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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왜 변화가 필요한지 질문하는 게 먼저"

『혁명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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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이니 4차산업혁명이니 하는 말들은 자본의 이윤 추구 활동에 의한 산업 형태의 변화를 마치 보편적인 문명 변화인 것처럼 전제하고 있죠. 애석하게도 좌파도 그렇습니다. 그런 변화가 왜 필요한지 그 실체는 무엇인지부터 질문하는 게 순서죠. (2020. 03. 12)

김규항 선생님 (1) 뮤인_정(사용가능, 크레딧 표기_ⓒ 이승택).jpg
ⓒ 이승택


사회문화 비평가인 김규항은 계속해서 계급과 시스템의 본질을 말해왔다. 『예수전』 이후 오랜만에 낸 저작 『혁명노트』 에서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계급을 다시 불러내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언제 끝날지 모를 ‘전망 없는 세계’는 자본주의가 보이는 일시적 병증이 아니라 그 본래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누릴 자유를 더 많이 주는 행동은 모두 혁명이 된다. 더 예쁜 상품, 5분이라도 더 빨리 배달해주는 서비스, 직접 고용 대신 간접 고용으로 비용을 줄인 회사가 혁명이라는 단어를 가져간다. 혁명은 일상이 되는 동시에 일상에서 멀어진다. 과거에 급진적이었던 사람들은 체제에 순응하고, 급진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소수가 되었다. 영원할 것 같은 신자본주의가 혁명을 맞게 된다면, 그 혁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김규항은 특정한 방식을 이야기하는 대신, 마르크스의 『자본』 을 토대로 근본적인 질문을 끄집어낸다. “변화는 ‘질문의 재개’로 시작한다.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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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은 물신성이 지배하는 사회


칼럼집이나 아포리즘 책은 많이 내셨지만 저작으로는 『예수전』  이후 11년 만입니다. 과작한다는 표현을 많이 들으실 것 같아요.


작가로서 정체성이나 자의식이 별로 없어서요.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할 이야기를 하는 정도이지 전업으로 글을 쓰는 분들과 저를 비교하는 건 미안한 일일 수 있죠.


어떻게 기획한 책인가요?


지금 책 내용은 재작년 정도부터 썼던 것 같아요. 원래 쓰던 걸 엎고 새로운 내용으로 썼습니다.


원래 기획했던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지난 이야기지만 2000년 중반부터 꽤 오랫동안 ‘386 진보’에 대한 비판을 했어요. 386 진보는 실은 우파 자유주의 세력이고, 그들이 진보라고 말하는 건 시민 혹은 인민을 기만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였죠. 칼럼에 그 이야기를 반복하다 보니 동어반복이 일어나서 짜임새 있게 논거를 가진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을 정리할수록 제가 오류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민들은 가짜 진보에 기만당하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최선의 진보를 선택하고 있었어요. 이 합리성을 만들어내는 힘이 무엇인가 질문하게 되었죠. 지금까지 현실을 피상적으로 봤다는 걸 인정하고 시스템의 본질과 구조를 보려고 노력했죠. 『자본』 도 다시 정독하기 시작했어요.


제목은 ‘혁명 노트’지만 담긴 내용은 ‘마르크스의 자본 쉽게 읽기’ 같았어요.


『자본』 을 읽다가 많은 사람이 포기하는 1권 앞부분 내용을 요약하고, 책 전체의 논거로 사용하면서 현실에 비추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죠. 제목은 혁명노트지만 막 ‘혁명을 하자!’ 이런 내용은 아니죠. (웃음) 혁명이라는 말은 양분되어 있어요. 한 편에서는 순치되어 스스럼없이 쓰이죠. 패션 광고에서도, 연예 산업에서도 혁명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쓰는데, 그에 반해 진짜 사회 시스템 혁명을 이야기하는 건 예전보다 몇 배로 저어하죠.


어렵게 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되도록 쉽게 쓰는 게 미덕이라 생각합니다. 쉽게 쓸 수 있는데 굳이 어려운 문장과 불필요한 개념어를 남발하고 그걸 세련된 것인 양 여기는 건 지식인들의 병이 분명하죠. 하지만 ‘도리 없는 난해함’은 있습니다. 기존의 사고 틀을 새로운 사고 틀로 바꾸는 통과의례에서 수반하는 통증 같은 것이죠. 마르크스의 『자본』 , 특히 1권의 가치 이론 부분은 대표적인 사례라 생각합니다. 마르크스 문장이 매우 난삽한 편이기도 하지만, ‘상품’이라는 우리 일상에서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것을 다시 낱낱이 뜯어보고 질문하여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이 어렵다고 느끼는 겁니다.


