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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을 기다립니다] 최진영 작가님께 - 이주혜 소설가

<월간 채널예스> 202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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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먼저 봄을 맞이할 작가님의 올겨울은 부디 단단하고 향기롭기를, 돌멩이처럼 귤껍질처럼 내내 강건하시길, 아직은 서울 서북쪽 끝에 있는 제가 남쪽을 향해 기원합니다. (2023.01.02)


안녕하세요, 최진영 작가님.

뵌 적도 없는 작가님께 편지를 쓰려니 어쩐지 쑥스러우면서 조용히 신이 납니다. 50대에 접어들면서 새롭게 품은 문장이 있어요. 좌우명이라기엔 좀 거창하고 그저 길을 잃었다 싶을 때 잠시 숨을 고르며 떠올리는 문장이라고 할까요?

"나는 좋은 사람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좋은 사람'이 뭔지도 모르면서 자꾸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어요. 뒤집어보면 진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기보다는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게지요. 한 번 더 뒤집어보면 그건 미움받고 싶지 않은 안간힘이기도 했고요. 이건 이것대로 저건 저것대로 못난 마음이라 생각하니 더는 애쓰고 싶지 않더군요. 그래서 좋은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욕심내기보다 좋아하는 것들을 실컷 좋아하고 그 마음을 떠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이렇게 지루한 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제가 편지를 쓰는 일도 최진영 작가님의 소설을 읽는 일도 참 좋아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예요.

저는 지금 서울의 서북쪽 끝자락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한때 쓰레기 산이었던 곳이 지금은 아이들이 뛰노는 공원과 아파트 단지, 다양한 언론사 건물이 늘어선 동네가 되었어요. 제 책상은 거실 전면 유리창을 향하고 있는데요. 식구들을 모두 재우고 혼자 거실 책상에서 원고를 써야 할 때, 주전자에 찻물을 보충하러 일어났다가 괜히 커튼을 살짝 걷고 맞은편 건물을 바라볼 때가 있어요. 그 언론사 건물은 한밤중에도 전 층에 불을 밝히고 있어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여요. 늦은 시간이라 사람의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고, 대신 어질러진 책상들이 보인답니다. 낮 동안 누군가 분주히 기사를 쓰거나 업무를 처리했을 책상이지요. 사람 자체보다 사람이 남기고 간 흔적 혹은 자취가 묘하게 제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어요. 건물 안에도 그 아래 거리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저는 그 환한 빈 사무실에 남은 사람의 흔적을 보고 이 시간에 외로운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이상한 위안을 받아요. 그리고 내처 생각하죠.

'소설이라는 것도 사람 자체보다 사람의 흔적을 포착하려는 조용한 안간힘이 아니겠는가.' 

하고요. 흔적의 포착이란 기억의 다른 이름이기도 할 텐데요.



저는 작가님의 『구의 증명』을 읽고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죽었을 때 그 몸을 낱낱이 먹어 치우는 일, 그것은 먹는 '행위'를 통해 '기억'이라는 의도를 수행하여 끝내 '애도'에 닿는 방식이 아니겠느냐고요. 그 낱낱을 기억하는 방식이 참으로 지독한 애도를 완성하는데, 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는 얼마나 지독한 사람이겠느냐고요. 아니, 얼마나 지독하게 사랑하는 사람이겠느냐고요.

어제는 처음 가본 동네의 부동산에 다녀왔어요. 곧 이사를 해야 하거든요. 이 동네에서 꼬박 12년을 살았는데 두 아이 모두 여기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제 대학에 다니게 되었으므로 네 식구의 직장과 학교, 활동 반경을 고려해 그나마 공평하게 다닐 수 있는 동네를 찾아가기로 했어요. 그렇게 지도를 보고 찾은 동네를 어제 처음 가본 거예요. 두 군데 집을 봤는데 둘 다 현 거주자들이 직장에 가고 없는 시간이라 부동산 중개인이 비밀번호를 받아서 문을 열어주었어요. 사람은 없고 사람의 흔적만 남은 집을 둘러보려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중개인은 집 안이 어질러져서 저한테 나쁜 인상을 줄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흐트러진 이부자리며 개수대에 쌓인 빈 그릇 같은 것을 자꾸 변명하더라고요. 첫 번째 집 냉장고 문에 '전복죽 끓여놨으니 데워 먹어' 하는 메모가 하트 그림과 함께 붙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집은 유치원생 아이를 키운다는데 장난감과 그림책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어요. 제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둘러보다가 작은방 책상 위에서 홀로 꿈틀거리는 존재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렁이를 닮았지만 크기는 훨씬 작은 벌레들이 작은 유리관 안에 잔뜩 담겨 있었습니다. 아이는 과학자가 꿈일까요? 저는 놀란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거실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커튼을 조금 걷고 그 틈새로 밖을 바라보았어요. 놀랍게도 저 멀리 전철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이 지상으로 지나가는 구간이었던 거예요. 전철 유리창 안으로 사람들이 아주 작게 보였어요. 전철은 벌레처럼 꿈틀거리지 않고 매끄럽게 앞으로 나갔어요. 이 집에서는 전철도 보이네요. 제 말을 트집으로 이해했는지 중개인이 전철 소리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고 변명했습니다. 저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벌레들만 조용히 꿈틀거리는 그 집이, 간혹 창밖으로 전철 지나가는 것도 보이는 그 집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흔히 소설을 '공간'에 비유하지요. 이야기가 깃드는 집이라거나 인물이 뛰노는 마당이라거나요. 그렇게 활달한 풍경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인물의 고백이 들려올 만큼 작은 숨구멍이라도 뚫는 것, 그것이 제가 이해하는 소설의 일입니다.



