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 여러분, 종교 생활 안녕하십니까? -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오강남, 성해영
종교와 정치는 오래 전부터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지만, 이번 정권만큼 종교를 사회나 정치면에서 마주친 적도 없었던 듯 하다. 장로 대통령을 맞아 ㅅ교회는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고, 불교계는 새로운 사안이 생길 때마다 종교편향문제를 들고 일어선다.
201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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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
#. 어른들께서는 그러셨다. 잘 지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종교 얘기를 꺼내지도 말라고 했다. 종교는 그 사람의 삶과 신념의 문제이기 때문에, 함부로 논의했다간 크게 싸움이 나기 십상이라는 뜻. 종교전쟁이 제일 무섭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 종교가 삶과 신념의 문제이므로 우리는 더욱 이야기하고 나눠야 하는 게 아닐까? 종교관은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바탕을 이룬다. 그가 삶과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우리는 그의 종교관을 물음으로 알 수 있다. 상대를 아는 일에 종교관이, 적어도 혈액형이나 별자리보다 신뢰할 만하지 않을까?
#. 종교와 가장 가까운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정치일 것이다. 종교와 정치는 오래 전부터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지만, 이번 정권만큼 종교를 사회나 정치면에서 마주친 적도 없었던 듯 하다. 장로 대통령을 맞아 ㅅ교회는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고, 불교계는 새로운 사안이 생길 때마다 종교편향문제를 들고 일어선다. 올해만큼 시사 주간지에 종교적 상징(기도, 십자가)이 표지를 차지했던 때도 없었을 것. 과연 지금의 한국에서 종교란 무엇인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 우리나라는 유니세프에서 도움을 받던 수혜국에서 다른 나라에게 도움을 주는 공여국이 된 첫 번째 사례라고 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단 유니세프뿐 만이 아니다. 무엇이든 대한민국 사람들은 스폰지처럼 빨아들이고, 이내 우리 것으로 만들어 밖으로 내보낸다. 청출어람이다. 특히 종교가 그렇다. 종교 역시 선교사들에게 전파되었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여느 곳보다 활발히 선교활동을 하는 나라 중 한 곳이다.
현각 스님은 한국이 “종교 연구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다. 한국은 다양한 종교활동가들이 모여있는 곳이자, 종교적 신념이나 실행력이 강하신 분이 특히 많은 곳이기도 하다. 동네마다 높이 솟아있는 기독교의 첨탑,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절들, 매주 예배가 이루어지는 이슬람 사원 등을 보라. 이렇게 종교는 한국 사람들에게 가까이 있지만, 그에 비해 우리들은 종교를 이야기하지 않고 배우지도 않는다.
#.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났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중인 오강남 교수와 그의 제자 성해영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교수가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대화를 묶은 책이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제목처럼 두 사람은 이제 더 이상 표층에 머무는 표층 종교가 아니라, 깨달음을 골자로 하는 심층종교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심층종교란 무엇인가’로 이야기를 시작해, 어떻게 개개인이 심층종교에 다다를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이 날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이 책이 특정 종교를 설명하거나 이해시키는 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종교를 보는 새로운 시각’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건강하고 참된 종교생활을 하기 위한 일종의 지침서다. 다양한 연구 사례와 쉬운 언어로 전하는 종교학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종교를 가진 이나 갖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 여러 질문거리를 남긴다.
지난 5월 27일. 봄날이 무색하게 무더운 날씨. 삼청동에 자리하고 있는 북성재 출판사에서 오강남, 성해영 저자를 만났다. 온화한 오강남 교수님과 재치 넘치는 성해영 교수님은 참 잘 어울리는 콤비였다. 진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던 자리였다. 종교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났지만, 최근 이슈가 되는 문제, TV 프로그램, 사는 이야기가 저절로 이어졌다. 그래. 종교는 이만큼이나 가까이 있었다.
아하, 종교! 깨달음의 체험
책을 보면 종교에 대한 여러 정의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직 책을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서, 이 자리도 그렇게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종교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정의해주신다면요?
오: “종교가 뭐냐는 대답은 수없이 많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종교의 정의는 ‘깨달음을 통한 자기 변혁의 수단’이라는 겁니다. 개구리가 우물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새로운 의식을 가진 새로운 개구리로 바뀌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산을 올라갈 때마다 시야가 넓어지고 ‘아하, 아하’ 깨닫게 되는데. 저는 종교를 이런 ‘아하’ 체험의 연속이라고 봅니다.”
성: “종교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 보이지 않는 세계가 오늘 현실을 살아가는 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알려주기도 하고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담고 있는 걸 종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두 분의 정체성을 종교적 관점에서 말씀해주세요.
