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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은의 엉뚱한 장면] 그 애들과 다니는 나 자신이 너무 이상해 - <리코리쉬 피자>

영화 <리코리쉬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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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와 놀지 않았다면, 알라나는 이 장면을 이루는 스릴과 리듬, 방향과 무드를 결코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2022.02.24)


남다은의 엉뚱한 장면 : 작품의 완성도 혹은 작품 전체에 대한 감상과는 무관하게 특정 장면이 엉뚱하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그 순간은 대개 영화의 큰 줄기에서 벗어난 지엽적인 장면이 관람자의 사적인 경험을 건드릴 때 일어나는 것 같다. 영화의 맥락에 구애받지 않은 채, 한 장면에서 시작된 단상을 자유롭게 뻗어가 보려고 한다.



“그 애들과 다니는 나 자신이 너무 이상해.” 이 말을 내뱉은 인물은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선 알라나(알라나 하임), 여기서 “그 애들”은 열다섯 살 개리(쿠퍼 호프만)와 그보다도 어린 소년들이다. 개리의 사업에 파트너로 동참한 알라나는 개업 파티에 혼자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등장한다. 개업식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은 친구 생일 파티에 온 듯 들뜬 아이들로 가득하다. 혼자 수영복에 하이힐까지 신고 술 취해 비틀거리는 그는 아무래도 아이들 놀이에 끼어든 얼룩 같다. 그러게, 이상하긴 하다. ‘베이비시팅’이라면 모를까, 알라나는 대체 왜 이 조무래기들과 노는 것일까. 

물론 개리는 또래와 다른 삶을 산다. 배우로 활동하며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다 특유의 혜안으로 물침대 판매사업에 뛰어들고 나중에는 핀볼 게임장까지 연다. 도입부를 제외하면 학교 장면은 나오지도 않는다. 대신 그는 성인들이 가는 고급 레스토랑에 주인의 깍듯한 응대를 받을 정도로 자주 방문한다, 고작 콜라나 마실 뿐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귀티가 나는 건 아니다. 알라나에게 가슴 한번 보여달라고 징징거리는 걸로 봐서는 또래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다 말하기도 어렵다. 그의 외모와 풍채와 제스처는 열다섯 살이라는 나이가 농담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딘지 노숙한 인상을 풍긴다. 그러니까 이 인물에게는 종종 시간을 초월한 듯한 미지의 존재감이 있다. 



이게 다 <리코리쉬 피자>의 도입부 한 장면에서 시작된 생각이다. 개리와 알라나가 처음 대면하는 과정이 근사하게 전개된 후, 개리가 동생을 집에 두고 뒤돌아서는 아주 짧은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천천히 어슬렁대는 걸음걸이와 어딘지 쳐진 뒷모습의 실루엣, 그건 8년 전 세상을 등진 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것이었다. 개리를 연기한 쿠퍼 호프만이 그의 아들이라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뒷모습을 직접 마주한 순간, 새삼 소름이 돋았다. 이어지는 레스토랑 장면에서 개리가 옆에 앉은 알라나를 쳐다보려고 몸을 돌릴 때, 화면을 채운 그 등판과 어깨의 굴곡, 뭉툭해 보이나 왠지 예민한 질감 또한 정말이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것이었다. 얼굴도 아닌 뒷모습에서 지금은 사라진 한 세계의 흔적 아니, 환생을 보다니. 

초반의 장면들만으로도 이미 ‘개리’는 그저 서사 안에서 기능하는 열다섯 살 소년이 아니라, <리코리쉬 피자>의 속성을 지시하는 기이한 육체성으로 느껴진다. 그 육체성은 아이와 성인, 캐릭터의 형상과 배우의 육체, 허구 안과 밖, 쿠퍼 호프만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그런 맥락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활동한다. 다소 거창한 설명 같긴 하지만, 어쨌든 이 영화 안에서 그 육체성이 구축하고 전파한 무의미하고 아슬아슬하며 모호한 운동이 세계의 무료하고 관성적인 흐름을 날카롭게 자극한다. 그러니 더없이 무기력한 일상에 갇혀있던 알라나야말로 개리의 육체성에 잠재된 그 운동의 쾌감을 일찌감치 간파한 자인지도 모른다. 그는 조무래기들과 어울리는 한심한 성인이 아니라, 자신의 촉에 대담하게 반응해서 마침내 삶의 리듬을 전환하는 데 성공한, 의외로 야심 찬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요컨대, 이런 장면들. 개리가 레스토랑에 들어선 어느 저녁, 알라나는 나이 든 남자 일행과 함께 있다. 개리의 시선이 이들에게 꽂힌다. 알라나와 동석한 이들은 그냥 ‘나이 든’ 남자가 아니라, 무려 숀 펜과 톰 웨이츠다! 그들에게도 배역의 이름이 있으나 이 장면을 본 순간 일단 그렇게 외칠 수밖에 없다. 숀 펜은 배우 윌리엄 홀든을 모델로 삼은 잭 홀든으로 나와 알라나를 ‘그레이스’라고 부르며 영화 <원한의 도곡리 다리>(1954) 대사를 뜬금없이 쏟아낸다(윌리엄 홀든과 그레이스 켈리는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들이다). 톰 웨이츠는 특유의 걸걸한 극적인 목소리로 내용도 파악하기 힘든 말들을 노래하듯 중얼댄다. 둘은 그곳의 공기를 완벽히, 장악한다. 

이게 다 무슨 맥락인지 알아듣지 못해도 알라나는 이 놀이의 활력에 푹 빠져있다. 이 시대의 걸출한 예술가 숀 펜과 톰 웨이츠의 여전한 기운, 70여 년이 지나서도 생생히 되살아난 오래된 영화의 잔상,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젊은 환영 같은 쿠퍼 호프만의 존재감, 이 모든 걸 서사 안에서 구경하는 알라나의 시선. 영화의 과거와 현재, 기억과 육체가 마구 뒤섞여 쾌활하고 자신만만하게 유희의 에너지를 도모하고 발산하는 것이다. 

그 유희의 에너지가 관능적인 활기로 각인된 장면도 잊히지 않는다. 알라나가 운전하는 트럭이 하필이면 경사진 언덕에서 기름이 동나 멈추고 만다. 알라나는 개리가 트럭을 밀게 한 다음, 차의 운동에 몸을, 어쩌면 운명을 과감히 맡겨보기로 한다. 개리가 조수석에 올라타자 거대한 트럭이 저절로 후진하며 내려가기 시작한다. 알라나는 기름 없이도 점점 더 가속하는 차의 기운에 지지 않으려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핸들을 부여잡는다. 고요한 밤, 육중한 차 한 대가 언덕을 미끄러지는 이 장면의 운동성, 왠지 신경증적이지만 대범하며, 무모하고 무의미하지만 신비로운 속도는 그렇게 창조된다. 개리와 놀지 않았다면, 알라나는 이 장면을 이루는 스릴과 리듬, 방향과 무드를 결코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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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남다은(영화평론가, 매거진 필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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