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살아서 내 인생을 모두 소설에 담고 싶어요, 작가 은희경
특히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상적인 풍경을 그린 중편 「상속」을 두고. 우선 소재가 이전과 다르기도 했지만 보다 차분한 모습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분명
200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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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은희경 씨의 세 번째 작품집 『상속』을 두고 그녀가 많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상적인 풍경을 그린 중편 「상속」을 두고. 우선 소재가 이전과 다르기도 했지만 보다 차분한 모습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분명한 것은 그에게 여유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작년 봄 『마이너리그』 출간으로 작가를 만났을 때 “한 작품 끝내면 다음에는 더 나아진 작품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많이 느낀다”라고 얘기하며 다소 긴장하던 모습이 조금은 희미해진 듯 했다.
“한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의 말>에 이제 오디션을 통과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하고 싶은 말을 소설을 통해 많이 했죠. 『마이너리그』 내고 오해를 많이 받아서 마음에 상처가 좀 있기도 했구요. 작년에는 글쓰기가 굉장히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고....... 이러한 것들이 지나니까 차분해지고, 또 면역력도 생긴 것 같아요.”
중편 「상속」은, 작가가 작년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계기로 쓴 소설이다. 작가는 아버지의 병을 알게 되고 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죽음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소설이란 소설가의 현재”인 것. “이야기 속에 과거를 끌어냈든, 미래를 상상해놓았든 간에 거기에서 삶을 읽어내는 것은 현재의 눈이다.”
작가는 현재의 눈으로 삶을 읽어내지만, 작가의 관심사는 변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삶에서 배제된 힘없고 무력하고 불안한 존재의 쓸쓸함, “보이는 나와 보여지는 나”가 빚어내는 삶의 연극성, 그러므로 상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 관계.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삶을 객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에는 종종 냉소라고 이해되기도 하는 `거리 두기'가 동반된다.
“지금까지 소설 쓰면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해왔어요.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이, 그것이 왜 당연한 것인지 보려 했죠. 보통 소설에선 아버지의 죽음을 가족 관계 속에서 휴머니즘으로 다루는데, 저는 그렇게 쓰고 싶지 않었어요. 아버지의 성기랄지 지금까지 금기시하는 것들,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을 그대로 객관적으로 써보고 싶었어요. 달라진 점이라면, 그런 것들을 어필하기 위해 발랄하고 감각적으로 쓰지 않고, 좀 더 차분해졌다는 것.”
비취색이 감도는 푸른 상의를 입은 모습이 작가의 웃음만큼 밝고 산뜻하지만, 언뜻언뜻 섬세한 표정이 드러나는 작가는 “인생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굉장히 무력하고, 태어나 살아가기 위해 타인이 필요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연기가 필요한, 그런 것들이 맥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인간이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삶이 주어진 것이죠. 주어진 조건에서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건 자기 잘못도 아니고, 자기 의지대로 인생이 된다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해요. 「내가 살았던 집」에서 주인공의 딸이 두발 자전거를 혼자 타보려고 애를 썼다는 대목이 있는데 제 딸이 그랬어요. 딸이 자전거를 타려고, 혼자 뭔가를 해보려고 하다 그게 힘들어 머릿속에 땀이 가득 차 있는 거예요. 그때 가슴이 아팠어요. 그런 제한된 조건을 타고 태어난다는 것.”
어렸을 적 꿈이 자기 맘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인생의 쓸쓸함. 작가는 이러한 경쟁 사회 속에서 안간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연민을 느낀다고 한다. “「아내의 상자」에서 아내는 다수의 가치관 안에 들어가 있지 않지만 남편은 그 안에 있죠. 저는 그 남편에게 연민이 더 많아요.”
작가 역시 그렇게 `안간힘' 쓰며 살아 왔다. 어린 시절 그것은 `착한 아이'가 되는 것. “「딸기 도둑」은 어렸을 적 제 경험을 토대로 쓴 거예요. 딸기밭에 갔는데 아버지 친구 분이 딸기를 누구에게 가져다 주라고 했어요. 그런데 안 그랬거든요. 손수건에 싼 딸기가 으깨어졌는데, 무심코 그것을 먹었어요. 지금도 그 손수건이나 그런 것이 생각나요. 나중에 학교를 가서 그 아버지 친구 분을 만났는데 `너 이제 도둑이야',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너무 무서웠어요. 내가 도둑이어서 어른들이 나를 미워하면 어떡하나....... 공포였죠. 그 기억이 오랫동안 있어서 언젠가 그 이야기를 쓸 줄 알았어요.”