오: “저는 어릴 때 기독교에서 자라났어요. 기독교적 배경을 갖고 있으니까 기독교적 용어가 편해요. 그렇다고 기독교만이 유일한 종교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 때문에 저를 기독교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전 제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캐나다에서는 완전히 개방적인 연합교회의 퀘이커 모임에 나가고, 한국에서는 새길 교회에서 얘기도 하고 합니다.
불교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도 하고 불교인들과도 교류합니다. 학생들이 나보고 종교가 뭐냐고 많이 물어요. ‘뭐라고 생각하냐?’고 되물으면, ‘선생님이 불교 가르칠 때는 불교인, 도덕경 가르칠 때는 도교인, 기독교 가르칠 때는 기독교인 같습니다.’ 그래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메타 릴리저스’(meta-religious)라고 할까요. 제도적 종교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성: “이하 동문입니다. 저도 교회도 나가고 성당도 다녀보고, 불교도 가고 신종교도 다녀봤어요. 저도 제가 특정한 제도 종교에 속한 게 아니라, 종교를 넘어선 종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학자로서 비판적 이성을 가지고 종교를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긴 힘들지만, ‘메타 릴리저스’가 맞는 것 같아요.”
오: “요즘 종교학자 중에 ‘멀티플 멤버쉽’을 말하는 사람이 몇 있어요. R. 파니카라는 종교학자가 그렇죠. 스페인 어머니와 힌두교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카톨릭으로 자라 신학박사, 철학박사를 받은 천재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인도에 가서 힌두교인이 되고, 나중에는 또 불교인이 됐어요. 그러면서 ‘나는 힌두교인이 되기 위해서 카톨릭을 버리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이게 트리플 멤버쉽입니다. 청도 대학교수인 줄리아 칭도 마찬가지죠. 이분은 수녀인데, 유교 공부를 많이 해서 유교적 기독교인이 됐습니다.”
한국 대학에 종교학과가 있는 곳이 거의 없어 종교학은 생소합니다. 종교학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신학과 혼동하는데요. 종교학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성: “종교학은 종교를 연구하는 학문이죠. 종교 현상을 복합적, 다차원적 문화현상의 하나로 연구하는 겁니다. 특정 종교를 잘 믿기 위한 게 아니라 인간을 잘 이해하고자 하는 인문학의 한 분야로 존재합니다. 신의 존재를 입증하거나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종교학이 있는 게 아닙니다. 인간적인 현상들을 여러 가지 이론적인 틀을 동원해 이해 함으로서 인간과 문화를 더 잘 이해하는 학문이고, 그래서 신학과, 다른 학문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오: “인간 삶에서 종교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종교학은 종교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종교에 대해서 가르치는 겁니다. 신학도 어느 면에서 종교학의 연구 대상이죠. 종교학은 여러 종교의 현상들이 역사적으로나 인문학적으로 어떤 의무를 가지는가. 이걸 연구하기 때문에 신학과 다릅니다.”
성: “종교학자는 펜스 위에 걸터 앉아있다고 할 수 있어요. 한쪽 들판에서는 우리 종교가 옳다거나 우리만 옳다는 제도종교가 있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 연구를 하지만, 제도 종교 속으로 확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거든요. 반대편에서는 종교를 사회적 현상이나 심리학으로만 바라보면서 종교 고유의 독자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이에서 걸터 있는 게 종교학이죠.”
뭐든 한국에만 오면 약효가 세진다?
성해영 선생님은 고등고시를 패스하고 고위 공무원을 거친 뒤 다시 학업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통념상 많은 반대에 부딪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성: “다들 놀랐죠. 문화 관광부에서 6년간 일했는데, 동기나 선배들은 제 뜻한 바가 굳으니까 이해하고 격려해 주셨어요. 어머니가 제일 놀라셨죠. 그럼 가정을 어떻게 건사할거냐고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정작 아내나 처가쪽 식구들은 열심히 해보라고 여러가지 지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오강남 선생님께서는 보수적 종교 환경에서 성장하고, 공부하다가 어떻게 새로운 시각에 눈뜨게 되셨나요?
오: “종교학과에 들어가 이런 저런 종교를 접하면서였죠. 특히 캐나다에서 불교를 연구하면서, 불교 도덕경, 도가 사상 선불교 이런 사상을 접하면서 ‘종교란 것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좁은 시야를 탈피한 거죠.”
