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생선 가게에서 길어낸, 세계적인 명성의 차이를 만드는 법 - 『HOW? 물고기 날다』 유영만 교수
갑자기 기운이 뚝 떨어져 겨울을 온몸으로 맞이한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 전문점에서 물고기가 날았다. 무슨 말이냐고? 미국 시애틀의 34평짜리 생선 가게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명소가 된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의 이야기, 『HOW? 물고기 날다 :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에서 생존의 길을 묻다』의 출간을 기념해 독자 만남이 있었다.
200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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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기운이 뚝 떨어져 겨울을 온몸으로 맞이한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 전문점에서 물고기가 날았다. 무슨 말이냐고? 미국 시애틀의 34평짜리 생선 가게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명소가 된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의 이야기, 『HOW? 물고기 날다 :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에서 생존의 길을 묻다』(존 요코하마?죠셉 미첼리 지음|유영만 옮김/한국경제신문?한경BP 펴냄)의 출간을 기념해 독자 만남이 있었다. 이 책을 옮긴 유영만 교수와 독자들이 만난 격식 없는 자리. 소담하면서도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생생하게 이야기를 나눈 현장, 유영만 교수와의 특별한 만남을 소개한다.
이 자리, 다양한 직업군의 독자들이 함께했다. ‘물고기를 날게 하고 싶다’는 바람을 지닌 커피 가게를 하는 여성 독자를 비롯하여, 11년째 보험 일을 하고 있다는 한 보험 회사 지점장, 큰 강연 자리인 줄 알고 왔다는 중학교 교사, 유 교수를 무척 보고 싶었다는 출판사 편집자, 미래가 불확실한 것이 불안한 대학 1학년생 등등 각기 다른 위치의 사람들.
물고기, 어떻게 날게 되었나
유영만 교수의 첫 마디는 세일(Sale), 즉 영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우리말로 하면 ‘살래’ 아니냐. (웃음) 영업은 세상 사는 사람 모두가 하는 일 같다. 세일즈맨뿐만 아니라 나도 아이디어를 책으로 만들어서 ‘살래?’라고 하잖나. 정치가는 정치 비전을 팔아야 하고, 기업은 고객들에게 상품을 팔아야 한다. 이번에 물고기 책을 번역했는데, 느낀 것 중의 하나는 ‘불가능은 없다’라는 거다. 벽이라고 하는 게, 물리적인 게 아니고 심리적 장벽인 경우가 많다. 생각의 장벽들을 깨는 그런 책을 많이 쓰고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김제동 씨가 그랬는데, 사람이 책을 만드는 게 아니고,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옮긴이 입장에서 『HOW? 물고기 날다』는 어떤 책이었을까. 잠깐 책을 들춰보면, 이렇다. 책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생선 가게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의 사장, 존 요코하마는 일본계로 난민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등 어렵게 자랐다. 야채 가게를 하는 아버지를 돕다가 선창가에서 일을 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생선 가게를 경영하게 됐다.
그는 초창기, 독불장군이었단다. 어떻게 하면 키울 것인지도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짐이라는 경영 컨설턴트에게 컨설팅을 받았다. 내키지 않았지만, 3년 동안에 효과가 없으면 돈을 안 받겠다는 제안이었다. 컨설팅을 받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이라는 비전이 세워졌다. “생각해보라. 이 허름한 생선 가게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선 가게가 된다니,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비웃잖나. 그러나 결과적으로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은 시애틀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로 바뀌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1980년대 초반이 되자 나는 혼자서 가계의 모든 책임을 지는 데 지쳐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이러한 삶은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성 계발 강좌에 등록했다. 강좌를 통해 지금까지 나 자신이 닫힌 마음을 갖고, 다른 사람을 믿지 않으며,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을 꺼려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의 욕망을 위해 독재자처럼 행동했던 것이다.”(p.25)
그렇다. 우연하게 들었던 인성 교육이 사람을 바꿨다. 독불장군이었던 존, “직원을 가족처럼 끌어안고 끝까지 얘기를 들어주고, 가게를 단순히 생선 파는 데가 아니라 고객들을 행복하게,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주겠다는 곳으로 변화시켰다. 대단한 생각 아니냐. 생선을 팔아 수익만 올리겠다는 게 대개의 생선 장수인데, 이 사람은 세계 평화까지 주장한다. 중간에 부도 위기까지 넘기면서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키웠다.”
이 책은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성공 비결이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생산만 취급하는 하찮은 시장통 사람들이 아닌가?”(p.34)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물고기를 통해 자신들만의 철학을 만들었다. 즉, 물고기 철학이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근무 조건을 보면 굉장히 안 좋았다. 일도 정말 많이 시킨다. 토요일도. 못 견디면 나가야 하고. 재밌고 즐겁게 일하는 게 뭘까 고민했다. 결론이, ‘오너십(주인정신)’이었다. 내 가게다. 내 거, 내 회사, 어차피 할 거면 내 것처럼 해보자. 다른 데 가면 그걸 써먹으면 되잖나. 행복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침에 지하철 타고 봐라. 웃는 사람이 없다. 왜 그럴까. 즐거워서 회사를 가지 않는 거다. 그게 바로, 다 내 회사가 아니고, 하는 일이 내 일이 아니라서 그런 거다.”
