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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지난주에 내린 눈이 겨우내 녹지 않아 봄이 되면 그 눈을 뚫고 새싹이 비친다고 했다. 오늘은 영하 15도라는 교통방송 날씨 정보를 들은 택시 기사 아저씨는 “이 동네 사람들은 영하 15도면, ‘아, 조금 선선하네.’ 합니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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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거리는 외진 길을 따라 한참 달렸을까, 감성마을로 향하는 길목에 표지판이 보였다. 자가용을 끌고, 버스를 타고 많은 사람이 이 먼 곳을 오간다. 한 사람 때문이다. 감성마을, 이외수 작가의 댁에 도착했다.
학창시절에 방영했던 <성공시대> 속에 이외수 작가는 방문에 철창을 치고 있었다. 두고두고 회자되었던 철문 일화 때문인지, 이외수 작가는 고독하고 기이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지금의 이외수 작가는 그야말로 소통의 상징이다. 철문을 닫고 들어갔을 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젊은 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과 매일, 매 순간 대화한다.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 이외수를 ‘절대강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전국민적인 소통의 비결을 묻고자, 채널예스가 감성마을을 찾아갔다. 2012년 임진년을 맞아 이외수 작가에게 덕담을 듣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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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화천에 한파주의보가 떴어요. 올겨울은 어땠나요?
“여기에선 겨울만 되면 한파주의보가 내려요. 뉴스에서 일부 산간지역에 눈, 비라고 하면, 영락없이 내리죠. 여기가 ‘일부 산간지역’이거든요.(웃음) 봄까지는 영상으로 올라가는 일을 기대하면 안 됩니다. 5월까지 눈이 내리는 일도 있어요.”
-최근에 ‘울랄라세쎤’이 감성마을에 찾아왔다고요. 트위터에 반갑게 쓰셨는데, ‘울랄라세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정말 위대한 것 같아. 연출력도 뛰어나고, 일단 실력이 탄탄해요. 나는 당연히 우승할 팀이 우승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잡초형 친구들을 좋아합니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성공한 친구들을 좋아하는데, 울랄라세션이 딱 그렇죠. 세상을 뒤집어라. 한국에서는 ‘울랄라세션’이 대표다. 세계 무대에서 진정한 한류를 보여달라고 그랬어요.”
-작가님이 무릎팍 도사도 아니고, 여기가 점집도 아닌데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옵니다.(웃음) 어떤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듣고 싶어서 이 먼 곳까지 찾아오나요?
“오시는 분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이외수는 벽이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 은연중에 권위의식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한테는 그게 없다는 거죠. 저 자신이 권위를 싫어해요. 엄숙한 것도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벽을 느끼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얘기하면 다 들어줄 것 같대요. 제가 간청이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지만, 귀로는 들어줄 수 있죠.
두 번째로는 그리움이 있다는 겁니다. 제 글을 대학 다닐 때 읽으셨다거나 군대 생활 때 읽은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거기서 어려웠을 때 자신을 지탱하거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제 글이 도움됐다던가 이런 추억, 아픔, 그리움이 있어서 저를 만나고 싶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작가님도 일상이 있으실 텐데, 사람들의 방문에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많죠. 이 공간 자체가 저 혼자만의 소유물이 아니거든요. 군에서 다 지어주고 투자를 했고.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아직 완공된 상태가 아니에요.(웃음) 미리 오신다고 연락을 하시면 되는데, 말씀도 없이 버스로 단체 관광을 오시는 분들도 있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시는 분들도 있죠. 여름철에 더워서 문을 열어놓고 글을 쓰고 있으면, 창문으로 머리가 쑥 들어오기도 하고요. 아, 뿅망치를 하나 준비해야 하나 싶고(웃음) 약주를 많이 드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는 분들도 있고요.
