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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쉬 포워드 로버트 J. 소여 저/정윤희 역 | 미래인
전 인류가 1분 43초간 의식을 잃고 미래를 보았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로이드와 테오가 강입자가속기 실험을 시작한 그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1분여간의 미래를 보고 온 인류는 혼란에 빠졌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거나, 자동차를 타고 있거나, 수술 중이었던 수백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살아남은 자의 비극은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슬픔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미래를 본 사람들, 그들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미래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있다. 20년 후를 볼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상자를 열어볼까?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수도 없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도 없는 시대 속에 살고 있는 까닭에 우리는 누구나 미래를 궁금해한다.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헤쳐 나가는 요즘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미래를 본다. 20년 후에 나는 이렇게 되는구나, 알았다 치자. 그리고 나면 어떻게 될까? 알고 나면 행복할까? 이 소설은 내게 이렇게 되묻는다. 소설 속에서 미래를 확인한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지금 사랑하는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한 미래를 본 로이드. 언젠가 별처럼 빛날 작가가 되길 꿈꾸지만, 20년 후에 웨이터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드미트리오스, 2030년에 미국 대통령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인디애나 청년. 20년 후에 자신의 미래가 없음을 보게 되는 테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본 20년 후의 모습이 진짜인지 환상인지 알아내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자신의 운명에 미리 절망하거나, 바꿔보려고 애를 쓴다.
궁금증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미래를 보는 것이라면 그 대가는 만만치 않다. 당신이라면 운명을 보고 가만히 앉아서 그날을 기다리겠는가? 나 역시 좀체 그려지지 않는 미래가 궁금하지만, 막상 알고 나면 김이 빠질 것 같다. 마치 버스 종착역을 알게 된 것처럼, 어찌됐건 시간이 나를 그 지점에 데려가 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날을 고대하며 열심히 살아가게 될까, 과연? 만약 그 미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면? 행여 죽음이라면? 과연 운명을 바꾸기 위해 더욱 의욕적으로 삶에 달려들 수 있을까? 미리 본 운명은 현재에 굴레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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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플래쉬 포워드> | | “버나드 씨는 어제 수백만 가지의 결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내린 결정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요. 지나간 시간을 아무리 후회해본들 돌이킬 방법은 없죠. 내일도 또다시 수백만 가지 결정을 하겠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모든 분들이 스스로에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 ‘이 순간’이라는 개념은 환상일 뿐입니다. 미래도, 현재도, 과거도 그 자체로 실재하며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p.185)
확실한 것은 완전하다. 하지만 불확실한 것은 아름답다. 나이를 들수록 알아가는 것은 세상 일이 참 만만치 않고, 내 맘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 어떤 일을 짐작하든 삶은 언제나 다른 경우의 수를 내게 내보인다. 때문에 나는 많은 순간 혼란스럽고, 울고 싶어질 때가 있지만, 한편 ‘예상할 수 없다’는 속성은 나를 무엇이든 상상하게 만들고, 조금은 더 삶에 달려들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로이드 말대로 우리의 삶이 이미 찍힌 영화의 필름과 같아서, 결말이 정해진 영화 속 한 장면을 지나고 있는 것뿐이라면, 인생을 설명하는 데에는 영화평에 쓰이는 몇 개의 수식어로도 충분할 테다. 희극 혹은 비극.
다른 여자와 결혼한 모습을 본 로이드는 지금 사랑하는 여자를 지킬 수 있을까? 테오는 자신의 운명을 죽음에서 건져낼 수 있을까? 이미 예정된 내일을 보게 된 사람들은 현재를 어떻게 견뎌나갈까? 그들의 운명(!)이 궁금해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갔다. 한창 미드로도 방영되고 있는 『플래쉬 포워드』. 방영 시간이면 친목모임이 취소될 정도로 화제라는데, 그 까닭을 알 법도 하다. 얼른 1화부터 챙겨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이 소설을 통해 당신의 미래를 직접 볼 수 없지만, 미래를 본 후의 당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앞날을 알면 당연히 안심이 될 줄 알았는데, 나는 상상만으로 혼란스러웠다. 나의 안이한 상상력의 뒤통수를 치는 통쾌한 소설이었다. 당신이라면 어떨까? 당장 책장을 넘겨 확인해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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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제임스 소여
하드 SF의 거장 아서 C. 클라크, 데이비드 브린 등과 함께 세계 3대 SF 문학상인 휴고상, 네뷸러상, 캠벨 기념상을 모두 휩쓴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원래 고생물학자를 꿈꾸었던 그는 치밀한 과학적 디테일의 하드 SF를 기반으로 깊이 있는 심리묘사와 스릴러를 곁들인 크로스오버 스타일을 앞세우며 영미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SF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1960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태어나, 토론토 라이어슨 대학에서 방송예술학을 전공했다. 현재 캐나다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과학소설 작가이다. 스스로는‘하드 SF 작가’라고 말하지만, 과학기술적 디테일뿐만 아니라 캐릭터나 인간 심리를 다루는 솜씨 또한 뛰어나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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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1.12.14
가르시아
2010.08.03
퐁당퐁당
2010.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