파크 플레이스 어시장의 세계적인 명성은 그렇게 ‘내 회사’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거다. 사장 혼자가 아닌 직원들이 함께 일궈낸. “우리는 ‘유명=성공’을 1차 목표로 설정했지만 흔히 알려진 성공에 대한 고정관념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일터에 그리고 우리에게 맞는 성공의 개념을 만들어나갔다. (…) ‘세계적으로 유명한’이라는 말은 우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pp.35~36)
이어 자연스레 질문과 답을 오가는 대화들이 이어졌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는데, 터닝포인트가 된 책이 있다면.
책을 추천하는 것만큼 바보짓이 없다고 하더라. (웃음) 내가 읽어서 감동을 받아도, 다른 사람은 고민하는 지점이 다를 수도 있고, 그 타이밍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책은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내 경우, 굉장히 엉뚱한 책에 감동을 받았다. 나는 공고를 나와 2년 동안 한전(한국전력공사)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1년을 평택 유흥가에서 재미있게 지냈는데, 그때 그 책을 안 읽었으면 아직 거기서 술을 마시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웃음)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이라는 고시 체험 수기였다. 공고생이 사법 고시에 패스한 눈물겨운 스토리였는데, 이것을 보곤 술을 마시면 안 되겠구나 결심했다. 공고를 나왔다는 동질감 같은 것도 있고, 감동을 받아서 그 길로 2년 동안 술을 끊었다. 책을 읽고 대학에 가게 됐고, 교육공학과 교수가 된 파란만장한 스토리도 있지만, 그 책이 나한테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중간 중간에 여러 책들도 있지만.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갖고 책을 쓴 게 『용기』다. 누구나 살면서 7전 8기가 있잖나. 고등학교 때부터 직장 생활, 대학교, 대학원, 유학, 삼성경제연구소 등을 거쳐 안동대학교, 한양대학교까지 오면서 겪게 된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우화로 만든 책이다. 『용기』를 내고 강연을 잡았는데, 2007년 4월 11일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 갈비뼈와 팔이 부러지는 정도여서, (사고 정도에 비해) 정말 다행이었다. 그때 사고가 YTN 뉴스에 나올 정도였는데, 그 동영상을 강연회의 연기 사연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웃음)
블로그(http://blog.naver.com/kecologist)에 들어가 봤더니,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더라. ‘지식생태학자’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어떤 일을 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어떤 세계를 꿈꾸나.
요즘 ‘통섭’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에드워드 윌슨이 쓴 책(『통섭』)으로, 한때 우리나라에 지식 경영이 유행한 적 있는데, 지식 경영과 생태를 합치면 지식생태학이다. 평소 나무, 풀, 잡초, 꽃, 곤충 등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 나무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진짜 사람한테는 배울 게 없다. (웃음) 파리나 바퀴벌레만 봐도, 어마어마한 역사 갖고 있는데 생존하는 힘이 뭘까 궁금하지 않나?
미물이라도 생존 경쟁을 하고 남아있는 개체들은 존재하는 이유가 다 있다. 즉, 생존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 있다. 그걸 들여다보면 재밌다. 나무가 씨앗을 뿌리잖나. 싹이 자라 나무가 되고, 다른 나무와 만나 숲이 이뤄지고. 사람이 거름을 주고 그래서 되는 게 아니다. 자연 발생적 선순환의 원리를 추출해서 사람이나 조직에게 대입하면 지식이 창조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지식생태학은 자연으로부터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교훈을 끄집어내거나 생태계에서 시사점을 뽑아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재밌게 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아무 소나무나 솔방울을 맺지 않는다. 어떤 소나무가 솔방울을 많이 내느냐면 환경이 열악한 곳에 있는 소나무가 솔방울을 많이 내놓는다. 왜냐면 종족 번식의 욕구 때문이다. 한 해 솔방울을 많이 퍼트리면 다음에는 조금 퍼트리고 그런다. 직접 알아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몽둥이로 매일 참나무를 패 봐라. 그러면 참나무가 심상치 않다. 위기가 오는구나 싶어서 그해 도토리를 굉장히 많이 맺는다. 생명체가 위기에 처하면 위기에 극복하기 위해 씨앗을 많이 내놓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널널한 사람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내놓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위기를 의도적으로 만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통섭이라면 학문이 융합되거나 결합이 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시너지를 엮는 게 중요할 텐데, 현장 경험도 꽤 중요할 것 같다.
