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 특집] 이연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을 정말로 알고 있는가"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한 내게 매일 아침이라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걸 알려준 문장이다.
글ㆍ사진 이연
2023.09.27
작게
크게

채널예스 100호를 맞이해, 커버를 장식했던 17인의 작가에게 
상상의 우주를 열어준 책을 물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뜬다. 그러면 불가사의하게도 당신의 지갑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신품  24시간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당신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재산이다.”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한 내게 매일 아침이라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걸 알려준 문장이다. 나는 깊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하루를 다 잘 살기는 어려우니 아침만이라도 제대로 살아보기로 다짐했다. 마침 퇴사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았다. 주 5회 오전 수영 학원을 끊었다. 9시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야 9시 30분에 도착해 10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학원에 가기 위해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났다. 하루하루 수영을 하다 보니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어서 걱정과 잡념이 줄어들었다. 매번 고정적인 시간에 기상하다 보니 잠드는 시간도 일정해졌다. 몸을 어느 정도 쓰다 보니 졸음이 몰려와 불면증도 차차 사라졌다. 형편없이 줄었던 몸무게는 다시 제자리를 찾고 몸에는 전에 없던 잔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일찍도 아닌, 매일 규칙적인 아침을 보내며 생긴 변화였다.

이후 유튜브를 시작하고, 새로운 회사에 취업도 했다. 회사에 다닐 때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오전 시간을 충분히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에 크게 소용이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1년 반 후 다시 프리랜서가 되었을 때 나만의 시간을 되찾았다는 생각에 오전에 들쑥날쑥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울 만큼 리듬이 망가졌다. 수영 학원을 다시 다니자니 코로나로 인해 셔틀버스가 사라져서 거리가 너무 멀어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그래서 대신 요가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9시 20분에 시작하는 요가였다. 처음 몇 달은 잘 다니다 싶었는데 나중엔 일 때문에 잦은 결석을 하다 보니 다시 오전 루틴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삶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게 뭐지? 적어놓고 보니 돈이 안 되는 일들이 내게 중요한 일 목록에 빼곡히 들어가 있었다. 운동하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 이 모든 일이 나에게만 중요하기 때문에 늘 외부 업무 다음으로 밀렸다. 안타깝게도 나는 하루치 의지력의 양이 정해진 사람이었다. 4시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수행 능력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 남는 저녁 시간에 운동과 글쓰기, 그리고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 죽어도 안 하게 됐다. 저녁에는 사람 만나는 일과 산책, 식사 정도만 원활하게 가능했다. 미래의 나를 믿는 것보다는 내가 그냥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이런 것들을 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몇 달간 6시에 일어나서 나를 위한 일들을 했다. 다시 삶의 리듬과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아침 시간이 주는 효용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일찍 일어났을 때 가장 큰 이점은 주어지는 시간의 양이 많다는 것이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9시부터 6시까지 학교나 회사에 간다. 그 시간을 내 마음대로 살아보거나 통제하는 건 쉽지 않다. 나처럼 일정이 자유로운 프리랜서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업무 연락이 활발할 때이기도 하고, 시간이 많으면 그만큼 방심해서 무작정 허비하기도 쉽다. 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내 마음대로 살아볼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힘들게 일어나서 얻어낸 시간인 만큼 그 소중함을 알기에 허비하지도 않는다. 특히 아침엔 집중이 잘 된다. 게임으로 치자면 경험치 2배 이벤트 같다고 할까. 무엇을 쓰든 잘 써지고, 그리든 잘 그려진다. 물론 신체는 뻣뻣하지만 아침에 잘 풀어두면 온종일 가뿐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어린 시절이 중요한 것처럼, 하루 24시간을 놓고 봤을 때 아침만 제대로 살아도 그날 하루가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도 아침에 쓰고 있다. 물론 일찍 일어났다고 무조건 글이 잘 써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손이 굳어 이상한 글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땐 다른 일을 하면서 서서히 몸을 올리면 된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 기획안을 하나 써놓고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까는 200자만 써도 자기검열이 튀어나와서 모든 글을 지우는 바람에 도저히 진도를 나갈 수 없는데 지금은 막힘없이 글을 풀어낸다. 물론 이상한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아침에는 퇴고도 유난히 잘 되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왜 100년 전의 유명한 영국 작가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추천했는지, 아침에 일어나다 보면 지극히 공감하게 된다.



당신이 어떤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잘 지내고 있을까? 그래도 이렇게 글을 읽을 정도라면 나름대로 건강한 상태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침에 더욱 잘 일어날 수 있다. 이쯤 되면 잔소리 많은 엄마나 아침교의 교주가 아닐까 싶은데 진심으로 나는 아침의 기적을 믿는다. 만약 당신이 가족과 함께 지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진정한 고독의 순간은 모두가 잠들어 있어 나의 방문을 건들지 않을 때 존재하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순간도 고독 속에서 꽃 핀다고 생각한다. 창조성은 너무나 여리고 약해서, 툭하면 기분 안 좋다는 핑계로 쑥 들어가 버린다. 그래서 나는 나의 창조성을 아주 예민한 물체 다루듯 다룬다. 아무도 없는 때에, 괜찮은 온도에서, 음악 없이,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조명 아래에서 꺼낸다. 그 모든 조건이 가능할 때가 바로 아침이다. 