오강남 교수님의 ‘예수는 없다’는 도발적인 제목 못지않게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보수적인 개신교들로부터 협박도 당하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오: “캐나다에 있었으니까요. 안전한 곳에 있었다고 할 수 있죠.(좌중 웃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타락했다고……. 누님들 중에서도 절더러 타락했다고 하지만. 당시에 받은 이메일에는 호의적인 반응이 훨씬 컸습니다. ‘이런 게 기독교라면 다시 교회에 나갈 수 있겠다’ ‘성경이 이런 거라면 성경을 다시 읽겠다’
어느 보수적인 교회 목사님은 이런 메일도 보내셨어요. ‘교회 목사라고 하면 다 이 책을 반대할 것 같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교직원과 다 같이 읽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도 들었고요. 책 내고 나서 강연 할 때, 강의하면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거라고 협박하는 전화가 와서, 경호원도 부르기도 했는데요, 큰 일은 없었어요. 오히려 강연할 때 기독교인, 불교인들이 고루 모였는데 반응이 뜨거워 인상적이었죠.”
『예수는 없다』 집필 할 때, 책을 내면 ‘어떤 반응이 있겠구나.’ 예감은 하셨죠?
오: “예감했죠. 한국 풍토를 잘 알고 있으니까. 그야말로 평지풍파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러나’지금 이런 식으로 있어선 안되겠다. 뭔가 새로운 바람이 부는데 한국 기독교인만 이 바람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한국 풍토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종교학자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장소일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세계 종교가 모여 있으면서도 비 종교인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한국의 종교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오: “50퍼센트가 종교인이에요. 그 중에 대략 20 몇 퍼센트가 기독교, 20 몇 퍼센트가 불교고 나머지는 기타 종교인입니다. 한국은 묘한 종교 균형을 이루고 있어요. 그런데 불교와 기독교를 떠나, 전반적으로 심층종교에 비해 표층종교가 보편적이죠.”
성: “우리나라 산삼이 전세계에서 약효가 제일 세다고 하잖아요? 얼마 전에 책을 보니까, 대마초의 마약성분도 우리 나라가 가장 세다고 그래요.(웃음) 그래서 마치 무엇이든 우리나라에 오면 농도와 강도가 엄청나게 세지는 것 같아요. 공산주의도 있고, 민주주의도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빨리 실현했고요. 조계종이 이렇게 압도적으로 선불교 전통을 가지고 있는 곳도 없고, 기독교 내부에서도 이만큼 훌륭하신 분들이 농도 깊게 활동하시는 사례가 어디에도 없어요. 아직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고요. 이런 면에서 보면 연구거리가 넘치죠.”
오: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한국은 공자보다도 더 유교적이고 마르크스보다도 더 마르크스적이고 예수보다도 더 기독교적이다.(좌중 웃음)”
성: “지금 국내에서 미국 기독교가 잘못됐다고 얘기하잖아요. 이슬람 세력도 지금은 세지 않은데, 몇 년 지나보면 중동 이슬람도 틀렸다고 할 지 몰라요.(웃음)”
깨달음이 불교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표층종교는 문자주의적입니다. 즉 문자의 표피적 뜻에 집착합니다. 둘째, 모든 것을 지금의 나, 이기적인 나를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심층차원의 종교는 문자를 넘어서 있는 더 깊은 뜻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글의 '속내'를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더욱이 심층종교는 지금의 나에서 벗어나 참나, 큰나, 얼나로 부활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습니다.(p.39)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입니다. 주로 ‘깨달음’은 불교, ‘믿음’은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가치인데 특별히 불교 쪽 색채가 짙은 제목을 택한 이유가 있는지요? 심층종교로 발전하는 첫걸음 역시 ‘보살의 길’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오: “기독교에도 깨달음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에, 기독교를 단순화 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깨달음을 강조하는 걸 거부당해요. 그런 경전은 파기처분 당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도마복음’이에요. ‘도마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믿으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깨달으라고 해요.
다른 종교를 보더라도, 의식의 변화(깨달음)를 통해, 안보이던 세계를 보게 하는 것은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요소에요. 새로운 인식 속에서 새로운 내가 되어 자유를 누리자는 거죠. 불교책 아니냐고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런 기회에 자극을 해서 ‘깨달음이 불교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모든 종교에 공통적인 이야기다,라는 얘길 하려고 했죠.”
성: “깨달음이 심층 종교에 가장 핵심적인 거예요. 모든 개인이 종교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성장하게 되면 반드시 개인의 인식능력이 확장됩니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 깨달음이라고 제목을 지었어요.”
