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사랑하는 소녀가 빈 소원은?
어떤 밤에는 왜 헤매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어째서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면 세상의 마지막을 상상하게 되는지, 무엇이 전혀 다른 사람들을 서로 꼭 끌어안게 만드는지. 정답은 모릅니다. 실패를 예감한 채로 마음속에 켜둔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천천히 나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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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깊은 밤, 소년을 사랑하는 소녀가 신목(神木)에 소원을 빈다. 그 애가 나를 좋아하게 해달라고, 고백을 받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 후 무슨 까닭인지 소년은 느닷없이 새로 변해버리고 만다. 그것도 작은 곤줄박이로. 대체 소년은 왜 새로 변한 걸까? 소녀는 친구들과 함께 소년을 다시 사람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있으라고 쓰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마법을 믿는다”라는 작가의 소개글처럼 장아미 작가는 『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에서 우리를 또다시 판타지의 세계로 데려간다. 


전작 『오직 달님만이』는 호환(虎患)이 닥친 섬마을 속 상반된 성격을 지닌 두 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었어요. 신작 『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는 한 소녀가 신목(神木)에 소원을 빈 후, 소년이 새로 변하며 그 광경을 목격한 세 소녀가 소년을 사람으로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인데요. 작가님의 소설의 공통점은 한국 설화, 전통, 옛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특색을 살린 판타지를 주로 집필하고 계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의도한 건 아닌데 첫번째 장편소설과 두번째 장편소설을 나란히 놓고 보니 정말로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이야기의 초안은 마녀들의 회합에서 단서를 얻은 면이 있거든요. 한밤중에 함께 모여 모의를 하는 소녀들, 그러니까 어린 마녀들의 모습을 제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라 처음에는 주요 공간 중 하나로 학교를 고려하기도 했어요. 결국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게 됐지만요. 그게 소설을 쓰는 즐거움이기도 한 것 같고요.

신화나 민담집 같은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 휴대전화 메모에 적어놓은 발상도 민간전승이나 설화적인 상상력에 기반한 것들이 많은 편이에요. 옛말에서 느껴지는 고아함도 좋아합니다.

소설 속 배경의 도시인 새별시 곳곳에는 넋, 업, 성주 등 신적인 존재가 깃들어 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제가 지내는 공간에도 신적인 존재가 깃들어 있을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작가님께서 이번 소설을 집필하시며 도시 곳곳에 깃든 신적인 존재들을 불러모으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심심할 때 하는 상상이 대개 이런 것들이에요. 어느 날 식칼이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혹은 한 여자가 길에서 주운 외투를 사랑하게 된다면 같은. 그러니까 나무와 집과 도시에 넋이 있다는 상상을 한 게 저로서는 이상하지 않았던 듯해요.

과거 산신은 산을 다스리는 존재인 동시에 마을, 나아가 국가를 수호하는 존재로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여겨졌거든요. 그렇다면 신도시는 누가 지키지? 하는 물음이 마음속에 생겨났던 것 같아요. 신도시는 인위적으로 만든 도시잖아요. 옛 마을이 산신의 보살핌 아래 있었다면 신도시는 어떨까? 신도시에도 산신과 같은 존재가 있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기존의 가택신과 더불어 아주 가까운 곳에 사는 현대 도시의 산신에 대해 상상하게 된 듯합니다.

소설 속 세 소녀의 특징이 뚜렷해요. 희미는 당차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줄 아는 소녀입니다. 민진은 새를 좋아하고 소극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요. 그렇기에 희미를 부러워하고요. 새별은 정체를 숨기고 있는 인물이죠. 저는 세 소녀 중 새별이라는 인물이 가장 눈길을 끌었어요. 작가님께서도 새별이라는 인물을 만들 때, 정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아리송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신경 쓰셨던 부분이 있으실까요?

말씀하신 대로 희미와 민진과 새별은 성격도 다르고 성장 배경도 다르고 가족 구성원도 다르고 준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공통점이랄 만한 게 거의 없어요. 더군다나 처음에는 서로를 무척 싫어해요. 그렇게 갈등 관계에 있던 친구들이 다 함께 마음을 모을 때 줄 수 있는 울림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봤어요.