에세이 같기도 하고요.


학술적인 문장은 피했지만 학술적 논거는 엄정하려 노력했습니다. 특히 새로운 해석이나 기존 진보나 좌파가 부딪힌 벽 같은 것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많아서 더욱더 그래야만 했죠. 분량이 적은데 내용이 많아서 문장도 함축적인 편이고요. 부드러운 형태를 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되도록 천천히, 현실 상황에 비추어가면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물신성이 책 곳곳에 등장합니다. 체제로 이끄는 힘이 물신성이라고 보신 건가요?


자본주의 사회, 혹은 자본주의적 형태의 근대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어요. 적어도 이전 사회의 야만하고는 다르죠. 그런데도 사람들이 시스템에 복속되어서 살아가는 이유는 대개 이데올로기라 설명됩니다. 국가, 교육, 언론 등을 통해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거나 내면화해서 순응하게 한다는 거죠. 그러나 앞서 말했듯 오늘 시민이 시스템의 한정된 구역을 벗어나지 않는 건 이데올로기의 기만이나 허위의식이 아니라, 상품에 들어 있는 물신성이 새로운 합리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 삶과 관련한 모든 것, 인간 노동력까지 상품이라서 이 문제를 벗어날 수 없죠.


상품이 아닌 것들이 상품으로 되었다는 뜻일까요?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도 물신성의 강도는 다 다른데, 모든 게 상품인 사회,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사회에서 가장 극단적이에요. 한국은 구제금융 사태로 그렇게 되는데,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어요. 교육을 예로 들면 아이가 얼마짜리가 될 것인가에만 집중하게 되었죠. 아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아이의 인격적 면모나 개성 등은 상품으로서 부차적일 뿐이에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물신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게 현재 한국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라 봅니다. 하지만 힘듦의 원인 역시 또 물신성으로 해석되죠. 임금이나 빈부격차 등 경제적 차원으로만 설명이 되는 거죠. 그러나 물신이 전부라고 여기는 순간 삶을 잃을 수밖에 없죠. 한국이 헬조선이 된 건 30여 년 전보다 빈곤해져서는 아닙니다.


『자본』 에서도 물신성이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고요.


특히 쉽게 설명하려고 할 때 물신성이 피상적으로 다뤄지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론의 한계를 넘어서 물신성을 발견했고 『자본』  앞부분에 기술하지만, 분량도 매우 적고 다른 주제들처럼 풍부한 현실 분석이 이루어지진 않죠. 당시 자본주의는 이전 사회의 관습이나 습속들이 여전해서, 역설적이게도 물신성을 억지하는 상태였습니다. 그가 현재 자본주의를 봤다면 물론 훨씬 더 많은 분량과 비중으로 다루었을 겁니다. 

 

 

자본가들이 말하는 혁명


롤스의 『정의론』 을 언급하면서 ‘피시 쇼 PC show’의 이론적 근거가 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정체성 문제에 조금 더 집중하는 분들에게는 당연히 유쾌하진 않을 언급일 겁니다. 하지만 그분들도 본디 의미를 벗어나 도구화한 PC에 대해서는 오히려 저보다 더 비판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구화된 PC와 PC의 본디 의미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말씀하신 ‘PC 쇼’란 도구화된 PC를 말하는 것일까요?


주류 진보 지배 세력이 기득권을 한껏 구가하면서도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PC를 이용하는 거죠. 전통적으로 보수 우파 지배 세력은 기득권을 가지는 대가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인식되었고 존경받진 못했어요. 그런데 대등한 수준의 기득권을 가지면서도 정의롭고 진보적이라고 여겨지는 새로운 지배세력이 나타난 거죠. 미국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와 사회주의를 말하는 버니 샌더스의 약진은 바로 그것에 대한 반발입니다. 한국은 근래 위선적 진보에 대한 반감은 팽배한 반면 그 너머를 생각하는 경향은 미약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완전히 덮을 수 있는 쇼는 없는 법이고, 머지않아 변화가 생겨날 겁니다.