세계 최고의 학위는 박사 위에 잡사라고 하더라. (웃음) 석사의 석은 돌(石), 박사의 박은 엷을 박(薄). 연구소에 있을 때, 책상머리에서 박사가 연구하는 지식은 현실 변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현장이야말로 가장 파워풀한 비즈니스 스쿨이다. MBA보다 여러모로 악조건인 현장에서 배운 것이 살아있는 지식이다. 박사 때 배운 지식은 버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파리를 공부한다고 해보자. 1학년 때는 개론을 배운다. 개소리니까 개론이다. (웃음) 2학년 때 파리의 각론에 들어가고, 3학년 뒷다리론, 4학년 ‘파리 학사 자격증’을 딴다. 그러나 학사는 물어보면 잘 모른다. 들은 적이 있으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학사다. 파리 석사는 파리를 좀 더 공부하고픈 사람이 간다. (석사)논문은 이런 거다. 파리 앞다리의 움직임이 파리 몸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중요한 건, 앞다리를 떼서 2년 동안 연구했는데, 죽은 다리라는 거다. 정작 파리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돌, 석사가 되는 거다. (웃음)
박사는 뭘 전공하냐면, 앞다리를 전공하면 안 된다. 앞다리 발톱처럼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전국추계발톱학술대회’ 같은 것이 열리는데, 전문 용어가 발톱 부위별로 달라서 막 싸운다. 석사는 뭘 모르는지 깨달은 사람에게 주는 학위다. 박사는, 나만 모르는 줄 알았는데 남들도 모른다는 것을 안 사람에게 주는 거고. 교수는 더 세부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파리 학사, 앞다리 석사, 앞다리 발톱 박사에 이어 앞다리 발톱 때 같은 걸 전공해야 한다. 교수 중에선 까만 발톱 때 학파도 있고, 21년산 때만 전공하거나 30년산 때만 전공하는 교수도 있다. 교수는 어떤 사람에게 주냐면, 어차피 모르는 것을 끝까지 우기는 사람에게 준다.
파리를 알려면 통째로 놓고 봐야 한다. 자기 전공만 들입다 판다고 되지 않는다. 현장 경영자들은 경영학을 원하는 거지, 인사, 회계 등등 세부적인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봐라. 경영학자가 쓴 글을 정작 경영자들은 안 읽잖나. (웃음)
미래에 확신을 가지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나?
글쎄, 미래에 확신을 갖는 것은 어렵다. 어차피 불확실한 상황인데,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도봉산에 올라갈 때와 사하라 사막을 갈 때의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등산은 올라가면 되는 목표가 있지만, 사막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옛날에는 산 정상을 정복하는 패러다임 있었다. 지금은 환경 자체가 바뀌었다. 내일 일어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사막을 건널 때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참조. [독자 만남]사막 같은 인생에선 꽃보다 나침반 아니, 지도보다 나침반!). 단기 목표가 중요한 게 아니고 장기적인 목적이 중요하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목표가 달성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좌절이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얼마든지 안 될 수 있다. 다만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서는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과 목적을 가질 것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함께 공통된, 공유할 수 있는 목적을 지닌다는 것.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이 될 수 있었던 주요 요인. “우리는 목적과 비전의 힘을 믿는다. 목적과 비전은 어려운 상황에서 돌파구를 만들어준다. 우리는 돈을 버는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비전을 추구한다. 비전은 돈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닌다. ‘세계적인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이란 비전을 추구하면 다른 문제들은 저절로 풀리게 마련이다.”(p.38) “비전은 머릿속에서 잠을 자서는 안 되며 가슴에 새겨져야 하며, 혼자 꾸는 헛된 꿈이 아니라 함께 꾸는 가능성의 꿈이어야 한다.”(p.220)
아울러, 직원들이 함께 나침반을 들고 나아갈 수 있게 만든 것. ‘직원 만족’을 경영의 목적 중 하나로 삼은 것이 주효했다. “우리는 ‘세계적인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을 선언하면서, 단순히 생선을 파는 회사에서 벗어나 고객들과 세상에 남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변신했다. (…) CEO나 관리자가 돈을 버는 데만 관심이 있다면, 그들은 직원들을 대할 때 금전적인 성공에 도움이 되는 능력만을 본다. 그러나 수익을 넘어 그 이상의 목적을 갖고 직원을 바라봐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직원의 가치가 확장된다.”(p.37)
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삶을 살다간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라는 책이 감동적이었다. 그런 입장에 처한다면 후대에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나.