책에서는 개신교를 비롯한 일신교적 전통이 상대적으로 개인이 심층종교로 들어가는 길을 막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신교 전통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 “심층종교가 목표지만, 그렇다고 표층종교를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대학원이 좋다고 초등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할 순 없으니까요. 다만, 초등학교에서 잘 훈련시켜서 심층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데 현실은 자꾸 초등학교에 머물라고 해요.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에만 학생수가 많죠. 상당수가 퇴학을 하고 있고요.”
성: “일신교 정착 과정에서 심층의 측면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주류가 되지 못한 거죠. 표층적인 신 관념이라든지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형태로 굳어지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유일신 종교가 반드시 타자에 배타적이거나 힘들게 하는 것만은 아니잖아요. 기본적으로 유일신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신. 사랑을 주고 받고 대화할 수 있는 신입니다. 불교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으레 궁극적 실체가 ‘공’이다 하면, 막연하기만 한데, ‘사랑의 신’이라고 하면 확 와 닿잖아요. 기본적으로 매력을 갖고 있는 종교죠.”
오: “산이 그냥 산일 때는 산입니다. 매일 산에 가서 산을 어머니다, 나를 품어준다. 생각하면 관계를 맺게 되는 거죠. 인격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relationship)를 갖게 되요. 인도에서는 종교적 궁극 목표에 가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어요. 지혜, 신, 행동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신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제일 많아요. 인격적 관계를 맺는 곳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의 내용에 전반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심층종교로 들어가기엔 현대인이 너무 바쁜 듯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주의와 심층종교가 어떻게 조화할 수 있을까요?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성: “심층종교는 인간 삶의 모든 면에서 가능합니다. 심층종교란 신이든 실제든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면 깊숙한 있다고 보니까요. 이렇게 보면. 세상에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들이 자신을 깊고 넓게 만드는 계기가 되잖아요. 제도 종교는 특정 공간에, 특정 경배 대상을 만날 때만 종교생활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에 비해 심층종교는 바쁜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욱 적합한 종교죠.(웃음)
신 자유주의 시대는 한마디로 경쟁사회잖아요. 심층 종교차원에서 보면 모든 인간 내면에 심층종교적 깨달음을 가능케 하는- 불성이든 신이든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하면, 저 사람을 싸우고 이길 존재로 볼 수 없겠죠. 함께 가는 존재로 보일 거예요.”
오래된 테제인 정교일치와 정교분리, 올해는 유독 종교와 정치가 긴밀하게 이야기됐는데요. 한국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오: “우선 정치인들이 종교에 아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종교에 발목이 잡혀요. 정교 분리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한 사회, 올바른 정치를 위해서 그런 면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 “뜻밖에도 현정권의 모토가 공정한 사회입니다. 선생님.(좌중 웃음) 종교 집단이 정치적 이익집단화 되는 건 굉장히 위험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종교를 순전히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종교 때문에 패가 망신한 사람도 한 둘이 아니거든요. 종교로 자신과 타인을 파괴시키는 사람도 많은데도, 아무도 종교를 가르쳐주지 않아요.
심지어 운전을 할 때도 면허증이 필요한데, 종교처럼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영역에 대해 전혀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 않잖아요. 공교육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든 종교가 이런 의미에서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봐요. 현재 미션 스쿨 같은 곳에서만 적극적인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닌가. 종교학과도 많아지고, 종교의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도 많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럼 지금 일반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좀더 건강한 고민을 하려면, 이렇게 책을 찾아보는 일 정도가 되겠군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오: “더 알고 싶으면. 성해영 교수님께 가라고 해요.(좌중 웃음)”
성: “선생님이 수십 년 공부한 내용과 제가 뒤따라 배운 이야기가 많으니까 이 책이 도움이 될 겁니다. 종교는 양날의 칼이에요. 자기나 타인을 위할 수도 있고 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균형감각을 가져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살인사건까지 일으키는 게 종교죠. 종교가 기쁨도 주고 즐거움도 주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에 갖는 건데, 지금 사람들은 너무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죄를 짓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국에 가려고 하고, 고통스러운 이 땅에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종교활동을 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경우일 거예요.”
심층종교는 종교를 신나는 종교로 되살리는 것입니다. 상벌에 관계없이 자기의 수행이 나날이 깊어져 더 깊은 차원의 실재를 발견하면 얼마나 신나겠어요? 그리고 그 여정 끝에서 자연스럽게 참나를 발견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르면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까요?(p.179)
#. 어른들께서는 그러셨다. 잘 지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종교 얘기를 꺼내지도 말라고 했다. 종교는 그 사람의 삶과 신념의 문제이기 때문에, 함부로 논의했다간 크게 싸움이 나기 십상이라는 뜻. 종교전쟁이 제일 무섭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 종교가 삶과 신념의 문제이므로 우리는 더욱 이야기하고 나눠야 하는 게 아닐까? 종교관은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의 바탕을 이룬다. 그가 삶과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우리는 그의 종교관을 물음으로 알 수 있다. 상대를 아는 일에 종교관이, 적어도 혈액형이나 별자리보다 신뢰할 만하지 않을까?
