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실력을 자랑하는 최고의 악단
빈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악단은 단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최고의 명성을 양분하며, 그 전통으로나 유명세로나 오케스트라의 상징과 같은 악단이기도 하다.
2011.09.29
![]() | |||||
| |||||
![]() |
빈 필은 오토 니콜라이라는 지휘자가 창설한 악단이다. 그는 1842년에 음악회를 기획해 임시로 오케스트라를 조직했는데, 당시 빈 궁정 오페라극장지금의 슈타츠오퍼의 단원들을 중심으로 새 악단을 만들었다. 이것을 빈 필의 효시로 보고 있으니, 2012년이면 빈 필의 나이는 170세가 된다.
이 악단의 창설에는 몇 가지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첫째, 당시까지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들은 왕족이나 귀족 또는 교회에서 만든 악단들이며, 궁정이나 궁정극장에서 귀족들을 위해 연주했다. 이에 반해 이 악단은 최초의 본격적인 대규모 민간 악단이었다. 둘째, 그러므로 시민 계급을 위한 음악 감상, 즉 순수 음악 연주가 주목적이었고, 궁정 악단처럼 궁정의 ‘행사’를 위한 악단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악단의 기량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셋째, 악단의 운영을 음악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모임인 ‘필하모니 협회’음악을 사랑하는 친구들, 즉 ‘악우樂友 협회’로 일본인들이 번역해왔다.가 관장해왔다는 점이다. 이상 세 가지 점에서 빈 필은 최초의 근대적이고 민주적이고 예술적인 시스템을 갖춘 오케스트라였다.
|
빈 필을 맡았던 상임지휘자들 가운데 중요한 인물들로는 한스 리히터, 구스타프 말러, 펠릭스 폰 바인가르트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클레멘스 크라우스 등을 들 수 있다. 상임지휘자는 아니지만 빈 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지휘한 사람들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브루노 발터, 칼 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 등이 있다. 이 거장들 중 많은 사람이 비록 빈 필의 상임은 아니었지만 빈 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빈 슈타츠오퍼의 지휘자로서, 이 악단을 자신의 악단처럼 아끼면서 지도, 지휘하여 빈 필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1954년 이후로 빈 필은 공식적으로 더 이상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고 필하모닉 협회가 선정한 객원 지휘자들로만 콘서트를 꾸려오고 있다. 빈 필의 연주는 대단히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름을 제외한 시즌 내내 열리는 정기연주회로서 한 달에 한 번, 연간 약 10회 정도 거행된다. 이 정기연주회는 같은 레퍼토리를 사흘간 연속 연주하는데, 당연히 3회 모두 거의 매진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빈 필하모닉 회원들이 티켓을 선점하기 때문에 관광객이 좋은 티켓을 구하기는 만만치 않다.
지금 이 정기연주회에 초빙되는 지휘자들은 비록 객원 지휘자이지만 사실상 빈 필의 공동 지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바로 니콜라스 아르농쿠르, 주빈 메타, 로린 마젤, 리카르도 무티, 조르주 프레트르, 프란츠 벨저 뫼스트, 다니엘 바렌보임, 발레리 게르기에프, 크리스티안 틸레만, 마리스 얀손스 등 10여 명으로서, 이들의 명단 자체가 세계 지휘계의 지형도를 알려주는 셈이다. 그 외에 빈 필은 매년 여름 잘츠부르크에 한 달 가까이 체류하면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호스트 오케스트라 역할을 한다.
|
빈 필의 중요한 특징은 단원들이다. ‘빈 필 단원’이라는 말은 대단히 특별한 의미로 사용된다. 빈 필 단원들은 그들만의 공통점이 있다. 아니 있었다. 첫째로 모두 빈 사람이고, 둘째로 모두 남자이며, 셋째로 모두 빈 슈타츠오퍼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단원이라는 점이다. 이 중요한 3대 특징 중 앞의 두 가지는 최근 허물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빈 필의 보수성은 여전하다.
빈 필은 처음에는 ‘빈의 남자’가 아니라면 들어갈 수 없는 악단이었다. 그것이 오스트리아의 남자, 그리고 오스트리아나 독일 사람(남자든 여자든)으로 완화되기는 했다. 또한 그들은 여전히 빈 사람 아니면 적어도 오스트리아나 독일 출신을 쓰려고 한다. 그래야만 빈 음악적 전통이 몸에 배어 있어서 전통적인 연주법과 예술적 감각을 제대로 계승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제는 적지 않은 여성들과 외국 출신들이 들어와 있다.
빈 필에 오디션을 보기 위한 전제조건은 바로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지금도 엄격하다. 즉, 빈 필의 단원이 되려면 먼저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 시험을 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빈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정단원으로 3년 이상 연주 경력을 쌓은 사람에게만 빈 필의 오디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빈 필 오디션에 합격할 만한 경력과 실력이 된다 하더라도 빈 필의 단원이 되기는 쉽지 않다.