새별은 후반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라 그전까지는 알 듯 말 듯 한 느낌을 줘야 했어요. 비밀을 감추고 있는 만큼 대사도 알쏭달쏭해 보이도록 신경 썼고요. 현실과 환상의 공존이라는 측면에서 새별이 이야기 전체를 대변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읽으며 정월 대보름에 치르는 ‘의식’에 관해 궁금해졌습니다. 소녀들은 새로 변한 소년을 사람으로 돌리기 위해 과거 정월 대보름날 신목 근처 우물터에서 이루어졌던 ‘달그림자 긷기’를 재연합니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 약밥을 먹고, 땅콩을 깨물었고, 학교에선 더위팔기를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죽어가는 세계를 살리는 방법으로 다양한 행위 중 ‘달그림자 긷기’ 의식을 채택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처음 완성한 시놉시스에서는 우물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식물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니까요. 상징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물 위에 달그림자가 떠 있는 그림이라면 보다 생생한 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또 달과 우물과 새 같은 존재들이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와 연결돼 거대한 순환을 이루기를 바랐어요. 달이 이울었다 커지고 우물물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넘쳐흐르고 새는 저승과 이승을 이어주는 것처럼요. 그렇게 잠들어 있던 세상이 신목 앞에서 벌이는 의식을 거치면서 완전히 깨어나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붉은 새는 넋을 인도해주는 존재로 나옵니다. 길 잃은 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그의 임무이죠. 소설을 읽으며 ‘붉은 새’의 감정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자연적인 존재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는 붉은 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무력해지기도 했을 것 같아요. 소설의 배경을 신도시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작가의 말에 썼듯이 자주 걷고 즐겨 걸어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괴로울 때면 일단 나가서 걷기 시작해요. 가끔은 모험심을 발휘해 한 번도 안 가본 길을 걸어보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사는 곳이 신도시니까 신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게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럽겠죠.

거의 매 계절마다 빈터에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는 걸 목격하고 있어요. 어느 날에는 알에서 갓 나온 새들이 인도에 떨어져 죽어 있는 모습을 맞닥뜨리기도 했어요. 붉은 새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어떤 감정을 생각하게 된다면 그와 같은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설 속에서 희미는 자신의 집의 업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놀기도 해요. 희미가 업을 불렀기 때문인데, 이 부분에서 희미는 신을 불러들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이인지 궁금해졌어요. 희미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특별한 아이인가요?

아마도 그렇겠죠? 하지만 희미의 특별함은 자기 안에 내재된 특별함일 거예요. 주변에서 잘 몰라주는,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특별함일 거예요. 희미는 언니의 옷을 물려 입고 스웨터를 풀어 얻은 털실로 짠 장갑을 끼고 다녀요. 초록색이랑 감나무를 좋아하고요. 그런 점들이 업의 호감을 사지 않았을까요. 특별함의 조건이란 의외로 무척 사소할 수도 있으니까요.

희미는 늘 신경질을 내며 제멋대로 구는 것 같아 보여도 실상은 제일 많이 양보하고 변하고 성장하는 인물이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해요.

준후가 변한 새는 ‘곤줄박이’입니다. 소설을 읽으며 곤줄박이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어요. 곤줄박이는 참새 크기의 소형 조류이고, 곤줄박이의 ‘곤’은 ‘까맣다’라는 ‘곰’의 의미이고 ‘박이’는 일정한 장소에 박혀 있다고 하여 ‘검은색이 박혀 있는 새’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수많은 새가 있는데 ‘곤줄박이’를 고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곤줄박이라는 이름도 예쁘고 처음부터 이 새다 싶어서 큰 고민은 없었다고 답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러니까 왜 하필이면 곤줄박이냐는 희미의 외침에 저로서도 딱히 해줄 말이 없어요. 희미도 민진이 단서를 주지 않았다면 그 새가 곤줄박이인 줄 전혀 몰랐을 거예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새는 단지 새일 뿐일 테니까. 그렇지만 민진처럼 새에 애정을 품은 사람들에게 새는 그냥 새가 아니겠죠. 곤줄박이고 쑥새고 박새고 어치일 거예요.

첫 질문을 통해 말씀드렸다시피 장아미 작가님의 소설의 특이점은 한국 설화, 전통이 녹아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작가님께서 소설의 기반으로 삼아보고 싶은 설화가 있으신가요? 있다면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망부석 설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올해 초 오래된 물건들을 소재로 한 연작소설집을 구상한 적 있는데 그중 한 편이 망부석 설화와 관련된 단편이었거든요. 아쉽게도 아직 계약되지는 못했지만요.

백일홍 설화를 좋아해서 재작년에는 그 설화를 재해석한 「붉은 돛」이라는 단편을 쓴 적도 있어요. 일정이 명확하게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나올 단편집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있으라고 쓰는 것만으로 그 자리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마법이 이루어진다면 독자가 소설에 흠뻑 빠져 그것이 진짜이기를 바란다면,…… 그러한 환상이 세상에 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김이삭 작가님께서 써주신 발문을 읽으며 장아미 작가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실존하는 것처럼 만들어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님께서 앞으로 어떤 것을 실존하는 것으로 만들어보고 싶으신가요?

실존하지 않는 모든 것이요! 쓰고 나니 무책임한 답변 같지만 제게는 마법이나 환상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의 요소라서요. 이야기 속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으니까요.

 


* 장아미

있으라고 쓰는 것만으로 그 자리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마법을 믿는다. 섬에 살면서부터 비와 바람과 안개, 숲과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 쓰기 시작했다. 장편소설
『오직 달님만이』를 출간했다.


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별과 새와 소년에 대해
장아미 저
자이언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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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