#. 종교와 가장 가까운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정치일 것이다. 종교와 정치는 오래 전부터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지만, 이번 정권만큼 종교를 사회나 정치면에서 마주친 적도 없었던 듯 하다. 장로 대통령을 맞아 ㅅ교회는 권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고, 불교계는 새로운 사안이 생길 때마다 종교편향문제를 들고 일어선다. 올해만큼 시사 주간지에 종교적 상징(기도, 십자가)이 표지를 차지했던 때도 없었을 것. 과연 지금의 한국에서 종교란 무엇인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 우리나라는 유니세프에서 도움을 받던 수혜국에서 다른 나라에게 도움을 주는 공여국이 된 첫 번째 사례라고 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단 유니세프뿐 만이 아니다. 무엇이든 대한민국 사람들은 스폰지처럼 빨아들이고, 이내 우리 것으로 만들어 밖으로 내보낸다. 청출어람이다. 특히 종교가 그렇다. 종교 역시 선교사들에게 전파되었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 여느 곳보다 활발히 선교활동을 하는 나라 중 한 곳이다.
현각 스님은 한국이 “종교 연구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고 했다. 한국은 다양한 종교활동가들이 모여있는 곳이자, 종교적 신념이나 실행력이 강하신 분이 특히 많은 곳이기도 하다. 동네마다 높이 솟아있는 기독교의 첨탑,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절들, 매주 예배가 이루어지는 이슬람 사원 등을 보라. 이렇게 종교는 한국 사람들에게 가까이 있지만, 그에 비해 우리들은 종교를 이야기하지 않고 배우지도 않는다.
이 날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이 책이 특정 종교를 설명하거나 이해시키는 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종교를 보는 새로운 시각’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건강하고 참된 종교생활을 하기 위한 일종의 지침서다. 다양한 연구 사례와 쉬운 언어로 전하는 종교학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종교를 가진 이나 갖고 있지 않은 이들에게 여러 질문거리를 남긴다.
지난 5월 27일. 봄날이 무색하게 무더운 날씨. 삼청동에 자리하고 있는 북성재 출판사에서 오강남, 성해영 저자를 만났다. 온화한 오강남 교수님과 재치 넘치는 성해영 교수님은 참 잘 어울리는 콤비였다. 진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던 자리였다. 종교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났지만, 최근 이슈가 되는 문제, TV 프로그램, 사는 이야기가 저절로 이어졌다. 그래. 종교는 이만큼이나 가까이 있었다.
아하, 종교! 깨달음의 체험
책을 보면 종교에 대한 여러 정의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직 책을 읽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서, 이 자리도 그렇게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종교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정의해주신다면요?
오: “종교가 뭐냐는 대답은 수없이 많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종교의 정의는 ‘깨달음을 통한 자기 변혁의 수단’이라는 겁니다. 개구리가 우물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새로운 의식을 가진 새로운 개구리로 바뀌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산을 올라갈 때마다 시야가 넓어지고 ‘아하, 아하’ 깨닫게 되는데. 저는 종교를 이런 ‘아하’ 체험의 연속이라고 봅니다.”
성: “종교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 보이지 않는 세계가 오늘 현실을 살아가는 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알려주기도 하고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담고 있는 걸 종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두 분의 정체성을 종교적 관점에서 말씀해주세요.
오: “저는 어릴 때 기독교에서 자라났어요. 기독교적 배경을 갖고 있으니까 기독교적 용어가 편해요. 그렇다고 기독교만이 유일한 종교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 때문에 저를 기독교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전 제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캐나다에서는 완전히 개방적인 연합교회의 퀘이커 모임에 나가고, 한국에서는 새길 교회에서 얘기도 하고 합니다.
불교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도 하고 불교인들과도 교류합니다. 학생들이 나보고 종교가 뭐냐고 많이 물어요. ‘뭐라고 생각하냐?’고 되물으면, ‘선생님이 불교 가르칠 때는 불교인, 도덕경 가르칠 때는 도교인, 기독교 가르칠 때는 기독교인 같습니다.’ 그래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메타 릴리저스’(meta-religious)라고 할까요. 제도적 종교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성: “이하 동문입니다. 저도 교회도 나가고 성당도 다녀보고, 불교도 가고 신종교도 다녀봤어요. 저도 제가 특정한 제도 종교에 속한 게 아니라, 종교를 넘어선 종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학자로서 비판적 이성을 가지고 종교를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긴 힘들지만, ‘메타 릴리저스’가 맞는 것 같아요.”