미국에서 젊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냉소와 체념이 더 팽배해 있잖아요. 지금 청년 세대의 과반수가 체념과 냉소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이 과연 희망적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대론 자체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케인스주의 종식 후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노동에 대한 공격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수십 년 동안 진행되었고 결국 불안정 비정규, 저임금 노동이 보편적 형태가 되었죠. 그 현실에 전면적으로 맞닥뜨린 첫 번째 노동자들이 지금 청년이죠. 그러므로 이것은 세대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고 노동의 문제입니다. 중년 노동자들이 지금도 고임금에 고용안정을 가지는 이유는 그들이 옛날에 이미 강력하게 조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나 자본도 현대차나 중공업 같은 대공장 노동조합을 바로 깨기는 어려워요. 대신 신규 고용을 비정규직이나 하청으로 돌린 지 오래죠. 만약 중년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있지 않았다면 제일 먼저 당했을 겁니다.


IT분야의 슈퍼 자본가들이 혁명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지금 현실을 함축해서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해요. 언젠가부터 사회 운동은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것들에 집중해왔죠. 변혁과 혁명을 말하는 건 옛날식이고 교조적인 태도라 여겨지고요. 변혁과 혁명을 말하는 건 오히려 자본가들입니다. 슈퍼 자본가들은 말끝마다 자신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해요. 그걸 견제해야 할 인문학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그에 봉사하고요. 이렇게 전도된 세상이 다수에게 좋은 세상이긴 어렵겠죠. 


다들 인공지능을 이야기할 때, 인간의 노동을 질문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운동은 당연히 거시적인 운동과 미시적인 운동이 있어야 해요. 관념 속에서 편의적으로 두 개를 나눠서 사고할 뿐이죠. 논의하기 위해서 ‘이제는 물질 노동의 시대가 아니라 비물질 노동의 시대다’ ‘산업 노동의 시대를 떠나서 이제는 어떻다’ 하는 질문의 개념을 정하는 건 의미 있겠지만, 문제는 인텔리들이 관념화된 걸 그대로 현실로 치환해 버려서 바보 같은 소리를 하게 된다는 거예요. 자본은 물질 노동인가 비물질 노동인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자기들의 이윤과 축적 활동에 필요한지만 따져요. 이윤이 된다면 당장 매뉴팩처로 돌아갈 수도 있어요. 인공지능 시대이니 4차산업혁명이니 하는 말들은 자본의 이윤 추구 활동에 의한 산업 형태의 변화를 마치 보편적인 문명 변화인 것처럼 전제하고 있죠. 애석하게도 좌파도 그렇습니다. 그런 변화가 왜 필요한지 그 실체는 무엇인지부터 질문하는 게 순서죠.

 

변화는 ‘질문의 재개’로 시작한다. 예컨대 다들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를 맞아…’라 말할 때,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인간이 그것들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것들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질문이다. (중략) 물신세계에서 인간은 모든 ‘첫 질문’을 잊는다. 자식 교육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부모는 ‘교육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잊고, 집을 사기 위해 열심히 노동하고 저축하는 사람은 ‘집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잊는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갈수록 삶의 의미도 사라져간다. 첫 질문의 재개를 통해 개인은 시스템 속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 234쪽

 

인문학이 상품 영역으로 들어갔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부자들끼리 하는 소규모 고액강연 같은 건 천박하다는 비판을 꽤 받더라고요. 그러나 더 중요한 부분은 오히려 미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문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한 총체적 사유라고 할 수 있고, 자본주의 물신성과는 대립하는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죠. 인문학은 더 비싼 인간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되는 게 아니라, 인간은 상품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 깊이 천착하니까요. CEO 인문학이니 인문학으로 광고하기니 하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이죠. 이런 기본 상식조차 없는 인문학 운동들이 많습니다. 


인문학은 리버럴 아트(liberal arts)라고 하는 이름부터 자유주의적이지 않습니까?


이놈의 자유가 늘 문제인데요. 말씀하신 대로 자유는 근대의 기본 이상이에요. 이전 한국 사회의 자유는 반공주의를 의미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자유방임적 시장주의를 의미했고요. 하지만 현재 자유주의는 미국의 민주당처럼 국가가 시장에 개입도 하는 수정된 것이죠. 마르크스는 개인의 자유가 생략된 집단적인 이상 사회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그의 관심은 철저하게 개인이었죠.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임금노예이자 하나의 상품일 뿐이어서 개인이 제 개성과 창조성을 자유롭게 발현되는 사회는 불가능하다고 봤죠. 결국 자유는 아직 제대로 구현된 적이 없습니다. 자유란 무엇인가 질문이 필요합니다.