작가가 물론 한없이 너그러워야 하겠지만, 한없이 한가로울 수만은 없는 것 아닙니까. 그만큼 마음속에 쌓인 얘기, 그리움이 있구나 생각합니다. 또 제 책을 읽고 온 독자분들이어서 감사한 마음이 늘 있고요. 하지만 오시는 분들이 한두 분은 아니니까, 저뿐 아니라 응대하는 식구들이 어려운 점도 양해를 해주시면 고맙겠다 생각을 하죠.”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고 실천하는 쪽을 나는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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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작가의 공간은 강원도 화천의 감성마을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감성마을 이전에도, 독자들이 쉽게 그를 만나볼 수 있는 홈페이지(http://oisoo.co.kr)가 1998년부터 열려 있었다. “몹시 가난한 시절에도 손님은 끊임없이 드나들었어요. 홈페이지 식구들은 친인척 드나들 듯 찾아오시고 만났고요. 밤새워서 문학과 인생을 논하면서 시간을 함께 보냈죠.” 이외수 소설가와 보냈던, 좋은 추억들이 입소문이 나면서, 그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고.
-트위터에 글을 자주 쓰시잖아요. 반대로 작가님은 어떤 글을 읽고, 어떤 흐름을 읽으시나요?
“트위터에 올라오는 글은 거의 다 봅니다. 문학성 짙은 독자들의 글, 언제나 메시지를 던지는 작가들의 글, 추종자들이라고 할 만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종종 어려움을 하소연하시는 글도 놓치지 않으려고 잘 봅니다. 고발의 기능을 활용해서 부정부패와 관련한 글은 널리 알리는 의미로 리트윗하고요.
무엇보다 트위터는 습작 공간입니다. 140자 제한을 이용해서, 접시에 기름과 뼈를 싹 발라내고 살코기가 되는 글을 깨끗한 접시에 내놓는 듯한 느낌을 받아요. 늘 부족함을 느껴서 고치고 고치고, 일곱 번을 고쳐 올릴 때도 있어요. 두 번째로는 시대적 흐름이나 정보를 얻는 공간으로, 세 번째는 대화의 공간으로 사용합니다.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악플러는 상대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생각으로, 익명성을 등에 업고 상대를 공격하거나 욕설하는 악플러는 무조건 사회악으로 간주하고 차단합니다.”
-트위터를 보면, 독자들이 여러 가지 요청을 하잖아요. 작가님이 해결하기 어려운 요청들도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남자친구, 여자친구 문제라든지.(웃음)
“커플이 생기는 그림을 올려놓는다든가, 제 나름대로는 다 들어 드리려고 노력을 합니다만, 카드빚을 갚아달라거나, 부모님이 아프신데 방법을 알려달라는 등의 요청도 있어요.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힘이 못될 때는 괴롭습니다. 제가 도움을 드릴 방안을 강구 중입니다.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작은 모임을 만들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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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트위터로 기업 홍보를 해주고, 그 비용을 농촌 청소년들에게 기부하시기도 하셨죠. 그런 일을 체계화하시려는 건가요?
“제가 조금만 노력하면,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입장이니까요. 장학금을 마련한다든가, 돈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서야죠. 그런데 그보다 정말 어려운 일은, 어떤 요청을 들어 드리고 나면, ‘저도 해주세요’ 하는 요청이 뒤따른다는 겁니다.
강아지 이름을 지어달라고 해서 한 분 해 드리기 시작하면, 집집이 고양이, 개를 기르시는 분들이 애칭을 지어달라고 말씀하시고요. 심지어 아기 이름, 조카 이름, 화분에 화초이름까지 요구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최근에 ‘인디언 이름 짓기’가 유행하던데, 이런 기능이 참 좋은 것 같아.(웃음) 꼭 작가가 지어야만 좋은 이름인가요. 본인이 지어야 뜻깊은 이름도 있어요.”