오: “요즘 종교학자 중에 ‘멀티플 멤버쉽’을 말하는 사람이 몇 있어요. R. 파니카라는 종교학자가 그렇죠. 스페인 어머니와 힌두교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카톨릭으로 자라 신학박사, 철학박사를 받은 천재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인도에 가서 힌두교인이 되고, 나중에는 또 불교인이 됐어요. 그러면서 ‘나는 힌두교인이 되기 위해서 카톨릭을 버리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이게 트리플 멤버쉽입니다. 청도 대학교수인 줄리아 칭도 마찬가지죠. 이분은 수녀인데, 유교 공부를 많이 해서 유교적 기독교인이 됐습니다.”
한국 대학에 종교학과가 있는 곳이 거의 없어 종교학은 생소합니다. 종교학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신학과 혼동하는데요. 종교학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성: “종교학은 종교를 연구하는 학문이죠. 종교 현상을 복합적, 다차원적 문화현상의 하나로 연구하는 겁니다. 특정 종교를 잘 믿기 위한 게 아니라 인간을 잘 이해하고자 하는 인문학의 한 분야로 존재합니다. 신의 존재를 입증하거나 진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종교학이 있는 게 아닙니다. 인간적인 현상들을 여러 가지 이론적인 틀을 동원해 이해 함으로서 인간과 문화를 더 잘 이해하는 학문이고, 그래서 신학과, 다른 학문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오: “인간 삶에서 종교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종교학은 종교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종교에 대해서 가르치는 겁니다. 신학도 어느 면에서 종교학의 연구 대상이죠. 종교학은 여러 종교의 현상들이 역사적으로나 인문학적으로 어떤 의무를 가지는가. 이걸 연구하기 때문에 신학과 다릅니다.”
성: “종교학자는 펜스 위에 걸터 앉아있다고 할 수 있어요. 한쪽 들판에서는 우리 종교가 옳다거나 우리만 옳다는 제도종교가 있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 연구를 하지만, 제도 종교 속으로 확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거든요. 반대편에서는 종교를 사회적 현상이나 심리학으로만 바라보면서 종교 고유의 독자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이에서 걸터 있는 게 종교학이죠.”
뭐든 한국에만 오면 약효가 세진다?
성해영 선생님은 고등고시를 패스하고 고위 공무원을 거친 뒤 다시 학업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통념상 많은 반대에 부딪치지 않았을까 싶어요.
성: “다들 놀랐죠. 문화 관광부에서 6년간 일했는데, 동기나 선배들은 제 뜻한 바가 굳으니까 이해하고 격려해 주셨어요. 어머니가 제일 놀라셨죠. 그럼 가정을 어떻게 건사할거냐고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정작 아내나 처가쪽 식구들은 열심히 해보라고 여러가지 지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오강남 선생님께서는 보수적 종교 환경에서 성장하고, 공부하다가 어떻게 새로운 시각에 눈뜨게 되셨나요?
오: “종교학과에 들어가 이런 저런 종교를 접하면서였죠. 특히 캐나다에서 불교를 연구하면서, 불교 도덕경, 도가 사상 선불교 이런 사상을 접하면서 ‘종교란 것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좁은 시야를 탈피한 거죠.”
오강남 교수님의 ‘예수는 없다’는 도발적인 제목 못지않게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요. 보수적인 개신교들로부터 협박도 당하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오: “캐나다에 있었으니까요. 안전한 곳에 있었다고 할 수 있죠.(좌중 웃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타락했다고……. 누님들 중에서도 절더러 타락했다고 하지만. 당시에 받은 이메일에는 호의적인 반응이 훨씬 컸습니다. ‘이런 게 기독교라면 다시 교회에 나갈 수 있겠다’ ‘성경이 이런 거라면 성경을 다시 읽겠다’
어느 보수적인 교회 목사님은 이런 메일도 보내셨어요. ‘교회 목사라고 하면 다 이 책을 반대할 것 같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교직원과 다 같이 읽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도 들었고요. 책 내고 나서 강연 할 때, 강의하면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거라고 협박하는 전화가 와서, 경호원도 부르기도 했는데요, 큰 일은 없었어요. 오히려 강연할 때 기독교인, 불교인들이 고루 모였는데 반응이 뜨거워 인상적이었죠.”
