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비행기 승무원 생활을 하느라 집을 비워 놓을 때가 많았던 사촌언니네 집으로 날아갔고, 아버지는 교회 연 지 10년이 넘어도 개척교회? 즉 가사상태? 인 예배실의 유아실에서 아무 담요나 덮고 잠을 청하게 되었고 나는 어디로 날아갔느냐 하면, 당시 친하게 지냈던 언니의 원룸으로 뻔뻔스럽게 불시착했다. 안 그래도 격렬한 우울증이 덮칠 때마다 아무 때나 그 언니에게 쳐들어가서 길고양이처럼 마구 폐를 끼치고 있던 차였다. 뻔뻔하기도 하지, 고양이는 귀엽기나 한데.
어쨌거나 그때 난 고작 스물 한두 살밖에 안 먹었는데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언덕마다 평지마다 꽉꽉 들어찬 불빛 하나하나가 참 얄밉게도 빛나서 툭하면 풀이 죽었다. 저토록 약 올리듯 반짝반짝 빛나는 불빛 하나 둘 중에 고작 내 몸 하나 눕힐 불 켜진 방 하나 없구나, 하고 한숨 쉬느라 땅이 꺼질 것 같은 상황이었으니 뻔뻔이고 철판이고 예절이고 뭐고 당장 체면 차릴 처지도 안 되었던 나는 무턱대고 언니에게 비비고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언니는 너그럽게 나를 받아주었지만, 주차장 옆을 터서 불법으로 개축한 좁은 원룸 안에서 언제까지 둘이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저렴한 임대료와 각각 방을 가질 수 있는 자유를 찾아 멀리 떠나기로 결정했고, 왕십리로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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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 방은 냉장고 박스만 했다. 워낙 좁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영화의, 포스터도 아니고 팸플릿 몇 장으로도 벽을 온통 채울 수 있었다. 도저히 침대를 들여놓을 공간이 안 나와서 매트리스를 하나 샀지만 그것도 안 들어가서 바로 옆 동네 신당동 가구거리에서 오신 아저씨가 온갖 용을 쓰며 U자 모양으로 휘어서 구겨넣어야 했다. 그래도 그 위에서 자는 게 그리 괴롭진 않았다. 거의 매일 술에 취한 채 잤기 때문에 U자든 V자든 별 상관은 없었다. 사실 그건 광이라고 부르는 게 온당하지 방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한 사이즈였다. 아니, 광보다 관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학교 수업에, 직장 업무에 곧 죽을 것 같은 날 문을 쾅 닫고 찌그러진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으면 그야말로 〈리어왕〉의 독백이 줄줄 흘러나왔다. 아아 나는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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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때 내 방은, |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서울과 그 언저리를 헤매는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 있는 상태와 죽어 있는 상태 어딘가를 떠도는 중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저 나는 그때도 도시 빈민이었고 지금도 도시 빈민이며 앞으로도 도시 빈민이리라는 것을 알 뿐이다. 어쨌거나 그때, 도시 빈민 여자애는 광이든 관이든 제 몸 의탁할 곳이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광 혹은 관과 연결되어 있는 조그마한 다용도실, 그리고 그 다용도실의 바닥과 연결되어 있는 하수구가 재앙의 근원일 줄이야.