작가님의 『이제야 언니에게』를 읽다가 자꾸 숨을 새로 골라야 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네요. 작가님이 어느 팟캐스트에 출연하셔서 『이제야 언니에게』의 제야를 '돌처럼 단단하게 강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던 것도 생각나고요. 하지만 소설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제야의 바람들이 제겐 그 어떤 돌팔매보다 아팠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강해지고 싶은 제야가. 애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제야가. 멀리까지 가고 싶은 제야가. 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제야가. 자기를 지키고 싶은 제야가. 동생 제니를 지키고 싶은 제야가. 끔찍한 오늘을 찢어버리고 싶은 제야가. 살고 싶은 제야가. 그 낱낱의 바람들이 전부 날쌘 돌팔매질이 되어 어느덧 늙고 닳아빠진 저를 때렸어요.

아, 작가님이 소설 속에 '이모'라는 인물을 만들어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속수무책으로 맞고 멍들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모'라는 어른이 존재해서, 그 입으로 제야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말해 주어서 저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모가 제야에게 "사람은 노력해야 해.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래야 해"라고 말해 주어서 저는 기어이 못난 울음을 터뜨리고 오래오래 부끄러운 어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내처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더 하자면, 30대의 어느 날 지브리 애니메이션 <귀를 기울이면>을 보다가 오열한 적이 있어요. 주인공 소녀가 "나는 더 이상 귀엽지 않아"라며 슬퍼하는 장면이었지요. 중학생 여자아이가 그 귀여운 얼굴로 더 이상 귀엽지 않다고 탄식하는 장면은 자꾸만 성장을 재촉당하는 것만 같았던 그 나이의 저를 떠올리게 했고, 그럼에도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현재의 저까지 상기시켰던 거예요. 그때로부터 다시 20년이 흐른 지금, 성장과 귀여움에 관해 생각해 봅니다. 5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성장은 신기루처럼 손에 닿지 않는 뭔가로 어른거린다고 고백한다면 작가님은 조금 충격을 받으시려나요? 이 나이가 되도록 겨우 깨달은 게 있다면 '어른'이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벌벌 떨면서도 끊임없이 용기를 내 한 발 앞으로 걸어 나가 겨우 획득하는 체성의 하나라는 거예요. 성장은 늘 멀찍이 물러나 있지만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요. 아직 더 클 여지가 있다는 것, 지금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 떨리는 다리로도 기어이 걸음을 옮기면 허술하나마 용기가 찔끔 생기기도 하고 조금은 덜 부끄러운 어른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성장이란 감히 제 발로 귀여움에서 멀어지는 일이지만 더 이상 귀엽지 않음이 그리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 겨우 이 정도가 이만큼 산 제가 주워 모은 깨알들이라면 믿으시려는지요.

작가님이 지금 남쪽의 섬에 살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작가님의 커튼을 조금 걷으면 어떤 풍경이 보이는지, 그 달라진 풍경이 어떤 이야기의 집을 짓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언젠가 '해가 지는 곳으로' 움직였던 작가님의 인물들이 마침내 '내가 되는 꿈'을 꾸고야 말았는지, 그렇게 성장한 이들이 또 어떤 길을 나섰는지 알고 싶어요. 작가님의 신간이 나오면 그때 저는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없는 집을 지키며 작가님의 문장 사이를 꿈틀거릴지도 모르겠어요. 간간이 고개를 들면 창밖으로 천천히 지나가는 2호선 전철과 눈을 마주칠 수도 있겠고요. 그 집은 남향이라니 제 시선이 무한대로 뻗어 나가면 작가님이 사는 섬까지 닿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귀엽지 않은 시선이 만났을 때 우리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사람들이 되어 있으면 좋겠고, 그 다름을 감히 성장이라고 부를 용기도 생겨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보다 먼저 봄을 맞이할 작가님의 올겨울은 부디 단단하고 향기롭기를, 돌멩이처럼 귤껍질처럼 내내 강건하시길, 아직은 서울 서북쪽 끝에 있는 제가 남쪽을 향해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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