대중 강연은 많이 하는데, 늘 마지막 강의라고 생각하면서 한다. (웃음) 『마지막 강의』처럼 죽지 않아서 다행인데, 마지막 강연이라고 생각하고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한다. 여러 사람 와서 듣는다 생각하면, 엉성하게 할 수가 없다. 갑자기 사실 관계가 바뀔 수도 있잖나. 그래서 강연 시작 마지막 5분 전까지도 강연 자료를 고친다. 강연 교재와 실제 강연이 70~80% 다르다고, 불평?불만이 있기도 하다. 마지막 강연을 한다고 생각하면 보험을 큰 걸로 하나들고……. (웃음) ‘이 순간을 즐겨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제는 지나간 거고, 미래는 오지 않았고, 현재는 선물(present) 아닌가. 지나간 일로 후회하고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 왜 오지도 않은 미래를 끌어당겨서 고민하나.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는 하나도 없다. 고민에 좋은 것은, 타이레놀밖에 없다. (웃음)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행동하고 실천에 옮기는 방법밖에 없다. 하다가 안 되면 다시 하면 된다.
시애틀의 34평짜리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이 그것을 보여준다. 유튜브(http://www.youtube.com)에서 ‘파이크 플레이스 피쉬마켓(Pike Place Fish Market)’을 치면, 물고기를 던지고 주고받는, 그들이 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게 됐는지를 볼 수 있다.
보통의 자기계발서는 전능한 멘토가 등장하는데, 이 책에선 컨설턴트가 강력해보이진 않는다. 현장에서 전능한 멘토를 만나는 게 어려운 건가? 또 삶에서 멘토가 있었는지.
내 경우엔, 멘토가 두 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양대 교육공학과에 84년에 입학했는데, 그때 교수님이 내겐 멘토다. 26년째 인연을 잇고 있는데, 그분이 많은 길을 열어줬다. 또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지도 교수님이 멘토였다.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라이프 코칭도 해주셨다.
『핑』을 보면 부엉이 멘토가 나온다.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툭 던져놓고, 해보라고 한다. 못 하면 방향을 알려주고. 내게 멘토 역할을 한 분들은 세부적인 방법이 아닌 큰 방향을 알려주고 내버려뒀다. 결과를 가져가면 코칭을 해주고. 가장 파워풀한 것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부모들은 문제다. 대학 수강 신청할 때도 엄마와 상의한다. (웃음) 넘어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이 멘토다. 바닥에서 굴러도 봐야 먼 훗날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상황과 환경을 위기로 몰아넣고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멘토여야 한다.
세일즈를 할 때 경청이 가장 어렵더라. 경청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고객이나 조직에서 어떻게 경청의 자세를 가져야 하나.
이 책도 보면, 경청을 조직 문화로 만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다. 경청은 훈련밖에는 없다. 참는 거. ‘직장암’은 직장에서 걸리는 암이다. (웃음) 하고 싶은 말을 못 해서 참고, 상사가 상처를 줘도 말문을 닫아야 하니 직장암에 걸리는 거다.
리더는 ‘리스너(listener)’여야 한다. 말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줘야 한다. 말의 달인이어서 리더가 아니라, 경청의 달인이어서 리더다. 팀원이 원하는 건, 답이 아니다. 내 얘기를 들어달라는 거다. 코칭은 티칭이 아니다. SUN을 잘해야 한다. S는 suspend, 입장을 유보하는 것이고, U는 understand, 상대가 서 있는 아래로 들어가는 것, 타인의 사연이나 행동의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는 것이며, N은 nurture, 육성해주는 거다. 상대방을 태양으로 만들어주는 원칙이, SUN이다. 다 들어보면 거기에 답이 있다. 들은 뒤에 얘기를 해 보는 거다.
책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가 경청이다. 경청의 힘은 이렇게 강조된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차이를 만드는 힘을 인식하고 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면 기회와 가능성이 열린다. 이것은 직원의 말을 경청할 때도 마찬가지다. CEO가 직원의 말을 적극적으로 경청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서로 간에 또 고객의 욕구에 귀 기울이기를 기대하기 힘들다.”(p.135)
그러므로 경청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누군가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그가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경청하는 것이며, 그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p.153) 직장의 문제도 경청의 미숙에서 나온다. “직장 내의 문제는 리더가 직원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할 때에도 발생한다.”(p.193)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고 있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중 강연의 자리가 아니었기에, 지근거리에서 나눈 이날의 만남은 좀 더 살가웠다. 지적 자극을 받았다는 소감부터 앞으로의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고, 제 길을 찾겠다는 다짐까지 독자들의 마무리 코멘트가 오갔다. 유 교수도 화답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색다른 만남을 가졌는데, 떨리기도 했다. 가장 귀한 것은 ‘황금’이나 ‘백금’이 아니라, ‘지금’이라고 하지 않나. 여러분들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았으면 좋겠다.”
