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롱한 언어로 형상화된 와인의 세계 - 『신의 물방울』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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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만화에 이어 와인 만화까지 봐야 할까? 음식이야 늘 먹는 것이지만 와인은 아직까지도 사치품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금 망설였지만, 아기 타다시가 쓰고 오키모토 슈가 그린 『신의 물방울』을 보자 이내 와인의 세계에 빨려들었다. 와인은 테루아르, 도멘, 빈티지의 3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테루아르는 흙, 즉 포도가 생산되는 토양이 어떤 것인가를 말한다. 도멘은 포도를 재배하고, 다양한 기술을 통하여 와인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자, 즉 장인을 말한다. 빈티지는 어느 해에 만들어졌는지를 말한다. 포도가 흉작인지, 풍작인지, 그 해의 기후가 어땠는지에 따라 포도의 질이 달라진다. 이런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한 병의 와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천, 지, 인의 모든 요소가 극적으로 결합되었을 때 최고의 와인이 만들어진다. 하늘의 뜻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욕심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와인은 인간과 자연의 위대한 결혼인 것이다.

당대 최고의 와인평론가로 꼽히는 칸자키 유타카의 아들 칸자키 시즈쿠. 유타카는 아들 시즈쿠가 어릴 때부터 가죽이나 나무 등 다양한 물질의 냄새를 맡아보게 하고, 희한한 열매를 간식으로 먹이는 등 이상한 훈련을 시켰다. 아버지의 목적은 하나였다. 자신이 매혹된 와인의 세계를 아들 역시 경험하게 만드는 것. 모든 훈련은 와인의 세계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영재교육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즈쿠는 와인을 거부하고 타이요 맥주의 영업사원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아버지가 죽은 후 공개된 유언장에는 기묘한 조건이 붙어 있다. 일주일 전에 양자로 입적된 촉망받는 와인 평론가 토미네 잇세와 대결을 펼쳐, 칸자키 유타카가 고른 12병의 위대한 와인과 그 정점에 서 있는 ‘신의 물방울’이라 불린 환상의 와인 1병이 무엇인지 알아맞히라는 것이다. 승자는 유타카가 평생 걸려 모은 20억 엔 상당의 와인 컬렉션을 갖게 된다.

『신의 물방울』도 일반적인 요리만화처럼 대결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시즈쿠가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시즈쿠는 다른 음식만화의 주인공들과는 조금 다르다. 와인 영재훈련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시즈쿠는 와인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도 없다. 와인의 향을 맡고, 마시면 어떤 맛과 느낌이 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지만 구체적인 와인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 흔히 말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는 라벨을 감춘 채 와인을 마신 후, 와인의 종류와 연도를 맞추는 것이다. 시즈쿠는 와인의 차이는 구별해내도, 와인의 종류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시즈쿠에게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 소믈리에 수업을 받고 있는 시노하라 미야비. 와인을 느끼는 감각은 뒤떨어지지만, 와인에 대한 지식만큼은 누구보다도 해박하다. 각각 재능과 지식을 나누어 가진 시즈쿠와 미야비가 콤비를 이루어 토미네 잇세와 대결한다.

시즈쿠와 토미네의 대결을 보면, 그들이 와인에 대해 평가하는 ‘말’에 놀라게 된다. 시즈쿠는 ‘녹아내리는 듯한 단 맛과 톡 쏘는 듯한 신맛’의 2001년산 샤토 몽 페라를 마시면서 퀸의 락 음악을 떠올린다. 와인의 맛에서 가장 무도회를 떠올리기도 하고, 회전목마가 연상되기도 한다. 깊은 숲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 나타나기도 한다. 시즈쿠와 잇세는 와인을 마치 그림을 보듯이 아름다운 언어로 형상화해낸다. 다른 와인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미야비가 일하는 레스토랑의 주인 소이치로는 젊은 시절 사랑했던 프랑스 여인이 가져온 최고급 와인 크로 파랑투를 마시면서 이별을 느꼈다. 귀족인 그녀와의 신분 차이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소이치로에게 진정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함께 있고 싶다’라는 말이었다. 크로 파랑투의 이미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와인에 빠진 이들은 와인을 통하여 대화를 하고, 사랑을 나누고, 영혼을 교감한다. 아버지가 시즈쿠에게 그토록 ‘시집을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들어라’라고 말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가 마신 와인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예술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대지의 느낌을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신의 물방울』을 보고 있으면, 와인에 대한 지식을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경외심까지 든다. 와인의 세계가 이토록 오묘한 것인지 처음 알았다. 와인에 대한 책을 볼 때도 미처 느끼지 못한 매력이었다. 또한 『신의 물방울』은 와인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을 모두 알려준다. 프랑스의 보르도 와인과 부르고뉴 와인이 어떻게 다른 지부터 시작하여, 5대 샤토가 무엇인지, 최고의 와인이란 어떤 것인지 등 와인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만화로는 부족하여, 각 권마다 충실한 부록에서 따로 설명해준다. 『신의 물방울』을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목록을 만들어 와인 구입에 나서고 싶은 생각이 든다. 최고급와인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저가이지만 좋은 와인도 함께 알려주니까 실용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와인 이전에, 와인을 마시는 사람이다. 『신의 물방울』은 ‘즐겁게 와인을 마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 있다. 첫 번째 사도를 맞추는 대결을 통해 시즈쿠는 알게 된다. 아버지가 고른 와인은 결코 완벽한 와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불완전하지만, 어딘가 매력이 있는 와인’을 사랑했다. ‘불완전하면서도, 결핍을 보충하고 남을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지인의 조화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 와인’이라면, 완벽한 축복 속에 탄생한 와인보다는 절실한 바람과 치열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와인이 더욱 매력적일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듯이.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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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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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싶은 베스

