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앞둔 이들에게 바치는 달콤한 각성제 - 간단하고 진한 초콜릿 트러플
200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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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당밀 캔디 파티를 했어요. 퍼거슨관의 사감선생님께서 방학 동안 기숙사에 남은 다른 건물의 학생들까지 모두 불러 마련한 파티였어요. (…) 정말 즐거웠어요. 생각만큼 근사한 캔디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캔디 만들기가 끝나자 우리는 물론이고 부엌이며 문손잡이가 온통 끈적거렸어요 그래도 우리는 흰 모자와 앞치마 차림으로 손에 손에 커다란 포크나 스푼, 아니면 프라이팬을 들고 텅 빈 복도를 지나 교수님들과 강사님들 절반 정도가 조용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는 교수실까지 행진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교가를 합창하며 우리가 만든 캔디를 대접했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정중하게 당밀 캔디를 받으셨지만 왠지 못 미더워하시는 것 같았어요. 우리가 그곳을 나올 때 보니 선생님들께서는 당밀 캔디 덩어리와 씨름하시느라 온통 끈적끈적해져서 말씀도 제대로 못 하셨어요.
- 진 웹스터Jean Webster, 『키다리 아저씨Daddy-Long-Le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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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멜은 설탕과 물을 섞어 가열해 만드는데 원래 캐러멜은 물과 설탕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 색이 갈색으로 변하기 전에 요리 전문용어로 부드러운 볼, 단단한 볼 등, 살짝 건져서 찬물에 넣었을 때 뭉치는 정도로 단계를 나눠 머랭meringue이나 버터크림, 사탕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데, 순수한 캐러멜이 사용되는 요리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아마 커스터드 푸딩 아닐까? 부드러운 커스터드와 적당히 쓰고 단 캐러멜, 찌듯이 구워내는 이 푸딩은 상당히 잘 만들기 어려운 요리인데 적절한 맛을 찾아내기가 참 힘들었다. 색으로 기억하고 요리를 하더라도, 한번 열 받은 캐러멜은 순식간에 타버리기 때문에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연습을 반복하다 데인 상처가 7년이 지난 지금에야 좀 희미해졌다. 오븐과 기름도 뜨겁지만 캐러멜과는 상대가 안 된다. 무엇보다 튀어서 붙으면, 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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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피는 시럽이 들어가 쫀득쫀득 씹을 수 있는 캔디인데 캐나다와 버몬트 등 메이플 시럽이 나는 곳에서 겨울철에 즐겨먹는 간식인, 펄펄 끓는 메이플 시럽을 차가운 눈 위에 부어 만든 메이플 태피가 유명하다. 겨울에 주디도 눈 위에 시럽을 부어 친구들과 태피를 만들어 먹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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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틀과 누가, 프랄린 모두 견과류가 듬뿍 들어간 사탕들이다. 그중에서도 고급인 누가에는 땅콩을 제외한 견과류들과 말린 과일이 들어가고 뜨거운 캐러멜 안에 견과류를 넣어 굳히는 브리틀과 프랄린은 비슷하지만 브리틀은 자체를 캔디처럼 먹고 프랄린은 곱게 갈아서 초콜릿에 넣거나 케이크에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 좀 다르겠다.
사탕가게에 관한 글이라면 「이해의 선물」처럼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글이 또 있을까? 이 짧지만 마음 먹먹해지는 글이, 아직도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지 모르겠다.
간신히 그 가게를 찾아 커다란 문을 열었을 때 귀에 들려오던 그 방울 소리를 지금도 나는 뚜렷이 기억한다.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천천히 진열대 앞으로 걸어갔다.
이쪽엔 박하 향기가 나는 납작한 박하사탕이 있었다. 그리고 저쪽엔 말갛게 설탕을 입힌 말랑말랑하고 커다란 검드롭스, 쟁반에는 조그만 초콜릿 알사탕, 그 뒤에 있는 상자에는 입에 넣으면 흐뭇하게 뺨이 불룩해지는 굵직굵직한 눈깔사탕이 있었다. 단단하고 반들반들하게 짙은 암갈색 설탕 옷을 입힌 땅콩을 위그든 씨는 조그마한 주걱으로 떠서 팔았는데, 두 주걱에 1센트였다. 물론 감초 과자도 있었다. 그것은, 베어 문 채로 입안에서 녹여 먹으면 꽤 오래 우물거리며 먹을 수 있었다. 이만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내가 이것저것 골라 내놓자, 위그든 씨는 나에게 몸을 구부리며 물었다.
“너, 이만큼 살 돈은 가지고 왔니?”
“네.”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는 주먹을 내밀어, 위그든 씨의 손바닥에 반짝이는 은박지에 정성스럽게 싼 여섯 개의 버찌씨를 조심스럽게 떨어뜨렸다.