생선이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르겠냐고. 맞다. 날아봤자, 생선이다. 그런데도 생선을 사는 이들은 어떤 차이를 느낀다. 그 차이 때문에 그들은 특정한 생선 가게를 찾는다.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이 그곳이다. 차이를 만든 곳.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곳.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느냐고?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유 교수가 정리했다. “리더를 포함해서 비전 달성 여정에 동참하는 모든 직원들은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가는 신화 창조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코칭을 주고받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의 일터를 가꾸어나가는 주인공들이다. 코칭을 주고받는 ‘사이’가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코칭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일터에 언제나 애정과 관심, 돌봄과 보살핌의 인간적 관계가 꽃을 피운다. 인간관계에 존재하는 ‘사이’가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가는 동인이다.”(p.242)
그리고 깐깐하게 물어라. 당신의 직장은 공동 목표가 있는가. 당신의 직장은 직원들의 말을 경청하는가. 당신의 직장은 직원 만족에 힘을 쏟고 있나. ‘No’라는 말이 나온다면, 당신을 더 이상 낭비하지 마라. 물고기도 나는데, 사람이 날지 못해서야. ‘Yes’라면, 당신은 행운아. 마침내 물어라.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고 있나?(Who am I being right now?)”(p.87)
물고기, 어떻게 날게 되었나
유영만 교수의 첫 마디는 세일(Sale), 즉 영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우리말로 하면 ‘살래’ 아니냐. (웃음) 영업은 세상 사는 사람 모두가 하는 일 같다. 세일즈맨뿐만 아니라 나도 아이디어를 책으로 만들어서 ‘살래?’라고 하잖나. 정치가는 정치 비전을 팔아야 하고, 기업은 고객들에게 상품을 팔아야 한다. 이번에 물고기 책을 번역했는데, 느낀 것 중의 하나는 ‘불가능은 없다’라는 거다. 벽이라고 하는 게, 물리적인 게 아니고 심리적 장벽인 경우가 많다. 생각의 장벽들을 깨는 그런 책을 많이 쓰고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김제동 씨가 그랬는데, 사람이 책을 만드는 게 아니고,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옮긴이 입장에서 『HOW? 물고기 날다』는 어떤 책이었을까. 잠깐 책을 들춰보면, 이렇다. 책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생선 가게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의 사장, 존 요코하마는 일본계로 난민 수용소에서 생활하는 등 어렵게 자랐다. 야채 가게를 하는 아버지를 돕다가 선창가에서 일을 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생선 가게를 경영하게 됐다.
그는 초창기, 독불장군이었단다. 어떻게 하면 키울 것인지도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짐이라는 경영 컨설턴트에게 컨설팅을 받았다. 내키지 않았지만, 3년 동안에 효과가 없으면 돈을 안 받겠다는 제안이었다. 컨설팅을 받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이라는 비전이 세워졌다. “생각해보라. 이 허름한 생선 가게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선 가게가 된다니,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비웃잖나. 그러나 결과적으로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은 시애틀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명소로 바뀌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1980년대 초반이 되자 나는 혼자서 가계의 모든 책임을 지는 데 지쳐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이러한 삶은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성 계발 강좌에 등록했다. 강좌를 통해 지금까지 나 자신이 닫힌 마음을 갖고, 다른 사람을 믿지 않으며,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을 꺼려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의 욕망을 위해 독재자처럼 행동했던 것이다.”(p.25)
그렇다. 우연하게 들었던 인성 교육이 사람을 바꿨다. 독불장군이었던 존, “직원을 가족처럼 끌어안고 끝까지 얘기를 들어주고, 가게를 단순히 생선 파는 데가 아니라 고객들을 행복하게,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주겠다는 곳으로 변화시켰다. 대단한 생각 아니냐. 생선을 팔아 수익만 올리겠다는 게 대개의 생선 장수인데, 이 사람은 세계 평화까지 주장한다. 중간에 부도 위기까지 넘기면서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키웠다.”
이 책은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성공 비결이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생산만 취급하는 하찮은 시장통 사람들이 아닌가?”(p.34)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물고기를 통해 자신들만의 철학을 만들었다. 즉, 물고기 철학이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근무 조건을 보면 굉장히 안 좋았다. 일도 정말 많이 시킨다. 토요일도. 못 견디면 나가야 하고. 재밌고 즐겁게 일하는 게 뭘까 고민했다. 결론이, ‘오너십(주인정신)’이었다. 내 가게다. 내 거, 내 회사, 어차피 할 거면 내 것처럼 해보자. 다른 데 가면 그걸 써먹으면 되잖나. 행복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침에 지하철 타고 봐라. 웃는 사람이 없다. 왜 그럴까. 즐거워서 회사를 가지 않는 거다. 그게 바로, 다 내 회사가 아니고, 하는 일이 내 일이 아니라서 그런 거다.”
파크 플레이스 어시장의 세계적인 명성은 그렇게 ‘내 회사’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거다. 사장 혼자가 아닌 직원들이 함께 일궈낸. “우리는 ‘유명=성공’을 1차 목표로 설정했지만 흔히 알려진 성공에 대한 고정관념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일터에 그리고 우리에게 맞는 성공의 개념을 만들어나갔다. (…) ‘세계적으로 유명한’이라는 말은 우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pp.35~36)
이어 자연스레 질문과 답을 오가는 대화들이 이어졌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는데, 터닝포인트가 된 책이 있다면.