“어릴 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보지 못했다”는 작가는 이제는 엄연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작가는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 객원 연구원으로서 1년간의 삶을 선택했고, 7월 18일 한국을 떠난다. 또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 또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는 작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여전히 알아보고 싶다고 한다. “지금껏 내가 선택한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 그것이 억울해서 지금껏 온 것이 아닌가....... 소설을 쓸 때에도 자신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 그러한 유년기를 보내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아주 힘들었던 적도 있었고, 아주 초라한 적도 있었으며, 내가 뭐 병상에 있는 사람보다는 나으니까 살자,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던 순간도 있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지금 자신의 삶이 좋다고 한다. 단순히 소설가라는 직업이 있다,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지금껏 살아오면서 “힘든 상황이 다 내 소설의 거름이 되어주니까....... 그리고 지금도 힘든 일이 있으면, 그래 나는 소설가니까 고통스러운 장면을 굉장히 가까이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자” 하고 냉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소설 쓰는 일 자체가 여러 가지를 면제해줘요. 고통 자체도 이것도 소설이 되겠지 뭐,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하고. 그런 것이 내 인생에 먹혀 들어가는 것 같고. 그런 일을 하고자 했다는 것이 행복하죠.”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 작가의 가장 큰 책무라고 생각하는 은희경 씨는 열심히, 재미있게 살아서 “내 인생을 모두 소설 속에 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렇게 인생을 담기 위해 작품을 준비할 때마다 새로 사는 공책 한 권과 국어사전. 미국으로 떠나기 전 작가는 여기에 민요집과 속담사전을 추가했다. 미국에 머물며 <문학동네>에 연재하기로 한 “1970년대를 배경으로, 너무 다른 형제들”에 관한 장편을 쓰기 위해서이다. 어차피 모두 타인일 수밖에 없어 슬픈 우리의 삶. “한 소설 내 마음에 들게 써야 한다는 강박”으로 만들어질 작가의 새로운 소설을 읽을 때 `나'와 `너' 사이는 얼마나 견고해졌을까. 시애틀에서 작가가 부디 건강하게 지내길 빌어본다.
“한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의 말>에 이제 오디션을 통과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하고 싶은 말을 소설을 통해 많이 했죠. 『마이너리그』 내고 오해를 많이 받아서 마음에 상처가 좀 있기도 했구요. 작년에는 글쓰기가 굉장히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고....... 이러한 것들이 지나니까 차분해지고, 또 면역력도 생긴 것 같아요.”
중편 「상속」은, 작가가 작년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계기로 쓴 소설이다. 작가는 아버지의 병을 알게 되고 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죽음과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소설이란 소설가의 현재”인 것. “이야기 속에 과거를 끌어냈든, 미래를 상상해놓았든 간에 거기에서 삶을 읽어내는 것은 현재의 눈이다.”
작가는 현재의 눈으로 삶을 읽어내지만, 작가의 관심사는 변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삶에서 배제된 힘없고 무력하고 불안한 존재의 쓸쓸함, “보이는 나와 보여지는 나”가 빚어내는 삶의 연극성, 그러므로 상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 관계.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삶을 객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에는 종종 냉소라고 이해되기도 하는 `거리 두기'가 동반된다.
“지금까지 소설 쓰면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해왔어요.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이, 그것이 왜 당연한 것인지 보려 했죠. 보통 소설에선 아버지의 죽음을 가족 관계 속에서 휴머니즘으로 다루는데, 저는 그렇게 쓰고 싶지 않었어요. 아버지의 성기랄지 지금까지 금기시하는 것들,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을 그대로 객관적으로 써보고 싶었어요. 달라진 점이라면, 그런 것들을 어필하기 위해 발랄하고 감각적으로 쓰지 않고, 좀 더 차분해졌다는 것.”
