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연에 어머니가 오셨는데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조끼라도 입어서 다행이죠(웃음). 이렇게 원초적인 모습의 퀴퀘그인 줄 알았다면 재공연 참여는 아마 고민했을 거예요.”
뮤지컬 <모비딕>은 허먼 멜빌이 쓴 동명의 원작소설을 무대에 올린 작품. 피쿼드호에 승선한 7명이 거대한 흰색 향유고래 모비딕을 잡으러 떠나는 여정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모든 배우가 연기와 노래는 물론 직접 연주까지 맡아 ‘액터-뮤지션(Actor-Musician) 뮤지컬’로 초연 때부터 주목받았다. 콘은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퀴퀘그로 무대에 선 것이다.
“소극장에서 했던 지난해 무대가 음악적인 면에 중점에 맞춰졌다면, 올해는 극장이 커지면서 드라마가 강화됐어요. 이스마엘과 퀴퀘그의 우정에서 모비딕을 향한 피쿼드호에 승선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대된 거죠. 개인적으로는 퀴퀘그의 비중이 줄어서 좀 안타까워요(웃음).”
기자가 그를 만났을 때는 두 번째 공연을 앞둔 날이었다. 지난해 꽤 오랫동안 참여했던 작품인데도 그는 <모비딕>을 난생 처음 본 선원처럼 설렘과 버거움의 모습이 교차했다.
“준비하면서 무척 힘들었거든요. 재공연이라서 참여한 건데, 작품이 지난해와 너무 많이 달려졌더라고요. 얼마 전까지 <페임>을 공연했기 때문에 시간은 없고 준비할 건 많으니까 부담이 컸죠. 그런데 막상 첫 공연을 하고 나니까 ‘드디어 올렸구나’ 하는 생각과 한편으로는 ‘다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에, 공연 끝나고는 여러 가지 생각에 울컥했어요.”
올해 <모비딕>에서 퀴퀘그는 문명세계에서 온 이스마엘과 견주어 더욱 원시적인 모습이 부각된다. 연기경험이 많지 않은 콘에게는 어눌한 말과 서툰 몸짓으로 표현해야 하는 이번 무대가 힘들었던 것이다.
“퀴퀘그 옷 사이즈를 재는데 상의를 안 재더라고요, 없다고. 진작 말씀해주셨으면 운동이라도 좀 해뒀을 텐데요(웃음). 퀴퀘그의 원시성이 강조되다 보니까 연기적인 부담이 굉장히 컸어요. 게다가 저와 더블 캐스팅된 지현준 씨는 연기자 출신이라서 원초적인 연기를 정말 잘 하시더라고요. 저는 손을 다칠까봐 평소에 운동도 안 하거든요. 그래서 많이 힘들었죠. 하도 힘들어하니까 지현준 씨가 캐릭터도 잡아주고 많이 도와주셨어요.”
전문 연주자인 만큼 무대에서 연기를 위해 완성도 높은 연주를 포기해야 할 때도 적잖이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
“작년에는 제 악기를 쓸 때도 있고 다른 악기를 쓸 때도 있었는데, 올해는 아예 못 써요. 그만큼 무대 위 위험요소가 커진 거죠. 예를 들어 눕거나 빠른 걸음으로 걷거나 다른 사람을 안은 상태에서는 사실 제대로 된 연주를 들려드리기 힘들거든요. 장면도 그렇고 악기도 그렇고, 좀 더 완벽한 연주를 들려드리고 싶은데 아쉬울 때가 많아요. 연주 자체가 연기이고 의사소통의 표현이라서 극복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연주자이다 보니 연주에 있어서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거죠.”
그러게, 20년 넘게 바이올린을 연주해온 그가 어떻게 뮤지컬을 하게 됐을까. 클래식 연주자라면 자연스레 예상되는 길에서 한참은 벗어난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어렸을 때는 연기를 해보고 싶어서 대학 때는 소극장에서 멀티맨을 해본 적도 있어요. 또 연주자들의 지향점이 노래하듯 연주하는 것인데, 저는 실제 노래하는 것도 좋아했고요. 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 도전했는데, 잘 하고 싶으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잘 모를 때는 ‘이 정도면 되겠지’ 생각되는데, 조금씩 알게 될수록 저의 부족한 점이 보이니까, 노래도 더 잘하고 싶고 연기도 더 잘하고 싶고 마구 채우고 싶은 거죠.”
하지만 다재다능은 자칫 정체성의 혼돈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남다른 길을 걸을 때면 항상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지 않던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라고.
“올 초에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 뭐지?’ 지난해에는 거의 뮤지컬만 했는데, 그러다 보니 바이올린 연습하는 시간이 많이 줄 수밖에 없잖아요. 연주자로서 예리한 느낌이 무뎌진 것도 같고, 그렇다고 전문 연기자도 아니고,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 살짝 들더라고요. 그런데 3월 초에 일본에서 드라마를 잠깐 촬영했는데, 그간 해왔던 노력들이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을 다잡았죠. ‘그래, 나는 새 길을 가고 있다!’ 지금은 조금 애매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서 어느 정도 완성해 놓으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거니까요.”
딱 봐도 완벽주의자인 이 남자는 또 얼마나 애를 태우며 자신의 길을 닦아갈까.
“바이올린은 20년 이상 했고 다른 것들은 신인이나 마찬가지인데 단시간에 연주만큼 끌어올리려고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아요. 우선 연기적인 면에서는 그동안 했던 작품이 모두 연주와 관련이 있는데, 바이올린이 없어도 뮤지컬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음반 작업도 집시음악을 1장 정도 더 내고 나서는 클래식이나 일렉트로니카, 이지 리스닝 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다양한 모습의 아티스트. 그는 그렇게 콘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롤 모델은 없어요. 오늘 무언가를 하지만 내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거든요. 끊임없이 불안하고 힘들지만, 가끔 뒤를 돌아보면 큰 길 사이로 난 오솔길이 보이더라고요.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게 훨씬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더 보람있는 것 같아요.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하나의 이미지를 지닌 아티스트가 아니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나중에 제 공연을 한다면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할 수 있는 복합적인 무대를 그려보고요. 이런 제 모습이 다른 도전을 꿈꾸는 친구들에게 작게나마 무언가를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 뒤 <모비딕>을 관람했다. 원래도 스타일리시한 팝피아니스트 윤한 씨가 맡은 이스마엘은 단연 눈에 띄었다. 반면 퀴퀘그는 콘의 말처럼 뛰어난 연주 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장면보다는 아직은 서툰 몸짓이 두드러지는 무대가 많았다. 하지만 섬세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서툴고 투박한 모습이 그냥 퀴퀘그 같았다. 다소 묵직한 음색의 노래가 더해졌을 때는 그의 다른 무대까지 궁금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1~2년 뒤 콘을 다시 만나면 더 재밌는 얘기들로 그만의 오솔길을 채워가고 있을 않을까. 뮤지컬 <모비딕>은 4월 29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콘을 비롯한 멋진 남아들이 풍성한 음악과 드라마로 채우는 색다른 감동의 무대를 확인해보기 바란다.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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