-수많은 사람들 사정을 들어주고 살펴주고, 오는 사람 막지 않고…… 트위터계의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헛말이 아니로군요.(웃음)
“저는 대통령이라는 말이 영 짜증이 나요.(웃음)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가진 분이 썩 잘한 분이 별로 없잖아. 몇 분은 계시지만, 대개 국민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거나, 인권을 짓밟거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하잖아요. 저는 글 쓰는 사람인데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면 숨을 못 쉴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거든요. 특히 인권 문제, 표현의 자유 문제에서는 역대 대통령이 썩 명쾌한 정치를 하신 기억이 별로 없어서 별로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안 좋아합니다.(웃음) 트위터계의 간달프, 그게 좋아요.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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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작가님과는 잘 소통하고 있는 이웃과 소통이 잘 안 됩니다. 무엇 때문일까요.(웃음)
“애정결핍이겠죠. 일방적 소통은 소통이 아닙니다. 양쪽 다 열려 있어야 하거든요. 외형적 공통분모가 아닌, 내적인 연결고리가 필요합니다. 또 미래에 원하는 바가 같아야 합니다. 가령 농사꾼들 같은 경우 부부싸움을 많이 안 하거든요. 바라보는 곳이 같아서 그렇습니다. 일하는 환경이 비슷하고, 바라보는 것이 같으면 충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과 관계를 맺어나가야만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지혜로운 방법일까요?
“참 어려울 겁니다. 한쪽은 독서를 굉장히 중시해서 책을 읽자는데, 한쪽은 돈만 읽고 있으면 소통이 상당히 어렵죠. 그래서 교육이 우선해야 합니다. 아까 얘기했듯이 공통분모를 찾아야 하잖아요. 이것이 이미 기성세대는 좀 늦었다고 생각하고, 젊은 세대를 위해서는 교육이 좀 선행돼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미래를 위해서 도덕, 정의라고 하는 공통분모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정서나 감성이 죽거든요. 정서나 감성의 무덤이 직장이 되니까, 그럴 때는 마음 맞는 직원들끼리 서로를 위로하면서 자주 약주를 드셔야 되겠네. (웃음)”
“나는 내멋대로 살고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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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말씀 한마디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트위터에 쓴 글이 언론에도 자주 언급이 되고요. 너무 많이 이야기되는 것에 대해 부담은 없으신지요.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입 다물고 있다가 왜 지금 와서 떠드느냐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건 그분들이 그 시대에 제 글을 안 본 겁니다. 저는 그 시대에도 소설을 쓰고 떠들었어요. 다만 SNS가 없었고, 그 시대가 저를 주목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술 마시면 더 떠들었고요.(웃음)
지금의 주목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응당 작가가 해야 할 말이고, 그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부조리나 부패, 비리에 대해서 작가입장으로 박수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습니까. 제 나름대로는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거든요. 때로 제가 어떤 사실을 왜곡한 게 있다면, 트위터를 통해 깨끗이 사과합니다. 잘못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작가적 입장으로 하는 말씀인데도, 사람들은 이쪽 편, 저쪽 편이라고 너무 쉽게 이름을 붙이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서로가 스스로 검열의 칼을 들이대기도 하고요.
“그렇죠. 어제 모 방송국에서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어요. 좌파냐, 우파냐.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굳이 대답하라고 하면 나는 '내멋대로 살고파'다. 왜 좌파여야 하고 우파여야 합니까. 대한민국 국민으로 족한 것 아닙니까?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정치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고, 올바른 정치를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지요. 특히 작가는 시대의 감시자이고, 이 세상 모든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시대를 썩지 않게 만드는 방부제라고 생각합니다.
전 좌빨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변하길 원하는지는 공공연하게 말할 거예요. 그래서 내가 박원순 시장을 멘토로서 지지한 거고요. 그 양반은 갈취하는 사회가 아니라, 베푸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분이니까. 베푸는 모습을 보여주고 실천하고 그러는 쪽을 나는 지지합니다. 온갖 권력층들의 비리가 속출하고 있지 않습니까. 임기 말이니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하는데, ‘유종의 추’를 거두고 계시니까 보기가 딱해."
-상처가 많은데 서로 말은 안 하고, 내 얘기는 하기 어렵지만, 듣고 싶은 얘기는 있고, 이래서 멘토를 찾는 게 아닐까 싶어요. 멘토 열풍은 어떻게 보나요?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생각이에요. 개인적인 생각만으로 어떤 것을 결정하기보다 여러 사람의 의사를 종합해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저는 민주당, 진보당, 한나라당에서 멘토를 해달라면 해줘요.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니까 한쪽만 하는 것 같이 보이는 거죠.”
