰진 않아요. 제가 어릴 때 쓴 것도 시라기보다는 시라고 착각했던 글 덩어리였던 것 같아요. 인쇄물 형태로 남아 있지 않아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산문집은 독립적인 단행본 형태로 나온 6번째 책이에요. 전업 작가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이 더 각별해졌는지, 또는 담담해졌는지 궁금해요.

 

각별해진 게 더 큰데요. 시간에 대한 감각이 달라져서 그런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저도 시간이 많아서 누군가 나에게 내주는 시간이 크게 귀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다못해 답문 하나하나, 안부 문자 하나에도 한 사람의 노력과 시간, 에너지, 정성이 들어가잖아요. 하물며 책 한 권을 읽는 사람의 품, 서점에 가는 사람의 품을 생각하면 읽어주시는 분들에 대한 각별함이 더욱 크게 다가와요. 또 책이 어떤 반응이 있으면 고마운 마음도 더 커지고요. 세상의 변화도 빠르고 시간도 빠르고 때때로 작가들의 문장도 낡잖아요. 낡지 않기 위해 갱신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온 책을 볼 때 반갑고, 그 책을 읽는 상대의 시간도 더 헤아리게 되면서 매번 각별해져요.

 

다음 작품은 장편일까요?

 

일단 순서상으로는 내년에 장편을 내려고 해요. 진도가 많이 안 나가면, 연재 형식으로 일부라도 공개를 하고 싶어요. 최근에 단편을 많이 썼으니까요. 장편으로 독자분들을 만나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예상대로 의지대로 안 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요즘은 무엇도 단정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어요. (웃음)


 

 

잊기 좋은 이름김애란 저 | 열림원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한 이야기인 동시에, 잊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김애란은 특유의 섬세하고 따스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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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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