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설 출간한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작가 츠지 히토나리
『냉정과 열정사이, Blu』의 작가로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츠지 히토부리…. 이번에 새로 나온 그의 소설 『편지』 책날개에 있는 그의 프로필을 들여다 보며 잠시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흐뭇함을 넘어서 ‘대단하다’라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력.
200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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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동경에서 태어나 1981년 록밴드 '에코즈'를 결성한 그는 뮤지션으로 활약하다가 1989년 소설 『피아니시모』를 발표, 스바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하였다. 그후 1997년 제116회 아쿠다가와 상을 수상한 『해협의 빛』, 1999년 생텍쥐페리 등이 수상한 프랑스 굴지의 페미나 상(외국소설 부문 상)을 수상한 『흰부처』 등의 작품은 그가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작가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국내에서도 이미 소개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냉정과 열정사이, Blu』의 작가인 그는 현재 일본과 프랑스를 오가며 꾸준히 작가, 뮤지션, 감독으로 활동하는 등 어느 한 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종합적인 예술적 표현방식을 꿈꾸는 개성과 열정을 갖춘 작가이다.”
『냉정과 열정사이, Blu』의 작가로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츠지 히토나리…. 이번에 새로 나온 그의 소설 『편지』 책날개에 있는 그의 프로필을 들여다 보며 잠시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흐뭇함을 넘어서 ‘대단하다’라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력. 게다가 아내 나카야마 미호(영화 <러브레터>의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와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외모가 발산하는 후광까지…. 소설 『편지』 출간 차, 그리고 한겨레신문사에서 주최하는 ‘행진 610’ 달리기 대회 참석차(그는 요즘 한겨레 신문에 소설가 공지영 씨와 함께 <먼 하늘 가까운 바다>를 연재 중이기도 하다) 방한한 그를 만났다. 6월 11일 토요일 아침에 만난 그는 전날 과음을 한 사람답지 않게 갈색 눈동자가 또렷했고, 사십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었다.
『편지』 는 어떤 책인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일이 생긴다. 사과를 할 수도 있고, 연애감정이 될 수도 있고…. 그 마음을 전하고는 싶지만 자기가 직접 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편지 대필가가 인생의 카운셀러 역할을 하는,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도 하고 해결을 해나가기도 하는 소설 같지 않은 형식을 빌린 소설이다. 작가로서…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소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신문사에서는 이 책을 에세이라고 소개를 하기도 했다. 에세이처럼 읽어도 상관은 없지만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 중 진짜는 하나도 없다. 모두 만든 이야기다.
『냉정과 열정사이, Blu』도 그렇고, 『사랑을 주세요』도 그렇고, 당신 소설에서는 편지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편지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나 매력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요즘 세상이 너무 속도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나도 휴대 전화나 메일을 많이 쓰지만 바로 바로 연락이 안오면 마음이 조급해지는 등 속도에 구애 받는 상황이 되는 것이 안타까운 것도 있다. 그리고 편지를 쓰는 것은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본다든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상대방에게 전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들이 시간이 걸린 만큼 상대에게 소중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나는 프랑스에서 살고 있어서 하루에 메일을 2~30통 정도 받는다. 대부분 일에 관계되는 것이 많지만 그러다가 편지를 받으면 너무나도 기쁘다. 이번 책 『편지』 작업도 편집자에게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어제 공항에서 올 때 우체국이 보였다. 외국에서 봤을 때 한국은 IT 대국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편지도 안 쓸 것 같았는데.. 우체국에서 직접 편지를 부치는 사람들이 있어서 굉장히 반가웠다. 또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서는 자전거로 편지를 배달쿇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있을 것이고 시간이 걸리면서 천천히 전해지는 만큼 사람의 마음도 더 잘 전달되리라 생각한다.
앨범이 100만 장 이상 팔렸을 정도로 인기 뮤지션이었는데도 글쓰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원래 작가지망생이었다. 요즘엔 십 대나 이십 대 작가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당시에는 아주 젊은 사람들이 글을 쓰지도 않았고 또 내가 생각하기에 글은 좀 더 내공이 쌓인 사람이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 오십 대, 육십 대 사람이 신인으로 나올 수도 있는 거라 생각을 한다. 음악은 젊은 혈기로 내 안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에코즈라는 그룹이었는데 굉장히 메시지가 강한 음악을 하는 밴드였다. 젊었을 때 그런 것들이 한 번 걸러진 후에,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 글과 영상이 되었다.