-왜 이외수 선생님을 색안경을 끼고 볼까요? 특별히 정치적인 행위를 하신 적이 없으신데.
“그게 이제…… 내가 최북단에 살고 있잖아. 화천이.(웃음) 거기다가 잘 나가는 게 꼴 보기 싫은 거야. 뭐라도 흠을 잡고 싶은 거지. 자기편 안 들어주면 다 적군이고. 근데 편들 일을 해야 내가 들어줄 거 아냐.(웃음)"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으면, 무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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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 작가는 두 살 때 어머니를 잃고, 6.25전쟁을 겪었다.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던 어린 시절부터,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말 한마디가 대중의 관심을 끄는 국민적 멘토의 자리까지. 이외수는 늘 일관된 자세로 살아왔지만, 삶의 굴곡은 깊었다.
춘천 교대 시절, 학비를 버느라 2년제를 7년 동안 다니면서, 화가를 꿈꿨던 대학생. 결국 돈 때문에 미술을 포기해야 했고, 밀린 방세를 갚으러 지방지에 낸 소설로 덜컥 등단하게 된다. 그는 “데뷔가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이었다고 회고한다.
두 번째 전환은 결혼. 한국남자들의 유난스러운 책임감과 의무감에 지쳐 맹렬하게 부부싸움을 하길 10년. “아내가 심각하게 우울증에 걸려서 환경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칼』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집 사려고 쓴 글입니다. 그 죄책감으로 붓을 꺾었습니다. 그게 세 번째 전환점이 되었죠. 8년 동안 침묵하다가 방에 감옥 철문을 치고 다시 데뷔하는 기분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 소설이 『벽오금학도』다. 대단한 인기를 누리면서, 그는 작가로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는다.
“돌아보면, 굉장히 어려운 시절이나 완전히 절망에 빠졌을 때도 폐인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준 것은 소설이었어요. 문학이라는 버팀목을 짚고 오늘날까지 걸어온 게 아닌가. 인생은 누구에게나, 심지어 부처님에게까지도 고난의 연속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고비들을 넘길 수 있었던 게 문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문학이 비단 문학 하는 사람만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읽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버팀목이 되고 힘이 된다는 생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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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사랑을 많이 받아야, 줄 줄도 안다고 하잖아요. 작가님은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그런 많은 사랑을 품을 수 있나요?
“가정에서 사랑 받은 기억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6. 25 직후고 시대 자체가 불우했으니까. 하지만 사랑을 받은 기억은 많아요. 성장해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제 노력에 대해 가상하게 생각해줬고 박수를 많이 쳐줬어요. 원체 없으니까 조금만 잘해도 격려해줬거든요.
저는 아직도 세상에 착한 사람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착한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만났고, 제가 안되길 바라는 사람보다 잘되길 바라는 사람을 훨씬 많이 만났거든요. 정말로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그래도 세상은 나쁜 놈 보다는 좋은 분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죠.”
-소설이나 많은 산문에서 늘 사랑을 강조하셨어요. 꾸준히 글을 쓰게 만들었던 문학적 화두 역시 사랑이었습니까?
“처음부터 간절하게 내 글이 남의 가슴으로 전해지길 바랐어요. 나는 너무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또 나오면 안 된다, 이런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라면 하나로 일주일을 버텼고, 매일이 처절했으니까. 그래서 내 글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사랑입니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유치하니까 우회해서, 간접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사랑하거나 사랑 받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그것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전 우주의 자물쇠가 되는 키워드가 사랑이니까, 예수님도 부처님도 늘 그런 얘기를 했던 거죠.
글쓰기의 화두라고 한다면, 이기성입니다. 수많은 범죄와 사고들이 이기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숱하게 많아요. 전세계 범죄자들의 공통점은 딱 한가지입니다. 당하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기성이 조화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이고, 지구상에 그런 존재는 인간이 유일합니다. 작가적 입장에서 작중 인물, 작품을 통해서 늘 탐구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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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강자』에서 적극적으로 느끼라고 강조하셨잖아요. 느낌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한 일이구나 싶었어요. 우리가 ‘멍때린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느낌(!)’과는 다르니까요.