오: “예감했죠. 한국 풍토를 잘 알고 있으니까. 그야말로 평지풍파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러나’지금 이런 식으로 있어선 안되겠다. 뭔가 새로운 바람이 부는데 한국 기독교인만 이 바람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한국 풍토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종교학자에게 한국은 매력적인 장소일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세계 종교가 모여 있으면서도 비 종교인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한국의 종교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오: “50퍼센트가 종교인이에요. 그 중에 대략 20 몇 퍼센트가 기독교, 20 몇 퍼센트가 불교고 나머지는 기타 종교인입니다. 한국은 묘한 종교 균형을 이루고 있어요. 그런데 불교와 기독교를 떠나, 전반적으로 심층종교에 비해 표층종교가 보편적이죠.”
성: “우리나라 산삼이 전세계에서 약효가 제일 세다고 하잖아요? 얼마 전에 책을 보니까, 대마초의 마약성분도 우리 나라가 가장 세다고 그래요.(웃음) 그래서 마치 무엇이든 우리나라에 오면 농도와 강도가 엄청나게 세지는 것 같아요. 공산주의도 있고, 민주주의도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빨리 실현했고요. 조계종이 이렇게 압도적으로 선불교 전통을 가지고 있는 곳도 없고, 기독교 내부에서도 이만큼 훌륭하신 분들이 농도 깊게 활동하시는 사례가 어디에도 없어요. 아직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고요. 이런 면에서 보면 연구거리가 넘치죠.”
오: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한국은 공자보다도 더 유교적이고 마르크스보다도 더 마르크스적이고 예수보다도 더 기독교적이다.(좌중 웃음)”
성: “지금 국내에서 미국 기독교가 잘못됐다고 얘기하잖아요. 이슬람 세력도 지금은 세지 않은데, 몇 년 지나보면 중동 이슬람도 틀렸다고 할 지 몰라요.(웃음)”
깨달음이 불교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표층종교는 문자주의적입니다. 즉 문자의 표피적 뜻에 집착합니다. 둘째, 모든 것을 지금의 나, 이기적인 나를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심층차원의 종교는 문자를 넘어서 있는 더 깊은 뜻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글의 '속내'를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더욱이 심층종교는 지금의 나에서 벗어나 참나, 큰나, 얼나로 부활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습니다.(p.39)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입니다. 주로 ‘깨달음’은 불교, ‘믿음’은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가치인데 특별히 불교 쪽 색채가 짙은 제목을 택한 이유가 있는지요? 심층종교로 발전하는 첫걸음 역시 ‘보살의 길’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오: “기독교에도 깨달음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에, 기독교를 단순화 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깨달음을 강조하는 걸 거부당해요. 그런 경전은 파기처분 당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도마복음’이에요. ‘도마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믿으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깨달으라고 해요.
다른 종교를 보더라도, 의식의 변화(깨달음)를 통해, 안보이던 세계를 보게 하는 것은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요소에요. 새로운 인식 속에서 새로운 내가 되어 자유를 누리자는 거죠. 불교책 아니냐고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런 기회에 자극을 해서 ‘깨달음이 불교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모든 종교에 공통적인 이야기다,라는 얘길 하려고 했죠.”
성: “깨달음이 심층 종교에 가장 핵심적인 거예요. 모든 개인이 종교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성장하게 되면 반드시 개인의 인식능력이 확장됩니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 깨달음이라고 제목을 지었어요.”
책에서는 개신교를 비롯한 일신교적 전통이 상대적으로 개인이 심층종교로 들어가는 길을 막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신교 전통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 “심층종교가 목표지만, 그렇다고 표층종교를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대학원이 좋다고 초등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할 순 없으니까요. 다만, 초등학교에서 잘 훈련시켜서 심층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데 현실은 자꾸 초등학교에 머물라고 해요.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에만 학생수가 많죠. 상당수가 퇴학을 하고 있고요.”
성: “일신교 정착 과정에서 심층의 측면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주류가 되지 못한 거죠. 표층적인 신 관념이라든지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형태로 굳어지는 바람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유일신 종교가 반드시 타자에 배타적이거나 힘들게 하는 것만은 아니잖아요. 기본적으로 유일신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신. 사랑을 주고 받고 대화할 수 있는 신입니다. 불교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으레 궁극적 실체가 ‘공’이다 하면, 막연하기만 한데, ‘사랑의 신’이라고 하면 확 와 닿잖아요. 기본적으로 매력을 갖고 있는 종교죠.”