처음 소설을 구상할 때의 심정은 어떠한가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물을 우선 설정하고 그 인물에 살을 찌우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작업이어서 나에게 소설가라는 직업이 참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는 가타베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업으로 하는 직업이 있는데 그런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쓰게 만드는가?
모르겠다. 만약 그걸 알면 작품을 안 쓸 듯 하다. 내가 무엇 때문에 작품을 쓰는가를 추구 하는 과정 자체가 작품을 쓰는 것이 아닐까…. 잠을 자다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이야기가 번뜩이는 순간이 있다. 마치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느낌이 드는데 내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천명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써야만 견딜 수 있다.
요즈음의 소설적 화두는 무엇인가
최근 몇 작품은 세계와 지금의 나와의 관계이다. 유럽에 있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9.11 테러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이라크 전쟁 후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지… 이런 것에 관심이 많다. 예를 들어서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서 테러를 했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와 다른 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것을 제 3의 전쟁 즉 테러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라는 말로 얘기를 하는데, 그것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다. 그런 것이 최근의 작품이기도 하고 생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연애소설류만 소개되고 있다.
내 작품이 반반이다. 반은 독자들이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소설이고, 또 반은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인 것이 많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략적으로 너무 연애소설류만 소개가 되어서 상당히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한국과는 정 반대로 굉장히 철학적, 종교적, 관념적인 작품들이 주로 번역된다. 에이전트에게 『냉정과 열정 사이』 번역 얘기를 했더니,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했다. 연애 소설류에 유럽사람들은 아시아 사람들만큼의 관심이 없다.
소설을 읽었을 때도 그렇고, 이렇게 실제로 봐도 그렇고... 당신에게선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인가
소설가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중 하나가 관록인데 내게는 그것이 없어서 소설가로서 마이너스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내 또래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그 사람이 굉장히 나이 들게 느껴진다. 외모적인 부분도 있지만 일상에 지쳐있는 모습들이 그런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격이다. 늘 누군가를 만나고 어딘가로 여행을 간다든지 끊임 없이 새로운 뭔가를 추구한다. 내 안의 열정이라는 에너지가 젊게 보이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러다 보면 물론 싫은 일들도 생길 수 있겠지만 싫은 일을 싫게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해서 다른 방향으로 틀어갈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한 곳에 정지해 있지 않은 것이 시간을 역행해가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냉정과 열정사이, Blu』의 성공 이후 삶에 무슨 변화가 생겼는가?
그 책이 성공해서 나에게 변화가 왔다기 보다는 다른 작가들과 작업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굉장히 의미가 크다. 작가들은 자신의 세계가 굉장히 강하고, 고독하고, 상대방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작업을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 씨와의 그리고 지금 공지영 씨와의 작업을 하면서 거기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 새로운 세계관에로의 열림 등이 나에게 주어졌다. 요즘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양국 간에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쩌면 지금이 <먼 하늘 가까운 바다>를 연재하는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는 남녀를 불문하고 세계의 작가들과 이런 작업을 한번 해보고 싶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한가
이번이 여섯 번 째 방한이다. 횟수를 거듭할 때마다 그립고 반가운 느낌이 든다.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방문할 때마다 일본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 또 그런 반면 IT 대국답게 굉장히 선진화된 곳이 이렇게 신과 구가 잘 조화가 될 수 있을까 감탄하기도 한다. 아마 한글이 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문 즉 표의문자를 버림으로써 사람들이 눈으로 봤을 때 들어오는 의미를 잃어버린 것은 있겠지만 대신 한글이라는 표음문자가 들어왔을 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라는 것을 언젠가 찬찬히 생각해보고 싶다. 길을 다니다 보면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큰 차이를 못 느끼는데 한글 간판이 갖고 있는 강렬함은 잊을 수 없을 듯 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랍권 글자를 볼 때의 그 강렬함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유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은데 유럽은 닫혀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다가가기가 어렵지만 한국은, 훨씬 더 쉽게 다가가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류 붐도 지금까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제대로 못 봤다가 한번 관심을 가지고 보니까… ’이런 것도 있었네’하며 놀라는 것이 아닐까…
