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하민 라바투트 “우리는 책과 함께 불타야 한다”
문학은 착란, 환상, 의미를 다룹니다. 낯선 것을 탐구해 보고 현실을 매혹시키는 것이 작가의 일입니다.
글ㆍ사진 김윤주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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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uana Gómez


과학에서 비이성을 발견한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 매니악 컴퓨터를 발명하고 20세기 최고의 천재라 알려진 존 폰 노이만, 알파고와 대결을 펼친 바둑 기사 이세돌. 『매니악』은 극한의 지성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불타는 광기를 담은 소설이다. 벵하민 라바투트는 전작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에서 보여준 폭발적인 스토리텔링을 이번 신작에서 더 진화한 형태로 펼쳐 보인다. 이를 위해, 작가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방대한 조사를 통해 논픽션에 가까운 초고를 쓰고, 이를 소설화하는 작업을 거쳤다.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분노하고, 움츠리고, 기뻐하고, 축복하고, 떨어야 하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벵하민 라바투트를 서면으로 만났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이후 두 번째 한국어판 출간입니다. 특히 이세돌에 대한 대목을 쓰면서 한국을 오래 생각하셨다고 하셨는데요. 소감이 궁금합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렇죠. 현실이 악몽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꿈꾸던 일들이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만큼 신격화에 대한 충동이 더 컸던 적은 없습니다. 권력과 불멸에 대한 유치한 환상을 떠들어대는 성인 남자들, 합리적인데도 세상의 종말이 왔다거나 인공지능이 질병, 빈곤, 고통을 없앨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이상한 시대에 칠레 산속에서 쓰인 책이 한국으로 건너간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겠네요.


작가님의 소설은 많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 출발합니다. 뚜렷한 하나의 목적을 갖고 소설을 구상하기보다는 여러 자료를 수집한 후 흥미로운 사실에서 출발하는 방식으로 쓰신다고 밝히신 적이 있는데요. 이번 『매니악』은 어떻게 시작된 소설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기적과 특이점,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아이디어와 삶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아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의 목숨도 끊은 파울 에렌페스트의 마음속에 자라난 블랙홀, 손대는 모든 것에 혁명을 일으킨 진정한 천재이자 과학의 반신(半神) 존 폰 노이만의 삶, “오직 그만이 완전히 깨어있었다”고 묘사한 친구의 말은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의 바둑 대결에서 두 개의 바둑돌, 하나는 인공지능, 하나는 이세돌, 신들의 손에 의해 이뤄진 대결이라 여겼습니다.


작가님은 리서치가 끝나면 논픽션으로 초안을 쓴 후, 그때부터 픽션을 쓰는 작업을 시작하신다고 하셨어요. 그 과정에서 사실(fact)은 허구와 뒤섞이며 픽션이 될 것 같은데요.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궁금합니다. 

그 과정에서 문학이 탄생합니다. 사실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환각의 엔진이며, 우리는 물리적 세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문학은 착란, 환상, 의미를 다룹니다. 낯선 것을 탐구해 보고 현실을 매혹시키는 것이 작가의 일입니다. 외부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망원경과 현미경을 쓰고,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우리 안에 깃든 영혼에 다가가기 위해 말과 시, 예술과 문학을 이용합니다. 과학이 빛에 대한 연구라면, 문학은 그림자에 대한 연구입니다.


작품의 제목 『매니악』은 ‘광기’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작가님의 소설에서 과학자들의 ‘광기’는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우리는 ‘광기’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이 테마에 대해 지속적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섬망은 문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과학자, 수학자, 무용수, 시인, 우편배달부 등 누가 됐든 광인과 광녀를 사랑합니다. 저는 항상 광기에 끌렸고 (그리고 엄청나게 두려워했습니다), 문학적인 주제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여주는 우리 마음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라는 점에 끌렸습니다. 누가 이런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사물을 명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빛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 빛은 우리 자신, 이성, 생각, 문화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를 눈멀게도 하지요. 상식의 족쇄에 묶이기도 하고요. 광기는 질병이자 고통이지만 우리를 해방시키는 힘이기도 합니다. 결국 세상에는 어떤 광기가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작가 네스토르 산체스의 말처럼 진실과 광기는 같은 질병의 증상입니다.


책의 1장은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는 물리학과 정치 모두에서 “논리적인 동시에 지독하게 비이성적인” 모순을 봅니다. 나치의 우생학적 욕망과 물리학의 한계 속에 놓인 개인을 통해, 작가님은 이 모순을 어떻게 보고 싶으셨나요?

나치의 사고방식에서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 또는 장애인은 ‘신체 정치’의 건강에서 부정적인 가치라 여기며, 그들에게 인간 마음의 윤곽과 모순되는 논리가 존재합니다. 몸과 정신은 배제하고 논리와 숫자만으로 사물을 탐구하는 이 비뚤어진 관념은 우리를 쉽게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머리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중생이기 때문에 추상이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규칙을 인간 세계에 직접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변태적이면서 광기와 비인간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 책에서 파울은 주변에서 이런 검은 물결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절망했던 것이지요.


폰 노이만의 일생은 인류가 생각하는 ‘진보’에 대한 미친 질주처럼 느껴지는 동시에, 그 진보가 야기한 파괴적인 힘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창조와 파멸이 교차하는 이야기는 작가님의 오랜 테마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러한 심오한 모순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미스터리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존재의 완전한 복잡성, 우리를 괴롭히면서도 지탱하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러한 이중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설령 우리가 그림자와 모순이 없는 천국에 도달했다고 해도 그곳에는 우리가 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지옥에서 살 수 있지만 천국에서 살 수 없습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바둑의 한계를 뛰어넘어 “낯설고 끔찍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묘사됩니다. 인간의 경험을 뛰어넘은 AI의 수와 영감에서 비롯된 이세돌의 수.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작가님은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끌리는 사람입니다. 모든 목격자들 증언에 따르면 서울에서 일어난 일은 예상치 못한 매우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작가란 피뢰침 같은 존재입니다. 이성을 거스르는 사건,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진정한 영역, 즉 상상력의 광란의 풍경입니다. 알파고가 두 번째 대국에서 보여준 37수나 이세돌이 보여준 신의 한 수처럼 현실 세계의 어떤 것이 바로 그것과 연결될 때 저는 주의를 기울입니다.


많은 저널리즘이나 과학 논픽션들이 놀라운 깨달음(에피파니)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지만, 작가님의 소설은 ‘에피파니’에 도달하는 정신적 경험이나, 그 이후의 삶을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이 과정을 소설로 씀으로써 작가님이 전하고 싶은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그 반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심리학을 사용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조건보다 깨달음에서 나오는 내용을 더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둘 다 매혹적이고 어둡고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무의식에서 비롯되는 경이로움, 우리가 이해하는 고뇌의 길은 우리가 결코 완전히 도표화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가장 창의적이고 근본적인 것에 대해 눈이 멀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이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지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분노하고, 움츠리고, 기뻐하고, 축복하고, 떨어야 합니다. 경외감을 느낄 때 우리는 이 이외 또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요? 경외감은 제가 아는 지루함과 우울증에 대한 유일한 해독제입니다. 그리고 책은 그것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해야 합니다. 책은 불타야 하고 우리는 책과 함께 불타야 합니다.


번역: 송예슬



*벵하민 라바투트

1980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나 헤이그, 부에노스아이레스, 리마에서 자랐다. 현재는 칠레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발표하는 소설마다 여러 문학상을 받았으며, 특히 2021 부커상 최종심에 오른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는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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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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