오: “산이 그냥 산일 때는 산입니다. 매일 산에 가서 산을 어머니다, 나를 품어준다. 생각하면 관계를 맺게 되는 거죠. 인격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relationship)를 갖게 되요. 인도에서는 종교적 궁극 목표에 가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어요. 지혜, 신, 행동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신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제일 많아요. 인격적 관계를 맺는 곳에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의 내용에 전반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렇지만 심층종교로 들어가기엔 현대인이 너무 바쁜 듯합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주의와 심층종교가 어떻게 조화할 수 있을까요?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성: “심층종교는 인간 삶의 모든 면에서 가능합니다. 심층종교란 신이든 실제든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면 깊숙한 있다고 보니까요. 이렇게 보면. 세상에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들이 자신을 깊고 넓게 만드는 계기가 되잖아요. 제도 종교는 특정 공간에, 특정 경배 대상을 만날 때만 종교생활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에 비해 심층종교는 바쁜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욱 적합한 종교죠.(웃음)
신 자유주의 시대는 한마디로 경쟁사회잖아요. 심층 종교차원에서 보면 모든 인간 내면에 심층종교적 깨달음을 가능케 하는- 불성이든 신이든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하면, 저 사람을 싸우고 이길 존재로 볼 수 없겠죠. 함께 가는 존재로 보일 거예요.”
오래된 테제인 정교일치와 정교분리, 올해는 유독 종교와 정치가 긴밀하게 이야기됐는데요. 한국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오: “우선 정치인들이 종교에 아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종교에 발목이 잡혀요. 정교 분리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한 사회, 올바른 정치를 위해서 그런 면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 “뜻밖에도 현정권의 모토가 공정한 사회입니다. 선생님.(좌중 웃음) 종교 집단이 정치적 이익집단화 되는 건 굉장히 위험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종교를 순전히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종교 때문에 패가 망신한 사람도 한 둘이 아니거든요. 종교로 자신과 타인을 파괴시키는 사람도 많은데도, 아무도 종교를 가르쳐주지 않아요.
심지어 운전을 할 때도 면허증이 필요한데, 종교처럼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영역에 대해 전혀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 않잖아요. 공교육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든 종교가 이런 의미에서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봐요. 현재 미션 스쿨 같은 곳에서만 적극적인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닌가. 종교학과도 많아지고, 종교의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도 많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럼 지금 일반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좀더 건강한 고민을 하려면, 이렇게 책을 찾아보는 일 정도가 되겠군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오: “더 알고 싶으면. 성해영 교수님께 가라고 해요.(좌중 웃음)”
성: “선생님이 수십 년 공부한 내용과 제가 뒤따라 배운 이야기가 많으니까 이 책이 도움이 될 겁니다. 종교는 양날의 칼이에요. 자기나 타인을 위할 수도 있고 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균형감각을 가져야 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살인사건까지 일으키는 게 종교죠. 종교가 기쁨도 주고 즐거움도 주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에 갖는 건데, 지금 사람들은 너무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죄를 짓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천국에 가려고 하고, 고통스러운 이 땅에 다시 태어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종교활동을 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경우일 거예요.”
심층종교는 종교를 신나는 종교로 되살리는 것입니다. 상벌에 관계없이 자기의 수행이 나날이 깊어져 더 깊은 차원의 실재를 발견하면 얼마나 신나겠어요? 그리고 그 여정 끝에서 자연스럽게 참나를 발견하는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르면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까요?(p.179)
14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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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yaja
2011.07.23
좋고 싫음을 가리지만 않는다면
도는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거라 합니다.
전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고,
또한 부처의 가르침에 공명하는 사람입니다.
인터뷰 내용 잘봤습니다.
오강남 교수님의 책제목은 항상
재미있습니다.
교수님의 의도가 보이거든요.
숨겨진 속살 보다는 드러난 외피가
저를 끌어 당기는 군요.
아직 책을 못봤습니다.
장영섭의 공부하지마라
끝내면
교수님의 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불쏘시개
2011.06.20
위의 인터뷰를 책표지와 함께 저희 신문에 게재하여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hs63095
2011.06.10
저자님의 말씀에 깊이공감합니다
불교나 기독교 서로 종교만 다를뿐인데 말씀은 하나. 서로 사랑하고 공경하고 존중해주는것은 똑 같은데요 미워하지 말고 너무 깊이 빠지지 말고 존중하고 받아들였으면 이사회가 더 보기좋고 아름답지 않을까요.
이런 토론의 장이 필요하고 더많은 강연회가 보편화되어 이사회 질서를 바로잡아준다면 하는 개인적인생각입니다. 정말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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