신기하게도 다시 잘 살고 싶은 다짐을 하는 날에는 저절로 일찍 눈이 떠진다. 오늘이 그랬다. 알람은 7시였지만 6시 30분에 일어났다. 조용히 고요한 침실에서 이불을 정리하고 욕실로 간다.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한 다음 크림을 바르며 말간 피부를 매만진다. 로션 냄새가 전부인, 순수한 어느 순간. 그럴 때 비어있는 책상에 앉아 스탠드와 모니터를 켜면 나만의 창작의 순간이 시작된다. 그리고 오늘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러한 사소한 일은 소견이 얕은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사려 깊은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균형이 잡힌 현명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가 어떤가는 평소와는 다른 시간에 한 잔의 차를 마실 수 있는가 아닌가에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를 마셨다. 쌉쌀한 홍차 향이 입안을 감돈다. 지금은 다 식어서 보리차처럼 되었다. 아침엔 모든 것이 어두웠지만 지금은 온 방이 빛으로 밝다. 손은 아까보다 훨씬 유연하다. 이런 여러 가지 사소한 변화들이 내게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말해준다. 이렇게 한참 살아내도 겨우 오전 11시다. 같은 시간이어도 오전 11시에 일어났을 때보다, 내가 무언가 이것저것 하고 11시를 맞이했을 때의 기분은 천차만별이다. 

“인간의 정력은 일상의 일에 모두 빼앗겨 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머리를 써서 무언가 당신의 정열을 일상의 일에만 모두 써버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당신의 엔진을 일상의 일에 쓰기 전에(후가 아니다) 먼저 그 이외의 무언가에 쓰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한 가지 부작용이 있다면 저녁에 힘과 의욕이 전보다 더 없어졌다는 것이다. 아침에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그저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래도 그 덕에 약속을 줄일 수 있었고, 제때 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일을 더 미리 처리하게 됐다. 그리고 아침에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에 전보다 훨씬 걱정을 줄인 채 잠에 든다. 못하면 내일 아침도 있으니까. 그렇게 아침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끝내고 하루를 보내면 온갖 쓸데없는 일을 하더라도 덜 허무하다.

“쟁반 위에는 두 조각의 비스킷, 찻잔과 받침 접시, 물을 담은 찻주전자를 놓아두면 좋다. 일어난 후 주전자에 불을 켜고 나서 3분이면 뜨거운 물이 끓고, 당신은 그것을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기다려지는 아침을 마련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나는 창을 열 수 있는 계절에는 향을 피운다. 추운 계절에는 따뜻한 슬리퍼를 신고 로브를 걸친다. 매일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 차를 마신다. 사소하지만 남들이 말해주지 않는 방법이다. 그런 단정한 생활 양식을 책으로 배웠다. 이제는 나름대로 익숙해져서 유튜브 영상으로 사람들에게 아침의 운치를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문학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다. 역사도 아니며 과학도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깨닫는 일이다.”

내가 아침에 하는 일과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일기를 쓰는 일이다. 아무것도 펼쳐지지 않은 시작의 순간에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싶겠지만 막상 만년필을 꺼내면 수다스러운 손을 발견한다. 그 어떤 편견과 판단 없이 아무도 없는 고독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는 상상을 해라. 잘 쓸 필요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에겐 충분히 잘한 일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과정은 나를 위한 작은 수련이자 해방이다. 그 자유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하루 24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책은 내게 애쓰는 일이 당연하고 괜찮다고, 원래 진지하게 삶을 살아내는 건 힘들면서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말해줬다. 그래서 어둡게 누워있던 시절 이 책을 읽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면서 잘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가진 건 없었지만 내게는 내일 아침이 주어질 거라는 걸 믿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가졌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일로든 마음이 복잡할 땐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보자. 무너진 삶의 영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신기하게 아침은 밤보다 고요하고, 새벽보다 밝기에 그만의 마법 같은 순간이 있다. 새벽녘 길가에 움직이는 사람들이나 자동차를 보는 일도 고귀하게 느껴진다. 특히 진심으로 권하고 싶은 경험 중 하나는 아침에 홀로 티타임을 보내는 것이다. 한가한 어느 평일 번화가에서 인기 있는 카페에 웨이팅없이 들어가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더 여유와 운치가 넘치는 일이다. 그런 귀한 순간을 갖고 하루를 시작하면 이미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나 새삼 감사의 마음이 든다. 

“24시간이라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충실하고 쾌적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생활을 조정할 때에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희생을 지불해야 하고, 꾸준히 계속 노력해야만 하는가를 냉정히 깨닫는 일이다. 이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 그럴 생각만 있으면 언제라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

한때 나는 가진 것 없이 살아갈 날만 잔뜩이라는 생각에 막막한 시간을 보낸 시절이 있다. 살아갈 날이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귀하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물론 돈도, 사람도 중요한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시간이 있어야 가능하다. 삶의 귀중함을 잃고 하루를 허비하며 시간을 진지하게 대하는 법을 잊었을 때 나는 다시 이 책을 꺼내 든다. 마지막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을 소개하겠다. 여기에 무겁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기 위해 몇 번이고 떠올리곤 한다.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을 정말로 알고 있는가.”




*이연 

작가, 유튜버. 펼 연(演) 자를 쓴다. 이름처럼 사는 삶을 꿈꾼다.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과 『매일을 헤엄치는 법』을 썼다.




하루 24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루 24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
아놀드 베넷 저 | 이미숙 역
더모던



추천기사







0의 댓글
Writer Avatar

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