- 폴 빌리어드 Paul Villiard, 「이해의 선물The Gift of Understanding」
어린이의 동심을 해치지 않으려는 위그든 씨의 이해심이 감동적인 소설임에는 분명했지만, 선생님은 글을 해석하고, 주제를 뽑아 메모하게 하시면서도 이 사탕들의 맛이 어떤지는 전혀 말씀해주지 않으셨다. 그때 아이들 사이에 가장 유행하던 사탕은 자두맛 사탕과 버터스카치 바나나 맛, 다른 맛의 사탕으로 상상력을 넓혀 가보려 해도 땅콩 누가 정도가 전부였다. 감초사탕의 맛을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본 것도 그 글을 읽고 10년이나 지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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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는 연극은 반드시 처음 상연하는 날 관람하는 법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 밤 극장이나 무도회에 나다녔다. 새로운 연극이 상연될 때마다 꼭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또 그녀가 으레 차지하는 아래층 특별석 앞자리에는 언제나 그녀를 떠나지 않는 세 가지 물건, 쌍안경과 눈깔사탕과 동백꽃 한 다발이 놓여있었다. 동백꽃은 한 달에 25일간은 흰 동백꽃이었고, 나머지 5일 동안은 붉은 꽃이었다.
“눈깔사탕을 사러 가는 거야 그 여자가 부탁했어.” 하고 그는 대답하더군요. 우리는 오페라 휴게실의 과자점으로 들어갔어요. 나는 갑자기 그 가게 과자를 다 사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과자 봉지에다 무슨 과자를 사 넣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내 친구가 그때 주문을 하더군요.
“포도사탕을 반 킬로 주세요.”
“그걸 좋아할까?”
“그 여자는 이 사탕밖에는 먹지 않아, 그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
- 알렉산드르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 『춘희La dame aux Camel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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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하룻밤 사랑에 익숙한 마르그리트에게 입 안에서 금방 녹아버리는 작은 봉봉처럼 어울리는 음식은 또 없겠지. 쉽고, 간단하게, 달콤하게 녹아버리는 초콜릿. 그녀를 사랑하게 된 그는 아마도 그렇게 잊혀지기 싫어 가게 안의 사탕을 다 사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진짜 낭만은 여자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기억해 두었다 주문하는 모습에서 철철 넘쳐난다고 느낀다.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말하고 여러 번 이야기해도 결국에는 틀린 것을 사다 주는 남자를 주로 만나와서 그런가보다.
개인적으로 단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굳이 캐러멜이나 캔디를 포함한 사탕류와 초콜릿에서 좋아하는 종류를 고르라면 내 취향은 초콜릿이다. 팥과 설탕의 단맛을 잘 못 참는 (고로 양갱은 나의 개인적인 기피음식 1호) 나인지라 사탕을 다 녹을 때까지 먹어본 적 또한 참 드물다. 먹다가 혀가 쪼글쪼글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도 왠지 싫고 말이다.
초콜릿도 100% 덩어리보다는 킷캣처럼 웨이퍼 위에 살짝 초콜릿을 입혔거나 아몬드를 넣은 종류들로만 가끔 먹는 편이었는데, 요리를 시작하고부터는 카카오 함량이 높은 쓴맛의 초콜릿들을 만나게 되어 무척 행복하다. 재료를 이용해 스스로 맛있는 배합과 맛을 찾아내고 싶어 하는 요리사의 본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랑의 맛이라고 일컬어지는 초콜릿에 단맛만 있다면 그것이 어찌 진정한 사랑을 맛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생이고 사랑이고 쓰고 신맛이 더 강한 법인데.
원래 다른 나라들이 다 그렇듯, 2월 14일날 서로 초콜릿 주고받아야 한다는 궐기대회가 있으면 참여하고 싶을 정도로 여자들이 3월 14일날 사탕을 받아야 하는 화이트 데이라는 것도 나는 별로다. 사탕보다 초콜릿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 무엇보다 좋아한다고 초콜릿을 안겨놓았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지게 되어 못 받게 되었을 때 두 배로 억울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그렇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고, 거절당하는 것도 14일 하루면 족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어가고 연애 경험이 늘어가도, 담력이 커지거나 거절에 익숙해지는 방법은 절대 배울 수 없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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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연애처럼, 질 좋은 초콜릿을 쓰고, 초콜릿이 타거나 크림이 눌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충분히 맛이 배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 시간을 들여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도 바로 사랑과 초콜릿의 같은 점 아닐까?
초콜릿은 연애를 시작하려 하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각성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전쟁터에서 생사가 걸린 싸움을 하러 나가는 군사들에게 기운 내라고 초콜릿을 녹여 먹였듯이, 사람과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든 인간 감정의 치열한 전쟁터인 연애를 시작하고픈 이들이 상대와 스스로에게 기운을 주기 위해서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이 아닐까.
모두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드는 맛을 느끼며 잠시나마 괴로운 것을 잊고 다시 삶과 싸울 준비를 갖춰 보자. 아직은 쌀쌀한 2월의 날씨와, 이젠 힘들다는 말을 반복하기도 지겨운 세상일들로부터, 무엇보다도 갈수록 더 쓰디 써질 우리들의 사랑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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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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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anwlro
2009.02.15
특히, 내용중에 이 말이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연애처럼, 질 좋은 초콜릿을 쓰고, 초콜릿이 타거나 크림이 눌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충분히 맛이 배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 시간을 들여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도
바로 사랑과 초콜릿의 같은 점 아닐까?
그리운시냇가
2009.02.15
한껏 돋우는 것 같네요.^^
특히, 위그든 아저씨 사탕가게에서 파는 아주 커다란 눈깔사탕(Gobstopper)은 무척
색다르고도 재미가 있네요.^^
pak5979
2009.02.15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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