빈 필 단원의 정원은 136명이다. 일단 결원이 있어야 사람을 뽑고, 새 단원이 된 사람도 당분간은 인턴 단원으로서 활동한다. 그 기간에 그가 연주를 잘 해도, 자기 악기 파트의 다른 단원들과의 음악적 앙상블이나 인간적 조화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짐을 싸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판단은 기존 단원들이 한다.
빈 필의 단원이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는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함께 진다. 즉, 빈 필의 단원은 모두가 여전히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다. 하지만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단원이라고 모두 빈 필의 단원인 것은 아니다. 이 복잡 미묘한 관계는 빈을 대표하는 두 음악 단체의 유기적인 협조와 발전을 전제로 한다. 또 이런 관계는 두 단체의 공통된 발전을 꾀하기도 한다.
이 두 악단의 단원들 스케줄 관리는 무척이나 복잡하고 힘들다. 예를 들어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단원이 여섯 명이라면, 그들의 스케줄은 모두 다르다. 누구는 오늘 오전에 열리는 빈 필 연주회에 나가고(저녁에는 그들이 오페라극장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콘서트를 아침에 많이 하는 전통이 자리 잡았다.), 누구는 저녁에 오페라 <카르멘> 공연에 나가야 한다. 또한 그 사이에는 며칠 후 있을 <로엔그린> 공연 연습에 나가야 하고, 다음 달에 올려질 <아이다>의 파트별 리허설에도 참석해야 한다. 주말 콘서트의 리허설에 참여할 때도 있다. 물론 개인적인 연습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매일 일일이 시간표를 보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야 하며, 같은 클라리넷 단원이라 하더라도 몇 달이나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
이렇듯 전체 빈 국립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그들은 사실 세 개의 공연을 동시에 해치울 인력을, 그것도 같은 수준의 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누구는 아침의 콘서트에, 누구누구는 저녁의 오페라에, 그리고 또 누구는 극동 순회 연주에, 다른 또 누구는 녹음에 참석한다. 그 외에도 삼삼오오 앙상블을 만들어서 실내악 연주도 하며, 몇몇은 솔리스트로서의 활동과 교수로서의 레슨이나 강의도 한다. 그래서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공연에 나가보면, 연주 전에 직원이 나와서 스케줄 표를 들고 출석을 체크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또 같은 첼로 주자들끼리 오랜만에 만난 듯 반갑게 악수하는 모습도 보인다. 빈 필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야, 요하네스, 오랜만이야. 2주 전에 <투란도트> 같이 하고는 처음 보는 거 야냐?”
“아냐, 저번 <박쥐>에서 봤지. 나 그 동안 극동 콘서트 투어에 다녀왔어.”
“야, 재미있었어?”
“말 마. 지휘자가 그 영감이잖아? 이제 은퇴해야 할 것 같은데, 내년에는 뽑지 말자.”
“어휴 난 안 끼길 잘 했네. 난 그냥 오페라 할 때가 제일 편한 것 같아.”
“하지만 그래도 가끔 콘서트에 나와야 얼굴을 팔지.”
“그건 그래. 하지만 저번에 프랑크가 또 4중주 같이 하자던데 어떡할까 고민 중이야. 음반 녹음할지도 모른대.”
“그래? 그나저나 나 오늘 할 <돈 카를로> 연습을 제대로 안 해서 지금 좀 해봐야 해.”
“무슨 소리야. 오늘 <라 보엠>이야!”
“앗, 그래? 어, 잘 됐다. 놓여 있는 악보를 보니 그러네.”
그들은 악보를 들고 다니지도 않는다. 너무 많아서 개인이 들고 다닐 수도 없다. 악보계가 다 챙겨 놓으면 그걸 보고서야 자신이 무얼 하는지 안다.
“이거야 카라얀 때부터 하도 많이 해서 눈 감고도 할 수 있지. 그나저나 오늘 지휘자가 프레트르 아니야?” “헉, 그 영감 지난주에 입원했잖아. 몰랐어? 오늘 뭐라고 하더라. 하여튼 나폴리에서 젊은 이탈리아 지휘자가 아침에 도착했대. 그 촌뜨기는 완전히 긴장하겠지만, 우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하자고. 어이, 알베나! 더 예뻐졌는걸. 영국 투어 갔다가 잘 돌아왔어? 헤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늘 반갑게 인사하며 내가 못 알아듣는 말로 떠드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죄송합니다. 빈 필이었습니다.
7개의 댓글
추천 기사
추천 상품
빈에서는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출판사 | 김영사
필자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햇살비
2011.10.13
토마토잼
2011.10.10
언젠가 꼭 실제로 빈 필을 만나보고 싶어라...
향기롭게
2011.10.01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