책을 추천하는 것만큼 바보짓이 없다고 하더라. (웃음) 내가 읽어서 감동을 받아도, 다른 사람은 고민하는 지점이 다를 수도 있고, 그 타이밍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책은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내 경우, 굉장히 엉뚱한 책에 감동을 받았다. 나는 공고를 나와 2년 동안 한전(한국전력공사)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1년을 평택 유흥가에서 재미있게 지냈는데, 그때 그 책을 안 읽었으면 아직 거기서 술을 마시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웃음)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이라는 고시 체험 수기였다. 공고생이 사법 고시에 패스한 눈물겨운 스토리였는데, 이것을 보곤 술을 마시면 안 되겠구나 결심했다. 공고를 나왔다는 동질감 같은 것도 있고, 감동을 받아서 그 길로 2년 동안 술을 끊었다. 책을 읽고 대학에 가게 됐고, 교육공학과 교수가 된 파란만장한 스토리도 있지만, 그 책이 나한테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중간 중간에 여러 책들도 있지만.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갖고 책을 쓴 게 『용기』다. 누구나 살면서 7전 8기가 있잖나. 고등학교 때부터 직장 생활, 대학교, 대학원, 유학, 삼성경제연구소 등을 거쳐 안동대학교, 한양대학교까지 오면서 겪게 된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우화로 만든 책이다. 『용기』를 내고 강연을 잡았는데, 2007년 4월 11일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 갈비뼈와 팔이 부러지는 정도여서, (사고 정도에 비해) 정말 다행이었다. 그때 사고가 YTN 뉴스에 나올 정도였는데, 그 동영상을 강연회의 연기 사연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웃음)
블로그(http://blog.naver.com/kecologist)에 들어가 봤더니,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더라. ‘지식생태학자’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어떤 일을 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어떤 세계를 꿈꾸나.
요즘 ‘통섭’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에드워드 윌슨이 쓴 책(『통섭』)으로, 한때 우리나라에 지식 경영이 유행한 적 있는데, 지식 경영과 생태를 합치면 지식생태학이다. 평소 나무, 풀, 잡초, 꽃, 곤충 등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 나무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진짜 사람한테는 배울 게 없다. (웃음) 파리나 바퀴벌레만 봐도, 어마어마한 역사 갖고 있는데 생존하는 힘이 뭘까 궁금하지 않나?
미물이라도 생존 경쟁을 하고 남아있는 개체들은 존재하는 이유가 다 있다. 즉, 생존할 수밖에 없는 전략이 있다. 그걸 들여다보면 재밌다. 나무가 씨앗을 뿌리잖나. 싹이 자라 나무가 되고, 다른 나무와 만나 숲이 이뤄지고. 사람이 거름을 주고 그래서 되는 게 아니다. 자연 발생적 선순환의 원리를 추출해서 사람이나 조직에게 대입하면 지식이 창조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지식생태학은 자연으로부터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교훈을 끄집어내거나 생태계에서 시사점을 뽑아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재밌게 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아무 소나무나 솔방울을 맺지 않는다. 어떤 소나무가 솔방울을 많이 내느냐면 환경이 열악한 곳에 있는 소나무가 솔방울을 많이 내놓는다. 왜냐면 종족 번식의 욕구 때문이다. 한 해 솔방울을 많이 퍼트리면 다음에는 조금 퍼트리고 그런다. 직접 알아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몽둥이로 매일 참나무를 패 봐라. 그러면 참나무가 심상치 않다. 위기가 오는구나 싶어서 그해 도토리를 굉장히 많이 맺는다. 생명체가 위기에 처하면 위기에 극복하기 위해 씨앗을 많이 내놓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널널한 사람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내놓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위기를 의도적으로 만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통섭이라면 학문이 융합되거나 결합이 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시너지를 엮는 게 중요할 텐데, 현장 경험도 꽤 중요할 것 같다.
