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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솔뫼 “이건 가능한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예요”

소설집 『우리의 사람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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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건 늘 재밌다고 느껴요. 쓰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것을 만나고 결국 끝까지 완성했을 때, 그때가 가장 기쁘죠. (2021.04.12)


좋아한다는 표현만이 정확한 순간이 있다. 마치 뚜렷한 목적이 없는 산책처럼, 그 시간의 의미를 묻지 않아도 “좋아하고 있군” 하고 느껴지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박솔뫼의 소설집 『우리의 사람들』 역시 독자에게 그런 순간을 선사한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8편의 소설을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소설을 읽는 시간이 좋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낯선 공간에서 눈을 뜨는 감각, 동면과 또 다른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떠올리는 인물들, 이동하고 반복하는 움직임들.

박솔뫼 작가는 “좋아하는 것들이 결국 소설로 나온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를 전달해야겠다고 의식하며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쓰다 보면 좋아하는 것들이 담긴다고. 그는 글쓰기를 색종이를 접거나 지점토를 붙이는 ‘만들기’로 비유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해서 가능한 이야기 중 하나를 쓰고, 그것은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라는 걸 이해하는 과정이 아닐까? 대답의 끝에 그는 종종 덧붙였다. “물론 다르게 쓸 수도 있겠죠.” 이 인터뷰 역시 작가를 만난 이야기라기보다는 박솔뫼의 말 주변을 배회한 이야기다.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로서 말들은 여기 도착했고, 우리는 그것을 들을 수 있다. 

소설가 박솔뫼는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겨울의 눈빛』 『사랑하는 개』『우리의 사람들』, 장편소설 『을』『백 행을 쓰고 싶다』『도시의 시간』『머리부터 천천히』『인터내셔널의 밤』『고요함 동물』『미래 산책 연습』 등이 있다. 김승옥문학상, 문지문학상,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했다.



좋아하는 것이 소설에 담긴다

제목 ‘우리의 사람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선명한 푸른색의 표지에 적혀 있으니 더 마음에 들어오더라고요.

사실 제목은 여러 개를 두고 고민했어요. 원래 소설집을 묶을 때, 작품 중 하나를 제목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제목을 지어볼까 싶기도 했거든요. 근데 딱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진 않더라고요.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도 표제작 후보였는데, 시간이 흐른 뒤에 봤을 땐 역시 「우리의 사람들」이 제목으로서는 더 좋겠다 싶었어요.

첫 번째 소설 「우리의 사람들」에서 소설 『티보가의 사람들』의 한 문장이 반복해서 언급돼요. “여기에 또 자신이 받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는 소녀가 있군.” 등장인물 앙투안느가 제니를 보고 떠올리는 생각인데요. 다정한 사람과 다정함을 알아봐 주는 섬세한 사람이 동시에 읽혀서 좋았어요. 

저도 『티보가의 사람들』을 읽다가 그 구절이 참 좋더라고요. 평소 좋아하는 것들이 소설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니까 쓰게 된 것 같아요. 그 대목은 소설 속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이에 대해서 이런 소녀구나 하고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우리의 사람들」에서 ‘내’가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장면이 나와요. 부산에 살며 결혼을 일찍 하고 애를 두 명 키우는 ‘또 다른 나’를 상상하죠. 작가님도 그런 상상을 자주 하시나요?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며 사는 것 같아요. 다들 그런 상상을 많이 하지 않나요? 다른 곳에는 지금과 다른 세계가 있지 않을까 하면서요. 

작가님의 소설에는 반복되는 것이 많아요. 「여름의 끝으로」(『사랑하는 개』)에 나왔던 ‘동면’이라는 주제가 이번 「건널목의 말」에도 나오고요. 등장인물들은 부산으로 가고, ‘광주’라는 소재도 자주 등장하죠.

저는 반복하는 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의식적으로 반복해야겠다 하고 쓰는 건 아니지만, 반복할 때 느껴지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무언가를 반복하고 싶은 마음은 길게 가진 않으니까, 재미를 느낄 때까지는 반복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도 ‘장소’가 중요한 요소인데요. 물리적인 장소보다는 그 장소의 느낌을 섬세하게 전달하는 것 같아요. 특히, 여행지의 호텔에 가서 빳빳한 침대 위에 눕는 것 등 주인공들이 낯선 장소를 향해서 느끼는 감각이 자세히 묘사돼요. 

움직임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요.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는 걸 쓰는 게 좋아요.

「이미 죽은 열두 명의 여자들과」는 살해된 여자들이 모여 살인자를 어떻게 죽일지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인데요. 폭력적인 사건을 보여주면서도 ‘증오’를 직접적으로 쓰지 않으신 것 같아요. 사건을 둘러싼 행동과 에너지를 쓰는 것에 가까운데, 왜 이렇게 쓰셨는지 궁금했어요.

사건을 다루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 가능한 수많은 ‘이야기 만들기’ 중 한 가지를 써보자는 마음이었어요.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이 조금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들 뉴스를 보면서 저런 일이 생기면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보잖아요. ‘누가 계단에서 굴러서 다쳤는데,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면 난간을 잘 잡아야겠어. 누군가의 집에 강도가 들었다고 하면, 우리 집은 잠금장치가 잘 되어 있으니까 괜찮아’ 하는 식으로요. 자연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과정을 떠올리는데, 이 소설에서는 여자들이 안전하기 위해서 방법을 고민하고 살인자를 죽이는 거죠. 물론 다른 이야기도 가능할 테지만, 색종이를 붙이고 지점토를 만드는 것처럼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본 거예요. 

