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코헨 < Old Ideas >
활기에 찬 호흡과 에너지가 정지했을 것 같은 노년의 앨범을 듣는다는 것, 그리고 평가한다는 것은 혼미를 부른다. 그의 이전 작품들이나 혹은 동시대 딴 가수의 앨범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 재단은 무의미하다. ‘캐나다의 밥 딜런’으로 불렸지만 1934년생인 레너드 코헨은 밥 딜런보다도 일곱 살이나 위다. 나이 여든이 다 된 나이에 신보를 내놓은 것에, 바로 그 점에 우리는 평가 이전에 경배를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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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곡은 2008년부터 바짝 시동을 건 순회공연을 통해 미리 공개했지만 그 분주한 일정 속에서도 새 앨범을 발표한 것 또한 노익장, 열정이 아닌 삶의 마무리작업임을 알려준다. 그는 오랜 세월 음악활동을 하면서 앨범이 논란과 파장을 일으킨 적은 있어도 화제와 마케팅을 의도한 적은 없다. 자신의 사고와 발로의 틀에 골몰할 뿐이다. 오로지 수행만을 거듭하는 은둔자와 같은 감춤과 절제의 미학이야말로 레너드 코헨 세계의 핵심이다.
그는 갈구하지만 차분하게 기다린다. 용서를, 신의 가호를, 치유를, 단 한번이라고 밝음을, 귀향을, 조화를 그리고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네/ 내 짐을 덜어준 채/ 집으로 돌아가네/ 커튼 뒤로/ 집으로 돌아가네/ 내가 한 분장을 지운 채...’(「Going home」) ‘무지개를 사랑하곤 했고/ 전망을 사랑하고 했고/ 이른 아침을 사랑했네/ 난 그게 새로운 것인 양 여기곤 했지/ 하지만 난 어둠에 걸려버렸어/ 너보다 더 심하게...’(「Darkness」) |
‘내게 보여주오/ 당신의 종이 가기를 원하는 곳을/ 내가 잊어버린 내가 모르는 곳을 내게 보여주오...’(「Show me the place」) ‘서로 다른 편에 있는 우리를 발견하네/ 아무도 긋지 않은 선인데/ 높은 곳의 눈으로는 하나로 보이겠지만/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그것은 두 편이라네...’(「Different sides」) |
편을 가르고 가슴이 찢어지고 극성스럽게 살고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그는 창문을 닫고 그것에 눈을 감지는 않는다. 그는 본다. 다만 (왜 이리 혼돈스럽고 나약하며 여전히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은지) 알고 싶어 하고, 때로 자장가를 불러주고자 하고 때로 의지하고자 한다. 강한 톤으로, 진리를 역설하는 느낌이 아니라 범인(凡人)의 목소리로 말하기에 도리어 성찰의 공기가 흐른다. 낮은 데에서의 울림이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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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는 마돈나와 많이 작업해온 패트릭 레너드(Patrick Leonard)가 맡았다. 그는 「Show me the place」 등 네 곡이나 코헨과 함께 썼다. 레너드 코헨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받쳐주고 감싸는, 방해하지 않는 악기 편성과 사운드 구현에 중점을 두었다. 행여 어른과, 현인과 생생한 직접 대화를 원한다면 팝 레코드로선 가장 근접한 작품일 것 같다. 너무도 소란스런 세상에서 가장 낮게 읊조린 노래들이다. 레너드 코헨이 내지 않는 한 우리 시대에 이런 음악은 없다.