 

 

지식인은 편향되어야죠


신자유주의 비판과 함께 혁명을 이야기할 때, 생태주의나 페미니즘 등 다른 운동과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시스템의 골간에 대한 운동은 수많은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한 사람이 그 균형을 적절하게 가지려 애쓸 필요는 없어요. 어떤 사람은 페미니즘에 집중하고 어떤 사람은 일상에서의 실천에 집중하고, 어떤 사람은 재벌 사회화 같은 거대 운동에 집중할 수 있겠죠. 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예전에 중고등학교 학생들 강연에서 물었어요. 세상이 바뀌려면 사회 구조가 변화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고 둘이 싸우기도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 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둘 다 변해야죠’라고 말하더라고요. 이 당연한 이치를 우리는 잊곤 합니다.


‘투쟁들 간의 상호존중을 통한 연결’(246쪽)이라고 표현해주셨어요.


운동은 대의가 있지만 운동하는 인간은 역시 인간이거든요. 실망도 하고 상처도 받고 질투나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원한 같은 걸 갖기도 해요. 치열하고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분들일수록 늘 상황이 어렵고 곤란하니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그런 정서에 노출되기 더 쉬운 면도 있죠. 인간사는 어디에나 다 같아요. 제 생각엔 그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운동의 대의나 다른 운동에 대한 존중과 연결을 인정할 수 있고, 시스템을 제대로 타격할 수 있는 거죠.


1998년부터 쓴 글이 ‘규항넷’에 모여 있어요. 선생님의 역사가 그대로 나오더라고요.


전작으로 쓴 『예수전』 『혁명노트』 는 출판 계약상 올리기 어렵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올렸어요. 책을 사지 않아도 누구나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계속 올리다 보니 지금은 긴 기간 동안 꽤 양이 많은 데이터가 되었어요.


예전 저작이나 활동을 봤을 때 편향적으로 생각했다고 새로 깨달았던 적은 없나요?


피상적인 차원에 머물렀다는 반성은 한 적이 있는데, 편향에 빠졌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제대로 된 편향을 갖지 못한 거겠죠. 지식인은 편향되어야죠. 편향의 다양성 속에서 토론도 일어나고 사회적 진전이 있는 것이지, 사실은 다 비슷한데 갈등을 벌이고 조국 사태처럼 기껏해야 누가 더 도둑놈인지 싸우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념이 분화되지 않고 정념만 잔뜩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두 거대 정치 세력이 이념적으로는 비슷해요. 30, 40년 전 이쪽은 잡아가고 이쪽은 잡혀갔다는 추억만 다르죠. 이념이 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영의 이해관계로만 싸우는 건데, 오히려 더 과열되고 인격화됩니다. 사람들이 그걸 보고 이념 갈등을 넘어 사회가 통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사회는 적절히 분화되어야 하죠. 5천만 명이 다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제 방식대로 삶을 사는 게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해요.


개인주의를 중요시하시는군요.


한국은 여전히 우편향 사회이고 그나마 글 쓰고 책 내는 사람 중에는 제가 꽤 왼편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좌파 이미지가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언제나 지나칠 정도로 개인주의자였고 지금도 그래요. 80년대 선배들이 협동 농장과 집단 생활을 하는 공동체 같은 걸 이상적인 사회로 이야기할 때 어린 마음에 고민이 많았어요. 혼자 생각했죠. ‘그런 세상을 만드는 투쟁에는 열심히 참여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세상이 오면 난 숙청당하겠지. 할 수 없는 일이지.’ (웃음)


미술 협업 과정을 하고 있다고요. 지금 계획하는 협업이나 다음 저작 계획이 잡힌 게 있나요?


작가, 큐레이터와 셋이서 『혁명 노트』 렉쳐 퍼포먼스와 오디오 주석을 준비하고 있는데, 코로나 19 상황 때문에 오디오 주석이 먼저 나올 것 같군요. 『혁명 노트』 를 집필하면서 지면 칼럼 쓰는 것은 중단했는데 앞으로도 꼭 필요한 경우 아니면 쓰지 않고, 책을 쓰려고 해요. 오래전 계약하고 미뤄 둔 교육 관련 책 등 몇 가지가 있습니다.

 

 

 


 


 

 

혁명노트김규항 저 | 알마
개인적 층위에서 영성의 혁명을 넘어, 개인들의 총합을 떠받치는 근본적인 사회 시스템을 관통한다. “인류 역사는 계급의 역사다. 인류는 계급이 만들어질 조건이 되는 한, 마치 본능의 발현인 듯 어김없이, 계급사회를 이루며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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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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