2008.08.26

만화로도 재미있고 정보를 준다는 점은 좋지만... 전 글쎄... 묘사가 너무 심해요.^^;; 그림이나 음악이 펼쳐진다는 것은 그냥 맘에 안드네요.. 개인취향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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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보스

2006.11.01

이눔 "신의 물방울" 때문에 지갑이 비어요 ㅠㅠ 와인을 끊어야 하는 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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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 1

<아기 타다시> 글/<오키모토 슈>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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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타다시

10여 년 전부터 함께 일해 온 기바야시 신(樹林伸), 기바야시 유코(樹林 ゆう子) 남매의 공동 필명으로, 이 외에도 공동 혹은 한 명이 사용하는 아리모리 조지(有森丈時), 아마기 세이마루(天樹征丸), 아오키 유야(靑樹佑夜), 안도 유마(安童夕馬), 이가노 히로아키(伊賀大晃) 등의 필명이 있다. 흔히 누나인 기바야시 유코를 '아기 타다시 A', 동생인 기바야시 신은 '아기 타다시 B'로 나눠 부른다. 이 두 사람은 와인을 소재로 하여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신의 물방물』 뿐만 아니라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 (한국 출간명 『소년탐정 김전일』)』, 『시바토라』 등 대히트작들을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여러 개의 필명을 사용하는 작가이다보니 베일에 가려진 부분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표면상으로 동생인 기바야시 신의 프로필만이 떠올라 있었지만, 두 사람의 공동필명이란 사실이 밝혀지며 세계의 만화시장을 한 번 더 들썩였다. 아기 타다시 A, 누나인 기바야시 유코는 아기 콤비로서의 활동 이외에도 개인적으로는 여성지에서의 만화 원작 및 르포 기사 게재 등 프리 저널리스트로서 정열적으로 활동을 펴고 있다. 아기 타다시 B, 동생 기바야시 신은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졸업하였고, 1987년 <주간 소년 매거진>에 입사하여 다년간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이후 독립하여 만화 스토리 작가, 소설가, 드라마 기획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 뿐만 아니라 와인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신의 물방울』은 두 사람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작품이다. 5분 거리에 살며 아파트 한 채를 빌려 공동의 와인셀러로 만들고, 거의 매일 만나 함께 와인을 마시며 서로의 느낌을 이야기하며 그 과정에서 스토리를 이끌어낸다는 그들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공동 집필을 한다고 한다. 독특하면서도 기발한 스토리로 다양한 팬층을 갖고있는 이들의 행보는 앞으로도 거침없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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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글 쓰는 일이 좋아 기자가 되었다.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를 만들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 소설, 만화를 좋아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연스레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내 안의 음란마귀』 『좀비사전』 『탐정사전』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등을 썼다. 15년 이상의 직장 생활, 7, 8년의 프리랜서를 경험하며 각양각색의 인간과 상황을 겪었다. 순탄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통과하고픈 생각은 별로 없는 그 시기를 거치며 깨달았다. 직장인과 프리랜서 모두 쉽지 않고,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 월급도 자유도 결국은 선택이고, 어느 쪽도 승리나 패배는 아니라는 것. 모든 이유 있는 선택 뒤엔 내가 감당해야 할 후폭풍이 남는다는 것. 다 좋다. 결국은, 지금의 내가 있으니까. 2007년부터 13년간 상상마당 아카데미 ‘전방위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쌍은 경험과 노하우를 이 책에 그대로 풀어냈다. 글쓰기 초보자에게 글을 잘 쓸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준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모든 이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할 것이라 확신한다. 주요 저서에는 『전방위 글쓰기』(2008), 『영화 리뷰 쓰기』(2008),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2012), 『나의 대중문화표류기』(2015),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미스터리』(2015),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호러』(2016), 『고우영』(2017) 등이 있다. 공저로도 『클릭! 일본문화』(1999), 『시네마 수학』(2013), 『탐정사전』(2014),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웹소설 작가 입문』(2017)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