비취색이 감도는 푸른 상의를 입은 모습이 작가의 웃음만큼 밝고 산뜻하지만, 언뜻언뜻 섬세한 표정이 드러나는 작가는 “인생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굉장히 무력하고, 태어나 살아가기 위해 타인이 필요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연기가 필요한, 그런 것들이 맥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인간이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삶이 주어진 것이죠. 주어진 조건에서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건 자기 잘못도 아니고, 자기 의지대로 인생이 된다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해요. 「내가 살았던 집」에서 주인공의 딸이 두발 자전거를 혼자 타보려고 애를 썼다는 대목이 있는데 제 딸이 그랬어요. 딸이 자전거를 타려고, 혼자 뭔가를 해보려고 하다 그게 힘들어 머릿속에 땀이 가득 차 있는 거예요. 그때 가슴이 아팠어요. 그런 제한된 조건을 타고 태어난다는 것.”
어렸을 적 꿈이 자기 맘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인생의 쓸쓸함. 작가는 이러한 경쟁 사회 속에서 안간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연민을 느낀다고 한다. “「아내의 상자」에서 아내는 다수의 가치관 안에 들어가 있지 않지만 남편은 그 안에 있죠. 저는 그 남편에게 연민이 더 많아요.”
작가 역시 그렇게 `안간힘' 쓰며 살아 왔다. 어린 시절 그것은 `착한 아이'가 되는 것. “「딸기 도둑」은 어렸을 적 제 경험을 토대로 쓴 거예요. 딸기밭에 갔는데 아버지 친구 분이 딸기를 누구에게 가져다 주라고 했어요. 그런데 안 그랬거든요. 손수건에 싼 딸기가 으깨어졌는데, 무심코 그것을 먹었어요. 지금도 그 손수건이나 그런 것이 생각나요. 나중에 학교를 가서 그 아버지 친구 분을 만났는데 `너 이제 도둑이야',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너무 무서웠어요. 내가 도둑이어서 어른들이 나를 미워하면 어떡하나....... 공포였죠. 그 기억이 오랫동안 있어서 언젠가 그 이야기를 쓸 줄 알았어요.”
“어릴 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보지 못했다”는 작가는 이제는 엄연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작가는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 객원 연구원으로서 1년간의 삶을 선택했고, 7월 18일 한국을 떠난다. 또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 또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는 작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여전히 알아보고 싶다고 한다. “지금껏 내가 선택한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 그것이 억울해서 지금껏 온 것이 아닌가....... 소설을 쓸 때에도 자신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의식하는 것이 그러한 유년기를 보내서가 아닐까 생각해요.”
“아주 힘들었던 적도 있었고, 아주 초라한 적도 있었으며, 내가 뭐 병상에 있는 사람보다는 나으니까 살자,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았던 순간도 있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지금 자신의 삶이 좋다고 한다. 단순히 소설가라는 직업이 있다,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지금껏 살아오면서 “힘든 상황이 다 내 소설의 거름이 되어주니까....... 그리고 지금도 힘든 일이 있으면, 그래 나는 소설가니까 고통스러운 장면을 굉장히 가까이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자” 하고 냉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소설 쓰는 일 자체가 여러 가지를 면제해줘요. 고통 자체도 이것도 소설이 되겠지 뭐,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하고. 그런 것이 내 인생에 먹혀 들어가는 것 같고. 그런 일을 하고자 했다는 것이 행복하죠.”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 작가의 가장 큰 책무라고 생각하는 은희경 씨는 열심히, 재미있게 살아서 “내 인생을 모두 소설 속에 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렇게 인생을 담기 위해 작품을 준비할 때마다 새로 사는 공책 한 권과 국어사전. 미국으로 떠나기 전 작가는 여기에 민요집과 속담사전을 추가했다. 미국에 머물며 <문학동네>에 연재하기로 한 “1970년대를 배경으로, 너무 다른 형제들”에 관한 장편을 쓰기 위해서이다. 어차피 모두 타인일 수밖에 없어 슬픈 우리의 삶. “한 소설 내 마음에 들게 써야 한다는 강박”으로 만들어질 작가의 새로운 소설을 읽을 때 `나'와 `너' 사이는 얼마나 견고해졌을까. 시애틀에서 작가가 부디 건강하게 지내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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