프랑스에서 거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얼굴이 많이 알려져서 편안하게 길을 다닐 수가 없다. 그래서 조용하게 편안하게 지낼만한 곳을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또 페미난 상을 받아서 프랑스에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이 한 이유이다. 하루키도 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듯이 자신이 있는 곳에서 떨어져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조명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고... 또 프랑스 자체가 예술가에게 많이 열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냉정과 열정사이, Blu』의 작가로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츠지 히토나리…. 이번에 새로 나온 그의 소설 『편지』 책날개에 있는 그의 프로필을 들여다 보며 잠시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흐뭇함을 넘어서 ‘대단하다’라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력. 게다가 아내 나카야마 미호(영화 <러브레터>의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와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외모가 발산하는 후광까지…. 소설 『편지』 출간 차, 그리고 한겨레신문사에서 주최하는 ‘행진 610’ 달리기 대회 참석차(그는 요즘 한겨레 신문에 소설가 공지영 씨와 함께 <먼 하늘 가까운 바다>를 연재 중이기도 하다) 방한한 그를 만났다. 6월 11일 토요일 아침에 만난 그는 전날 과음을 한 사람답지 않게 갈색 눈동자가 또렷했고, 사십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었다.
『편지』 는 어떤 책인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일이 생긴다. 사과를 할 수도 있고, 연애감정이 될 수도 있고…. 그 마음을 전하고는 싶지만 자기가 직접 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편지 대필가가 인생의 카운셀러 역할을 하는,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도 하고 해결을 해나가기도 하는 소설 같지 않은 형식을 빌린 소설이다. 작가로서…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소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신문사에서는 이 책을 에세이라고 소개를 하기도 했다. 에세이처럼 읽어도 상관은 없지만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 중 진짜는 하나도 없다. 모두 만든 이야기다.
『냉정과 열정사이, Blu』도 그렇고, 『사랑을 주세요』도 그렇고, 당신 소설에서는 편지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편지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나 매력을 뭐라고 생각하는가?
요즘 세상이 너무 속도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나도 휴대 전화나 메일을 많이 쓰지만 바로 바로 연락이 안오면 마음이 조급해지는 등 속도에 구애 받는 상황이 되는 것이 안타까운 것도 있다. 그리고 편지를 쓰는 것은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본다든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거나 상대방에게 전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들이 시간이 걸린 만큼 상대에게 소중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나는 프랑스에서 살고 있어서 하루에 메일을 2~30통 정도 받는다. 대부분 일에 관계되는 것이 많지만 그러다가 편지를 받으면 너무나도 기쁘다. 이번 책 『편지』 작업도 편집자에게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어제 공항에서 올 때 우체국이 보였다. 외국에서 봤을 때 한국은 IT 대국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편지도 안 쓸 것 같았는데.. 우체국에서 직접 편지를 부치는 사람들이 있어서 굉장히 반가웠다. 또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서는 자전거로 편지를 배달쿇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있을 것이고 시간이 걸리면서 천천히 전해지는 만큼 사람의 마음도 더 잘 전달되리라 생각한다.
앨범이 100만 장 이상 팔렸을 정도로 인기 뮤지션이었는데도 글쓰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원래 작가지망생이었다. 요즘엔 십 대나 이십 대 작가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당시에는 아주 젊은 사람들이 글을 쓰지도 않았고 또 내가 생각하기에 글은 좀 더 내공이 쌓인 사람이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 오십 대, 육십 대 사람이 신인으로 나올 수도 있는 거라 생각을 한다. 음악은 젊은 혈기로 내 안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에코즈라는 그룹이었는데 굉장히 메시지가 강한 음악을 하는 밴드였다. 젊었을 때 그런 것들이 한 번 걸러진 후에,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 글과 영상이 되었다.
처음 소설을 구상할 때의 심정은 어떠한가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물을 우선 설정하고 그 인물에 살을 찌우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작업이어서 나에게 소설가라는 직업이 참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는 가타베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업으로 하는 직업이 있는데 그런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쓰게 만드는가?