브라이언(Brian) < Reborn Part 1>
우리나라에 알앤비 남자 솔로가수는 많다. 매년마다 눈에 띄는 신예들도 배출되고 있어 나름 ‘신(Scene)’이라는 탄탄한 선수층도 생긴 것 같다. 참가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어필하기 위해 아델(Adele)이나 존 레전드(John Legend)의 레퍼토리를 고민 없이 선택할 정도로 저변 역시 넓어졌다. 알앤비는 한국에서 더 이상 과도한 애드리브로 개그 대상으로 활용하는 소재가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른바 ‘알앤비 가수’라고 불리는 아티스트의 음악적 성향이다. 1970년대 전후의 소울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음악적 자양분은 묵직한 창법과 멜로디를 구사하는 심각한 싱어들을 배출했던 것이다. 다소 과도한 심각함이 쥐어짜는 발라드와 결합하면서 소몰이로 심화하는 모습도 많이 봤다. 이미 빌보드의 일정 지분을 획득한 컨템포러리 알앤비가 국내에서만큼은 미적지근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재 손가락에 꼽는 알앤비 가수들이 TV속 무대에서 춤을 춘 사례가 많은지 생각해보라. 우리가 < 나는 가수다 >의 김범수에게 열광했던 요인에는 일탈적 퍼포먼스, 즉 남진의 다리 떨기 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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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변화를 더욱 각인시키려는 노력은 이번 앨범까지 이어져오는 형국이다. 한때는 제이슨 데룰로(Jason DeRulo)의 「In my head」를 번안하여 불렀듯이 철저히 미국 현지의 트렌드를 그대로 이식하는 중이다. 모든 곡을 해외 작곡가에게 맡겼을 정도로 되도록 시야각을 넓혔다. 또한 컨템포러리 알앤비와 뗄 수 없는 관계인 힙합과 스킨십을 이뤘다. 예상보다도 타이거 제이케이(Tiger JK)를 비롯한 힙합계의 실력자들과 태그팀을 이루며 어색하지 않게 놀 줄 안다. 내수용으로만 묻히기에는 아까운 트렌드 감각과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한다는 점은 해외 케이팝 팬들에게도 공감을 이끌 수 있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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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로 진출해 뒤늦게 음악적 변신을 시도하는 사례 중 하나다. 물론 그 중에는 갈 길을 잃고 헤매는 미아 신세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브라이언의 경우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적당히 컴백 앨범을 포장하기 위해서 리본을 단 것이 아니다. 이름만 남겨 놓고 이미지를 쇄신하는 멋스러운 < Reborn >인 셈이다.
세븐(Seven) < 내가 노래를 못해도 >
예상보다 큰 파급효과를 냈던 「열정」의 히트가 이토록 먼 길을 돌아오게 했다. 「와줘」까지만 해도 그는 각보다 느낌이 살아있는 댄스, 서양의 리듬과 한국적 멜로디의 갈등을 조율해내던 리드미컬한 보컬운용능력을 통해 컨템포러리 알앤비를 한국에 정착시킬 기대주였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강박이었을까, 아니면 트렌드를 쫓아야 한다는 욕심이었을까. 갑작스런 크렁크 앤 비로의 전환, 그리고 이어지는 클럽 튠 「난 알아요」까지. 대중들이 그의 보폭을 따라가기에는 숨이 벅찼다. 여기에 테디와 세븐의 조합이 패착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했던 「라라라」와 「Better together」까지. 오랜 가수 생활과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남은 것은 자기 색깔이 없는 가수라는 명함이니, 열심히는 달려왔지만 그 방향이 어긋났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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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확실한 임팩트보다는 ‘글쎄’라는 한마디를 머릿속에 남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일장일단. 중구난방으로 흘러가던 세븐의 이미지를 비트에서 노래 중심으로 가져가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심심한 선율과 디렉터에 매몰되어 버린 본연의 스타일은 마이너스 요인이다. 더군다나 아티스트의 프라이드를 희생함으로서 동정심을 유발하는 가사를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것이 과연 좋은 전략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다행히 평타는 치고 있지만 당장 이후의 작품부터 노래 이외의 무엇으로 자극을 주어야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핀트를 조금만 돌려보면, 그래도 자신의 장점을 살려낸 트랙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간만에 ‘제대로 노래하는’ 세븐을 목격할 수 있는데, 구애의 설레임과 자신감을 진성과 가성으로 극대화해 밑줄을 그어낸 「그런사람」, 잘 쓰지 않던 허스키한 음색으로 후회를 부르짖는 발라드 노선의 「이해해」 등은 아직 세븐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들이다. 처음으로 셀프 프로듀서로 나선 덕분에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정확히 잡아내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러한 곡들의 탄생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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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The Brian) 2집 - Manifold
출판사 | SonyMusic
브라이언 (The Brian) - 미니앨범 : ReBorn Part 1
출판사 | Stone Music Entertainment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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