여름에 이사를 했으니 당연히 장마가 곧 찾아왔다. 그 장마야말로 나의 새로운 적이었다. 현대문명은 자연재해에 맞서 승리를 거둔 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니었다. 홍수나 지진 정도는 되어야 자연재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고 대단할 것도 없는 장마 때문에 덜덜 떨게 될 줄이야. 이 다세대 주택에 사는 누군가가 어느 날 머리를 격렬히 감는다거나 해서 머리카락 뭉치가 하수구를 막아버리면 어김없이 물은 넘쳤다. 그런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이 건물의 가장 아래에 있는 집, 즉 지하 셋방인 우리 집 하수구를 통해 잿빛 오수는 기세좋게 역류했다. 물들은 원래 제 갈 곳으로 가기 마련인데, 하필 내 방인지 광인지 관인지 하는 하여간 바로 거기로 물은 흘러들었다. 그래도 몇 번은 바가지 정도로 퍼내면 될 만한 수준이라 만만하게 봤는데 자연의 힘은 위대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던 어느 날, 아침에 등교해서 여섯 시간 내리 강의를 듣고 헐레벌떡 회사에 출근해 일을 마친 다음 파김치가 된 몸을 눕히고 싶다는 일념으로 질퍽한 거리를 해치고 겨우 U자 모양 매트리스에 털썩 주저앉는데 찰랑찰랑 하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찰랑찰랑? 찰랑찰랑? 가정집에서 들릴 만한 사운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제발, 설마, 뭐 이런 단어들이 머릿속으로 엄청나게 스쳐지나가는 가운데, 두 눈을 질끈 감고 다용도실 문을 벌컥 여니 맙소사, 문턱까지 혼탁한 오수가 차올라 있었다. 야근이라도 했었다면 온통 방까지 잠겨 있었을 사태였다. 버리려고 챙겨뒀던 비닐봉지나 다용도실 슬리퍼 따위가 회색 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꼴이라니. 하나님 거짓말쟁이,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아니하겠다 하셨으면서……!
땅에 떨어진 것도 잘 주워먹는 비위에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물은 아스팔트처럼 색깔이 시커맸다. 게다가 하수구 안에서 지난 몇 년간 지냈을 것이 틀림없는 온갖 종류의 오물과 쓰레기들이 양어장의 고기처럼 헤엄치고 있었다. 가방을 집어던지고 미친 듯이 양동이를 가져왔다. 물을 퍼내기 전에 가장 먼저 구출해야 할 것이 있었다. 폐업하는 옷가게에서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산 핑크색 원피스! 야들야들한 검정색 레이스로 장식된 차분한 핑크색 원피스는 아직 개시도 안 했고, 방 안에 얌전히 걸린 채 늘 내 지친 하루를 위로해줬는데 저 시커먼 물이 묻는다면 나는 하수구 물에 코를 박고 죽을지도 몰랐다. 코시 판 투테(Coc pan tutte, 이것이 여자라는 것이다)! 게다가 다음날 맘에 뒀던 남자애랑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입어야 하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원피스는 건져야 했다. 책이고 컴퓨터고 뭐고 일단 원피스를 지고 다다다다 안전지대로 대피시킨 뒤, 나는 내무반 동료들을 구출하기 위해 수류탄을 몸으로 덮치는 김병장과도 같은 기세로 양동이를 옆구리에 끼고 다용도실로 뛰어들었고, 얼른 문을 쾅 닫은 뒤 힘차게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핑크색 원피스부터 잽싸게 대피시킨 머리 노란 여자애가 씩씩거리며 물을 퍼내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보니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올 만한 광경이지만, 그 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고독한 순간 중 하나였다. 아니 뭐 고독씩이나, 뱉어놓고 보니 좀 민망하긴 하지만 고독이니 사랑이니 뭐 말은 그럴싸한 것들일수록 본질은 늘 구차하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김현진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스스로를 도시빈민이라 부르는 그녀는 대구 출생에 목회자인 부친의 모든 희망에 어긋나게 성장하였고 기어코 말 안 듣다가 고등학교를 두 달 만에 퇴학에 준하는 자퇴를 감행하였다.
냉소와 분노와 우울을 블랙 유머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을 몸 속에 장착한 그녀가 숨 막히는 고등학교를 용감히 박차고 나온 '불량소녀'로 세상에 알려진 지 이제 10년이 넘어간다. 그녀는 단편영화 <셧 앤 시 Shut And See>(97년) 감독, 웹진 <네가넷>(97년)의 최연소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최연소 합격 등의 화려한 타이틀을 가졌다. 그래서 한 시사주간지는 성공한 10대라는 제목으로 그를 표지인물로 내세웠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 자퇴생이라는 사실이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텔레비전의 관심도 남달랐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직시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꾸준히 살아왔다.
pota2to
2013.01.02
그럴싸한 본질들은 늘 구차하다는 말, 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구름고양이
2012.02.13
책방꽃방
201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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