“느끼는 것은 오감을 동원해야 하는 일이에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일이지요. 머리로 아는 것을 가슴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식에다 감성을 더하는 일이죠. 감성을 고양하려면, 애정을 부여해야 합니다. 사랑을 부여하면, 지식도 깨달음이 됩니다.
많이 아는 것보다 많이 느끼는 게 좋고, 그보다는 많이 깨닫는 게 좋습니다. 많이 깨달았다는 말은, 많이 사랑했다는 말과 같아요. 많은 것을 사랑할 줄 아는 가슴을 가지면 어떤 순간에도 무적이 됩니다. 축구선수가 공을 많이 알면 뭐하겠어. 공을 많이 아는 선수는 선수가 공을 쫓아다녀야 돼. 많이 사랑하면 공이 그 선수를 쫓아다닙니다.”
2012년, 존나게 버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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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외수 작가는 사람들에게 ‘존버정신’을 권하고 있다. ‘존버’가 뭐냐고? ‘존나게 버티자’는 말이다. 한 방송국 카메라에다 이 얘기를 했다가, 적절치 않은 말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고. ‘열심히 버티자’와 ‘존나게 버티자’는 어감부터 다르다.
“물가상승, 취업난, 부정부패 소식으로 매일 채워지는 뉴스를 보더라도 올해는 ‘열심히’ 버티는 걸로는 안될 것 같다. ‘존나게’ 버텨야 한다.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욕이라고 싫어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개똥을 약으로 썼다면 약의 가치로 높여야지 않겠습니까. 개똥이라고 해서, 똥의 의미만 부각해서는 안 되죠.”
-올해 ‘버티자’는 말을 꺼내신 이유는, 올해가 힘든 상황이라는 생각 때문이신가요.
“제일 중요한 것은 시련이나 아픔, 고통을 극복하려고 들면 들수록 어려워집니다. 운명적인 것도 있고, 시대적 흐름을 개인이 막아내거나 극복한다는 건 어려우니까 버티는 것이 오히려 지혜로운 방식이 아닌가. 버틸 때는 좀 악을 약간 써야 하잖아요. 선비처럼 나약하게, 도덕적으로 버틸 수는 없고, 좀 ‘존나게’ 버텨야 할 것 같은. 이런 감각적인 것 때문에. ‘존나게’라고 썼는데.
그것을 어원을 놓고 보면,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개똥을 약에 썼다면, 그게 개똥인지 약인지. 그것은 약의 가치를 좀 더 높여야지 않겠습니까. 개똥이라고 해서, 약의 가치를 더 부각하고 높여야지 똥의 가치를 취득해서는 안 되죠.”
-버티긴 버티되, ‘어떻게’ 버티는가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같이 어려움을 겪고 나서도, 어떤 사람은 그 시간이 자양분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후회스러운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무조건 이 악물 수는 없는 거죠. 자기 실력을 키우면서 버티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버팀입니다. 로또를 사면서, 비감을 느끼는 일을 되풀이하지 말고 노력해야 합니다. 내 인생이든, 남의 인생이든 무통분만이나 불로소득은 없는 거거든요. 노력하는 만큼 주어지는 세상이 돼야 하고, 그것이 충분한 보상은 안 되더라도 노력한 자가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빠르든 늦든 그것은 노력하는 자에게 오는 것이기 때문에 노력하면서 버티자는 거죠.”