모르겠다. 만약 그걸 알면 작품을 안 쓸 듯 하다. 내가 무엇 때문에 작품을 쓰는가를 추구 하는 과정 자체가 작품을 쓰는 것이 아닐까…. 잠을 자다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이야기가 번뜩이는 순간이 있다. 마치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느낌이 드는데 내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천명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써야만 견딜 수 있다.
요즈음의 소설적 화두는 무엇인가
최근 몇 작품은 세계와 지금의 나와의 관계이다. 유럽에 있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9.11 테러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이라크 전쟁 후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지… 이런 것에 관심이 많다. 예를 들어서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서 테러를 했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와 다른 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것을 제 3의 전쟁 즉 테러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라는 말로 얘기를 하는데, 그것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다. 그런 것이 최근의 작품이기도 하고 생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연애소설류만 소개되고 있다.
내 작품이 반반이다. 반은 독자들이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소설이고, 또 반은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인 것이 많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략적으로 너무 연애소설류만 소개가 되어서 상당히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한국과는 정 반대로 굉장히 철학적, 종교적, 관념적인 작품들이 주로 번역된다. 에이전트에게 『냉정과 열정 사이』 번역 얘기를 했더니,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했다. 연애 소설류에 유럽사람들은 아시아 사람들만큼의 관심이 없다.
소설을 읽었을 때도 그렇고, 이렇게 실제로 봐도 그렇고... 당신에게선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인가
소설가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중 하나가 관록인데 내게는 그것이 없어서 소설가로서 마이너스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내 또래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그 사람이 굉장히 나이 들게 느껴진다. 외모적인 부분도 있지만 일상에 지쳐있는 모습들이 그런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격이다. 늘 누군가를 만나고 어딘가로 여행을 간다든지 끊임 없이 새로운 뭔가를 추구한다. 내 안의 열정이라는 에너지가 젊게 보이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그러다 보면 물론 싫은 일들도 생길 수 있겠지만 싫은 일을 싫게 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해서 다른 방향으로 틀어갈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한 곳에 정지해 있지 않은 것이 시간을 역행해가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냉정과 열정사이, Blu』의 성공 이후 삶에 무슨 변화가 생겼는가?
그 책이 성공해서 나에게 변화가 왔다기 보다는 다른 작가들과 작업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굉장히 의미가 크다. 작가들은 자신의 세계가 굉장히 강하고, 고독하고, 상대방을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작업을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 씨와의 그리고 지금 공지영 씨와의 작업을 하면서 거기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 새로운 세계관에로의 열림 등이 나에게 주어졌다. 요즘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양국 간에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쩌면 지금이 <먼 하늘 가까운 바다>를 연재하는 가장 좋은 시기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는 남녀를 불문하고 세계의 작가들과 이런 작업을 한번 해보고 싶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한가
이번이 여섯 번 째 방한이다. 횟수를 거듭할 때마다 그립고 반가운 느낌이 든다. 비단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방문할 때마다 일본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 또 그런 반면 IT 대국답게 굉장히 선진화된 곳이 이렇게 신과 구가 잘 조화가 될 수 있을까 감탄하기도 한다. 아마 한글이 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문 즉 표의문자를 버림으로써 사람들이 눈으로 봤을 때 들어오는 의미를 잃어버린 것은 있겠지만 대신 한글이라는 표음문자가 들어왔을 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라는 것을 언젠가 찬찬히 생각해보고 싶다. 길을 다니다 보면 여기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큰 차이를 못 느끼는데 한글 간판이 갖고 있는 강렬함은 잊을 수 없을 듯 하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랍권 글자를 볼 때의 그 강렬함과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유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은데 유럽은 닫혀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다가가기가 어렵지만 한국은, 훨씬 더 쉽게 다가가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류 붐도 지금까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제대로 못 봤다가 한번 관심을 가지고 보니까… ’이런 것도 있었네’하며 놀라는 것이 아닐까…
프랑스에서 거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얼굴이 많이 알려져서 편안하게 길을 다닐 수가 없다. 그래서 조용하게 편안하게 지낼만한 곳을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또 페미난 상을 받아서 프랑스에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이 한 이유이다. 하루키도 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듯이 자신이 있는 곳에서 떨어져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조명해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고... 또 프랑스 자체가 예술가에게 많이 열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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