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나 다름없는 수술용 장갑을 낀 왼손으로 휴지를 쳐들고, 오른손으로 닌히드린 용액이 담긴 분무기를 조심스럽게 발사하자 마법처럼, 아니 한편의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운 자색의 지문 윤곽이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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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서 피해자가 벌써 네 명째다. 피해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범인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 여성을 유린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담배까지 한 대 피우고 나서 현장을 벗어나는 대담함도 보인다. 허술함인지 여유로움인지 알 수 없다. 현장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그가 사용한 휴지와 콘돔 등이 담긴 검은색 비닐 봉투를 발견했고, 어렵지 않게 DNA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성폭력 범죄자 DNA 데이터 베이스에서는 동일인을 찾을 수 없었다. 임의 제출받은 인근 거주 전과자들의 DNA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초범인가 보다. 용의자가 검거되면 DNA를 통해 진범 여부를 확인할 수 있지만, 지금은 ‘서울역 광장에서 김서방 찾기’다. ‘지문’만 발견하면 당장 범인을 밝혀 낼 텐데… 하지만 요즘은 드라마 《CSI》 탓에 범인이 좀처럼 현장에 지문을 남기지 않는다. 장갑을 착용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오랜 시간 과학수사 부서에서 일하며 남달리 지문에 자신이 있는 김 팀장 역시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의 지문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현장에서 발견한 무수한 지문이 모두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친구들의 것이었다. 김 팀장은 콘돔과 함께 발견된 휴지를 주목했다. 아무리 치밀한 범죄자라도 어쩔 수 없이 장갑을 벗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과연 휴지에서 지문을 발견하고 채취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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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에 남은 지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문의 아미노산에 자색으로 반응해 마법처럼 지문이 드러나게 만드는 화학 물질, 닌히드린이 있다. 닌히드린은 아세톤, 에탄올(최근에는 HFE 7100이라는 용매를 사용한다) 등의 용매에 녹여서 사용한다. 하지만 휴지는 매우 얇고 부드러워서 이러한 용액에 담글 수가 없다. 용액에 집어넣자마자 녹아 풀어지고 만다. 하지만 언제나 방법은 있다. 닌히드린 용액을 에어로졸 상태로 분무하면 휴지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지문에 아름다운 자색 윤곽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현장 수사 요원들은 지문으로 범인을 검거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문 감별 기법이 시작된 이후로 지문은 단 한 번도 가장 뛰어난 개인 식별 기능을 가진 기법이라는 자리를 다른 것에 양보한 적이 없다. 현장에 남긴 범인의 지문이 흐릿하고 불분명한 쪽지문 단 한 점밖에 없더라도 그를 잡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지문 기법이다. 세계의 법과학자들이 지문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다.
- 한국의 CSI 공저 표창원,유제설 | 북라이프
프로파일러 표창원 교수와 과학수사 전문가 유제설 교수가 안내하는 경이롭고 치밀한 CSI의 현장! ‘과학수사’를 통해 형사들을 지원하는 현장 과학수사 요원과 실험실 법과학 전문가들을 ‘CSI’로 정의하고, 그 세부 분야와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소개한다. 오제이심슨 사건의 무죄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세계적 법과학자 헨리 리 박사, 안정된 연구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남자들도 손사래 치는 사건현장 업무에 뛰어든 이현정 검시관 등 과학수사계의 ‘스타’들을 망라…
표창원
표창원 교수는 실제 경찰관 출신으로 연쇄살인, 엽기범죄 등 각종 범죄와 살인자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해내는 걸로 유명한 한국의 ‘프로파일러’로 현재 범죄학, 범죄심리학, 피해자학 등을 강의하는 경찰대학 교수이다. 그는 1989년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1991년 경기도 화성경찰서, 1991년~1992년 경기도 부천경찰서 형사과, 1992년~1993년 경기지방경찰청 외사계에서 근무했다. 1993년부터 4년간 학업에 매진하여 영국 Exeter 대학교 석사 및 박사 (경찰학, 범죄학)학위를 받았다. 경찰청 강력범죄 분석팀(VICAT) 자문위원, 경찰청 미제사건 분석 자문위원, 범죄수사연구회 지도위원를 역임했으며 미국 샘휴스턴 주립대학교 형사사법대학 객원교수, 한국심리학회 범죄심리사 과정 강사, 경찰 수사보안연수소 범죄학 및 범죄심리학 강사, 법무연수원 범죄학 및 범죄심리학 강사로 활발한 강의활동을 해왔으며 아시아경찰학회 총무이사 및 회장을 지냈다. 그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유 없는 분노와 복수심에 빠져 있는 잠재적 연쇄살인범들이 우리 사회 각 기능의 제역할로 인해 상처를 치유 받고 교훈을 얻고, 행동이 교정되어 무모하고 비극적인 공격의도를 꺾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관련된 범죄 관련 저서들을 집필 중이다. 저서로 『한국의 연쇄살인』,『EBS 지식 프라임』이 있다.
marie23
2013.02.03
pota2to
2013.01.28
햇살비
2012.02.20
있을거라 생각은 했지만 드라마 CSI처럼 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지는 않았는데 ㅋㅋㅋ 생각을 바꿔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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