세계 최고의 학위는 박사 위에 잡사라고 하더라. (웃음) 석사의 석은 돌(石), 박사의 박은 엷을 박(薄). 연구소에 있을 때, 책상머리에서 박사가 연구하는 지식은 현실 변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현장이야말로 가장 파워풀한 비즈니스 스쿨이다. MBA보다 여러모로 악조건인 현장에서 배운 것이 살아있는 지식이다. 박사 때 배운 지식은 버려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파리를 공부한다고 해보자. 1학년 때는 개론을 배운다. 개소리니까 개론이다. (웃음) 2학년 때 파리의 각론에 들어가고, 3학년 뒷다리론, 4학년 ‘파리 학사 자격증’을 딴다. 그러나 학사는 물어보면 잘 모른다. 들은 적이 있으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이 학사다. 파리 석사는 파리를 좀 더 공부하고픈 사람이 간다. (석사)논문은 이런 거다. 파리 앞다리의 움직임이 파리 몸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중요한 건, 앞다리를 떼서 2년 동안 연구했는데, 죽은 다리라는 거다. 정작 파리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돌, 석사가 되는 거다. (웃음)
박사는 뭘 전공하냐면, 앞다리를 전공하면 안 된다. 앞다리 발톱처럼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전국추계발톱학술대회’ 같은 것이 열리는데, 전문 용어가 발톱 부위별로 달라서 막 싸운다. 석사는 뭘 모르는지 깨달은 사람에게 주는 학위다. 박사는, 나만 모르는 줄 알았는데 남들도 모른다는 것을 안 사람에게 주는 거고. 교수는 더 세부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파리 학사, 앞다리 석사, 앞다리 발톱 박사에 이어 앞다리 발톱 때 같은 걸 전공해야 한다. 교수 중에선 까만 발톱 때 학파도 있고, 21년산 때만 전공하거나 30년산 때만 전공하는 교수도 있다. 교수는 어떤 사람에게 주냐면, 어차피 모르는 것을 끝까지 우기는 사람에게 준다.
파리를 알려면 통째로 놓고 봐야 한다. 자기 전공만 들입다 판다고 되지 않는다. 현장 경영자들은 경영학을 원하는 거지, 인사, 회계 등등 세부적인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봐라. 경영학자가 쓴 글을 정작 경영자들은 안 읽잖나. (웃음)
미래에 확신을 가지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나?
글쎄, 미래에 확신을 갖는 것은 어렵다. 어차피 불확실한 상황인데,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 도봉산에 올라갈 때와 사하라 사막을 갈 때의 마음가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등산은 올라가면 되는 목표가 있지만, 사막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옛날에는 산 정상을 정복하는 패러다임 있었다. 지금은 환경 자체가 바뀌었다. 내일 일어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사막을 건널 때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참조. [독자 만남]사막 같은 인생에선 꽃보다 나침반 아니, 지도보다 나침반!). 단기 목표가 중요한 게 아니고 장기적인 목적이 중요하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목표가 달성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좌절이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얼마든지 안 될 수 있다. 다만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서는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과 목적을 가질 것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그러니까, 함께 공통된, 공유할 수 있는 목적을 지닌다는 것.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이 될 수 있었던 주요 요인. “우리는 목적과 비전의 힘을 믿는다. 목적과 비전은 어려운 상황에서 돌파구를 만들어준다. 우리는 돈을 버는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비전을 추구한다. 비전은 돈보다 더 귀한 가치를 지닌다. ‘세계적인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이란 비전을 추구하면 다른 문제들은 저절로 풀리게 마련이다.”(p.38) “비전은 머릿속에서 잠을 자서는 안 되며 가슴에 새겨져야 하며, 혼자 꾸는 헛된 꿈이 아니라 함께 꾸는 가능성의 꿈이어야 한다.”(p.220)
아울러, 직원들이 함께 나침반을 들고 나아갈 수 있게 만든 것. ‘직원 만족’을 경영의 목적 중 하나로 삼은 것이 주효했다. “우리는 ‘세계적인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을 선언하면서, 단순히 생선을 파는 회사에서 벗어나 고객들과 세상에 남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변신했다. (…) CEO나 관리자가 돈을 버는 데만 관심이 있다면, 그들은 직원들을 대할 때 금전적인 성공에 도움이 되는 능력만을 본다. 그러나 수익을 넘어 그 이상의 목적을 갖고 직원을 바라봐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직원의 가치가 확장된다.”(p.37)
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삶을 살다간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라는 책이 감동적이었다. 그런 입장에 처한다면 후대에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나.
대중 강연은 많이 하는데, 늘 마지막 강의라고 생각하면서 한다. (웃음) 『마지막 강의』처럼 죽지 않아서 다행인데, 마지막 강연이라고 생각하고 굉장히 준비를 많이 한다. 여러 사람 와서 듣는다 생각하면, 엉성하게 할 수가 없다. 갑자기 사실 관계가 바뀔 수도 있잖나. 그래서 강연 시작 마지막 5분 전까지도 강연 자료를 고친다. 강연 교재와 실제 강연이 70~80% 다르다고, 불평?불만이 있기도 하다. 마지막 강연을 한다고 생각하면 보험을 큰 걸로 하나들고……. (웃음) ‘이 순간을 즐겨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제는 지나간 거고, 미래는 오지 않았고, 현재는 선물(present) 아닌가. 지나간 일로 후회하고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 왜 오지도 않은 미래를 끌어당겨서 고민하나.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는 하나도 없다. 고민에 좋은 것은, 타이레놀밖에 없다. (웃음)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행동하고 실천에 옮기는 방법밖에 없다. 하다가 안 되면 다시 하면 된다.
시애틀의 34평짜리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이 그것을 보여준다. 유튜브(http://www.youtube.com)에서 ‘파이크 플레이스 피쉬마켓(Pike Place Fish Market)’을 치면, 물고기를 던지고 주고받는, 그들이 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게 됐는지를 볼 수 있다.