-작가님은 버티는 기간에 자기 연민에 빠지지는 않았나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화장실에 가서 많이 울었어.(웃음) 술도 많이 먹고. 자학을 많이 하게 되는데 권장하고 싶지는 않아요. 너무 큰 상처가 되니까. 아파하더라도 함께 아파했으면 좋겠어요. 탄식하더라도 혼자 하지 말고. 함께 아파하고 나누어 가지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요즘처럼 남의 생활을 SNS로 쉽게 볼 수 있는 시대에는 타인과의 비교하면서 불행에 빠지거나, 자기 연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감성의 결이 같은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자주 대화하면서 버티는 게 지혜로운 방법이에요. 우울하고 무력감을 느낀다면, 콩이라도 하나 심으라고 말해요. 물 한번 주면 잘 자라거든요. 그것이 싹트고 열매 맺는 과정을 지켜보세요. 그런 식으로 조금씩 작은 것부터 성취해나가면서 다른 것들과의 대화, 사람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게 중요해요. 말이 안 통하더라도요. 친구들, 이웃들, 사물들. 심지어 신들과도 대화를 해보는 게 좋아.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잡귀들까지. 나는 하죠. 근데 사람들이 안 믿어. (웃음)”
-무슨 대화를 하시나요.(웃음)
“하나님, 저는 아직 괜찮습니다. 지금쯤이면 뱀도 좀 용서하세요. 땅바닥을 안 기도록. 발도 예쁜 것 몇 개 달아주시든지. 뱀은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유혹해서 그렇게 땅바닥을 긴다고 하지만, 지렁이나 달팽이는 왜 그러세요? 물어도 보고.(웃음)”
-대답해주시나요?
“내가 찾아야죠. 신은 입이 읎어. (좌중 웃음)”
“한해, 최소한 자기 나이만큼은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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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데 쓰러지지 않으려면 정신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풍요로운 정신, 절대 강자의 정신력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요?
“하나밖에 없습니다. 책 많이 봐야 합니다. 경제적 자기계발이 아니라 정서적 자기계발이 필요합니다. 성공을 자꾸만 물질의 풍요에 포커스를 맞춰서 결국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이 행복한 것인 양 왜곡하거든요. 웰빙 운동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고도 산업사회가 되면서, 물질은 풍요로워졌는데, 정신이 황폐해져서 정신과 물질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것마저도 곡해해서 돈벌이에 써먹고 있는데, 아직도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책을 읽을 때도, 우리가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해서 건강을 유지하듯, 책도 골고루 읽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재미있는 매체들이 독자를 책에서 달아나게 합니다. 저도 작가로서 유익하고 재미도 있고, 혼을 사로잡는 책을 쓰도록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정신적 건강, 정신적 풍요가 주는 행복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구체적으로, 책을 얼마나 읽으면 될까요?
“최소한 제가 생각할 때 자기 나이는 뛰어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1년에 자기 나이만큼은 읽어야 한다는 거죠. 평생에 자기 나이만큼 읽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웃음) 그러면 안 되고.”
-2012년이 밝았습니다. 올림픽부터 선거 등 많은 행사가 예정되어 있고요. 종말론도 들려옵니다. 또 많은 일이 벌어질 텐데, 새해를 맞아 독자들에게 덕담 한마디 해주세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67년을 사는 동안 십 년에 한 번씩 종말론이 떠돌았어요.(웃음) 근데 아직도 종말이 안 왔어. 종말론을 믿진 않지만, 올해 어려움은 다소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극음의 상태를 거쳐왔어요. 이제 햇볕이 들기 시작하고, 양지바른 쪽으로 운세가 옮겨갈 텐데, 항상 좋은 것을 가지려면 대가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봄을 맞으려면 겨울을 겪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려움이 온다는 것은 곧 좋은 것이 오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까, 희망을 품고 ‘존버’하시길 바랍니다. 절망하고 좌절할 만한 일이 생겨도, 한번에 인생이 다 끝난다고 보지 마세요. 때론 시대적 흐름이나 운명에 질 때도 있는 겁니다. 명상하십시오. 이외수 책 재미있으니까 『절대강자』읽으면서 견디세요.(웃음)”
- 절대강자 글 이외수 | 그림 정태련 | 해냄
세상에 대한 예리한 시각이 돋보이는 이외수 작가의 글 149편과,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해 온 우리 유물들의 혼을 담아낸 정태련 화백의 세밀화 37점이 담겨 있다. 이와 더불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글과 그림의 장중한 무게감을 완화시키는 박경진 작가의 깜찍한 아이콘은 위트와 유머를 선사하며, 책의 말미에 수록된 문화재평론가 김대환의 유물해설은 우리 역사와 전통, 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클라이스테네스
2012.08.16
앙ㅋ
2012.03.13
kygh
201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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