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큰 키 때문이라도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는 김창준 씨는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Writers' Workshops & the Work of Making Things』이라는 노란 표지의 책이었다.
"리처드 가브리엘이라는 사람이 쓴 책이에요. 리처드 가브리엘은 문학학위와 전산학 학위가 있는, 시도 쓰고 프로그래밍도 하는 사람이에요. 이 책에 나오는 글쓰기의 방법들에 대한 안내가 프로그래밍에도 적용이 되고, 시를 쓰는 것에도 적용이 되고, 뭔가를 만드는 것 모두에 적용이 돼요. 오늘 집에서 나올 때 아마 기다리는 시간이 있지 싶어서 가지고 나왔어요."

글쓰기는 김창준 씨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컨설턴트라는 직업의 특성상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전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어떻게 글을 써야 사람들이 쉽게 이해를 할까, 쉽게 받아들일까, 사람들을 쉽게 변화시킬까를 늘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글쓰기라는 작업이 자기 사고를 견고하고 체계적으로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인지적 작업이기 때문이다. 공부해야 할 주제가 있으면 같은 주제의 책을 모두 읽는 "깊이 읽기 위해 넓게 읽는"독서 방법을 애용하는 김창준 씨는 글쓰기 관련 책을 많이 찾아보았다고 한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많이 찾아봤어요. 그런데 만족스러운 책이 별로 없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책이 『문장강화』인데, 훌륭하고 좋은 책이긴 하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이제는 새로운 책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하지만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여전히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제가 본 것은 『뼛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예요. 그 책도 흥미롭게 봤구요. 린다 플라워의 『글쓰기의 문제해결전략』도 봤는데… 그 책은 글쓰기 자체를 문제해결의 한 가지 예로서 접근을 해요. 글쓰기의 인지적 측면에 대하여 다루었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김창준 씨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이다. 원래 한창 베스트셀러로 잘 나가던 1994년에 이 책을 보았는데, 다시 읽으려 한다. 이유는 실험을 하기 위해서란다.
"아는 분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과거에는 '대단해 보이던 것이 시시해 보일 때'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낄 때였던 반면 이제는 '예전엔 시시해 보이던 것이 대단해 보일 때가 되었다구요. 저도 동감해요. 제가 생각하는 위대한 사람은 작은 것을 대단하게 보는 혹은 그렇게 볼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에요. 그만큼 감수성이 발달하고, 열린 사람이죠. 거의 십년이 지나고 같은 책을 두 번 봤는데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거나 새로운 감동을 받지 못한다면 저는 그 동안 성장하지 않은 셈이 됩니다."
김창준 씨는 이거 하나면 모든 게 다 풀린다는 식이 왠지 시골약장수 같은 느낌이 들고, 그것을 읽는 것이 뭔가 비겁한 일 같아 이런 방법론에 대한 책을 꺼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잘 살고, 무엇을 잘 하게 되었다면 거기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며, 뭔가 배울 점이 있으리란 것. 또 책이나 영화를 본 후 자신이 바뀌었는지의 여부에 따라 그것의 질을 평가하는 김창준 씨에게 방법론에 대한 책은 일단 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일 것이며, 생활에서 쉽게 적용해 볼 수 있는 도구일 것이기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의 인지 과정에 관심이 많은 김창준 씨는 이런 방법론적인 책과 관계해서 『Making the Most of College』 (우리나라에서 최근 『하버드 수재 1600명의 공부법』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 『공부 기술』 같은 책을 보았는데 꽤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책 읽기와 관련해서는 『독서의 기술』과 『Power Reading』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런 방법론적인 책들만이 김창준 씨를 변화시킨 것은 물론 아니다. 일전에 노스모크에서 '나를 만든 책'을 꼽아본 적이 있다고 하는 김창준 씨는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책으로 『우주 변화의 원리』 『중용』 『도덕경』 『서유기』 『성공하는 남자의 옷입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 건축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저작들을 말한다.