보통의 자기계발서는 전능한 멘토가 등장하는데, 이 책에선 컨설턴트가 강력해보이진 않는다. 현장에서 전능한 멘토를 만나는 게 어려운 건가? 또 삶에서 멘토가 있었는지.
내 경우엔, 멘토가 두 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양대 교육공학과에 84년에 입학했는데, 그때 교수님이 내겐 멘토다. 26년째 인연을 잇고 있는데, 그분이 많은 길을 열어줬다. 또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지도 교수님이 멘토였다.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라이프 코칭도 해주셨다.
『핑』을 보면 부엉이 멘토가 나온다.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툭 던져놓고, 해보라고 한다. 못 하면 방향을 알려주고. 내게 멘토 역할을 한 분들은 세부적인 방법이 아닌 큰 방향을 알려주고 내버려뒀다. 결과를 가져가면 코칭을 해주고. 가장 파워풀한 것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부모들은 문제다. 대학 수강 신청할 때도 엄마와 상의한다. (웃음) 넘어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이 멘토다. 바닥에서 굴러도 봐야 먼 훗날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의도적으로 상황과 환경을 위기로 몰아넣고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멘토여야 한다.
세일즈를 할 때 경청이 가장 어렵더라. 경청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고객이나 조직에서 어떻게 경청의 자세를 가져야 하나.
이 책도 보면, 경청을 조직 문화로 만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다. 경청은 훈련밖에는 없다. 참는 거. ‘직장암’은 직장에서 걸리는 암이다. (웃음) 하고 싶은 말을 못 해서 참고, 상사가 상처를 줘도 말문을 닫아야 하니 직장암에 걸리는 거다.
리더는 ‘리스너(listener)’여야 한다. 말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줘야 한다. 말의 달인이어서 리더가 아니라, 경청의 달인이어서 리더다. 팀원이 원하는 건, 답이 아니다. 내 얘기를 들어달라는 거다. 코칭은 티칭이 아니다. SUN을 잘해야 한다. S는 suspend, 입장을 유보하는 것이고, U는 understand, 상대가 서 있는 아래로 들어가는 것, 타인의 사연이나 행동의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는 것이며, N은 nurture, 육성해주는 거다. 상대방을 태양으로 만들어주는 원칙이, SUN이다. 다 들어보면 거기에 답이 있다. 들은 뒤에 얘기를 해 보는 거다.
책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가 경청이다. 경청의 힘은 이렇게 강조된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차이를 만드는 힘을 인식하고 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면 기회와 가능성이 열린다. 이것은 직원의 말을 경청할 때도 마찬가지다. CEO가 직원의 말을 적극적으로 경청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서로 간에 또 고객의 욕구에 귀 기울이기를 기대하기 힘들다.”(p.135)
그러므로 경청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누군가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그가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경청하는 것이며, 그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p.153) 직장의 문제도 경청의 미숙에서 나온다. “직장 내의 문제는 리더가 직원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할 때에도 발생한다.”(p.193)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고 있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중 강연의 자리가 아니었기에, 지근거리에서 나눈 이날의 만남은 좀 더 살가웠다. 지적 자극을 받았다는 소감부터 앞으로의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고, 제 길을 찾겠다는 다짐까지 독자들의 마무리 코멘트가 오갔다. 유 교수도 화답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색다른 만남을 가졌는데, 떨리기도 했다. 가장 귀한 것은 ‘황금’이나 ‘백금’이 아니라, ‘지금’이라고 하지 않나. 여러분들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았으면 좋겠다.”
생선이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르겠냐고. 맞다. 날아봤자, 생선이다. 그런데도 생선을 사는 이들은 어떤 차이를 느낀다. 그 차이 때문에 그들은 특정한 생선 가게를 찾는다.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이 그곳이다. 차이를 만든 곳.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곳.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느냐고?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유 교수가 정리했다. “리더를 포함해서 비전 달성 여정에 동참하는 모든 직원들은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가는 신화 창조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코칭을 주고받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의 일터를 가꾸어나가는 주인공들이다. 코칭을 주고받는 ‘사이’가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코칭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일터에 언제나 애정과 관심, 돌봄과 보살핌의 인간적 관계가 꽃을 피운다. 인간관계에 존재하는 ‘사이’가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가는 동인이다.”(p.242)
그리고 깐깐하게 물어라. 당신의 직장은 공동 목표가 있는가. 당신의 직장은 직원들의 말을 경청하는가. 당신의 직장은 직원 만족에 힘을 쏟고 있나. ‘No’라는 말이 나온다면, 당신을 더 이상 낭비하지 마라. 물고기도 나는데, 사람이 날지 못해서야. ‘Yes’라면, 당신은 행운아. 마침내 물어라.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고 있나?(Who am I being right now?)”(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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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