「자전거를 잘 탄다」는 “무엇에 대해 쓰려고 하셨지?”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어요. 분량이 짧기도 하고요.

기본적으로 무엇에 대해 써야지 하고 시작하지는 않아요. 이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이런 식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은 정말 안 하는 것 같아요. 이 소설은 17이 어딘가에 들어가는 걸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쓴 가뿐한 이야기인데요. 잘 찾아보면, 17이 어딘가에 나온답니다.(웃음)



스스로 잘 서 있는 글이 좋다

첫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가 재출간되기도 했잖아요. 당시와 지금 소설이 달라진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직접적 폭력을 덜 쓰시는 것 같고, 문장의 느낌은 더 일상에 가까워졌어요.

그땐 혈기왕성했던 것 같아요.(웃음) 구체적인 면을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늘 책을 한 권씩 낼 때마다 달라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제 책을 따라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은 그렇게 안 느낄 수도 있지만요. 예전에 제가 쓴 소설은 굳이 찾아 읽지는 않아요. 그래도 『그럼 무얼 부르지』는 재출간 과정에서 다시 읽어야 해서 괴롭기는 했지만 담당하는 분과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즐겁게 작업했어요.

소설을 많이 고치시는 편인가요?

『그럼 무얼 부르지』는 꽤 고쳤고, 『겨울의 눈빛』도 계간지에 발표한 것보다 많이 달라졌어요. 현재의 내가 읽어봤을 때, 납득하기 힘든 대목은 고쳐요. 가끔 다른 사람이 쓴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죠.

작가님의 소설에 대한 평론이 많더라고요. 소설을 쓴 당사자는 어떻게 느끼시는지 궁금했어요.

기본적으로 나는 소설가의 일을 하고, 평론가는 평론가의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크게 영향받지는 않는데요. 간혹 흥미롭게 느껴지는 글이 있어요. 꼭 소설의 의미를 잘 드러내 주지 않아도 그냥 자기 글로서 잘 서 있는 글이 재밌더라고요. 작품에 대해 쓰면서도 작가나 작품과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글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런 요소가 좋은 독서를 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니까요. 이번 소설집에 해설을 쓴 강보원 평론가의 글도 그랬어요. 

최근 재미있게 본 책이 있나요?

하라 료 신작소설 『지금으로부터의 내일』이요! 하라 료는 마흔이 넘어서 글을 발표하기 시작해서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만 쓰고 있는 작가인데요. 신간이 나올 때마다 읽는 작가 중 한 명이에요. 이번 편에서는 확실히 달라졌더라고요. 탐정도 나이를 들고, 변화된 일본 사회도 반영됐고요. 그런 변화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어요.

작가님도 ‘고양이 탐정’이 등장하는 『고요함 동물』이라는 추리소설을 쓰신 적이 있죠. 

본격 탐정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어요. 추리소설이라기 보다 탐정이 등장인물인 소설이요. 보통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면서 글을 쓰게 될 텐데요. 저는 탐정소설을 좋아하니까 한번 써보고 싶어요. 언제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하라 료도 마흔이 넘어서 데뷔했으니까 저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꾸준히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소설을 쓰시는 이유가 있나요? 「농구하는 사람」, 「우리의 사람들」처럼 역사적 사건 없이 전개되는 소설도 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역사적 시간 속 개인들에게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특히 ‘광주’의 역사성은 작가님의 소설에서 자주 다뤄지는 주제인데요. 이번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에서도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개돼요. 등장인물들은 영화감독을 인터뷰하거나 5.18에 대한 자료를 아카이빙 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광주를 방문해요.

지금까지는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겪은 사람을 중심으로 쓰지는 않았어요. 아마, 그건 당시에 설정했던 글쓰기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다르게 쓸 수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저는 그동안 실제 역사적 사건을 겪은 당사자를 취재하는 방식보다는, 자료를 보고 장소를 걷는 방식을 택해왔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인물을 만나고 인터뷰를 해서 써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이건 지금까지 한 방식을 택해서 써봤으니까 할 수 있는 말 같아요. 다른 방식을 시도해보더라도 결과물은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작가의 말’에서 “며칠 전에는 소설을 쓰면서 무척 재미있다고 느꼈다”고 쓰셨어요. 어떤 즐거움인가요?

당시 다른 소설의 마감이 있었어요. 열심히 쓰고 끝내니 ‘아, 끝났다’하고 기분 좋은 상태였던 거죠.(웃음) 사실, 소설 쓰는 건 늘 재밌다고 느껴요. 쓰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것을 만나고 결국 끝까지 완성했을 때, 그때가 가장 기쁘죠. 



*박솔뫼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겨울의 눈빛』 『사랑하는 개』, 『우리의 사람들』, 장편소설 『을』,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머리부터 천천히』, 『인터내셔널의 밤』, 『고요함 동물』, 『미래 산책 연습』 등이 있다. 김승옥문학상, 문지문학상,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했다.



우리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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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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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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