『도덕경』의 경우는 처음 보았을 때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지식이 중첩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마다 『도덕경』은 늘 공통 분모가 되어 여러 지식과 연결이 되었다고 한다.
"『도덕경』이라는 책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연결이 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실제로 포스트모더니즘에 『도덕경』이 큰 역할을 했잖아요. 또 프로그래밍에도 『도덕경』이 연결지워져요. 포스트모더니티라는 것 자체가 프로그래밍의 큰 화두이기도 하구요. 경영학과도 연결이 됩니다."
원래 관찰하고 분석하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저자가 고민을 많이 해서 쓴 압축된 글의 의미들이 펼쳐질 때 지적인 희열을 많이 느낀다는 김창준 씨는 옛날 군대 시절 일화를 이야기한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옛날 군대에선 1년이 될 때까지 책을 볼 수 없었어요. 마음 놓고 책을 보는 것은 병장이 되어서야 가능했구요. 그랬는데… 몰래 보는 거죠. 『도덕경』을 봤어요. 『도덕경』은 글이 짧잖아요. 조금만 읽어도 우려먹을 거리가 많지요. 여덟 글자 읽고 덮고, 하루 종일 그 여덟 글자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거예요. 정말 많은 것을 얻었어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의 다치바나 다카시에게서 용기를 얻은 바도 있고 해서 김창준 씨는 책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한 달에 많게는 100 권, 적게는 30 권 정도의 책을 산다. 책 읽는 시간도 많다.
"저는 하루 네 시간 이상 일을 안 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물어봐요.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일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사느냐구요. 전 '하루에 네 시간 일하기 때문에 네 시간 일할 수 있다'라고 대답해요. 다른 시간에 그만큼 자기 계발을 한다는 얘기에요. 저는 계속 공부를 해요. 더 나아지려는 노력이죠."
당연히 집에 책도 많다.
"전 '책으로 만든 성'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전에는 원룸에서 살았어요. 방에 들어가면 잠자리 부분에 책이 쌓여 있는데 사람이 누워 있는 모습으로 책이 쌓여 있었어요. 거기에 들어가서 자는 거죠. 자다가 팔로 툭 치면 쌓여 있는 책 더미가 무너져요. 책에 깔려본 적도 많아요. 그러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이사를 했는데, 이젠 방이 있는 집이거든요. 집에 책장 수가 8개에요. 물론 바닥에도 책이 쌓여 있구요."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어오며 책 읽기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해 온 김창준 씨는 같은 주제 읽기, 하루종일 읽기, 빨리 읽기 등 보다 효과적으로 책을 읽는 나름의 방법을 'How To Read It' 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김창준 씨는 전문 분야인 프로그래밍은 물론이며 심리학, 경영학, 철학, 영어영문학 등 정말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며 자신의 지식 체계를 확장시키고 심화시키고 있지만 그 독서는 그저 『이성의 기능』 에서 말하는 "좀더 잘 살기" 위한 것뿐이라고 한다.
"삶이라는 것에 대해 시간을 x축으로, 삶의 형태를 y축으로 잡고 그래프로 표시하면, 사인곡선처럼 오르락 내리락 물결칠 수 있겠죠. 그런데 y축의 위상, 즉 높이에 포커스를 맞추면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조금 높아졌다고 좋아하고, 조금 낮아졌다고 괴로워하고. 그것은 본인이 조절하는 것이 힘든 일인 것 같아요. 그보다는 각 점에서의 접선의 기울기에 포커스를 맞추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잖아요. y축 상의 높이가 낮더라도 접선의 기울기는 위를 향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요."
----------------------------------------------[편집자가 알립니다] 본 인터뷰는 2003년 1월 15일에 YES24에 게재된 것을 재수록한 것임을 알립니다.
우주 변화의 원리
출판사 | 대원출판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출판사 | 청어람미디어
Making the Most of College: Students Speak Their Minds
출판사 | Harvard University Press
중용 · 대학
출판사 |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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